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내리는 동성로, 당나귀와 함께


대구에서 창원까지 12시간 200km를 미니벨로(당나귀=스테판)로 주파하기 위해 420일 창원중앙역에서 대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패니어 2개를 달고 새마을 열차에 올랐는데 당나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맨 앞 열에 빈 자리가 있어 스테판[각주:1]에게 창자 자리를 양보했다. 


대구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경. 비는 더 거칠어졌다. 패니어에 든 우산을 펼치고 당나귀를 끌고 대구의 골목을 어슬렁 어슬렁. 날이 갠다면 합천보까지 가서 두 세 시간 쪽잠을 잔 뒤  부산까지 야간비행을 할 생각이었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동성로 곡목을 당나귀와 함께 걷다가 허기가 몰려와서 예전에 아는 분과 같이 갔던 카페에 들었다. 나이가 들면 방향감각이 둔해지는 것일까, 한 시간을 돌고 나서야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 대구 동성로에 있는 리틀이탈리아(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동 45-1). 당나귀를 널찍한 비가림막 아래 세워 두고 해물파스타를 주문했다. 아담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충전하고 몸을 말리는 사이에 먹음직스러운 파스타가 나왔다. 파스타가 내장으로 들어가자 엔진에서 달리자는 신호를 보냈다. 


파스타를 먹고 나서 지인의 차를 얻어타고 모처로 이동해서 커피를 마신 후 밤 늦게 지하철을 타고 후배가 살고 있는 대실역으로 갔다. 대실역은 대구지하철 2호선 서쪽 종점에 있다. 그곳은 낙동강과 가까운 곳이라 베이스캠프로 적당한 곳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자전거여행과 4대강자전거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후배는 박사논문을 마치면 외국에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고 있던 터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작년에 4대강과 섬진강, 국토종주를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습지에 만든 2차선 고속도로, 마을과 문화를 소외시키는 루트... 4대강자전거도로는 문제점이 많다"고 논지를 이어가면서도 4대강에 설치된 보 때문에 자전거길이 불요불급한 애물단지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도 이야기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논지는 이왕 만든 4대강 자전거도로를 제대로 활용하고 국가의 인프라로 개선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종주를 하면서 느낀 점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습지를 보존하고 둑길을 활용한 지자체(담양군), 자동차가 잘 다니지 않는 국도나 농로를 활용한 사례(영산강), 폐철로에 명품 자전거길을 만든 지자체(남양주시), 이른바 라이더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길도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와 두발족의 이야기는 12시가 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 반, 술이 덜 깬 상태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고양이 세수를 마친 다음 차 안에 있던 당나귀를 깨워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작년 여름과 가을, 5대강과 국토종주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 라이딩은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했다. 도동서원과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다람재, 보 때문에 작은 하천이 강으로 변한 회강과 오광대의 발상지 밤마리마을, 길고 높은 고갯길에다 자전거에게 한쪽을 양보해서 박진감 넘치는 박진고개, 새로 난 산길 개비리길... 비록 12시간 200km를 달리겠다던 야심찬 계획은 실패했지만, 도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즐거우면 그만인지 싶었다. 


이 이야기는 위대하신 가카 때문에 불혹에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주인공이 될 뻔한 한 라이더의 이야기이다. 

 


☞ 요약 


◈ 총거리 : 166km

 시간 : 13시간26분 (Apr 21, 2013  ::  5:10 AM - 6: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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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의 서쪽에 있는 성서에 있는 후배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아침 5시10분 경 라이딩을 시작했다. 낙동강은 어둠에서 막 헤어나오려던 찰라, 습지를 잘라낸 고속도로 위에서 라이더는 새벽을 맞이 한다. 



다람재에 올라 도동서원을 내려다 보다


경북 고령과 현풍을 잇는 박석진교에 도착하자 갈림길이 나왔다. 박석진교에서 우곡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박진교를 건너 현풍 시내를 지나서 다람재, 도동서원을 지나가는 길(23km)이다. 두번째는 박석진교를 건너지 않고 개진면(고령군) 청룡산 산길(2013.5월중 개통 예정)을 가는 방법이다. 


개진면 산길은 아직 개통이 되지 않았다는 표시가 있어 다람재 방향으로 당나귀를 몰았다.  작년에 현풍 전통시장에서 수구레 국밥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냥 지나갔다. 


