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평창으로

 

설날을 일주일 앞두고 비가 내려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강원도에는 눈이 내렸다고 한다. 산악스키와 러셀 기술을 배우려고 한 달을 계획했다. 평창에서 산악스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서 강릉까지 34일을 걸어볼 계획이었다.

 

“야, 너 거기 가면 눈에 묻혀 죽는다! 등산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국립공원에 일하시는 분이라 후배의 하는 짓이 걱정 됐는지 이리 저리 알아보시더니 만류한다. 대관령 지역에 1미터, 설악산에는 2미터 가까이 눈이 내렸다고 겁을 준다. 여기다가 산악스키를 대여해주기로 하신 분이 일주일 전에 밴쿠버로 가신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계획을 수정했다.

 

23일 동안 평창의 스키장에서 보내고, 설날에는 선자령에서 부모님 차례를 지내고 대관령 옛길을 따라 강릉으로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번 여행에서 이동수단은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공정여행을 목표로 삼았다. 숙박의 경우 이틀은 회사에서 제공되는 콘도를 이용했고, 1박은 선자령 아래에서 야영을 했다.

 

부산 해운대에서 원주로 가는 밤기차에 올랐다. 새벽 4 20분 원주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장평으로 이동했다. 장평에서 한화콘도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스키장 주간권(9~430)을 사서 스키를 탔다. 다음날 역시 주간권을 사서 스키를 탔다.

 

스키를 타면서 항상 먼 산을 본다. 숏스키도 타보고 일반스키를 타봤지만 산을 오르는 산악스키가 계속 생각이 났다. 첫날에는 오대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걸어서 폭설경계령이 풀렸는지 물어봤지만, 출입할 수 없다는 답만 왔다.

평창 휘닉스파크 리프트. 리프트 꼭대기에 오르면 대관령 능선이 보인다.

평창에서 선자령으로

 

설날이다. 다행히 눈은 멈추고 하늘이 맑다. 한화콘도에서 설날을 맞는다. 아침 식당에는 떡국이 나왔다. 이 시간이면 다들 차례를 지내는데 분주할 텐데 콘도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다. 떡국이 나와서 맛있게 먹고 휘닉스파크에서 장평으로 가는 무료셔틀 버스(830)를 탔다. 장평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 바로 횡계로 가는 시외버스(855)가 기다리고 있다.

 대관령 1박2일 산행과 차례를 지내기 위해 구렸던 짐. 95리터 배낭이 터져나갈 듯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선자령으로 가는 방법으로 ‘횡계’가 가장 가깝다. 횡계에서 옛날 대관령 휴게소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횡계는 작은 읍내지만 깔끔하게 단장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눈도 깔끔하게 잘 치워져 있다. 횡계의 과일가게에 들러 차례상을 본다. 사과, 곶감, 밀감 등 평소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걸로 구입했다. 그런데 배낭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난감하다. 95리터 배낭이 꽉 찬 상태다. 억지로 밀어 넣고 읍내에서 택시를 탄다.

 

택시기사는 어제 대구지역에서 온 산악회 팀이 선자령에 간다고 해서 아마도 길이 뚫려 있을 거라고 했다. 지금 1미터 가까이 왔기 때문에 선자령 등반이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한다. 기사님 말대로 대관령휴게소 도착했을 때는 길가에 눈이 허리만큼 쌓여 있다. 설 아침이라서 등산객은 거의 없다. 하지만 러셀을 한 상태라서 하얀 눈 위에 오솔길이 나있다. 눈을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난다. 휴게소 입구에서 선자령까지는 5km. 40분을 오르자 멀리 오대산 자락이 보인다. 대관령은 하얗게 덮여 있고 너무 하얗다면 재미가 없는지 나무들이 질세라 검다.

오른쪽으로 선자령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그 아래에는 관령휴게소(구)가 있다.

목장 옆길을 따라서 30분 정도 오르면 횡계 시내가 보인다.


전망대에서 대려다 본 강릉. 국사당성황당 부근에서 대관령 옛길로 접어들 수 있다.


1125분 전망대에 도착. 강릉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목장을 오른쪽에 두고 30분 정도 올랐을 때 평원이 펼쳐진다. 길이 없다며 내려오는 등산객 한 분을 만났다. 선자령까지는 1키로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쉽다. 정상에서 차례를 지내고 싶었는데, 남도에서 아침을 잡수신 부모님이 대관령까지 오셨으니 점심을 공양해야겠다는 생각에 차례상을 편다.

