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찰은 존재 자체가 존재의 목적

지리산 둘레길 의탄리(함양)에서 매동리(남원)를 걷다 보면 자연으로 돌아간 유서 깊은 사찰을 만날 수 있다. 문득, 절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칸트는 <실천이성 비판>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이성적)는 목적 그 자체이며 인간은 결코 무엇인가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오래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규정은 화엄경의 동체대비 사상에서도 발견된다. 

사찰은 사람이 만들었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건 유전적인 진화를 떠나서 오래전 조상들이 만든 절은 친구처럼 다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처처럼 온화하고 자비롭다. 무엇보다 자연과 닮아서 그런 것일까? 관광지로 바뀌면서 세속적으로 변해버린 여러 절 가운데서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찰이 있다. 

역사의 아픔을 함께한 벽송사(碧松寺)와 소나무

의탄리 칠선계곡을 따라가다보면 한국 선불교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벽송사가 있다. 이 절에는 도인송과 미인송으로 불리는 오래된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벽송사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있었다. 빨치산을 섬멸하기 위해 국군이 사찰에 불을 질렀지만 이 두 나무는 건재하다. 


문고리만 잡아도 도를 튼다는 벽송사 원통전과 소나무


지리산을 닮은 금대암 전나무 

둘레길 등구재에서 금대산을 넘어가면 지리산이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지는 그 발 아래 금대암이 있다. 왼쪽부터 칠선계곡, 백무동까지 짙은 계곡이 펼쳐진다. 해인사의 말사인 금대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크고(40m) 오래된(500년) 전나무가 있다. 이 나무가 없었다면 나는 금대암을 찾아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금대암 아래 소나무가 지리산보다 높다.


살고 싶은 절 실상사
이곳에 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시골 할머니집 같다고 할까.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구심으로 잘 알려진 실천적인 스님들의 넓은 품이 있다. 그래서 풀뿌리 하나도 이 절에서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연기적 세계관, 우리가 곧 자연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상사에 남은 옛 절터. 돈이 없어서 내버려둔 것일까? 그래서 더 좋다.

스님이 염불을 하는 동안 다람쥐가 먹이를 먹고 있다.

 
기네스북에 도전하는 또 다른 절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눈살을 찌부리는 절도 있다. 작년에 왔을 때는 채석장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거대한 불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구복신앙이 깊은 사람들이면 헐크처럼 웅장한 불상 앞에 주머니를 열겠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어쩜 기네스북에 도전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법정스님이 '사찰에 있는 복전함을 없애라'며 외쳤던 일침이 메아리로 돌아온다. 

불심인지 욕심인지...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