도동서원 근처에 몇 군데 밥집이 있지만 합천군 율지면 밤마리마을까지 약국,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현풍에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것이 좋다. 


강정고령보에서 다람재까지는 약40km, 다람재는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와 '현풍면 자모리' 사이에 있는 고갯길이다. 경사가 높고 시멘트 포장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당나귀로 업힐 하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끌바를 시작하니 당나귀가 쾌재를 불렀다. 


끌바로 오르는 산길이라 힘들지만 대구에서부터 처음 산길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얼굴을 때리던 강바람도 없고 파괴된 습지를 봐야 하는 눈과 정신의 피로감이 들했다. 예전에 만든 산길을 그대로 오를 수 있어 자연에게 덜 미안했다. 


다람재는 끌바로 쉬지않고 오르면 10여분 만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앞으로 고령의 구곡리와 옥산리, 왼편 아래쪽으로 도동서원을 감싸고 도는 낙동강 물줄기가 보인다.   


▲ 다람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도동서원과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느티골과 정수골을 잇는 다람재 아래에는 사림파의 거두이자 김종직의 벗이었던 김굉필 선생을 모신 도동서원이 있다.   


▲ 도동서원 입구에는 4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수월루를 지나 2) 환주문을 들어서면 3) 강학을 하던 중정당이 나온다. 예전에 수월루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은빛물줄기를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보에 막혀 갑갑하다.   


하마터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주인공이 될 뻔


강정고령보에서 약 50km지점에 우곡교에 도착했다. 창녕합천보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송곡고개 방향(계속 직진)이지만 산길(일부 비포장)이고 미니벨로를 타는 게 힘들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로 하고 우곡교를 건너가고 말았다. 


사단은 여기서부터였다. 


Daum 위성지도를 검색해보니 '회천'은 넓은 모래사장과 얕은 물줄기가 보여서 자전거를 매고 건널 수 있다고 판단했다. 회천은 고령군 연리마을과 합천군 율지리 사이에 있는 하천(강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회천 상류로 당나귀를 몰았다. 회천을 잇는 작은 다리나 배 한척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월오리(경북 고령군 우곡면)까지 갔지만 깊고 넓은 물줄기가 펼쳐졌다. 


하천 건너 포두둑방(합천군 덕곡면 포두마을)이 손에 잡힐 듯 했지만 하천의 모습은 위성지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대로 갔다가 고령읍까지 가서 산길을 둘러서 율지교까지 내려와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우곡교로 돌아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객기마을에서 객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위성지도상에 도하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마찬가지였다. 모래밭은 온데간데 없고 깊고 넓은 강으로 변해 있었다. 하류에 있는 보가 물길을 막고 있다보니 강물이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드문드문 짙고 푸른 웅덩이도 보였다. 


심호흡을 하고 물에 젖을만한 것들은 패니어에 넣고 당나귀를 들쳐맸다.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홀몸이 아니라서 한발 한발 도둑발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모래가 발목을 잡았다. 시원한 물이 발을 감쌌다.   


행복함은 잠시였다. 강을 절반쯤 건넜을까, 물빛이 짙은 곳을 지나가려고 한 발을 딪는 순간 마치 모래지옥에 사는 벌레가 개미를 끌어당기듯 균형을 잃고 수렁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이 목전까지 차올랐다. 당나귀는 죽을 듯이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 거렸다.  


모래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릎을 굽혀 정강이를 발처럼 사용했고 다른 한 발은 수영 발차기를 했다. 패니어가 물에 잠길 듯 했다. 당나귀는 나중에 구하고 몸이라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패니어 속에서는 12개월 할부로 구입한 맥북에어가 들어 있었다. 


기적과도 같이 건너편 모래밭에 닿았다. 강을 건너자 마자 당나귀를 모래밭에 던졌다. 숨을 가다듬기 위해 모래밭에 털썩 누웠다. 패니어가 방수라서 노트북은 물에 젖지 않았다. 물에 젖은 몸을 뉘이자 모래밭은 이불과 같이 푸근하고 따뜻했다.  


위대하신 가카 덕택에 깡충깡충 건널 수 있었던 하천은 강이 되어 있었고, 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주인공인 머리가 하얀 미치광이 노인이 될 뻔 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公無渡河 / 公竟渡河 / 墮河而死 / 當奈公何

임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 임은 기어코 물속으로 들어가셨네 / 원통해라, 물속에 빠져 죽은 임 / 아아, 저 임을 언제 다시 만날꼬.



