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번 자전거 여행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었던 지리산과 백운산을 넘어 순천과 벌교, 다시 순천으로 돌아오는 루트를 다녀왔다. 태백산맥은 20대 초반에 읽었으니 거의 15년이 지난 지금에서 책 속의 문장을 떠올리기란 긴 여행만큼이나 고된 일이다. 하지만 모진 역사를 살아갔던 인물들의 삶은 나에게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다가온다. 자전거 여행은 논픽션! 그래서 이번 여행 타이틀은 지리산 빨치산 루트’다.

지리산은 여신령이 폭넓은 치마를 펼치고 앉은 형상이 되었고, 그 수없이 많은 골짜기들은 그 치마의 주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옛날부터 세상을 바로 잡아려던 사람들은 형편이 여의치 못하면 그때마다 이 산으로 밀려들어 그 최후를 마쳤던 것인가.  남도땅에서는 제일 큰 산인 까닭이고, 더는 갈 데가 없는 마지막 산인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지리산 골짜기들은 피신처였으며 또한 무덤이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지리산 빨치산 루트 (220km)

 2011.6.6.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에서 

★ 시간 : 2011.6.4 08:21 ~ 2011.6.6 10:25 (23)

★ 거리 : 220km

★ 루트

0일차 (부산에서 합천, 합천자연학교에서 황매산터널까지 차량 이동)
합천자연학교 - 대병면 - 차황대병로(1026) - 황매산터널

1일차(112km) Jun 04, 2011 :: 8:21 AM - 8:14 PM
http://runkeeper.com/user/dolbae/activity/38069354


장박리 - 실매리 금포림(산청군 차황면 실매리) - 장사익찔레꽃길 - 차황면 - 동의보감로(69) - 산청읍 - 경호1 - 매촌마을 - 한방휴양로(60) - 특리재(산청한의학박물관) - 금서면 - 임천교 - 유림면 - 함양남부로(60) - 임천교 - 둘레길 - 한남교 - 함양남부로(60) - 송문교 - 둘레길 - 모전교 - 함양남부로(60) - 의탄마을 - 마천읍(함양군) - 실상사 - 둑방길 - 입석마을 - 삼화교 - 지리산길(861) - 뱀사골 - 달궁 - 성삼재휴게소 - 천은사 - 매천로(861) - 화엄사로 - 구례IC - 서시교 (둘레길) - 둑방길 - 문척교 - 수달생태로(861) - 문척면 - 간전면 - 섬진강어류생태관 - 간전교 - 석주관로(19, 화계방향) - 섬진강래프팅투어 숙박

2일차(84km) Jun 05, 2011 :: 9:21 AM - 8:12 PM
http://runkeeper.com/user/dolbae/activity/38181106


피아골 - 화개장터 - 남도대교 - 하천리 - 묘동마을 - 중한치마을 - 백운산 - 신재로 - 삼정교 - 옥룡면 - 광양시 - 광양역 - 순광로(2) - 순천시 - 백송 (냉면, 조례동 061-727-4001) - 순천역 - 한신아파트 - 강변로 - 순천만 - 학산리 - 마산리(변량면) - 마산교 - 기찻길옆 도로 - 구룡리 - 명신대학교 - 궁전모텔 - 벌교 - 조정래태백산맥문학관

3일차(24km) un 06, 2011 :: 6:08 AM - 10:25 AM
http://runkeeper.com/user/dolbae/activity/38275543


벌교읍 - 벌교천주교회 - 봉림교 - 857번도로 - 이곡리 - 낙안읍성 - 58번도로 - 상사사거리 - 연동삼거리 - 2번국도 - 순천종합버스터미널


둘레길을 따라 성삼재 넘어가기


합천자연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바우쌤 차에 자전거를 실어 합천호를 지나 황매산터널을 올랐다. 12km 언덕길을 차로 왔으니 오늘 목표인 성삼재를 넘어 구례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황매산터널에서 차황면(산청군)까지 약 9km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황매산터널을 빠져나와 차황대병로(1026)를 따라 실매리(산청군)까지 10리를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왕버드나무 군락이 보이는 곳에 자전거를 세웠다. 이곳은 금포림이라 불리는 곳으로 오래된 신라말 심어진 왕버드나무가 있다. 신라말 ‘김주’라는 사람이 경주에서 왕버드나무를 가져와 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금포림 옆으로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짧은 둑에는 찔레꽃이 폈다. 이 길의 이름은 ‘장사익의 찔레꽃길’이라고 한다. 몇일 뒤 가수 장사익씨가 이곳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하지만 이곳 금포림에도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하얀 버들개지가 뿌려진 금포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의 애마 '푸른 당나귀'

 

▲ 하얀 찔레꽃은 한국 현대사의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 태백산맥의 ‘소화’가 떠오른다. 갯벌에서 노동을 하는 ‘외서댁’도 떠오른다.
 

