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보면 형식적으로 치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회장이나 유명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상을 주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박수를 치다가 가족과 사진을 찍고 교문을 벗어납니다. 또 언제부터인가 스승에 대한 감사도 예전만 못하고 담임교사의 차에다 화풀이를 하는 졸업생들의 이야기가 사회면을 장식하기도 합니다. 졸업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으로 눈물바다를 이루던 졸업식 풍경은 옛날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학창시절 치고는 참 을씨년스럽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대안학교 '거침없는 우다다(우리는 다 다르다)' 졸업식은 기쁨과 눈물이 어울어진 무대였습니다. 올해 졸업을 하는 여섯명의 학생들을 위해 후배들이 연극, 춤, 노래 등 2시간 동안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졸업생들이 한 명씩 무대에 서서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동안 있어왔던 학창시절의 그리움과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 했습니다. 여섯명의 졸업생을 위해 찾은 사람들은 학부모, 자원교사, 친구 등 200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졸업생들이 만든 재미있는 포스터

"이제 우리 아이들을 세상에 내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축사를 하던 김복남 교장선생님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대안학교 교육과정은 입시를 위한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부터 아이들에게 닥칠 험난한 여정을 생각하면 스승으로서 당연히 갖는 마음이라고 봅니다. 이번 졸업생은 음악, 만화, 아이돌보기 등 남다른 재능이 있지만, 이 아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대학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졸업생과 그 학부모들은 선생님들에게 고맙다고 울면서 손을 잡더군요.

졸업생 중에서 대학을 선택한 아이는 특별전형으로 합격한 1명뿐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능을 준비하지 않았고 대입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아이는 배우고 싶은 과목이 없는 데 뭐하러 대학을 가냐며 저한테 따지듯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모 게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를 빌리자면, '일등만 기억하는 더라운 세상'에서 학문이 아닌 취업에 목을 메는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이 아이들도 대학을 가고 싶어 합니다. 내년에 수능을 준비해보겠다는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안아 줄 수 있는 입시제도는 없을까요? 최근 다시 불기 시작한 입학사정관제도가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입학사정관제도는
내신과 수학능력성적 위주로 이루어지던 대학입시제를 개선하여 학생들의 창의력과 특기, 문제해결능력, 봉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입학시키는 제도입니다. 2009년 47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도를 운영하거나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2010년에는 전체 모집정원의 약 6%에 해당하는 2만여 명을 선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도는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확보와 다면평가 등 보완해야 할 사항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들을 선발하는 데 있어 학업능력 뿐만 아니라 창의성, 적성, 취미, 특기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정규학교에서 제출하는 학교생활기록부 조차 아이들의 특성과 활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블로그가 입학사정관의 중요한 자료다'라고 주장한 김주완 기자님의 아이디어는 대안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은 자기주도 프로젝트 위주로 수업에 참가하고 만들어 갑니다. 스스로 무엇을 배울 것인 지 결정하고 배움의 과정을 글과 사진 등으로 기록합니다. 3~6년 동안 만들어진 아이의 기록, 즉 포토폴리오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에 재능이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 잖아요'라고 외쳤던 때가 20년 전인데, 이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제도가 바뀔만도 한데 아이들에게 참으로 미안하고 죄스러운 졸업식입니다. 



  

1년동안 아이들의 수업결과물을 보고 있는 학부모들

졸업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며 축하하고 있는 학부모

졸업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른 용주. 용주는 시를 잘 쓴다.

졸업한 선배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흰옷을 입고 있는 친구는 극단에서 배우로 일하고 있다.

중등부 후배들의 축하공연은 주류 문화에 대한 패러디로 채워졌는데, 기발한 재치로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대안학교에 오기 전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했는데, 오늘은 대중을 웃기고 울릴 줄 아는 아이로 자라있다.

고등부의 무대는 중등학년보다 내용과 구성이 한층 맛깔스럽다.

고등부는 이성, 대안학교 생활, 가족에 대한 갈등을 주제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특히 고등부의 '곰이야기'는 구성과 연기가 일품이었다.

