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가 되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서 낙동강을 건너서 진해에 도착했더니 밤 10시. 배도 고프고 비가 내릴 듯 하여 경화시장에서 걸리와 부추전을 먹었다. 선배와 나는 취기로 비박장비를 메고 장돌뱅이처럼 고물자전거를 이끌고 안민고개 를 올랐다.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는 건 위험하지만 이 시간에는 차들도 별로 없다. 낮에는 안민고개의 가파른 경사가 시각적인 부담을 주지만 밤에는 하얀 차선만 따라서 오르면 된다. 

고갯마루를 100여미터 앞두고 커피 자판기가 있는 쉼터에서 거친 막걸리 숨을 토해내며 진해시 야경을 감상한다. 어둠에 익숙해질쯤 진해를 둘러싸고 있는 장복산의 가로지르는 임도가 어둠속에서 드러난다. 밤안개 너머로 누군가의 손짓에 이끌린 듯 자전거를 이끈다. 장복산 임도 또는 해오름길이라고 불리는 십리(4km) 비포장 길이 시작은 상쾌한 내리막길이었다. 

깜깜한 밤이지만 몇분을 달리지 않아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이유를 알 것 같다. 편백나무들이 만든 짙은 어둠을 뚫고 달빛을 받아 뽀얀 속살을 드러낸 비포장 임도에 자전거 바퀴가 춤을 추며 굴러간다. 새신을 신고 길을 달리듯 고물자전거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다. 코펠과 라면 봉지가 엇부딪치며 울리는 불협화음도 나름 운치가 있다.  

그때였다. 편백숲 사이로 번뜩이는 인광에 놀라 브레이크를 잡았다. 동행한 장돌뱅이 선배는 "이곳에 멧돼지가 자주 나타난다"며 조심하라고 한다. <차우,2009>의 식인 멧돼지가 커다란 이빨이 아른거린다. 멧돼지에게 들이박히더라도 보험을 들어뒀고, 막걸리를 먹은 장돌뱅이를 잡수실 리 없겠지 하면서 미꾸라짓국 먹고 용트림하듯 으스대며 숲속으로 전조등을 비췄다. 길고양이였다. 
 
무서운 얘기 해줄까? 지금으로부터 10년전만 해도 경화시장에 고양이를 팔았지. 고양이가 관절염에 좋다는 미신 때문에 고양이를 고아주는 장돌뱅이들이 있었지. 수십마리의 고양이가 좁은 철창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어. 손가락으로 원하는 고양이를 가리치면 장돌뱅이는 고양이 목을 잡고 벽에 던져서 즉사 시킨 후 껍질을 벗지고 삶았지. 지금 그 장돌뱅이는 경화시장에 나타나지 않지만, 아직도 그 벽은 고양이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지. 가끔 밤중에 그 길을 가다보면 벽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밑줄 친 부분은 Fiction입니다.)

고양이 눈에는 고물자전거에 커다란 배낭을 매고 산길을 가는 두 사람이 그때 그 장돌뱅이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적당한 긴장감은 페달에 힘을 실리게 한다. 고양이를 부르기라도 하듯이 코펠과 참치캔이 달그락거린다. 왼쪽으로는 시커먼 편백숲, 오른쪽에 보였던 진해 시가지 불빛도 이제는 듬성듬성하다. 고양이 발톱에서 벗어나려는 쥐처럼 30분을 부지런히 도망쳤더니 황룡사 앞 넓은 마당이 나왔다.  

황룡사 약수터에서 물을 받고서 3분 정도 더 가서 인공으로 만든 계곡 옆 정자에 자전거를 세우고 짐을 풀었다.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타프를 깔고 침낭을 덮어쓰고 누우니가 영판 늦은 밤 주막을 찾은 장돌뱅이다. 피곤했던지 단잠을 잤는데 선배 말로는 밤에 무시무시한 번개가 쳤다고 한다.

진해 시내가 환히 내려다 보이고 지붕 있어 비와 이슬을 피하기도 좋다.



길을 잃은 제포와 삼포

다음날 새벽, 천자봉산림욕장으로 내려와서 부산방면으로 가다가 '제덕마을'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했다. 제덕마을은 음력 섣달 그믐날에 서낭제(성황제)를 지내는데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동제로 꼽힌다. 옛날 이곳은 진해의 작은 섬을 연결하는 제법 큰 어촌이었다. 지금은 신항만 공사로 수도와 몇몇 섬들이 육지가 되었고 바닷길을 잃은 배들이 정박하고 있다. 

