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아닌 배우의 삶을 찾아서

벚꽃이 눈보라처럼 도시 곳곳을 훑고 지나는 날 <눈의 아이, 몽텐 L'Enfant des Neiges)을 만났다. 프랑스의 탐험가 니콜라(Nicolas Vanier, 1962)와 그의 아내 디안,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런 18개월 된 딸 몽텐(Montaine), 그리고 그들의 든든한 벗 오춤(Otchum)[각주:1] 이 주인공이다.

 

대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프린스 조지에서 출발한 그들은, 말을 타고 700km, 오춤과 그의 자손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1700km를 여행한다. 캐나다 북쪽 로키산맥을 거쳐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원시의 자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에 18개월된 딸을 데리고 말이다.

 

무모할 정도의 모험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함,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실천. 1년 동안 대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잔잔하고도 박진감 있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순간은 오후였지만 책을 접었을 때는 밤 10시를 넘겼다.

이 책은 자녀에 대한 교육관, 야생 생활에 대한 가치관, 개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니콜라의 누리집에는 그의 저서와 다큐멘터리,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는 미래세대인 어린이, 또한 장애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 니콜라와의 가상인터뷰 
(책의 내용을 정리하였음)

- (돌배) 겨우 18개월 된 어린 몽텐을 데리고 극한 자연에서 모험을 하다니 당신 제정신인가?

- (니콜라) 자녀가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녀와 함께 하고 싶은 법이다. 아이가 크는 것을 보고, 아이를 자신의 생활에 참여시키고 싶어한다. 어떤 부모는 집과 텔레비전이고, 또 다른 부모에게는 개썰매와 텐트인 것이다. 보통 유년의 삶은 부모들이 결정한다. 그리고 우리는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세심하고 침착하게 생각했으며, 아무 후회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그런 질물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후회 말고는 말이다.

- (돌배) 수십마리의 뇌조를 사냥했고 사슴에다 곰까지 잡았는데, 당신은 자연친화적인 사람인가?

- (니콜라) 나는 신선 포장이 되어 있는 쇠고기나 초지에 발을 디뎌본 적도 강가에서 목마름을 달래본 적도 없이 일생 동안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비육되고 도살된 뒤, 목을 자르면 동물도 피를 흘린다는 것 이외에는 동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팔리는 쇠고기 스테이크보다는 야생동물 고기를 좋아한다. 위엄있게 살다가 경외심 가운데 죽임당한 동물을 내 손으로 털을 뽑고 내장을 제거하고 자르는 것이 더 낫다. 우리가 사는 문명세계에서는 자연적인 방식으로 행해지는 사냥을 시대착오적인 야만 행위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단지 피를 흘린다는 사실이 싫은 것이다. 물고기를 그려보라고 하면 냉동팩에 든 생선을 그리는 아이의 모습은 어떤가? 포장육으로 상징되는 모든 잔인한 현실과 불편한 진실들, 그것보다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중요하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은 일종의 경외심에서 행해졌다. 세카니 인디언들이나 몽타네 인디언들은 사냥 행위에 경외심 가운데 진행된다. 영적인 의무를 동반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냥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교환이며, 죽음이라기보다 선물이다. 인디언들은 사람이 사냥한 동물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면 동물은 영혼은 “나는 네게 나의 가죽과 뼈와 살을 준다”라고 말한 후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인디언 사냥꾼은 동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안하게 자신의 필요를 취한다. 이런 교환은 인간과 자연이 이루는 놀라운 조화를 상징한다.

- (돌배) 300kg을 썰매에 싣고 그 험한 길을 가다니, 동물에게 지나친 학대를 하고 있지 않는가?   

- (니콜라) 그는 나의 동반자이자 수호자이다. 그래서 썰매를 끌때 되도록 개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개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외투처럼 우리를 휘감은 정적을 좋아한다. 개들은 왜 고요한 겨울에 북쪽 지방을 달리는 걸 좋아할까? 개들이 이 순간 행복하다는 확신이 드는 건 왜일까? 뭐라고 딱히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머셔와 개들 사이의 깊은 유대관계에서 연유하는 모종의 확신으로 그것을 느낀다. 나는 일하는 개가 아무일도 하지 않는 애완견보다 인간과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조화로운 관계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하고 싶다. 개들에게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로 느낄 수 있도록 과제를 줘야 한다. 개들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니까.  

 

▲ 오춤이 이끄는 개썰매를 타고 호수를 가르고 있는 저자의 가족. “우리는 더 이상 관객이 아니다. 이런 천혜의 환경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배우들이다. 우리는 더 이상 ‘숲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숲과 함께’ 산다. 이곳이 진짜 우리 집처럼 편안하다. 자연의 균형을 존중하는 한,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다른 모든 것은 의식적으로 보호하는 한, 사람은 자연 속에서 언제나 자신이 있을 자리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존중, 그것이 핵심어다. 자연의 균형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

 

  ▲ 몽텐과 그의 수호자 오춤. “사람들은 몽텐이 일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살 때 처할 위험들을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시간씩 텔레비전 앞에서 무차별적인 화면의 살포에 방치되는 것은 그다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과 소외된 현대인들이 아직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은 양육에 적대적인 환경이 아니다. 설사 영하 사십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라 해도 말이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모습, 내리는 빗속에서 오춤과 즐겁게 뛰노는 몽텐의 웃음들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1. 오춤은 시베리안 라이카종으로 바이칼 호의 한 사냥꾼이 오춤이 새끼였을 때 그에게 선물했다. 오춤은 바이칼 호 북쪽에 살던 멸종된 소수부족의 이름이다. 원래는 설매를 끄는 개가 아니라 시베리아 사냥꾼들이 담비, 울버린, 곰을 추적하기 위해 훈련된 사냥견이다. 하지만 오춤은 생후 육개월에 썰매를 맸고 그의 썰매 견의 리더로 성장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