찔레꽃이 있는 둑방길을 1km 내려온 다음 도착한 곳은 차황면이다. 차황면에서 오른쪽 동의보감로(59번 국도)를 따라서 산청으로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차황면에서 산청으로 가는 길은 약간의 오르막(4km)이다.

고개에 오르자 산청시내가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태백산맥의 무대에 등장하는 빨치산 루트가 시작된다. 또한 지리산 둘레길의 주요 루트가 있다. 산청읍에 입성하는 길은 내리막이라 젖은 땀을 말릴 수 있다.

 

산청군 오부면에는 일명 팔로군부대라고도 부르는 삼일오부대가 낙동강전선에서 후퇴한 이후 잠시 해방구로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1951 210, 오부면에서 가까운 신원면 와룡마을 사람들은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아군에 의해 100여명이 학살되었다. 같은 날 청연마을에서 70명이 학살당했다.  

 

산청읍내를 통과해서 지리산으로 품으로 파고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지리산 둘레길 ‘수철에서 어천’ 구간 중 금서면에서 오부, 생초, 금서면으로 강을 따라 여행하는 코스다. 두번째는 금서면사무소에서 한방휴양로(60)를 따라서 특집재를 넘는 방법이다. 특집재는 왕산(923m) 허리에 걸린 고개로, 오부에 주둔하던 빨치산이 지리산으로 대피하는 데 이용되었던 루트 중 하나였다.  

특리재를 넘는 길로 접어 들었다. 경치가 좋은 강길을 두고 특리재 고개를 선택한 것은 산청까지 오면서 체력을 거의 소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집재는 금서면에서 고갯마루까지 고도차는 약 200m, 거리는 6km. 무엇보다 그늘이 없고 굽은 길 때문에 라이딩 하기에 힘들다. 하지만 고갯마루를 앞 두고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있다.

 

 특집재로 가는 길. 왼쪽 높은 산이 왕산이다. 사진으로 볼 때는 낮은 고개지만 그늘이 없고 고도차가 200m에 이른다.

특집재 고갯마루 아래에 있는 굴참나무. 조금 더 오르면 동의보감휴게소이고 그 아래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정자도 있다.

 

재를 넘어서면 금서면(산청군)이 나온다. 임천교를 건너면 함양군 유림면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길(지리산남부로, 60)과 왼쪽길(화계오봉로)로 지리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왼쪽은 둘레길이 구간으로 동강다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또 한번의 실수! 그 좋은 둘레길을 두고 지리산남부로를 탔다.

강 건너 둘레길이 손에 잡히는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손곡리를 지나면 낮은 언덕이 기다린다. 아스팔트 길이라 도로는 좋지만 햇살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강 건너 둘레길로 갈 걸, 하고선 후회하게 된다.

▲ 산청군 금서면. 금서면 삼거리에서 함양방면으로 가다 보면 임천교가 있다. 임천교를 건너지 말고 좌측으로 강을 따라 가면 동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둘레길이 있다.

함양남부로에서 언덕에서 본 임천강. 강 건너 강둑길을 따라 아름다운 둘레길이 보인다.


엄천교에서 5km 달리면 왼쪽으로 다리가 있는데 비로소 둘레길 코스가 있는 동강마을과 만나게 된다. 동강마을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가 강 옆 길을 따라 그늘에서 잠시 쉬다가 한남마을(2km), 한남마을에서 함양남부로를 따라 송문교까지 2km.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 마을을 맛보며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둘레길은 둘레꾼들의 길이기 때문에 자전거족이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비포장 내리막길에서는 걷는 사람들과 만나면 다칠 수도 있다. 하지만 둘레길 구간 중에서는 일반 도로가 많기 때문에 그곳을 잘만 이용하면 서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송문교에서 송전마을, 모전마을까지 이어지는 둘레길(4km) 구간은 길이 넓고 아스팔트로 이어져 있어 둘레꾼들에게는 고행의 길이지만 자전거족에게는 시원한 길이다.

둘레길도 모전마을이 있는 용유교에서 끝난다. 60번 도로를 따라서 원정을 지나 금계로 간다. 금계는 매동으로 이어지는 둘레길과, 의평마을에서 벽송사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곳이다. 마천면(함양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30. 합천에서 마천까지 다섯 시간이 걸렸다. 마천에서 자주 들리는 곳에서 자장면을 먹었다 

 

 마천 옛날짜장(055-963-3544)집 자장면은 면이 쫄깃하다. 더운 날에는 콩국수도 괜찮다.