소극적이고 무기력하던 아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공연의 포인트다.

40여명의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축하공연을 펼치고 있다.

2시간동안 관객들을 환호의 도가니로 만든 주인공은 이번 예술제를 연출한 기영(고등2년차)이였다.

올해 입학하는 열댓명의 신입생들도 나와서 함께 어울어졌다.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선배들을 아 주고 있다.

올해 졸업하여 사회로 나가는 여섯명의 친구들

졸업장을 졸업하는 학생이 읽는 이색 풍경이 펼쳐집니다. 류려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어서 대학을 가기로 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원주가 졸업 소감을 말하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항상 씩씩한 혁재도 이날은 말문이 막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시를 잘 쓰는 용주도 이날은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입니다.

통기타를 잘 치는 정심이는 대안학교에서 자원교사로 일하고 싶어 합니다.

만화를 잘 그리는 성현이는 지금쯤 어떤 만화를 구상하고 있을 지 궁금합니다.

여섯명의 졸업생을 위해 많은 분들이 축하를 하로 왔습니다.

부모님과 뜨겁게 포옹하고 있는 용주

마지막 단체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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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 거침없는 우다다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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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합천자연학교와 대안학교 우다다 아이들 18명과 함께 전라도 소리기행을 떠났다. 모처럼 휴가를 가는 곳이 전라도라  즐겁고도 안타깝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이 거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랜트카 뒷면에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붙였더니 죄송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해남-강진-보성-벌교'의 소리꾼을 만나 소리를 체험하고 대흥사, 다산초당, 명사십리해수욕장, 보성차밭, 태백산맥 문학관 등을 둘러보는 '전라도 소리기행'이었다.

대흥사 맑은 계곡에서 해남의 소리를 배우다.

해남 대흥사(大興寺,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도착했다. 휴가 끝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한 전라도 첫 여행지로서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얼마전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유선관은 예약이 모두 찬 상태라서 근처 민박집(개울민박)을 잡았다.
 
시골 민박집이지만 내부에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고 정원은 주인을 닮아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성수기에 집 한 채(방2칸)를 빌리는 데 15만원정도 지불했으니, 인심이 좋다. 아이들은 옷을 갈아 입자마자 계곡으로 뛰어들더니 '가재다' 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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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물이 맑다고 하지만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보기는 처음이다. 바위를 뒤졌더나 정말 그 가재였다. 아이들은 가재를 가지고 놀다가 방생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초승달이 대흥사 계곡에 안길 때, 해남에서 소리꾼 두 분이 찾아왔다. 이병채(소리) 선생님과 박필수(고수) 선생님은 경상도에서 온 악동들을 위해 짬을 내주었다. 풀벌레 소리와 계곡물 소리가 적절하게 어둠을 적실 때, 이병채 선생님의 소리가 대흥사 계곡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소리에 별 반응이 없다가,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가 싶더니 보슬비가 내리고, 소나기가 내리는가 싶더니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처럼 변화무쌍한 선생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큰 아이들은 얼쑤 하면서 장단을 넣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병채 선생님의 단가,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들고서 진도아리랑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산과 초의선사 그리고 민주주의 나무

다음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그늘을 따라서 대흥사 길을 산책했다. 새벽 운동이 익숙한 악동들은 대흥사를 지나서 일지암(一枝庵을)까지 축지법을 쓰듯 한달음에 올랐다. 일지암은 정약용과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유학과 불교를 교류했던 곳이다.
 

일지암에 앞 뜰에 앉아서 일출을 보는 악동. 제법 폼이 그럴 듯 하다.

 
초의선사는 다산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초의선사는 다산을 따라서 주역을 배웠는데 제자들은 그런 초의선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초의선사는 차 속에 부처의 진리가 있다고 했을 정도로 차는 물론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면서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열려있는 승려였다.  

다산 역시 조선의 닫힌 주자학을 비판하고 실학의 세계로 나아갔다. 다신의 진보적인 실천학문의 바탕에는 중국을 천하로 받드는 화이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각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신이 깔려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어쩜 자연스러운 지도 모른다. 

