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암 위 지룡산성에서 내려다 본 운문사. 늦가을 늦은 오후, 햇살이 빠져나가고 있다.


가을을 두드리는 운문사 - 모든 생물들을 위해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산에는
운문사가 있다. 새벽 안개를 헤치며 전나무와 소나무길(메아리길)을 따라 걷다보면 도량석 목탁 소리가 마음을 흔든다. 불교신자가 아닌 나도 두 손이 모아진다. 목탁을 두드리는 이유가 인간과 자연, 모든 중생들을 돕기 위함인데, 나는 인간에게 송진을 내어주고 허리가 잘린 소나무와 산천어가 없어 수족관을 드나들다 죽도록 맞은 수달을 위해서 합장한다.   

11월1일, 이 날은 특별한 날이다. 운문사 하면 은행나무를 떠올릴 정도로 인기가 높은 그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평소에 은행나무의 고운 자태를 모두 보려면 불이문을 넘어야 하는데, 그곳은 스님들이 공부하시는 곳이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일반 중생들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불이문 너머에서 볼 때는 한 그루지만, 다가서면 한쌍의 나무이다. 

운문사의 참모습을 보려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있는 게 좋다.
새벽 3시~4시 :  소나무 숲사이에서 울리는 염불을 듣는다
아침 7시 : 사리암으로 가서 아침 공양을 한다
오후 : 운문사를 빠져나와 삼계리로 가서 삼계봉에 올라 영남알프스와 운문사 정취에 빠진다.
저녁 6시경 : 다시 운문사에 와서 범종루에서 울리는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소리를 듣는다.  
* 스님이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을 두드리는 이유 : 법고는 뭍에 사는 생물, 목어는 물에 사는 생물을, 운판은 날짐승, 범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들을 제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목어를 두드리듯 운문사 계곡을 밟다

오래전에는 운문사 천문지골 맑은 계곡을 지나서 딱발재를 거쳐 운문산을 오르고 내친 김에 가지산까지 반나절이면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있었다. 영남알프스의 북쪽 자락인 이곳에 사람들로 넘쳐나자 훼손이 심해서 스님들이 휴식년제로 지정하여 등산을 하지 못한다. 아쉬운 딴에 운문사에서 사리암까지는 갈 수 있다. 사리암에서 운문사로 흐르는 계곡 물빛은  범종루에 걸린 범종, 운판과 닮아 있었다.

운문사에서 사리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신도증이 있어야 하는데, 운문사 인심이 그렇게 박하지 않아서 신도증이 있는 차량에 잠시 몸을 빌리거나 말을 잘하면 통과시켜준다.

  

운문사에서 사리암으로 가는 길 옆 계곡에 가을이 왔다. 사람들 눈에는 아름다운 정취 이지만, 물밑 피래미, 꺽지들에겐 죽음과 탄생이 교차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운문사 계곡물은 범종의 빛바랜 푸른색과 닮아서 청아하다. 잠시 물에서 나와 쉬다가 돌이 되어버린 거북이 한 마리.


어릴적에 똥개구리라 불리며 천대받았던 옴개구리가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옴개구리는 멸종위기등급 중에서 관심필요(LC: least concern)에 지정되어 있다.


소금쟁이 두 마리가 춤을 추며 물범종을 두드린다.


새들과 인간에게 공양하는 사리암

운문사에서 넉넉잡아 삼십분 걷다보면 사리암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원래 계획은 심심계곡을 따라 운문산과 가지산으로 오르려고 했는데 등산이 금지된 곳이라 사람들을 따라서 사리암을 올랐다. 사리암은 삼계봉(807m) 중턱에 있고 그 계단이 무려 천개나 된다. 할머니들이 다리가 아파서 그러신지 아이고 한 번 하고 합장을 하면서 오르는 모습에 뭔가가 있는 암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리암에는 굴이 있는데 이곳에서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한 사람이 이 굴에 살면 그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는데,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구멍을 넓혔더니 물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할머니들이 전설을 따라서 이 힘든 곳까지 오셨나 싶었을 정도로 볼거리는 없는 암자처럼 보였다. 수능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사리암에 기도를 하러 오신 분들이 많았다. 