 

마천면에서 백무동으로 가는 길목에 다리가 있는데 이곳은 빨치산과 국군의 전투가 잦은 곳이었다. 국군과 경찰은 지리산의 중요한 길목에 해당하는 이 다리에 보루대를 쌓고 진을 쳤다. 또한 어제는 친구였던 이들이 오늘은 적이되어 총을 겨눠야 했던 가슴아픈 시대가 겨우 60년 전이었다

마천에서 산내면(남원시)에 실상사까지는 4km. 착시현상으로 평지처럼 보이지만 바퀴가 잘 구르지 않는 오르막이다. 그래도 실상사 해세교를 건너는 순간 더위는 날아간다.

 

실상사 대웅전 부처께 인사를 드리고 칠성당도 둘러 본 뒤 나의 참새방앗간 절간 안 찻집에 들렀다. 종무소와 붙어 있는 찻집은 작지만 언제나 정겹다. 시원한 오미차를 먹고 종을 하나 샀다. 어쩌면 종은 성삼재를 오르는 나에게 소 같은 힘과 용기를 줄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실상사 오미자차는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재주가 있다

 

 찻집에 앉아서 창밖을 보면 버드나무는 연못에 머리를 감고 감나무, 살구나무는 한 잎 줄까 유혹한다.  

 

실상사 앞 연밭에 연꽃은 피지 않았다. 해세교 앞 나무 그늘에 앉았다. 지리산에서 성삼재를 넘는 방법은 또 두 갈래로 나뉜다. 인원을 지나 운봉으로 가서 정령치를 넘은 다음 성삼재로 가는 코스가 있고, 다른 하나는 뱀사골과 달궁을 거쳐 성삼재로 오를 수 있다.

 

돌장생에게 어디로 가면 좋겠냐고 묻지만 답이 없고 나물 파는 할머니들만 말벗이 되어준다. 겨울이었더라면 할머니들의 홍시를 샀을텐데 지금 내가 필요한 건 물 한병과 단호한 판단력 뿐이다.

 

오후 3. 정령치 코스로 간다면 운봉에서 하루를 보내야 할 판이다. 예전에 운봉까지는 자전거로 갔던 지라 뱀사골 코스로 가기로 결정한다. 해세교 옆 둑길을 따라 신흥, 입석, 삼화마을 길을 간다. 토비스콘도가 보이는 곳에서 다리를 건너 뱀사골로 접어 든다. 야영하는 차량들이 밀려오고 있어서 도로가 제법 복잡하다.

지리산 삼도봉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에 따라 빨치산들은 전북도당(뱀사골, 달궁), 경남도당(대원사골, 칠선골, 중산리골), 전남도당(화엄사골, 문수골, 피아골)  세 도당으로 나눠 책임분담을 맡고 있었다. 나는 전북도당 사령부가 장악하고 있던 뱀사골, 달궁을 거쳐 전남도당이 맹위를 떨치던 구례로 넘어갈 생각이다.
 

  원천마을을 지나면 지리산 국립공원 중에서 북부지역에 해당된다. 여름 지리산의 치맛자락이 계곡까지 내려오셨다.
 

 바퀴에서 뭔가 톡톡 터지는 소리가 나서 뭔가 싶었더니 오니열매가 길에 널부러져 있다. 나무를 잡고 오디를 따다가 손과 입이 온통 오디색이다.

뱀사골에서 잠시 휴식을 한 뒤 다시 달궁으로 이어긴 길을 간다. 뱀사골 야영장은 물론 달궁에도 오토캠핑을 하는 사람들로 자리다툼이 심하다. 옛날에는 텐트 크기가 작아서 많은 사람들이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토캠핑족이 늘면서 소형텐트 6개를 치고도 남을 자리를 한 동이 차지한다

달궁야영장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작은 텐트를 소유한 사람들이 캠핑을 할만한 장소가 있다. 소형 캠핑장을 지나면 장작불로 고기를 굽고 있는 식당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 심원마을을 제외하고는 민가는 없다
 

달궁은 빨치산들이 씨름대회를 열었던 곳이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로가 막힌 인민군이 이현상 부대와 규합하면서 남부군이 창설되면서 그 규모가 2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달궁은 반야봉과 서북능선 사이에 있는 요새로 토벌대와 전투를 벌인 지역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달궁은 하대치의 눈으로 묘사된다. 이해룡과 피아골에서 헤어진 하대치는 임걸령을 단숨에 올라 심원계곡을 타고 내려온다. 심원골 용소에서 주먹밥을 먹은 하대치가 달궁에 도착한 것은 오후 세시였다.