다산과 초의선사가 교류했던 일지암


대흥사에서 일지암까지, 아침부터 조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성가실 법한데 지나가는 스님들이 나무라지 않는다. 아이들이 인사에 합장도 해주고 어디서 왔냐고 물으며 길을 일러주신다. 

전라도에 있는 절 치고는 대흥사는 제법 규모도 있지만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와 있듯 포근하다. 마치 맏며느리감 같다. 아침햇살은 그 며느리의 미소처럼 따사롭고 만난 스님들도 그렇다. 백성에 의한 군주, 군주를 통한 정치. 그 중에서도 백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정약용의 이미지가 교차된다. 그를 맞이했을 초의선사의 미소가 컷 인 한다.

다산은 '아래부터 위로', 백성은 하늘의 아들이고 주군이라는 당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사상은 주자학에 바탕을 두고 엄격한 신분질서를 강조하던 노론 세력과는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다산의 정치철학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정치사상의 씨앗이다. 씨앗은 200년이 지나서야 두 그루의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씨앗을 땅에 뿌리고 자연으로 갔다. 나무를 가꾸는 일은 자연의 몫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약용은 천자를 하늘이 선택하기도 하지만, 백성이 천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 논리를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운동에 지친 아이들을 내려보내고 절간을 이리 저리 구경하다가 대웅전에 마련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나무에 분향을 했다.


대웅전 섬돌을 내려오다가 오른쪽에 심어진 청아하게 생긴 단풍나무를 보았다. 문득 민주주의 나무라고 부르고 싶다. 여름 내내 하늘(백성)의 기운을 잔뜩 받아 푸르게 무럭무럭 자라다가, 가을에는 제 몸을 사르며 붉은 빛으로 땅으로 돌아가는 이 나무는 내가 아는 두 나무와 닮았다. 

민주주의가 붉든 푸르든 그 무슨 상관이람. 여름이면 푸르고 가을이면 붉다. 그게 이치다. 운명인것처럼. 붉은 가을에 대흥사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싶다. 대흥사의 깊어가는 하늘처럼 다산 정약용과 두 나무의 사상을 배워서 내 자람의 깊이를 가늠하고 싶다. 

대흥사 대웅보전 앞 단풍나무. 나무이름이 참 예뻤는데 기억이 안난다.



씁쓸한 다산초당에서 

일지암을 갔다 왔으니 다산초당(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들렀다. 아이들과 어렵게 산을 올랐는데 초당이 와당으로 변해있는 게 영 실망스럽고 씁쓸하다. 다산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보면 '유배 온 줄 알았는데 호강하며 글이나 썼겠네' 하고 말할 것 같다.

깔끔한 현대식 기와집으로 복원된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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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왼쪽 초가집이 다산초당이고 오른쪽이 동암이다.


더욱 웃긴 건 다산초당에 다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그 안에서 차 체험을 하고 있다. 한 잔 마시면서 한복을 입은 안내요원과 이야기 하는 데 아깝지 않은 돈(천원)이지만, 다산이 기와집에서 풍류를 즐길 여유가 있었을까?

퀴즈 : 다산의 목민심서는 기와집에서 완성되었을까요? 아니면 초가집에서 완성되었을까요? 초당의 초는 한자로 超일까요? 아니면 草일까요? 

초호화판으로 바뀐 다산초당에서 풀을 뜯어 먹고 난 기분이랄까? 다산이 상품이 될 것 같으니까 여기저기서 우려먹는데 아무리 좋은 차도 계속 우려먹으면 쓰다는 사실을 모를까? 더 씁쓸한 건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최고 관료가 이곳을 왔다 갔다고 한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다산이 초당을 떠나기 전에 썼던 글은 바위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글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당히 획이 곧고 날카롭다. 썩어 빠진 관료들을 향해 거침없이 일침을 놓았던 그 나무의 가지와 닮았다. 

다산초당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동암(송풍루) 역시 기와집으로 복원되어 있다. 퀴즈를 갈무리 하자면 다산은 지인이 마련해준 작은 초가집 동암에서 2천여권의 책을 읽으면서 목민심서를 완성했다.  

