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로드무비 - 프롤로그

 

버스에 기대 한 시간쯤 잠을 잤다. 깨어 보니 사천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326, 선배와 남해(경남 남해군) 자전거 일주를 위해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930분 버스에 자전거를 실었다. 버스 짐칸이 넓어서 바퀴를 빼지 않고도 2대를 겹쳐서 실을 수 있었다.

 

남해 일주를 시작하기 위해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작년 이맘때면 벚꽃이 폈겠지만 꽃샘추위로 꽃망울만 맺혀 있다. 남해는 마음이 지칠 때 자주 왔던 곳이다. 자전거로 완주하겠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불혹이 가까워진 나이에 자전거라니... 신발끈을 조이고 옷 매무시를 고쳐본다.

 

이번 여행은 12일로 남해를 종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같이 온 선배와 동등한 실력으로 가보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이미 불혹의 나이에 들어선 선배는 키190cm에 몸무게만도 100kg을 넘는다. 힘이 장사인 선배를 따라잡기 위해서 폭이 얇은 바퀴로 바꾸고 XC용 신발까지 준비했다.

 

삼천포대교에 들어섰을 때 바닷바람이 몸을 밀어낸다. 이만희 감독의 유작 <삼포가는 길, 원작 황석영>에 나오는 뜨네기들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처럼 나에게 있어 고향과 같은 남해, 그곳으로 미끌어져 간다 

 

물건, 항촌, 다랭이마을은 그대로 있을까?

정씨 옆에 앉았던 노인이 두 사람의 행색과 무릎 위의 배낭을 눈 여겨 살피더니 말을 걸어 왔다.

“어디 일들 가슈?

“아뇨, 고향에 갑니다.

“고향이 어딘데.......

“삼포라구 아십니까?

“어 알지, 우리 아들놈이 거기서 도자를 끄는데......

“삼포에서요? 거 어디 공사 벌릴 데나 됩니까. 고작해야 고기잡이나 하구 감자나 매는데요.

“어허! 몇 년 만에 가는 거요?

“십 년.

노인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두 말우 거긴 지금 육지야. 바다에 방둑을 쌓아 놓구, 추럭이 수십 대씩 돌을 실어 나른다구.

“뭣땜에요?

“낸들 아나, 뭐 관광 호텔을 여러 채 짓는담서 복잡하기가 말할 수 없데.

“동네는 그대로 있을까요?-<삼포가는 길> 엔딩

장시기의 저서 <자유로운 몸으로 영화를 철학하다> 머리말에서 영화를 해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는 여인처럼 자신의 몸을 영화의 스크린으로 접속하라고 했다.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순간 언어의 감옥에 갇힌다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눈과 두뇌로 여행을 한다면 내 몸이 자연과 호흡하는 데 장벽이 생기고 결국 몸까지 아파진다. 경로와 지도는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다. 설령 목표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성취감은 운동선수의 절반에 미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급함과 두려움을 버리고 몸과 자전거 그리고 길과 일치시키는 순간 고향, 이름, 목적에서 해방된다. 하지만 여행자는 현대화에 고향을 잃어버린 <삼포 가는 길>의 정씨처럼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해 몸을 누일 수밖에 없다. 힘겨운 언덕에서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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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로드무비 정보  *. 파란색 부분은 초보자도 가기에 좋은 길.

 


일정 : 2011 326~27 (1 2)

 

거리 : 200km 

 

1일차 주요경로 (Mar 26, 2011  ::  11:11 AM - 6:54 PM), 총거리 (80km)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 창선대교 동부대로 창선교 동부대로(물건리방향) 양화리 물건 항도 미조 미조로 송정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 양아로 두모마을 금평마을회관(신전리) 남해펜션타운 이동교 죽방로(왼쪽) 강진만로 쇠섬 선소리 선소로 남해시외버스터미널

 

2일차 주요경로 (Mar 27, 2011  ::  9:24 AM - 6:28 PM), 총거리(120km)

남해시외버스터미널 농로(남해119맞은편) 해안도로 설천로(1024) 진목마을(설천면) 모천마을(강진로) 문항마을 강진로 남해대교 노량로 남해대로 고현교차로(오른쪽 남서대로) 남서대로(77) 갈화느티나무 노구마을 남해스포츠파크 (서면) 남면로 (오리마을회관 앞 우측) 사촌해수욕장 – 다랭이마을(가천) 월포마을(이동리 방향 우회전) 남서대로 남해대로(좌회전) 죽방로(창선방향) 창선교 서부로(창선교에서 좌측) 해바리마을 율도 단항사거리(좌측 삼천포방향) 창선대교 각산로 중앙시장사거리(좌회전)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

#01 : 삼천포에서 남해읍까지

 

 

 삼천포대교를 건너 가면 늑도를 지나 남해창선대교까지 연결된다. 양쪽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곳으로 자전거를 몰아가면 된다. 길이 좁고 바람이 심해서 조심해야 한다.