달을 처음 본 하대치와 그의 대원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골짜기가 갑자기 확 트여 넓어지면서 눈앞에는 평평한 풀밭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지리산에 들어와 사흘 동안 줄기차게 골짜기들만 넘나들고 오르내리면서 그런 곳을 본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 운동장처럼 넓은 풀밭에는 천막 대여섯 개가 나란히 쳐져 있었다. 맑게 흘러가는 물과 넓은 풀밭과 울긋불긋 물든 숲과 나란히 쳐진 천막들-그건 그지 없이  평화로운 별천지의 풍경이었다. "옛날 옛적에 여그에 궁궐이 있어서 달궁이라고 헌답디다. 긍께 저 풀밭이 궁궐터였을 것이오. 쩌그 쳐져 있는 천막은 남부군 사령부 기동부대 것이오." 선요원의 설명이었다. "허먼, 이현상 선생님이 쩌그 기신단 말이제라?" 하대치의 긴장된 목소리였다. "하먼이라. 나가  도착보고럴 허고 올 것잉께 쉬고 있으씨요." 성원이 다람쥐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돌들을 타고 개울물을 건너 갔다. 하대치는 그때서야 골짜기의 이곳 저곳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이 씨름대회에 참가하러 온 다른 도당의 대원들이겠거니 하고 그는 생각했다. – 조정래 『태백산맥』



 

 달궁야영장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진 약 9km, 표고차 530m에 이른다. 노고단을 찾는 차들이 많기 때문에 초보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오르지 않는 것이 좋다.


달궁에서 2km 언덕길을 오르면 달궁삼거리가 나온다. 정령치로 이어지는 737번 길과 만나게 된다. 달궁삼거리에서부터 성삼재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2km 더 오르면 하늘아래 첫 마을이라고 불리는 심원마을 입구가 나온다. 체력이 된다면 달궁에서 성삼재까지 쉬지않고 오르는 것도 매력적인 도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대치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나는 두 세번 쉬어야 했다.  

 

심원마을 입구에서 성삼재휴게소까지 3km 거리지만 1~3단 기어 변속을 해야 오를 수 있다. 달궁을 출발한 지 60여분이 지난 오후 540분 성삼재휴게소에 도착했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가슴은 울컥댔다.


 지리산을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길, 서른여덟살에 성삼재에 섰다.


 성삼재 아래 시암휴게소에서 내려다 본 구례. 길은 뱀처럼 휘어져 섬진강으로 간다.


   앞서 가는 차들이 없다면 스키활강을 하겠지만 브레이크 타는 냄새가 길바닥에 진동한다.


성삼재휴게소에서 라면을 먹고 다시 구례로 내려가는 길에 들어섰다. 자동차로 왔을 때는 그렇게 높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막상 내려가자니 브레이크에 신경이 곤두 선다. 천은사까지 내려오는 데만 35분이 걸렸다. 철인이 아니라면 구례에서 성삼재를 오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방광리 (구례군 광의면) 교차로에 도착해서 수한마을(둘레길)로 들어섰다. 해는 지리산을 마주보고 있는 국사봉으로 지고 있었고 넓은 들이 펼쳐졌다. 지리산 아래 곡창지대였던 구례는 동학농민전쟁에서 여순사건, 그리고 한국전쟁까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던 곳이다. 평화롭게 추수를 하고 있는 이곳도 60년 전에는 전쟁으로 남편을 산으로 떠나보낸 한 여인의 눈물이 있었다.

어쩌면 하늘이 저리도 맑고 푸르고 끝도 없이 깊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하늘의 깊이를 따라 눈길을 길게길게 뻗치고 있는 들몰댁의 가슴에는 까닭 모를 서러움이 차츰 차오르고 있었다. 서러움은 가슴을 채우고 목을 채우고, 입으로 넘쳐올랐다.  추수를 끝내서 더 넓어 보이는 고읍들이 서러움으로 차고, 산들도 서러움 속에 잠기더니 마침내 하늘까지도 서러움으로 뒤덮였다. 그 하늘이 차츰 흐릿흐릿 변하고 있었다. 들몰댁은 무심결에 눈을 훔쳤다. - 조정래 『태백산맥』


 

텐트를 가져왔다면 화엄사 아래 황전야영장에서 야영을 했을 것이다. 체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지만 무릎은 화엄사로를 따라서 구례읍 서시교까지 페달을 멈추지 않았다. 서시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 해가 지면 의지도 약해지고 편안한 잠자리를 찾게 되는데, 피아골에서 잠을 자기로 하고 페달을 밟았다.