다산은 글을 쓰다가 울쩍한 날에는 백련사에 올랐다. 내가 아는 이는 봉화산 정토원이라는 곳을 자주 갔지 아마. 백련사를 오르는 길에서 멀리 강진 바다가 보인다. 다산이 그의 형(정약전)이 유배된 흑산도를 보며 그리움에 사무쳤던 곳이다. 물론 정자는 실제 존재 하지 않았던 곳이다. 
 

동암 옆 정자. 형제의 정이란 건 피를 나누지 않아도 버금간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분신을 잃은 것 같다며 전생에 형제가 아니었을까 했을 정도로 슬퍼했다. 지역감정을 넘어서려고 했던 두 형제의 이야기가 서둘러 갈무리 된 것이 아쉽다



 


서편제와 동편제, 우리소리 경연대회


여행 마지막 숙박지는 보성군에 있는 제암산자연휴양림. 나루호가 발사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보성군서편제보존회 회장님으로부터 판소리에 대한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웠다.

섬진강 동쪽 지방(곡석, 구례, 남원)은 동편제, 서쪽은 서편제(보성, 진도, 순천)로 나눈다고 한다. 동편제는 꾸밈이 적고 맺음이 분명하고 힘이 있다고 보면, 서편제는 애절한 가락이 많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직접 서편제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여행 기간동안 동행한 홍순연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소리를 배웠기 때문에 이제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볼 차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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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이들은 제암산자연휴양림에서 혹독한(?) 판소리 수련을 했다.


우리소리 경연대회는 3명이 1조가 되어서 판소리 춘향가의 한대목인 '사랑가'를 부르는 것. 총 6개 팀이 출전하였고 합천자연학교의 막내둥이 바우가 낀 모둠이 일등을 차지했다. 바우조는 그 상으로 설겆이를 면할 수 있었다.

                 

3박4일, 마지막날 벌교에 들러서 꼬막정식을 먹고 태백산맥 문학관에 들렀다. 기행 기간 동안 기념관의 작태를 보아온 지라 그곳도 그럴까 싶어서 손사래를 쳤는데 다행히 작가의 정신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었다.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아이들에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추상적인 문구가 시각적으로 실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학이 어떻게 삶과 소통할 수 있는지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층 전시물을 둘러보다가 아이들이 몰려간 곳은 2층 도서관이었다. 그곳에 태백산맥(만화)을 판타지처럼 읽고 있는 아이들을 눈망울을 보면서, 문학이 재현이 아닌 실현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짧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이제사 블로그에 올릴 수 있어서 무거운 짐 하나는 든 것 같다.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가득 안고서 블로그에 재현해 놓은 듯한 이 야릇한 기분을 접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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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 있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작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원고지에 한 문장이라도 써 보는 체험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옳고 그르든, 서툴든 세련되든 그게 자신이 원하는 바람 혹은 타인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는 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오며 가며 다녔던 곳과 맛집

해남의 별미 <토종닭 코스 요리>

아이들과 단체로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대흥사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한적한 들판에 있는 고수골가든이라는 곳이었다. 간판이 없어서 네비게이션이 아니었다면 찾기 힘들다. 해남 갈비찜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소문난 곳에 먹을 것 없다고 해남에 사는 지인이 소개를 해준 곳이다.
닭을 회로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비릿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기보다 고소하다. 토종닭 1마리를 4가지 코스요리로 맛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닭똥집 비슷한 부위가 육회로 나온다. 다음으로 닭육회, 무엇보다 닭불고기는 닭갈비보다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백숙과 죽이 나오는데, 백숙은 앞 코스에서 살점을 다 내어준 지라 뼈만 있지만 쫀득했다.
이름 : 고수골 가든
위치 :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골프장, 윤선도 유적지 방향)
전화 : 061-536-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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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케이블카

대흥사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두륜산(703m)을 오를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진도는 물론 제도도까지 볼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들이 온통 참나무과 활엽수들이다. 지구 온난화의 이유도 있겠지만 200년 전 정약용과 정약전이 예견한 조정의 송림정책을 비판한 대목을 참고해도 좋을 듯 하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책에서 몇 구절 인용한다.   

