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은 낯설게하기


닦고 조이던 자전거가 밤새도록 봄비에 젖었다. 다음날 아침 창문을 밖으려 빗물을 날려버린 매서운 바람이 안겨왔다. 평소보다 두텁게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213일 토요일 오전 950, 해운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었다피곤한 몸을 누이고 뇌 속에 기억된 지도를 꺼내 경로를 그려본다. 심장이 가슴을 핥으며 낯설게하기를 시작한다

자전거여행은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장거리에 해당된다. 하지만 페달을 밟기도 전에 단거리 선수에게 오는 긴장감이 밀려온다. 짐칸에 실린 자전거는 괜찮을까?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저녁에는 누구를 만나지? 그 길은 그대로 있을까? 더구나 이번에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에 피가 더 뜨겁다.
 

 


버스 짐칸이 좁아서 앞바퀴와 안장 분리했더니 딱 맞게 들어간다.


자전거특별시 창원시

! 신호가 떨어졌다. 총성이 울린 지 한 시간 뒤, 간판도 없는 대로에 나 홀로 자전거를 조립한다. 낯익은 길,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전거를 몰아간다. 20대를 창원에서 보냈지만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 하루 이상은 머물 지 않았다. 넓은 도로와 공원, 깨끗한 도시 이미지가 영 정이 가지 않았기 때문인데,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바퀴을 조립하고 고개를 들자 자전거 도로가 붉은 미소로 환영한다.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처럼 8단 기어를 넣고 메타세쿼이아 미녀들을 헤집고 간다. 이 무대 위에선 나는 낯설게하기 여행을 시작해볼 참이고 그 출발이 좋다.

마산, 창원, 진해를 세 시를 통합해서 출범한 창원시는 자전거특별시라 불릴 정도로 자전거에 남다른 애정과 정책을 펴고 있다. 구 창원시에만 자전거전용도로 18개 노선 100.8㎞, 겸용 도로 103개 94㎞ 등 총 194.8㎞에 이른다. 또한 자전거법도 개정했을 정도로 창원은 자전거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처럼 자동차 도로를 뚝딱 떼어내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었다.  

 

횡단보도에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 신호만 잘 받으면 자동차보다 빠르다.  
 

인도에도 자전거 도로가 있고 버스 정류소 근처에는 누비자라는 자전거가 있다.

 

명품 자전거 길을 가다



⇡ 거리 : 31.64km, 주행시간 : 3시간... 자세히보

창원병원 맞은 편 도로를 따라 가다가 남창원역네거리에서 공단로를 따라 진해 안민고개로 페달을 밟았다. 안민고개 입구에서 마루까지 3.5km 언덕길이다. 20여분 가까이 숨을 토해내야 다다를 수 있다. 고갯마루에서 진해 방향으로 1km 내려가다 보면 전망대와 커피 가게 옆 비포장 임도가 있는데 천자봉 해오름 길의 시작이다.

 


안민고개 전망대에서 본 진해. 아침햇살을 받은 바다는 우윳빛이다.
 

 


140kg 거구의 선배가 해오름 길을 미끌어져 간다.

 

똑딱이 카메라로 촬영한 임도 동영상

  
천자봉 해오름 길은 만장대까지 약 10km. 이번에는 백일 아침고요 산길이라고 명명된 만장대에서 백일뒷산까지 3km를 더 가볼 생각이다. 소사 생태길(백일 뒷산에서 소사 화등산) 7km 더 뚫렸으니 대략 20km 명품 MTB 코스가 완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다녀봤던 MTB 코스 중에 최고의 점수를 줘도 아깝지 않다. 
 

산 중턱을 가로지르며 고개를 돌리면 아름다운 진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땅은 적당히 다져진 마사토로 초보자들도 무난히 즐길 수 있다. 쉴새 없이 오르내리길 10km, 자전거를 멈춘 곳은 만장대라는 곳이다. 여기서 진해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백일 아침고요 산길로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경사가 심해서 끌고 오른다. 설상등반을 하듯 발바닥 전체를 땅에 붙이고 고개를 숙이며 가쁜 숨을 몰아 쉰다. 고개를 들자 커다란 소나무고 춤을 추며 의자를 가리킨다. 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싱싱한 바다가 펼쳐진다.