 

절을 드리고 잔을 올렸더니 등산객이 하나 둘 늘었다. 산악인 허영호의 매니저였다는 분과 그의 딸처럼 보이는 여성, 인천에서 온 등산객과 음복을 한다. 따뜻한 정종이 위를 파고들고 바람이 멈춘 자리에 햇살이 가득하다. 대관령은 서에서 동해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유명한데 이날은 바람 한 점 없다. 바람도 설날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대관령에서 차린 조촐한 점심 차례상


 점심을 먹고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2시 반이다. 인천에서 오신 또 다른 세 분과 함께 선자령으로 오르기 위해 러셀을 시도한다. 깊은 곳은 1미터 넘게 눈이 쌓여 있어서 남자 세명이 200미터 남짓 길을 내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더구나 등산로를 알려주는 표식이 없는 초원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눈이 쌓인 대관령 평원에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바람과 함께 선자령 1

 

300미터를 뚫었을까, 선자령까지 길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러셀을 함께 했던 네 분은 하산을 해야겠다면서 소주 반병과 쇠고기를 내어주신다. 오후 4, 대관령에 혼자 남았다. 다들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언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았다. 눈 위에 검은 점을 찍으며 내려가는 분들을 뒤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피켈을 들고 다시 길을 낸다.
 

등산학교 피켈을 이용한 설상등반을 배웠는데 유용하게 써 먹었다.


러셀산행을 하고 있는 등산객들. 앞에서 길을 내고 뒤따라 오는 분들이 눈을 다지면서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우리나라 말로 풀면 ‘두레 산행’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선자령을 0.8km 앞두고 러셀을 포기했다. 뒤에 보이는 무 아래서 눈을 파서 아영을 했다.


장갑은 금방 눈과 땀에 젖었다. 선자령 0.8키로 앞이라는 표지판이 도착했을 때 5:17.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대관령 자락에도 어둠이 내리고 날이 추워졌다. 피켈이 장갑과 쩍쩍 달라붙는 소리를 낸다. 야영을 하기 코펠로 눈을 파내고 자리를 만든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눈벽을 쌓는다. 눈이 부드러워서 설동을 만들기에는 무리다. 한 시간 동안 눈을 파내고 다져서 텐트를 펼칠 자리를 만들었다.

 나무 아래 눈밭에서 야영을 했다. 밤이면 바람과 눈이 잠을 깨운다.


어둠이 내린 선자령에 바람이 찾아왔다. 라면으로 저녁을 먹고 쇠고기 한 점과 소주 한잔을 바람에게 건넨다. 고수레~ 대관령 짐승들을 위해 외친다. 가스랜턴을 켜고 침낭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바람이 놀자며 텐트를 흔들어 댄다. 하지만 밖에 나갔다가는 눈사람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문만 조금 열고 눈인사만 한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밤 열한시.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한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얼음 조각이 텐트에 떨어지는 소리다. 발자국 소리는 대관령 바람에 풍력발전기가 춤을 추는 소리였다. 그리고 멀리 강릉 시내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드문드문 고기잡이배의 불빛이 보인다. 대관령에서 밤바다를 보고 내려가라는 바람의 노크에 오랫동안 응답한다. 바람은 계속해서 바다로 내려간다. 바람은 동해바다가 고향일까?

 

선자령에서 대관령 옛길로

 

동해에서 떠오른 햇살을 받아서 나무에 노란빛 열매가 맺혔다.


추위 때문에 여러 번 잠을 깼다. 노란 햇살이 대관령에 펼쳐진 시간, 7시가 넘어서 잠에서 깼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음조각이 노랗게 익었다. 일출을 아쉬웠던 하며 먼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밥을 먹고 텐트를 철수한다. 9시 즈음 김해에서 오셨다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야영을 한 나를 부러워하지만, 오늘은 그들이 부럽다. 유자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한산을 한다. 올라오시는 등산객이 여럿 있다. 이 정도 등산객이면 선자령까지는 길이 뚫릴 것 같다.