사리암에서는 오전 5시, 11시, 오후 5시 세차례 무료로 공양을 하는 데 운이 좋아서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먼저 먹으려고 다투지도 않고 긴 줄을 서고 설겆이는 봉사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올라오면서 봤던 그 할머니가 퍼준 손이 밥보다 더 따뜻했다. 밥을 먹어 기분도 좋고 등을 돌려 햇살을 받고 있을 때 소나무와 바위들이 올라오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리 저리 틈을 엿보다 샛길로 새려다 등산복 차림의 한 분에게 물었더니 삼계리에서 삼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고 했다. 사리암을 질러서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공양을 받은 지라, 운문사를 빠져나와서 언양 방면으로 8km 차로 이동했다.

사리암에서 받은 공양. 보살님이 떡을 얼마나 많이 주시던 지 두 개만 달랬더니 그래도 홀수가 좋다고 다섯개를 주셨다.

 

삼계봉 근처에서 내려다 본 사리암. 스님들이 땅콩을 손에 쥐고 '깐돌아' 하고 부르면 산새들이 날아온다고 한다.


사리암에 열린 배나무에 배가 주렁주렁 열렸다. 산새들에게 주려는 지 따지도 않고 그대로였다.


허리가 잘린 삼계봉 소나무 

삼계리는 삼계봉을 끼고 운문사 정반대편에 있다. 천문사에 들머리가 있었는데 삼계봉까지30분 정도 걸렸다. 발목까지 차고 오른 소나무 이파리들로 길이 미끄러웠다. 삼계봉에 올라서면 왼쪽으로는 가지산과 오른쪽으로는 운문산이 한 눈에 펼쳐진다. 가지산과 운문산 사이에 있는 심심계곡은 자연휴식년제 때문인지 더 깊어 보였다.  

산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다. 운문사에는 막거리를 잡수시는 귀하고 귀한 처진 소나무가 있지만 이곳 소나무들은 하늘로 곧게 자라는 명품 소나무들이다. 대접받는 소나무가 있는 반면에 이곳 삼계봉 능선을 따라서 지룡산까지 허리에 상처가 가득한 소나무들이 많다. 멀게는 일제시대에서부터 최근까지 송진을 얻기 위해 몸통이 파헤쳐졌다. 벌목을 피해 살아남은 몇 백 그루 소나무들은 발이라도 있었으면 심심계곡 깊은 곳으로 도망갔을테다. 그나마 운문사가 있어서 대규모 토목공사 현장에 끌려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면 천년은 거뜬히 산다.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로 참나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소나무가 생채기에 송진이 맺혔다.


최근에 송진을 캤던 흔적이 드러나 있다.


생명을 다한 오리나무 가지끝에 겨우살이가 걸렸다.


소나무가 쓰러진 자리에 진달래가 자랐다. 날씨가 따뜻해서 가을에 진달래가 폈다.


벌레도 햇살에 타버렸다. 발이 빨갛고 등은 샛노랗다. 어디 산골에 봐둔 처자에게 장가를 가실 모양이다.



생명을 위해 울리는 운문사 범종루 

삼계봉에서 따뜻한 햇살을 몸에 담고 능선을 따라서 지룡산(658m)으로 향했다. 지룡산 아래에는 북대암이 있다. 오래전부터 운문사에서 올려다 본 북대암 위 암벽을 오늘에야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발걸음이 가볍다. 오르고 내려가기를 서너번 중간 쯤 갔을까 구름에 갖혔던 운문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경내를 떠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은행나무 노랗게 웃고 있다. 정취에 한눈을 팔다가 길을 잃고 북대의 절벽에 서고 말았다.