 


백일 아침고요 산길로 접어드는 언덕  


 소나무 아래 전망대에서 본 거가대교와 남해바다


'백일 아침고요 산길'은 백일마을(진해구 웅천동) 이름에서 따왔다.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고 아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백일기도를 하였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어쨌든 이 길은 빛바랜 풀과 듬성듬성 날아온 솔잎이 만든 따뜻한 길이다. 그래서 해오름길보다는 조용히 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백일마을로 내려가는 풀길, 멀리 솟은 봉우리는 천자봉이다.  

봄볕에 강아지들이 어미 젓을 빨다 낮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한 백일마을


백일마을을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소사 생태길로 이어진다.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진해구 웅천동이다. 

 

웅천에 있는 천주교 공소 

 

다시 안민고개를 오르다.


⇡ 거리 : 26.62km, 주행시간 : 2시간30분... 자세히보


백일마을을 한바퀴 돌아서 웅천으로 내려왔을 때 시간은 2시30분. 조선사발로 유명했던 웅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웅천에서 용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웅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돼지수육과 밀면을 잘하는 집을 알고 있다.  

나름 미식가로서 자부심이 있는 우리는 진해 시내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STX 조선소 옆길로 해서 '수치'까지 왔다.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
관광지에서 밥을 먹지마라'는 교훈을 깨고야 말았다. 그저그런 회와 매운탕을 비싼값에 치른 탓에 진해구로 넘어가는 언덕은 곱절 힘이 들었다. 

선배는 진해 중앙시장 지하 건물에 있는 횟집과 삼겹살집을 떠올렸고 나는 경화시장에 있는 국밥집과 막걸리를 생각했다. 수치 뒤를 한바퀴 돌아서 행암동에 이르면 수평선처럼 펼쳐진 진해 시내를 통과할 수 있다. 큰 도로보다는 골목을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중심가를 통과해서 경화역에 도착했다.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진해구 역시 인도와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도로 자체가 좁아서 창원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벚꽃이 흐드러진 경화역, 안민고개 둘만 꼽더라도 라이딩 코스로 반은 먹고 들어 간다고 봐야 한다.

경화역 끝자락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앞 슈퍼에서 따스한 오후 햇살과 커피를 즐기다 안민고개로 방향을 잡았다. 진해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는 안민고갯길은 반대쪽 길보다는 수월하다.
경화고가차도 아래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4km에 이른다.

다리 한짝이 내 두짝에 맞먹는 무게와 파워를 가진 선배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30분을 꾸역꾸역 올라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해는 창원시내를 반 쯤 삼킨 상태였고 식은 땀을 몰래 파고든 바람이 찼다. 
 

고갯마루에서 커피를 마시고 창원으로 내려왔을 때 수영장에 뛰어들어 배를 뒤집고 한 시간 누워있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하지만 멋지게 깔린 붉은 융단이 노을을 대신해서 힘을 실어 주었다. 친구네 집까지 8km를 쉬지않고 달려도 피곤하지 않다.

하루동안 창원을 여행하면서 예전과 다르게 정이들었다. 노동자정당 후보가 국회의원이 됐고 여당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서 야권단일화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됐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 지면서 자동차들도 질서를 지키며 자전거와 동등한 관계를 지키고 있다.

 


친구집에서 맞은 만한전석. 자전거 여행에서 최고의 음식은 가정식이란 걸 입증.


창원에서 가져온 자투리 생각

자전거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자전거만큼'님의 블로그에 실린 이 글은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전거와 관련된 현실적인 정책 대부분은 보수에서 입안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의 이러한 정책은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자본주의와 역행한다. 어쩌면 자전거 정책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작은 실천 중의 하나일뿐, 근본적인 환경정책은 제대로 시행조차되지 못하고 있다. 환경문제가 대중들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보수정치인들은 자전거정책으로 올인한다. 3000CC  자가용을 주차장에 숨겨두고 자전거를 집 앞에 내놓은 그들에게 대중은 표를 던진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자전거를 선호한다?
나의 주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 대부분은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친환경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건강보다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진보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은 비싼 자전거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듯 하다. 왠만한 중고차 가격의 자전거를 보면 부유층의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전거가 우리 사회의 교통혼잡과 환경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사실을 생각한다면 아니꼽게만 볼일은 아닌 것 같다. 자본의 돼지로 퇴보한 자신의 육체를 바꾸고 환경문제를 생각한다면 자전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본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거제 옥포, 창원, 울산의 공통점은 노동자들의 도시다. 이곳에 가면 자전거도로가 발달되어 있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자동차 출퇴근으로 치르는 교통체증과 주차혼잡을 자전거가 덜어주고 있지 않을까?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