 

국사성황당 부근에서 대관령 옛길로 들어선다. 들머리부터 발이 푹푹 빠진다. 배낭무게까지 합치면 90kg. 사람들이 다져놓은 발자국이 무용지물이다. 러셀을 하신 분들이 앞서간 사람을 발자국만 밟은 흔적이 역력했다. 경사가 심하고 눈길에 발이 자꾸 빠지는 탓에 피로가 빨리 찾아온다.

 

하지만 대관령 옛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지나가기 때문에 상쾌하다. 눈길 위에는 부러진 가지와 솔방울이 널려 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진 가지도 널려있다. 조선시대 이 길에서 얼어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대관령은 아흔아홉구비라 불렸던 만큼 길이 험했다. 눈이 1미터 이상 내렸다면 변변치 못한 장비로 이 길을 걷는다는 건 죽음을 자초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한 관원이 나그네와 상인들의 안전을 위해 마련한 대피처가 ‘주막터’이다.

 대관령 옛길 주막터


12
30, 주막터에 도착했다. 옛 모습처럼 복원되어 있었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주막터부터는 계곡을 따라서 내려가기 때문에 걷기가 한층 쉽다. 작은 얼음이 구멍을 내고 대관령 찬물을 마신다. 시원하다. 차를 끓여 마신다. 눈이 녹아서 생긴 물이라 깨끗하지는 않겠지만 대관령 먼지와 소나무에 만져진 눈이라면 1급수라는 생각이 든다.

주막터부터는 오른쪽으로 예쁜 계곡을 따라서 완만한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삼십분 정도 걸었더니 하제민원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견공 두 분이 꼬리를 흔들면서 멀리 경상도에서 찾아온 손님을 마중한다. 하제민원에서 ‘원울이재’를 넘어서 ‘대관령박물관’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원울이재는 서울로 발령을 받아 가던 관원이 강릉의 인심이 그리워서 울었다고 해서 유래됐다.

하제민원에서 만난 견공 두 마리가 100여미터 따라오면서 꼬리를 흔든다.

원울이재는 울창한 소나무와 완만한 능선, 그리고 부드러운 눈길. 대관령 옛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이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힘이 들어서 늦게 갈 필요도 없다. 조만간 목적지에 도달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서 그랬을 것이다. 대관령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한시 반. 이곳도 문을 닫았다.
 

원울이재에는 소나무, 대나무, 바위에 소복히 내려앉은 하얀 눈. 단아하고 청렴한 선비의 기풍이 서려 있다.

박물관 앞 도로에서 강릉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강릉에서 택시를 타고 경포대에 들러서 회 한점을 먹고 부산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까지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좀 더 오래 강릉에 머물고 싶었지만 낮 시간대에 운행하는 막차가 350분이었다. 

 

강릉에서 부산까지 무려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시외버스는 편안하고 무척 친절하다. 손님이 별로 없지만 안 가는 정류소가 거의 없다. 2박3일 동안 꼬여있던 여행의 실타래를 버스 안에서 천천히 풀어 낸다. 쉬어가는 정류소에서 아이폰을 충전해서 여행일기를 마무리 한다. 피곤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잠을 잘 수도 있다. 그동안 이 친절하고 안전한 버스는 어둠을 뚫고 무사히 부산으로 안내한다. 집에 가면 중고차 시장에 차를 내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꿈에서는 대관령을 바람과 함께 날아 볼테다. 

▣ 부산에서 대관령 대중교통 이용요금

부산 → 원주 (무궁화호) : 22,300

원주역 → 원주시외버스터미널 (택시) : 2,500

원주 → 장평 시외버스 4,000

장평 → 휘닉스파크 택시 13,000

휘닉스파크 → 장평(무료셔틀) : 0

장평 → 횡계 : 2,300

횡계 → 대관령휴게소 : 10,000

대관령박물관 → 강릉 : 1,000

강릉 ↔ 경포대 : 10,000

강릉 → 부산(동부시외버스터미널) : 32,100

 

▣ 휘닉스파크 스키장 이용 요금

스키숍 이용 : 38,000(리프트)+10,000(스키) = 48,000

휘닉스파크(카드할인25%) :48000(리프트)+(스키)20,300 = 68,300

 

▣ 교통정보

장평시외버스터미널 033-332-4209

횡계시외버스터미널 033-335-5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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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 선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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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