 

  수확을 앞두고 있는 보리밭과 화려한 꽃들이 수놓은 구례의 황금들판

 

  서시교 근처에 파란색 다리아래로 관통하는 강둑길이 보인다. 강둑을 따라 계속 가면 문척교를 만날 수 있다.



  문척교 난간, 섬진강 위에 선 파란 당나귀
 

반동의 시체를 넘고 넘어 / 앞으로 앞으로 / 섬진강아 흘러간라 / 우리는 승리한다 / 원한 위에 피에 맺힌 / 반동을 무찌르고서 / 꽃잎처럼 피어나는 / 혁명의 깃말이여  - 조정래 『태백산맥』 '빨치산의 노래'


  

서시교 옆 강둑길을 2km 가면 문척교가 있다. 문척교를 건너면 수달생태로(661)를 따라서 섬진강어류생태관이 있는 간전면까지 이어진다. 구례로 다시 들어가서 편안한 모텔에서 잠을 자고 싶은 욕망이 타오른다. 하지만 지리산을 넘어온 순간 나도 모르게 섬진강을 따라 피아골로 숨어들고 싶어 진다. 피아골은 동학농민항쟁 때 전남의병이 일본군에 밀려 피아골에서 최후를 맞은 곳이자 여순사건 때 섬진강을 건너온 많은 사람들이 피아골에서 피를 뿌렸던 곳이다. 또한 전남도당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이 산,    산을 옮겨 다니며 고달픈 삶은 부지해가는 화전민이라는 것도 다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이유가 있듯이,  바깥세상을 등지고 피아골로 들어와 다랑이논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들도  다 그들 나름으로 바깥세상과 고리지어진 쓰라리고 아픈 곡절들을 간직하고 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끈질기고 선량한 사람들인가는 그들이 일궈내 다랑이논들이 입증하고 있었다. 돌투성이 산비탈들을 따라 일구어진 다랑이 논들, 성품이 선량하지  않고, 정신력이 끈질기지 않고, 몸이 부지런하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흐르는 섬진강을 왼편에 끼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수달생태로(661)를 따라서 문척면을 지나 간전면에 도착했다. 간전면에서 좌측으로 섬진강을 넘어가는 다리를 통과했다. 섬진강어류생태관은 이미 문을 닫았고 간전교를 건너 석주관로를 따라 피아골로 간다.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전용도로가 없는 좁은 길. 뻗어나온 나뭇가지에 옷이 스친다

야간주행은 피아골을 4km 앞두고 멈추고 말았다. 휴대폰이 먹통이라 지도를 검색할 수도 없고 섬진강에서 차고 오르는 밤 안개가 너무나 짙어 라이딩을 하기엔 무리였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민박집을 찾았지만 빈방이 없어 산속에 있는 민박집에서 어렵게 찾아갔다.

 

 


  참게로 유명한 섬진강 한 민박집 참게 정식개인적으로 참개보다는 밑반찬이 맛있었다.

 

 

백운산 한재(860m)를 넘어 벌교 태백산맥문학관

 

습기를 머금고 있는 숲속에서 하루는 뻐근했다. 새벽에 일어나 피아골 다랑이논을 둘러보고 구례에서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9시에 잠이 깨고 말았다. 어젯밤을 짓누르던 섬진강 안개도 보지 못하고 쌍계사 종소리도 듣지 못했다. 평사리 토지문학관 서희 아씨에게 문안인사도 올리지 못했다. 늦잠을 잔 벌로 따가운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라이딩을 시작해야 한다.

 

화개장터에서 아침을 먹고 남도대교를 건넜다. 남도대교를 건너면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광양에 속한다. 섬진강을 왼쪽으로 두고 100여미터 내려가면 왼쪽 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자동차로 넘어가지 못하는 길이기 때문에 별다른 표지판이 없다. 이 길은 광양까지 이어지는데 약30km, 표고차 820m. 성삼재보다 300여미터 더 높은 곳을 올라야 한다. 부지런히 가더라도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화개면. 벚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쌍계사가 있고 그 품을 파고들면 삼신봉(1,289m)이 있다.

▲ 화계장터 남도대교 입구에서 본 백운산 한재 가는 길. 하천마을과 중대리 계곡이 어슴푸레 보인다.


