블랙은 참 좋은 영화다. 영화 스토리는 뻔한 이야기지만 인도영화의 화려한 미장센과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는 차곡 차곡 가슴을 짓누르며 감동을 준다. 참교육에 대한 이야기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주위 사람에게 권유하고 싶은 영화임은 틀림없지만, 영화 주인공의 직업인 특수교사들에게 추천하기에는 고통스러운 영화다. 

관객들은 '그봐, 저 늙은 선생처럼 열정적인 사람은 없어!'라며 주인공 데브자이(Amitabh Bachchan)를 칭송하며 한국의 특수교사와 비교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업무상 특수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영화 블랙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기껏 해봐야 19이나 18살밖에 못사는 학생이 고등학교 특수학급에 들어왔는데, 제가 과연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집에서 잘 먹고 여행을 다니며 생을 마감하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이지만, 부모는 아이가 교복을 입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 학교에 방치한 채 내버려두더라."

"비장애 학생이나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장애학생을 때렸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특수교사가 저럴 수 있냐며 쉽게 이야기하더라. 똥을 아무데나 누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학생을 폭력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면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상을 제대로 모른 채 이야기를 하는 데 그게 가슴이 더 아프다."

데브자이가 오기 전에 미셀은 사람이 아닌 부유한 가정의 애완동물이었다.



40대 후반의 특수학교 선생님의 경험담을 소설로 써내려가도 네다섯 권은 될법하다. 한국의 특수교육 선생님들도 영화 블랙의 데브자이 선생의 페다고지 철학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다만 블랙은 영화라서, 오늘은 왠지 딴지를 걸고 싶다. 한국의 교육현실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데브자이는 1명을 위해 인생을 걸었지만 특수교사는 적게는 7명, 많게는 20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데브자이 선생은 특이한 교수법 때문에 공교육에서 버림받고 인도 카스트제도 크샤트리아(귀족, 왕족) 집안의 딸 미셀(Rani Mukherjee)을 만난다. 미셀의 어머니는 데브자이를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의 딸을 짐승이 아닌 성장가능한 사람으로 교육시키려는 열정을 믿고 지지한다.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미셀을 분수대에 끌고가 온몸으로 물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데브자이. 비로소 미셀은 생애 첫 언어인 '물'을 말한다.


분수대 씬에서 미셀이 '워..러 water'라고 발음하는 장면은 데브자이를 미치광이 선생에서 대단한 선생으로 승화시킨다. 부모가 딸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인간애를 가장하고 미셀을 방임할 때, 데브자이가 택한 교수법은 원초적 언어인 촉각을 통해서 언어를 일깨우고 폭력에 가까운 엄격한 훈련 방식으로 인간성을 복원한다.

교육현장에서 체벌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지만, 개인적으로 특수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체벌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학교에서 신발장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법과 밥을 흘리지 않고 먹는 법 등 가장 기초적인 교육을 가르치더라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데브자이 선생은 격리를 택했다. 밥을 짐승처럼 먹을 때는 가차없이 밥그릇을 빼앗았다. 그러한 고통과 인내를 감수하는 부모들은 대한민국에 없을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초기에 엄청난 돈과 정신적 열정을 쏟지만 사회적 냉대와 부재한 시스템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 채 어둠의 뒷편으로 숨어버린다.

미셀이 대학에 합격하자 데브자이는 그녀의 졸업을 위해 책을 그려준다. 그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40대 후반의 그 선생님도 장애학생으로 묻혀버렸을 수도 있을 학생을 때리고 제 돈을 들여 과외를 붙여서 당당히 대학에 합격시켰다. 미셀에게 대학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자신의 눈을 대신해서 글을 일러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데브자이를 우리 땅에서 만날 수 없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장애학생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 괜찮은 직장을 갖고 결혼도 해서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지도 모른다. 미셀이 처한 환경과 대다수 한국의 장애 학생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다르지만, 데브자이를 통해 우리는 특수교사로서의 곧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선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제자에게 전해진다. 뒤바뀐 두 사람의 운명 앞에서 미셀은 스승을 위해 힘겹고도 아름다운 가르침이 시작된다. 데브자이는 특별한 교수법 때문에 공교육에서 버림받았지만 미셀을 통해 교육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발견했다. 데브자이가 아니었다면 미셀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한 채, 그리고 들리지 않는 음악과 문학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했을 것이다. 

데브자이가 없는 벤치에 앉아서 눈을 맞고 있는 미셀



블랙을 통해 느낀 것은 열정적인 한 선생으로 인해 삶이 뒤바뀐 한 여인의 이야기지만, 내가 만난 특수학급 선생님들이 보여준 드라마는 교육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삶을 좀 더 비장애인에 가깝게 살아가도록,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떳떳하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교육은 변화되리라는 믿음, 힘들지만 봄은 오리라는 그럴듯한 단어보다는 작은 실천, 올해에도 봄의 소식을 전해줄 선생님들을 만나고 싶다.


봄의 소식(消息)

                        신동엽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危毒)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이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狂症)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와서
몸 단장(丹裝)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선생님 눈이 올 것 같아요" "무슨소리야 하늘이 이렇게 맑은데" "정말로 눈이 내릴 것 같아요" 보지도 듣지도 못하지만 사람이 잃어버린 감각으로 자연을 느끼는 미셀. 눈은 내렸도 두 사람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춤을 춘다.



특수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두 분의 선생님.




출연 및 스탭 (출처 : daum)

영화 블랙 사이트 : http://black.indiatimes.com/



감독
산제이 렐라 반살리 산제이 렐라 반살리 (Sanjay Leela Bhansali) 사와리아(2007) , 데브다스(2002) 
주연
아미타브 바흐찬 아미타브 바흐찬 (Amitabh Bachchan) 데브자이 역  
라니 무케르지 라니 무케르지 (Rani Mukherjee) 미셸 역  
출연
쉐나즈 파텔 쉐나즈 파텔 (Shernaz Patel) 캐시 역  
아예샤 카푸르 아예샤 카푸르 (Ayesha Kapoor) 어린 미셸 역  
드리티먼 샤터지 드리티먼 샤터지 (Dhritiman Chatterjee) 폴 역  
제작
산제이 렐라 반살리 (Sanjay Leela Bhansali)
안슈만 스와미 (Anshuman Swami)
기획
가우타미 바트 (Gautami Bhatt)
아만 길 (Aman Gill)
각본
산제이 렐라 반살리 (Sanjay Leela Bhansali)
브하바니 이예르 (Bhavani Iyer)
프라카시 카파디아 (Prakash Kapadia)
촬영
라비 K. 찬드란 (Ravi K. Chandran)
편집
벨라 세갈 (Bela Segal)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