창선교 아래 죽방과 쪽빛바다.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부대로를 따라서 창선다리까지는 약 16km 거리에 35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리막과 평지가 이어져 있어 쉽게 올 수 있다.

남해에 오면 꼭 들리는 우리식당(삼동면 지족리 삼동지구대 앞, 쌈밥 1인분 8,000원). 투박한 멸치찌개에 마늘과 반찬을 먹으면 먼 길을 가야할 라이더에게 힘을 실어 준다.

삼동면에서 4km 가다보면 왼쪽으로 양화리로 가는 작은 길이 나온다. 경사가 높은 언덕이 있지만 차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자전거로 도로를 점령한 채 오를 수다. 대략 5km의 길이 끝나는 곳에 물건리 방조어부림이 있다.

물건 방조어부림. 보름 뒤에 오면 유채꽃 너머로 하늘보다 파란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을 것이다.

 

물건에 쏟아진 햇살에 데워진 몽돌밭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책을 읽으면 좋다.

 물건에서 미조까지는 14km. 숨이 목까지 차는 언덕을 많은 곳이다. 남해 전체 코스중에서 세 번째로 꼽힐 정도로 힘들다. 목표지점인 남해시외버스터미널까지 80km 중에서 절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 한다.


미송로를 따라서 숨을 허덕거리고 나면 조로를 따라서 송정솔바람 해변이 나온다. 상주해수욕장보다 규모도 작고 관광객도 많이 없지만 남해 해수욕장 중에서 모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금포마을 해안도로. 봄날 남해에서 푸른 것은 바다와 하늘 그리고 마늘밭이다. 푸른 것들이 품고 있는 작은 마을과그 사이로 난 고샅길을 순례하기 위해 달리는 라이더.

상주해수욕장 앞 바다에 오후 햇살이 밀려온다. 상주에서 남해까지 잘 닦인 아스팔트를 밟으면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자전거를 탄 심장은 골목으로 가자 한다.

우리는 양아로를 따라서 상주해수욕장에서 1.5km 지점에 양아리로 가는 길(양아로)이 나온다. 이 길은 상주 바래길로 불리는 굽이치는 언덕길이다. 19번 남해대로를 다시 만나기까지 약7km를 오르고 내려야 한다. 경사가 급해서 남해에서 두 번째로 숨이 차는 곳이다

 양아로가 끝나는 두모마을 언덕에서 유모차를 끄는 할머니를 만났다. 유보차보다 몇 백배 비싼 자전거지만 이 길에서는 할머니와 같이 고개를 숙이고 숨을 헐떡대야 한다.

두모마을 굽은 다랑이논. 옛날 농부들은 구불구불하게 논둑을 만들면 홍수에도 강하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농기계로 농사를 짓기엔 불편한 모양이지만 미학적으로 굽은 다랑이논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어 좋다.


 

두모마을 입구에서 남해대로를 따라서 6km 가량 달려오면 금평마을(신전리)이 나온다. 남해 시내까지는 10km를 앞두고 있고 마지막 언덕이라 생각하고 하얀색 건물(남해펜션타운)을 목적지로 잡고 농로를 따라서 간다. 남해펜션타운에서 200미터 정도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 한다.
 

죽방로를 달리는 라이더. 죽방로는 남해에서 자전거 타기 좋은 길 중에 하나다. 남해 선소리에서선소로, 강진만로, 죽방로를 따라서 지족마을까지 약 20km 거리다. 갯벌체험도 할 수 있고 아이들과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코스다.

남해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선소횟집.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 터미널 앞 모텔에 자전거를 넣어두고 지역의 유력일간지 기자로 있는 선배를 만나 선소횟집에 들렀다. 회도 맛있지만 시원한 미역국과 지리매운탕을 최고로 꼽고 싶다.