하천마을에서 시작된 길은 아스팔트 열기와 신기루 같은 오르막길로 초입부터 의지가 꺾어버린다.
비둘기 부부가 로드킬 당한 양서류와 곤충을 부지런히 먹고 쪼아먹고 있는 풍경은 사막을 횡단하는 듯 하다. 지나가는 트럭에 실려가고 싶은 적이 마음이 서너 번 들었을까, 모정마을 정자 한전정에 잠시 숨을 돌렸다. 한재를 넘는 동안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이곳을 오른다면 먹을 것과 물을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모정마을을 지나면 중한치마을이다. 이곳은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길이다. 중한치마을부터 시멘트 임도가 시작된다. 1250분 중한치마을을 지나 서울대남부학술림 길로 접어든다. 빨치산들이 지리산을 들어가기 전에 자주 이용했던 길이다. 드문드문 민박집이 보이고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려 신발을 갈아 신었다.

 

한재(860m)는 백운산(1216m)과 또아리봉(1127m) 가운데를 관통하는 능선이다. 아스팔트 길도 끝나고 비포장 길이 시작되는 이곳은 거의 대부분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 했다. 광양에서 오르는 한재는 경사가 더 심하다. 순천과 광양에서 밀린 빨치산을 백운산을 넘어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순천에서 일단 물러난 반란군은 백운산과 지리산에 진을 쳤는데 군경이 도저히  당하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타지 사람들로 모아진 군인은 길을 모르는데다가 지리에  밝은 경찰이 앞장을 서지 않고 꽁무니를 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란군들은 낮에는 산속에 꼼짝 않고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기습작전을 펴는 까닭에 군경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었다. . - 조정래 『태백산맥』



중한치마을 끝에서 3km 올라가면 그늘이 짙은 작은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이 드문 산길에 물소리가 요란하다. 일찍 넘어가려는 욕심을 버리고 계곡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기 위해 물에다 알을 낳는다. 하얀 구름이 고로쇠 손가락을 벌려 벌레들을 숨긴다.

한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30. 남도대교에서 1030분에 출발했으니 거의 4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한 시간 가량 쉬었으니 세 시간은 타고 끌고 올라온 셈이다. 빨치산은 1시간 이내로 주파했으리라 여겨진다.


 
▲ 모정마을을 앞두고 뒤를 돌아보니 지리산이 같은 눈높이에 들어 온다 

▲ 중한치마을 끝자락에 서울대남부학술림 입구가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한재가 있다.



▲ 한재를 오르는 길에 달콤한 계곡이 두어 곳 있다. 그늘에서 커피와 초콜릿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낮잠을 즐겼다.

▲ 오후 230분 한재에 도착했다. 왼쪽으로는 백운산, 오른쪽으로는 또아리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 한재 급경사 내리막을 기어서 내려오면 평탄한 길이 펼쳐진다.



▲ 광양으로 가는 도로(11)와 추산으로 가는 도로(8) 갈림길에 붕어빵을 굽고 있는 아저씨. 시커먼 눈썹만큼이나 인심도 좋다. 어묵과 붕어빵 맛에 피곤함을 잠시 잊는다.    


한재에서 광양까지는 22km. 옥룡초등학교까지 13km 내리막길을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아쉬운 건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기 때문에 차들과 가끔 신경전을 펼쳐야 한다는 데 있다. 광양에서 순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코스는 2번 국도다. 인도가 있지만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요철이 많고 매연이 심하다.


▲ 순천으로 넘어가는 2번 국도(고속도로?). 광양에서 순천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지만 매연과 요철로 짜증이 밀려온다.


순천에 들어서면 순천만을 통해서 벌교로 갈 수 있다. 해안을 돌아서 벌교까지는 육십리길이다. 순천만으로 방향을 잡기 전에 조례동에 있는 백송냉면집을 찾았다. 조례사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우연히 찾게 된 곳이다. 배도 고팠지만 이곳 냉면이 시원하고 맛이 있어 한 그릇을 더 시켜 먹었다.

 

냉면을 먹고 있을 때 머리를 기르고 비쩍 마른 젊은 주인이 자전거를 살펴보더니 어디로 여행을 하느냐며 물었다. 순간 김범우의 모섭이 떠올랐다. 나는 순천만을 둘러보고 순천에서 여독을 풀고 부산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는 시간이 괜찮다면 벌교로 가볼 것을 권했다. 벌교가 순천에서 가까운 줄이야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를 가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대로 된 자전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 순천시 조례동 1598-1번지에 있는 백송냉면집. 이곳 사장 역시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꿈꾸는 사람이다.


그분의 말 대로 벌교를 향해 출발했다. 벌교에 가기 전에 들린 곳은 순천역이다. 순천역은 광장에서 빨치산이 점령하면서 인민대회가 열렸고 이어서 국군이 점령한 곳이기도 하다. 역 광장에서 몽둥이 휘두르는 사회주의 청년들을 훈계하던 김범우의 모습이 떠오른다. 학생들은 단숨에 제압한 김범우는 학생들을 잡아가려는 순경을 제지했다.
 