백성들이 나무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편안한 길이 나무가 없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인 소유의 산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없게 되었다. - 정약전 <송정사의>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재발췌

생각건대 살림을 사사로이 기르는 까닭은 그것을 사사로이 사용하고자 함이다. 그 벌채를 금하기를 봉산(나라에서 사용하기 위해 벌채를 금한 산)과 같이 한다면 어느 누가 산림을 가꾸겠는가. 날마다 매질하면서 산을 가꾸라고 요구해도 오히려 가꾸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닷가의 모든 산이 벌거숭이 아닌 게 없고 오직 귀족들의 분묘에만 어느 정도 나무가 자랄 분이다. <목민심서> 공전 산림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재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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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아이들이 노무현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배우기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한 5월23일,
부산의 한 복지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블로그 미디어교육을 평가하기 위해 갔는데 거기서 두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2명이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컴퓨터를 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들었냐? 죽었대
"
"
누가
?"
"
노무현 말야
"
"
아 대통령... 관심없어
"
"
, 나도
..."

일이 끝나면 바로 봉하마을로 달려가려고 했던 나는 가슴이 철컥 하고 내려 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흘러가는 말이었지만, 한편으로 꿀밤을 주면서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교사의 몫으로 남겨뒀다.

이 아이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존재일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우리 아이들 관심 밖인 것 같다. 지역이 부산이다 보니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얘기는 못 들은 듯 하다


부산의 대안학교의 게시판에 "우리를 보고 큰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적힌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02년 530,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부산의 대안학교를 방문해서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관심’은 애정이고 사랑이다는 이야기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안학교 청소년들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들은 “우리는 다르다”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보통을 얘기한다. ‘다르다’고 생각했으면, 보통 누구라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

(중략)

"노력이라든지, 극복이라든지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을 억누르는 경우도 많다. 그것을 바꿔 생각해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꼭 잊지 말고 해보라고 하는 것은 「관심」과 「호기심」, 「애정」을 가지라는 것이다.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서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난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기가 공부할 때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 것도 일종의 관심이다. 관심 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것이 아무 일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중략) 자신을 위한 관심에서 우리를 위한 관심이다.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다. "

 아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져달라고 이야기하거나 교육하는 일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이들에게 정치, 민주주의는 무척 어렵고도 따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은 살아있는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사라져 무척 안타깝다.

우리 아이들에게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연설문이 기억난다. 어떻게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무엇을 바꾸려면) 오랜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그러나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들도 모두 노력해서 바뀌게 해야 한다. 바뀌더라도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고 천천히 바뀌게 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며 방명록에 가장 소중한 것은 관심입니다라는 글을 직접 남겼다.

시간이 흐른 뒤, 봉하마을을 찾아오는 우리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쉽게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른들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몸을 던졌던 한 사람 '인간 노무현'을 기억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려면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대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 아이들이 관심과 호기심을 끌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어야 한다는 것.

