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연화리 피정[각주:1]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침묵 속에서 딴에는 뭔가 대단한 글감을 건질 것이라는 생각, 그것도 감히 냉담자가 피정의 집을 찾은 것이다. 저녁시간이 지나서 찾아갔는데도 원장수녀님과 친구가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차를 마시다가 수녀 친구가 '위대한 침묵'을 봤냐고 묻는다. 서울의 한 예술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만 안다고 했다. 친구는 피정을 오는 신자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 Die Große Stille Into Great Silence>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고 했다.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고 침묵 수행을 강조하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피정의 집을 처음 온 나는 이곳 역시 수도원과 같이 엄격히 통제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피정은 친목도모, 성서탐독, 침묵 등 다양하다고 한다. 
 

오랜만에 수녀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9시경 침묵 방으로 안내 받았다. 피정을 온 신자들이 많아서 별채를 쓰게 되었다. 그곳은 외딴방으로 수녀님이나 신부님들이 간혹 주무시는 방이라고 한다. 또는 나처럼 혼자서 침묵 피정을 오는 사람들이 주로 쓴다고 한다.  

TV와 컴퓨터는 없지만 책을 읽기에는 적당한 스텐드와 아담한 침대가 있고 화장실도 딸려 있다. 스텐드 켜고 잠시 침묵에 들어 갔을 때 귀속에서 낯선 공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쟁쟁하다. 노트북을 켜고 가져왔던 몇가지 생각들을 기록하려다 침묵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피정을 온 것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침묵 피정이 되고야 말았다.     

침묵의 방에서 하루를 묵게 해주신 연화리 수녀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시는 필름 위에 기록됨으로써 파괴될 것이다" - 아르또

<위대한 침묵>을 보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침묵'에 관해서는 프랑스의 전위 예술가인 아르또(Artaud, Antonin)를 떠올릴 수 있다. 아르또는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언어가 지니고 있지 않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말이 중심이 된 연극이나 유성영화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 

아르또는 관객이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대사나 내래이션이 아닌 이미지를 통해서 서정시(詩)처럼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그 무엇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의 언어는 관객과의 소통을 오히려 방해 한다고 보았다. 헐리우드의 유성영화가 프랑스 사회를 휩쓸자 아르또는 그의 실험무대였던 영화계를 떠난다.

  1. 피정(Retreat) : 가톨릭에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인 활동을 말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