이 사건으로 김범우 선생이란 존재는 순천 벌교 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수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몽둥이를 휘두르며 덤비는  네 사람을 거뜬히 물리친  무용담도 무용담이지만 학생들을 더욱 감동시킨 것은 그  네 학생을 극구 변호해서 경찰서에서  빼낸 것이었다. 그 일처리로 하여 좌익학생들도 더 이상의 적대감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김범우 선생은 좌익에 물든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극렬한 행동을 하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들러간 학생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학교의 구분을 두지 않고  노력했다. 좌익조직에서 보면 그는 확실히 눈의 가시였지만 그렇다고 증오스러운 적도 아니었던 것이다. - 조정래 『태백산맥



순천역을 벗어나 순천만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자전거를 탄 부부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골목골목을 헤집고 가더니 풍덕동 한신아파트 맞은 편에 둑길이 보였다. 그 아래에 곱게 빚은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순천만까지는 8km, 맞바람이 불어서 족히 30분은 걸린 것 같다.


 ▲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으로 가고 있는 외국인들.

 

순천만에 도착하자 하늘을 나는 짱뚱어 미술작품이 반겼다. 순천만은 사람들로 발 딪일 틈이 없었다. 새난들 쪽으로 걸어보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대대들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대대들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대대들 둑방을 타고 학산마을까지 10km 길은 장관이었다.

학산리를 지나면 화포, 창산복지회관, 거차마을, 마산리까지 해안도로가 나온다. 마산리 신덕 염전을 지나서 마산교를 넘어서면 철길과 만나게 된다. 순천에서 출발한 철로는 변량을 지나 벌교에 이른다. 빨치산의 장사 하대치가 철도를 파괴하고 열차를 기습하는 장면이 태백산맥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 멀리 보이는 육지 끝이 화포다. 화포로 넘어가는 언덕은 완만하고 언덕을 넘어서면 평지가 펼쳐진다. .

 


▲ 순천만에서 뻘배를 타고 돌아오고 있는 한 어머니.  

 


▲ 뻘을 건너면 구룡리다. 구룡리로 가는 다리가 없기 때문에 마산리까지 갔다가 유턴 하듯 내려와야 한다.

▲ 태백산맥에서 빨치산들의 무용담으로 등장하는 철길. 철길을 따라가면 벌교가 나온다.


 

2번국도를 왼쪽으로 끼고 친환경이라고 이름 붙여진 옛날 도로를 따라가면 철길과 만나기도 하면서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구룡리를 지나 호동리, 소화다리까지 이어진 방죽은 하대치의 아버지가 쌓은 것이었다. 그 길이가 이십 리였다. 농민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땅이지만 일제시대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땅이 되었다.

자신을 한 마리 황소이거니 생각하고 닥쳐올 고난을 이겨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참으로 한 마리의 미련하고도 끈질긴 황소처럼 그는 공사장 일을 이겨나갔다. 아들 대치가 무병하게  커가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고 빛이었다. 그는 담배는 피웠지만 술은 가까이하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될  살림살이가 아니었다. 나날의 생활이 아무리 고되어도 세월은 흘러가는  맛이 있어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저히 가망없어 보이던 방죽 쌓는 일이 시나브로 시나브로 이어져 나가더니 마침내 완성의 날이 온 것이다. 포구를 따라 뻗어나간  장장 이십 리가 넘는 방죽은 절로 탄복이 터져나올 만큼 장관이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소작인으로 살다간 하대치의 아버지가 간척한 땅을 보지 못하고 철길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서 탑 모텔을 넘어서 홍암로로 내달려 벌교에 입성했다. 벌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45, 백운산을 넘어 벌교까지 달려왔지만 꼬막집은 온통 ‘12로 도배되어 있었다
 

꼬막집이 몰려 있는 거리에서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2년 전 그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보였다. 벌교 꼬막집은 ‘12타이틀을 걸지 않으면 장사가 망할 것처럼 경쟁적으로 붙어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감칠맛나는 외서댁, 소화를 가려버린 간판에 실망하고 태백산맥문학관 맞은편 꼬막집으로 들어갔다.


▲ 철로보다 더 붉은 노을이 논에 지고, 멀리 낮은 언덕을 넘어서면 벌교고 있다. 

 

GPS를 멈춘 곳은 벌교 소화다리였다. 100km 이상 장거리 여행을 한다면 ‘Runkeeper’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프로그램이 무겁고 가끔 다운되기도 하고 100km 이상은 표시조차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배터리 소모량이 엄청나다.