원문보기(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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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적벽대전이 개봉되었다.
같은 날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 있는 자연학교에 갔다.
삼산골 아이들 미디어교육 시사회가 있는 날,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레프팅을 한다기에 카메라를 들고 따라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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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골은 합천댐 옆에 있는 낮은 세 산이 모여 있다고 해서 불려진 지명이다.
그 가운데 합천자연학교가 있다.
레프팅은 합천테마파크 아래 3km지점에서 시작한다.
어릴 때 읽은 삼국지를 생각하며 꾸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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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굴산에 사는 조조는 노래도 잘 부르고 씩씩하기도 합니다.
약견산과 금성산에 사는 친구들과 작은 다툼이 있어 한판 붙기로 합니다.
2:1이지만 조조는 그동안 세를 불려서 아주 센 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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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다시 친구들과 강가를 뛰어다니며 놀고 싶습니다.
정치란 그런가 봅니다.
조직을 유지하려면 아우성치는 동생들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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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삼산골 아이들이 패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댐이 생기고 물이 깊어지자 서로 만날 기회가 적어져
따로 놀면서 소통이 단절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수몰된 곳에 강은 강원도 아우라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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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 유비 아이들이 배를 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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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출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차, 제이름은 순욱입니다.
그러니까 악견산 손권의 책사입니다.
조조가 악견산 아해들을 무시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소문은 소문이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형과 누나들이 '모르면 가만있으라'고 해서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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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적었지만 금성산 유비 아해들의 용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등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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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견산 손권 아해들은... 뭐랄까, 주유를 빼고는 다들 싸움을 싫어하는 것 같았어요.
옛날에 허굴산에 놀러 가면 맛있는 딸기와 밤을 그냥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 조조의 아해들이 딴지를 걸어서 좀 미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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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이 많은 마초, 책략가 제갈량,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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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전입니다.
보조댐 아래에서 배를 띄웠습니다.
긴장도 되지만 왠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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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 관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운, 그리고 황충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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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비 언니는 고민이 많네요.
사실 옛날에 조조와 둘도 없는 단짝이거든요.
다른 동네 친구들이 삼산골 아해들을 괴롭힐 때는 두 사람이 뭉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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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태어나던 날, 조조 언니와 유비 언니가 댐을 만드는 일에 생각이 달라서 심하게 다투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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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진 유비 언니는 다시는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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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언니는 아해들과 물 맑은 다른 계곡을 찾아 떠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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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조조는 다시 화해하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유비 언니는 사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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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곁에는 합천읍에서 이사온 제갈량이라는 언니가 있었어요. 유비 언니가 그 언니를 데려오려고 무진장 애를 썼어요.  제갈량 언니는 악견산 손권 언니를 만나 조조에 맞써 함께 싸우자고, 그래서 계곡을 다시 찾자고 얘기했대요. 손권 언니 곁에는 주유가 있었어요. 나이는 적지만 삼가면에서 똑똑하기로 유명한 오빠였어요. 제갈량 언니와 주유 오빠가 내기를 했는데 제갈량 언니가 이겼대요. 그래서 손권은 유비의 손을 들어 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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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무척 짙은 날이었어요.
물도 차갑고 안개 너머에 조조 언니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겁이 났어요.
저는 조조언니를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용감하고 힘쎄고 씩씩하고 노래도 곧잘 한다는 이야기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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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너머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네요.
조조 아해들 숨소리까지 들렸어요.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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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으로 가는 두 갈래 물줄기에서 갑자기 조조 아해들이 나타났어요.
겁이난 손권 아해들은 오른쪽으로 저희는 왼쪽으로 도망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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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요.
눈을 감았을 때 아해들이 외치는 고함소리를 막는 새 소리가 들렸어요.
저만큼 무서운 새들이 숲에서 빠져나와 퍼드덕거렸습니다.
눈을 떴을 때 새깃털보다 하얀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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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는 더욱 검었고 어찌된 일이진 아해들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붉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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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눈으로 돌아보니 두 물길이 만나는 곳에 손권의 아해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바로 뒤에 조조의 아해들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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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습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처음 듣는 말입니다.
아빠가 화를 낼 때도 저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
저는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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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다슬기들이 바위에서 미끌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다슬기를 구하려다 그만 물 속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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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었어요.
아빠는 저를 꼭 잡고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직까지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어지럽네요.
하지만 바람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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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살이를 하고 있는 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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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해봤다. 저 놀이. 고집쎈 놈이 이기는 게임. 단순한 것 같아 보이지만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하루는 꼬박 가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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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학교에서는 벌레가 날아오면 수업을 망치거나 하지만, 미디어교육 혹은 대안교육은 교육이라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손바닥으로 내려쳐서 버리지 않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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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교육은 시스템, 규칙, 발전가능성, 성과, 가시성... 지금 내가 지원하고 있는 것을 정답처럼 관철시키려고 혹은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내가 만난 삼산골 아이들에게 더 줄 수 있으면 더 주고 싶다. 공동체가 행복해지는 데 미디어교육이 수단으로 사용되더라도 작은 쓰임새가 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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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