80년대 어촌 풍경을 하고 있는 제덕마을. 지금도 연도나 소쿠리섬 할머니들은 장날에 연락선을 타고 제덕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진해로 갔다.


제포는 개발이 한창이다. 신항만 노동자들의 유입을 대비해서 주차장과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이곳은 장돌뱅이들에겐 헛장사라서 진해시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언덕을 오른다. 5분 정도 오르면 꼬불꼬불한 내리막이 나오는 데 그 아래 삼포가 있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가는길>과 제목이 같은 이혜민 작사 작곡 <삼포가는 길>의 무대이다. 

마을 입구에는 '삼포가는길'이라는 노래비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노래도 들린다. 이혜민씨가 고등학교 때 삼포를 지나다가 악상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정말로 구불구불한 산길이었고 그 아래 삼포라는 작은 어촌을 생각하며 노래를 끝까지 듣고서 삼포로 내려갔다. 

제포에서도 그랬지만 삼포도 옛날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포구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해산물에 소주 한 잔 먹으려고 했는데 깔끔하게 단장된 횟집들이 즐비했다. 돈 안되는 장돌뱅이들은 김이 빠진 채로 죔쇠를 돌려서 해양공원으로 달렸다. 진해 앞바다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길다방(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셨다. 신비의 섬이라고 불리는 앞바다에 뗏마가 정겹다.

뗏마는 원래 배와 배 사이에 짐을 실어나르는 일을 하지만 지금은 낚시꾼들이 이용하는 배이다.


선착장에는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들은 없지만 할머니 서너분이 배에서 내린다. 오늘이 경화시장에 장이 서는 날인지 짐보따라기 제법 많다. 장돌뱅이의 최종 목적지와 일치한다. 할머니들에게 좋은 목을 내어줄 수 없다. 거친 매연을 뿜어내며 달아나는 시내버스를 쫓아서 경화시장으로 달려갔다. 

마트에는 없는 경화시장 5일장 


경화시장은 3일과 8일에 열리는 5일장이다. 팔것도 살것도 없는 장돌뱅이지만, 경화동까지 왔을 때 아침부터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의 바쁜 모습에 피로가 부끄럽다. 대형마트에 밀린 재래시장이 그러하듯 5일장도 옛날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라고 한다. 

5일장인 경화시장은 1955년에 개장했다. 해군 부대의 탄약을 실어나르던 철길위에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시장의 길이가 진해시 경화동 영신아파트에서 중앙고 삼거리까지 600미터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래도 좀약에서 똥개까지 마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쥐를 못 못 잡을 것 같은 새끼 고양이를 파는 할머니에게 농이라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시장 중간쯤 가서 먹자 골목으로 들어갔다. 

경화시장 먹자골목은 음식점들은 오래되어 헐고 너절하지만 맛은 일품이다. 회, 칼국수, 호박중, 국밥 입맛 당기는 곳을 골라잡아 먹어도 될 정도다. 특히 골목 끝에 있는 '할매 장날 국밥'은 선지국밥으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선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수육과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보슬비가 낡은 지붕위로 떨어지며 외친다. 한 잔 더, 한 잔 더. 다시 부산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둘이서 한 병을 나눠먹고 으로 갈라 먹고 부산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잔을 내려놓았다.

선지국밥이 유명한 장날 할매 국밥은 이곳에서 40년 넘게 장사를 해오고 있다.


2명이서 수육, 막걸리 1병을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거기다 쇠고기 국물은 덤으로 먹을 수 있는데 12,000원이다.


화장실을 가려고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지저분하고 냄새가 심했던 몇달전 화장실은 온데간데없고 펜션처럼 예쁜 화장실이 들어섰다. 내부도 깨끗하고 냄새도 없는 수세식 화장실이다. 하지만 장돌뱅이의 눈에는 시장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다.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더라도 외형이라도 그렇게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리면 낡고 지저분하고 수세식 화장실은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알고보면 수세식 화장실이 더 지저분하고 환경파괴의 온상이다.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개발독재시대, 근대화의 유물이 수세식이다. 그래서 '근대식 화장실'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 같다. 경화시장에 자리잡은 반뜻한 이 화장실도 근대화의 그럴싸한 모사이자 편리함을 쫓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화시장에 들어선 화장실. 전통 시장과는


비를 피해서 선배 집에서 장돌뱅이들의 이동경로와 집으로 가는 길을 살펴보는 데 참 불편하다. 경로를 검색하면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길 위주로 나온다. 고물 자전거나 차가 없는 한적한 길을 찾기가 힘들다. 힘들다. 뭐, 어때. 그래서 가볼만한 길이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진해시 병암동 | 할매 장날 국밥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