암벽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며 잡을 수 있는 건 모조리 잡으면서 1시간 동안 이른바 생쇼를 하면서 암벽을 탔다. 드디어 북대암을 발 아래 뒀을 때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또 절벽을 만나고야 말았다. 까마귀들이 네놈이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하면서 조롱하듯 하늘을 날고 있었다. 해가 딱발재 너머 얼음골로 지고 있었기 때문에 곧 날이 어두워질 게 뻔했다. 

바위에 앉아서 어떻게 내려갈까 궁리를 하다가 낙엽으로 덮인 계곡이 보였다. 가파른 계곡에 서 있는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엉덩방아를 수십번은 찧었을 것이다. 잔돌, 낙엽과 한몸이 되어 삼십분만에 북대암 아래로 내려왔을 때 바지에 구멍이 나 있었다.

운문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었고 곧 스님들이 저녁 예불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팥을 닮은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대웅전으로 들어 갈때 용마루에는 달이 걸렸다. 범종루에서 법고를 울리면 대웅전에서 희미하게 목탁소리가 들렸다. 

세 분의 스님이 법고를 울렸다. 사살된 멧돼지 한 마리가 눈 앞을 지나갔다. 이어서 목어가 두드려졌다. 도마위에 올려진 산천어의 눈빛이 반짝인다. 운판이 쨍하고 소리를 냈다. 농약을 먹은 두루미가 쓰러졌다. 마지막으로 범종이 울렸다. 범종은 영혼들을 위해 치는 것이라는데 늦게까지 절에 머물고 있던 신자들이 합장을 했다. 옆에 있던 외국인도 나도 덩달아 합장을 했다. 딱히 빌 것도 없고 해서 오늘 목숨을 구해준 나무들을 위해.

삼계봉에서 본 운문산. 운문산을 무대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누군가 태양을 잡고 파란 생물들은 누렇게 태워서 가을을 건너 겨울로 보내고 있다.


마지막 햇살이 북대암에 머물고 있다. 북대암 위가 바로 북대라고 불리는 바위산이다. 운문사에서 보면 북쪽에 있고 제비처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불려진다.

오후 4시, 햇살을 받은 북대가 황금빛으로 요동친다.


스님들이 가꾼 남새밭 뒤로 달이 걸렸다.


지룡산 능선에 달이 뜨면 예불을 드리는 시간과 비슷한 모양이다.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대웅전으로 들고 있다.


달이 뜨면 뭇 생명들을 위해 범종루에서 세상에서 보기 힘든 스님들의 연주가 시작된다.


인간아 인간아 제발 이것만은...
스님들이 예불을 올리는 동안 여러 꼴볼견을 보고야 말았다. 어디서 술을 한 잔 걸치셨는 지 큰 소리로 음담패설 내뱉는 아저씨. 천방지축 절간을 뛰어다니며 떠드는 어린애를 내버려두는 아줌마. 담배를 물고서 누구나 아는 큰소리로 절에 대해서 해설을 하는 할아버지. 소나무에게서 송진을 뽑아간 개같은 인간들과 얼굴이 크로즈업.  귀신 중에 가장 무섭다는 목신이라도 들어서 고생 좀 해야 정신을 차릴런지, 아님 신종플루라도 걸려봐야 아~ 할런지...

- 대중교통
대구남부시외버스터미널 : 오전 6시20분~오후6까지 1시간에 1대 
언양 시외버스터미널 : 09:00, 10:30, 13:00, 15:40, 18:50 

- 숙박
 
국립 운문산 자연휴양림 (054-371-1323)
가격 : 4인실 32,000원~55,000원, 5인실 40,000원~70,000원, 6인실 50,000원~85,000원, 9인 60,000원~98,000원, 11인실 70,000원~110,000원, 50인실 220,000원~320,000원 (* 높은 가격은 성수기),
캠프장 이용시 : 1일 4,000원
*. 새벽 예불 소리를 듣고 싶다면 운문사에서 가까운 캠프장도 있다. 청도군청에서 운영하는데 인공암벽등반장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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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