#02 : 남해읍에서 다시 삼천포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왼쪽 무릎에 파스를 잔뜩 붙인 채 길을 떠났다. 남해교육청서1km 지점에 남해소방서가 있는 데 거기서 오른쪽 아래를 보면 바다로 이어지는 농로가 보인다. 해안도로는 한창 공사중인데 완성된다면 모천마을까지 12km.

바닷길이 열려있는 상장도와 하장도(문항리 설천면). 문항리어촌체험마을에서는 바지락, , 우럭조개를 캐는 갯벌체험이 성황이다. 다음 기회에 남해를 찾는다면 이곳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어도 좋을 것 같다. 문항마을에서 해안도로(강진로)를 따라서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리까지는 8km.

노량 앞바다 위에 누워있는 남해대교. 이만희 감독의 <삼포가는 길> 엔딩신에 나오는 다리와 닮았다. “그 동넨 그대로 있을까요?”

남해대교 아래에서 해안도로(노량로), 큰길(남해대로)와 만나길 여러 번 하면 고현사거리가 나온다.사거리에서 오른쪽 길(77번 남서대로)로 해서 서면까지 18km. 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지라서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노구 솔정교와 소나무. 갈화마을 노구마을까지는 제법 오르막이 있지만 커다란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있어서 쉬어가기에 좋다.

남해스포츠파크가 있는 서면에서 외식 나오신 할머니들과 함께 주차를 하고 자장면을 먹다. 똑같은 유머차에도 자세히 보면 이름표가 있다.

길가에서 봄나물을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 길에서 봄나물을 뜯으러 나오신 할머니를 자주 보게 되는데, 혼자 나오기 적적하셨는지 할머니를 닮은 견공을 데리고 나오셨다.


오리마을에서 선배와 헤어졌다. 선배는 창원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남해읍내로 가는길을 선택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체력이 남아서 삼천포까지 갔다고 한다.

임포리 사천해수욕장.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 가는 길은 외롭고 힘들다. 오리에서 선배와 헤어지자 마자 커다란 산과 같은 고개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남해의 숨겨진 보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선구마을에서 본 항도마을.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해서 버든으로 불렸다고 한다. 굽은 언덕을 넘으면 다랭이마을이다.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를 수십 번 왔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랭이마을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내심 슬로시티를 기대했지만 밀려든 관광버스와 사람들의 술냄새에 허탈감이 밀려온다. 무릎 통증을 견디며 쉼없이 달려온 보람이 무너져 내렸다.   

개떼(관광버스로 이동하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개떼관광을 비판하는 이유는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은 되지 않고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데 있다. 먹거리도 마트에서 사와서 해먹고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비인적인 관광은 자연과 현지인에 대한 또 다른 폭력이다.

다랭이 마을을 벗어나 절벽을 끼고 내리막길을 5km 급경사를 내려오면 홍현마을이 나온다. 다랭이보다는 조용한 곳이고 전망도 좋다. 멀리 정면으로 보이는 용소리, 화계리를 지나는 남서대로를 따라서 가면 이동면으로 갈 수 있다.

이동면 죽방 해안도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452. 여기서 왼쪽 길을 따라서 가면 남해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금방이다. 결정을 앞두고 한참을 망설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종주를 할 수 있지만 30km 더 가야 한다. 몸은 남해로 가자고 하지만 남해에서 자전거 종주가 마지막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이동에서 쉼없이 달려와서 다시 만난 창선교. 길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같은 길은 간다는 건 재미없는 삶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바리마을이 있는 서쪽으로 돌아서 삼천포로 페달을 밟았다.

바다가 해를 삼켰다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몸은 사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기대를 안고 찾았던 다랭이마을이 최종 목적지에서 삭제되자 최종 목적지인 삼천포시외버스터미널로 쉼없이 달렸다. 오버 페이스로 무릎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길은 자전거를 끌어주었다. 

630. 삼천포대교 끝에 섰다. 뒤를 돌아보니 태양이 '왜 그렇게 서둘러 가느냐'고 웃는다. 텅빈 대교 위에 누구 하나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바람이 차가운 손으로 더운 몸을 어루만졌을 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쏟아졌다. 서른여덟, 내 삶에 남해를 자전거로 완주했다는 점의 기록을 남겼다.


남해 로드무비 - 에필로그 

 

길을 걷고 있을 때 낯익은 옛 노래가 흘러 나온다. 삼류 로드무비의 OST로 제격이다.

 

 

n  1일차 경로



 

n  2일차 경로-1



n  2일차 경로-2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