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해가 떠올랐다. 새들도 나무도 제 이름을 말하는 아침이 시작되었다.


노루목에서 본 지리산은 온통 붉은빛이다. 왼쪽 불무장등과 오른쪽 능선 사이를 내려가면 피아골 계곡이다.


피아골, 화려함이 지다

10월25일 일요일 오후 2시, 단풍으로 유명한 지리산 피아골을 찾았다. 피아골에서 임걸령을 올라 능선을 따라서 연하천, 벽소령까지 가서 삼정(의신)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일요일 오후에도
피아골 입구에서 직전마을까지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고 등산로 역시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단풍보다 더 화려하게 치장한 하산객을 뚫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피아골대피소에 도착했다. 

하늘거리는 나무 아래서 숨을 고르고 바위틈에 앉아 저녁 햇살에 검게 타들어가는 나무들을 본다. 허급지급 오른 탓에 단풍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단풍하면 피아골을 외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직전마을에서 피아골대피소까지 남녀노소 걷기에 좋은 길이 있고, 계곡에 따라 자라난 고로쇠, 당단풍, 층층나무들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다. 

피아골 계곡 바위틈에서 몇백년동안 자라온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이파리들을 땅으로 보내고 있다.

노랑과 빨강 그리고 푸른 빛이 어우러진 피아골 숲은 원시적인 모습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손을 탄 흔적이 보인다.


피아골 단풍은 성숙한 여인의 모습과 닮았다.


삼정 빗점골, 단풍이 인간을 묻다. 

삼정마을은 연하천에서 내려오는 절터골과, 명선봉으로 이어지는 산태골, 형제봉에서 내려오는 산태골, 벽소령에서 내려오는 빗점골 등 4계곡이 만나는 곳이다. 3곳은 자연휴식년제 기간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벽소령대피소에서 빛점골로 내려오는 길로 들어섰다.  

피아골 계곡은 "와, 멋져"라고 외치는 곳이라면 벽소령대피소에서 삼정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아, 어쩜 이런곳이..." 하며, 감탄사의 어감 자체가 다르다. 벽소령대피소에서 1km 가량 가파른 계곡을 지나면 지리산 둘레길처럼 완만하게 펼쳐진 길이 있고, 인적이 뜸한 곳이라 나무들이 내려놓은 이파리들을 고스란히 밟을 수 있다. 

피아골이 성숙한 여인의 웃음이라면 이곳은 아직 어린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다. 노란빛은 층층나무, 붉은빛은 당단풍의 웃음이다.


등산로 치고는 제법 폭이 넓은데, 이곳은 국군이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만든 토벌로였다.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공산주의혁명가, 조선인민군유격대 남부군 총사령관이자 전설적인 빨치산 이현상의 주요 활동 무대가 이곳이다. 이현상은 1951년 총사령관에서 평당원으로 강등되고 1953년 빗점골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북한에게 버림받고 현상금을 노린 경찰과 국군에 의해 목이 잘렸고 그의 시신은 섬진강에 뿌려졌다. 

이현상의 제목없는 시

智異風雲當鴻動(지리풍운당홍동)
伏劍千里南走越(복검천리남주월)
一念何時非祖國(일념하시비조국)
胸有万甲心有血(흉유만갑심유혈)

지리산의 풍운이 당홍동에 감도는데
칼을 품고 달려온 남쪽이 천리로다.
한번도 조국을 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고
마음 속에 끓는 피가 솟구치네.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 자체가 무색한 요즘, <변화>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진보든 보수든 인간이 만든 이데아에서 벗어나 이곳 지리산에서는 변화를 생각해본다.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나무들에게, 인간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파괴를 했던가.

그럼에도 자연은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곪은 상처를 치유해왔다. 
어린 빨치산의 주검위에는 병꽃나무 이파리, 여자의 주검 위에는 붉은 당단풍이, 남자의 주검 위에는 굴참나무 이파리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가장 고독했던 인간에게는 층층나무의 노란 이파리로 그를 묻었다. 화약과 피냄새가 진동하던 이곳을 50년동안 치유한 것은 다름 아닌 나무들이었다.

단풍으로 묻힌 이 길을, 다시 올 수 있게 해준 자연에게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맙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의신으로 내려가는 낙엽길.


덕평봉으로 이어지는 골짜기. 남한 빨치산들이 최후를 맞은 격전지이다.

남부군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대성골 계곡

삼정마을 날머리에서 만난 첫 민가. 개들이 반겨준다.

삼정계곡. 4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이 빗점골에서 만난다. 사람들이 떠난 바위에 앉아서 계곡 물이 들려주는 연주에 빠져든다. 그리고 잠시후 어둠속에서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춤을 춘다.

단풍에 질세라 철죽도 붉게 물들었다.

의신마을 감나무와 까치집.



등산코스
부산(승용차) - 피아골 직전마을(14시)-피아골대피소(16시)-임걸령(18시, 비박 후 06시 출발) - 노루목(6시40분, 일출) - 화계재(08시30분) - 연하천대피소(11시30분, 12시10분 출발)-벽소령대피소(1시50분) - 삼정,의신방향 - 삼정마을(16시)-산판길-의신(버스정류소 16시30분, 17시 하동행 버스)-화계에서 직전마을까지 택시(15,000원)이용 - 부산(승용차)

대중교통
피아골-구례 : 07:30~18:30분까지 약 1시간 간격
구례-피아골 : 06:40~19:40까지 1시간에 1대
의신-화개, 하동 : 6:35, 7:30, 11:30, 12:34, 17:00, 18:00
화개-하동,진주,부산 : 06:45~19:45분까지 1시간 1대 이상

등산지도
http://local.paran.com/map/mapsrch_m.php?mt_id=4819151&X=3388&Y=2536&MapLevel=2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