▲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299 번지에서 월오리, 그리고 도하... 짧은 순간이지만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 강을 건너지 마시길 당부 드린다.   



▲ 낙동강 자전거 종주를 하는 분들은 흰색으로 표시된 산길을 이용하길 권한다. 다만 밤마리 마을(오광대 발상지)에는 전통식당, 음식점, 구멍가게가 있다. 우산농장 앞에서 밤마리 마을까지는 1.7km


밤마리 마을에서 만난 풍류를 아는 견공

  

지금 생각해보면 강을 건너지 않았더라면 밤마리 마을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강을 건너서 포두마을(경남 합천군 덕곡면)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벽화가 그려진 마을에 당나귀를 세웠다. 


11시30분, 긴장했던 몸에서 먹이를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침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옛 주막 형태를 갖춘 음식점이 있었다. 마당에는 잘생긴 풍산개 한마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주인은 아직 식사때가 아니라서 반찬이 변변치 못하다면서 소박한 밥상을 내왔다. 부침개가 맛깔스러워서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주인은 견공께서 술을 잘 잡수신다는 해서, 먹다가 남은 막걸리를 한잔 올렸다. 그랬더니 정말 막걸리를 맛있게 잡수신다. 더 기가찬건 막걸리 보다는 맥주와 소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 견공께서는 멀리 부산의 모 술집에서 나고 자랐는데, 견공을 어여삐 여긴 주인장 따님이 데리고 왔다고 한다. 손님들이 재미로 줬던 술에 빠져 폐가망신할 뻔 하다가 이곳에서 치유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뭐든지 한번에 끊으면 탈이 나는 법. 소주를 2잔 정도 드시더니 잠에 빠져 노래를 부르신다. 알고보니 이곳이 밤마리 마을, 오광대의 고장이니 개도 풍류를 안다. 그러고보니 밤마리마을은 오광대[각주:2]의 발상지이다. 


▲ 견공께서 탁배기를 잡수신다. 탁주는 술이 아니고 밥이니 주인에게 일러 소주를 대령하라 하신다. 소주로 나발을 불더니 이내 꽃잠을 주무신다. 


▲ 1) 밤마리 마을은 우산마을(경남 창녕군 이방면)에서 율지교를 지나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2) 율지교에서 내려다 본 밤마리 마을, 이 마을에는 합천군에서 지은 초가집이 있는데 지금은 술과 음식을 파는 주막이 있다. 또한 풍류를 아는 견공이 살고 계신다.  3) 오광대 한 과장이 그려진 벽화에서 기념촬영 4) 회천으로 가는 길 (길 없음, 다시 율지교에서 우산마을로 가서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야 함)

 

길을 나눠쓰는 박진고개와 개비리길

 

강정고령보에서 박진고개까지 96km 약 8시간이 걸렸다. 박진고개(경남 의령군 낙서면)는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를 지내던 박진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박진감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높고도 길었다. 


박진고개는 엔진이 튼튼한 사람이 자전거로 완주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다. 들머리에서부터 업힐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당나귀와 함께 유유히 사진도 찍고 끌바로 고개를 올랐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박진고개 정상에서 박진교까지 다운힐의 기쁨도 만끽했다.  


▲ 박진고개는 도로 한켠을 자전거와 나눠쓰고 있다. 중간 분리턱이 없는 게 아쉽지만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이런 국도를 자전거 도로와 연계한다면 예산도 절감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 박진고개에 올라서면 적포에서 내려오던 낙동강 물줄기가 유어면 산에 막혀 굽어져 낙서면으로 흘러 내리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흘러 내리는 게 아니라 고여있다고 봐야 한다. 올 가을이면 적포교에서 박진교로 이어지는 또다른 길이 개통될 것으로 보인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구간은 박진고개에 비해 완만해서 초보자들이 이용하기에 좋아 보인다. 



박진교에서 5km 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푸른색으로 그어진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줄곧 노란색과 흰색 선만 보다가 푸른빛을 보니 눈이 시원해진다. 작년에는 고곡마을(창녕군 남지읍)리로 해서 남지읍으로 달렸는데 올해 (산길)개비리길이 개통되었다. 


개비리길은 창녕군 남지읍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 창아지나루터까지 이어진 옛길이다. 물가(浦:개) 위 벼랑(비리)으로 난 길이라 해서 개비리라 불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포장 길이었는데 올해부터 황토색의 시멘트길로 만들어졌다.  