▲ 태백산맥문학관 앞 꼬막집. 소화다리 근처에 몰려있는 꼬막집에 비해 한적하지만 맛은 비슷하다.


 

꼬막에 소주 2병을 비우고 비틀거리며 당나귀를 끌었다. 910, 혁명을 막 완수한 빨치산처럼 나는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텔에 들어가서 기분을 잡칠 수는 없었다. 태백산맥문학관 앞 뜰은 자동차 몇 대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그때 최부자집 옆 아담한 소화집이 눈에 들어왔다.

 

정하섭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소화집으로 들어갔다. 소화집 뒷뜰 장독대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매트를 깔았다. 밤이슬이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하얀 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무당 소화가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잠이 들었다.

 

두 시간 가까이 잠이 들었을까. 대숲이 있는 소화집의 모기들의 공격에 잠이 깨고 말았다. 대숲 사이에는 CCTV가 시퍼렇게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취기가 달아났다. 짐을 챙겨 태백산맥문학관 앞 벽에 다시 자리를 깔았다.

 


▲ 소화집 뒤뜰에서 몰래 비박을 하다 모기의 공격으로 후퇴했다.

 


▲ 문학관 검은 벽 아래서 비박을 했다. 덕분에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12일로 대표되는 미디어로 홍보간판으로 도배된 벌교 꼬막집. 본래 특색을 찾았으면 좋겠다.

 

새벽 5시 태백산맥문학관을 나서 횡계다리(홍교)를 찾았다. 낙안벌에서 가장 가까운 홍교, 소화다리, 철교 아래로 시간이 멈춘 듯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순천만의 바닷물은 어김없이 하루 두 번 홍교 밑까지 파고든다. 홍교는 소화다리와 함께 태백산맥에서 인물과 인물들을 이어주는 가교였다.

횡계다리 위에 쌀가마니가 높게 쌓여 있었다.  그것은    쌀가마니들을 제일 먼저 본 것은 김범우였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어제밤에 총성이 울리고  있는동안에 그  쌀가마니들이 다리 위에 쌓이고 있었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총성이 울리기 시작한 직후 김범우는 예기치  않은 사람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하대치였다. "가난한 사람덜한테 한 주먹씩이라도  골고로 노놔줘서 설얼 쇠게  허자 고런 뜻인디요, 따른 지주덜헌테야 강제로 쌀얼 뺏어내는 것이제만, 대장님 말씸이, 김 선상님헌테는예 갖춰 우리 뜻을 전허면  선선히 쌀얼 내주실 것이다, 그러시등마요."  하대치란 사내가  막힘  없이 한  말이었다. - 조정래 『태백산맥


 

김범준은 횡계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읍들녘을 멀리 바라보았다.  황해룡 동지와 함께 물젖은 옷으로 도망치던 기억이 선영하게 떠올랐다.  그때 마침 밀물이어서 포구로 뛰어들어 다리 밑에 몸을 잠그고 있다가  들녘 가운데로 난 개울을 타고 벌교를 빠져 나갔던 것이다. 언제나 긴긴 포구의 갯내음은 고향의 냄새였고, 산으로 에워싸인 고읍들녘은 고향의 모습이었다. 김범준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뒤따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주오던 서너 사람이 그를  흘끔거리며 비켜서듯 하는 몸짓으로 지나쳐갔다. - 조정래 『태백산맥


하대치가 일행이 그랬듯 횡계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봉림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낙안이고 왼쪽으로 가면 전동리를 지나 빨치산의 해방구 율어면이 나온다. 그곳은 빨치산의 대장 염상진의 묻힌 곳이기도 하다. 갈림길에서 벌교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교 어디에선가 염상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런 개좆 겉은 새끼덜아,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요! 당장에 못  띠내리겄어!"  염상구가 두 경찰의 어깻죽지를 동시에 치며 외친 소리였다. 그려, 그려, 니가 사람이다. 하먼, 느그 성인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호산댁은 솟구치는 서러움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었다. 워메, 워메,  아즘찮은거.  시동상이 인자 사람이시.” 예상이 뒤집히자 죽산댁도 비로소 고마움과 서러움이 범벅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 태백산맥 인물들이 횡계다리 수없이 만나고 헤어졌다.

 

▲ 보리가 익어가고 있는 낙안들판. 산너머 빨치산의 해방구 율어면이 있다.

 

▲ 낙안읍성민속마을에 들러 곤장을 맞으러 들어갔다. 어젯밤 소화아씨 집에 침범한 걸 사죄드렸다. 끝.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