▲ 개비리길은 박진고개보다는 고도가 높지 않지만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가는 터라 마음이 가벼워 진다. 양아지마을에서 시작해서 남지읍까지 약 9km.  


▲ 주황색 길은 낙동강자전거도로이고 붉은색은 트래킹족을 위한 길로 보인다. 주황색 길은 자전거로 30분 정도면 지날 수 있다.  


월래 모래밭이었던 남지벌은 공원으로 바뀌어 유체축제가 한창이었다. 유채꽃에 날아든 벌과 나비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남지철교에 이르자 오후 3시, 약 10시간 100km를 달려서야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보통 100km 정도 달리면 몸에서 몇가지 고통스러운 신호를 보내는데, 아마도 지옥 문턱을 갔다온 경험 때문에 작은 고통 정도는 몸에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지읍에서 창녕함안보, 노리 고개를 지나서 작은 카페에서 당나귀를 멈춰 세웠다. 토스트가 맛있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카페에 앉아서 언덕을 내려오는 차들을 지켜보았다. 오후 4시40분, 목표를 위해 달릴 것인 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것인 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200km 돌파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네발 달린 의자로 앉아 있어야 하는 사무원으로서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포교를 지나 낙동강자전거도로에서 벗어나 주남저수지로 가는 대산북로로 당나귀를 몰았다. 주남저수리를 경유해서 창원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 했다. 13시간반 166km. 패니어를 달고 미니벨로로 세운 나의 기록이었다.  

 

에필로그 : 본포교에서 창원으로 가는 길

▲ 자전거도 차로 분류되지만 자동차 함께 달리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동차기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본포교에서 주남저수지를 목적지로 잡고 농로나 일반 국도를 이용하면 재미나고 안전한 라이딩을 할 수 있다. 


▲ 주남저수지 생태학습관에서 동읍으로 가는 30번 도로는 갓길이 좁고 자전거 길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주남저수지 생태학습관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 가다가 판신마을-무점마을-무신교를 기점으로 농로와 둑길을 이용하면 안전하고 재미있게 라이딩을 할 수 있다. 동읍 45번길을 따라서 가면 용강마을로 이어진다.  



▲ 예전에는 용강마을에서 의창대로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는데, 용강마을에서 만난 한 분이 신풍고개를 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의창대로에서 용강마을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현재 공사중인 것으로 안다. 


  1. 내가 당나귀라 부르는 짐승의 이름은 스페판(Stepan)은 스웨덴의 작가인 헬레나 윌리스2(Helena Willis)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말 이름에서 따왔다. 스테판은 다혼 벡터X271-2011 종이다. [본문으로]
  2. 오광대의 유래와 발전과정 (밤마리 마을 알림판 요약)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춤을 추고 대개 다섯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오광대(五廣大)라고 한다. 밤마리 마을에서 1.7km 떨어진 곳에는 소학산(489m)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서낭제를 올리는 등 민간신앙이 성행했다고 한다. 서낭제는 오방신탈춤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인조 12년 (1635년) 나례도감이 폐지되면서 그에 종사하던 예인(광대) 일부가 이곳 포구 도시인 율지리에서 산대탈춤을 시연하여 오광대로 더욱 발전되었다고 추정한다. 한편 전설에는 350여년전 대홍수때 큰 나무꿰짝 하나가 덕곡면 밤마리에 떠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이 건져서 열어 보니 그 속에 많은 가면과 영노전 초권이라는 책 한권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탈을 쓰고 그 책에 쓰여져 있는 그대로 놀음을 하여 보았더니 마을에 재앙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탈을 쓰고 연극을 해왔는데 이것이 전파되어 동래, 수영야류(들놀음), 고성오광대 등 오광대로 불려지고 있다. 오광대는 산대가면극에서 나왔다. 산대가면극이 점차 연극으로 발전되어 가던 조선 인조 이후, 낙동강은 물자교통의 요지로 포구가 있던 율지(밤마리)에 전국 각지에서 여러 흥행단이 흘러 들어온 가운데 초계(경남 합천군)를 근거지로 광대일파가 형성되어 인근 고을로 전파시켰다고 한다. 경남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통영오광대), 제7호(고성오광대), 제73호(가산오광대)가 있다. 또한 마산오광대, 창원오광대가 복원중에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