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2.10 연화리 피정의 집에서 침묵 여행
  2. 2008.10.08 아르또와 영화 (2)
  3. 2008.04.04 BIFI 검색 Artaud 자료정리

왜관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 연화리 피정[각주:1]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침묵 속에서 딴에는 뭔가 대단한 글감을 건질 것이라는 생각, 그것도 감히 냉담자가 피정의 집을 찾은 것이다. 저녁시간이 지나서 찾아갔는데도 원장수녀님과 친구가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차를 마시다가 수녀 친구가 '위대한 침묵'을 봤냐고 묻는다. 서울의 한 예술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만 안다고 했다. 친구는 피정을 오는 신자들이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 Die Große Stille Into Great Silence>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고 했다.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고 침묵 수행을 강조하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피정의 집을 처음 온 나는 이곳 역시 수도원과 같이 엄격히 통제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피정은 친목도모, 성서탐독, 침묵 등 다양하다고 한다. 
 

오랜만에 수녀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9시경 침묵 방으로 안내 받았다. 피정을 온 신자들이 많아서 별채를 쓰게 되었다. 그곳은 외딴방으로 수녀님이나 신부님들이 간혹 주무시는 방이라고 한다. 또는 나처럼 혼자서 침묵 피정을 오는 사람들이 주로 쓴다고 한다.  

TV와 컴퓨터는 없지만 책을 읽기에는 적당한 스텐드와 아담한 침대가 있고 화장실도 딸려 있다. 스텐드 켜고 잠시 침묵에 들어 갔을 때 귀속에서 낯선 공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쟁쟁하다. 노트북을 켜고 가져왔던 몇가지 생각들을 기록하려다 침묵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피정을 온 것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침묵 피정이 되고야 말았다.     

침묵의 방에서 하루를 묵게 해주신 연화리 수녀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시는 필름 위에 기록됨으로써 파괴될 것이다" - 아르또

<위대한 침묵>을 보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침묵'에 관해서는 프랑스의 전위 예술가인 아르또(Artaud, Antonin)를 떠올릴 수 있다. 아르또는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언어가 지니고 있지 않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말이 중심이 된 연극이나 유성영화에 대해서 비판을 한다. 

아르또는 관객이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대사나 내래이션이 아닌 이미지를 통해서 서정시(詩)처럼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그 무엇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의 언어는 관객과의 소통을 오히려 방해 한다고 보았다. 헐리우드의 유성영화가 프랑스 사회를 휩쓸자 아르또는 그의 실험무대였던 영화계를 떠난다.

  1. 피정(Retreat) : 가톨릭에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인 활동을 말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아르또와 영화

Literacy 2008.10.08 19:32
 

공연학 이론 - 아르또와 영화


- 목차 -

Ⅰ. 프랑스 영화사

  1. 프랑스 영화의 탄생과 발전

  2. 유성영화와 아방가르드

Ⅱ. 아르또와 시네마

  1. 아르또의 영화적 삶

  2.

Ⅲ. 영화언어의 환멸과 부활

  1. 민족지학의 개념과 특성

  2. 민족지학의 수용자 연구

지도교수 : 박형섭
영상학 석사과정 6기 윤정일



공연에서 눈에 들어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연극의 시적 특성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이미지와 대립된다.

한편 액션의 관점에서 볼 때, 영화가 시적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필름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 영화의 이미지와 모든 실제적 삶의 욕구에 복종하는 연극의 이미지를 비교할 수 없다.1)


Ⅰ. 프랑스 영화사2) (무성 영화 시대 :  1896-1929)


1. Cinéma Français


가. 살롱에서 극장으로 (1895~1910)

뤼미에르 Lumiére 형제 : 1895년 12월28일, 파리 ‘인도살롱’에서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최초의 상업영화(뉴스릴 형태의 다큐멘터리) 상영

조르주 멜리에스 George Méliès : ‘스타 필름’ 제작사를 창설. 대표적인 실험적인 영화《달세계 여행 Le Voyage dans la lune》(1902)

“나는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을 사유할 수 없다. 움직이는 이미지는 이미지들이 나의 사유를 대체해버렸다.”

샤를 빠데 Charles Pathé : 고몽 Léon Gaimont과 함께 제작, 상영, 배급 구조 통폐합 

Lafitte 형제의 제작사 '필름 다르 Film d'Art(1908년) : 연극배우를 캐스팅하여 영화적 연기보다 예술적인 면을 고려한 연극적 연기를 도입

막스 린네 Max Linder : 찰리 채플린 Charles Chaplin에게 영감을 준 코믹 스타일

나. 오락영화에서 예술영화로(1910년대~1920)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영화의 침투로 침체, 1916~1917년 오락영화 성행

루이 푀야드 Feuillade Louis : 영화가 단지 ‘촬영되어진 연극’일 뿐이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팡토마Fantomas》(1913), 《흡혈귀들 Les Vampires》(1915-6), 《Judex》(1916) 등 작품은 뤼미에르와 멜리에스를 결합한 초현실주의, 몽환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평가

「제7예술론Club des Amis du 7e Art」3)을 선언한 리치오도 까뉴도(Ricciotto Canudo),  씨네클럽 운동을 일으킨 루이 델뤽(Louis Delluc)에 의해 영화가 공식적으로 예술로서 인정받음

다. 유성영화와 아방가르드 (1920~1930)

1920년대 후반 예술계에 허무·초현실주의가 발전함과 동시에 아방가르드(Avant-garde) 등장4)과 1927∼9년 사이에는 무성영화의 전성기5)

1927년 아벨 강스는 3개의 스크린을 사용한 시네라마 『나폴레옹(Napoleon)』상영

1930년대에는 프랑스 영화계에 사운드가 도입되면서 부터 일대 혁신6) 및 쇄락



Ⅱ. 아르또와 시네마


1. 아르또의 시네마토그라피


가. 아르또의 등장과 시대적 배경

영화를 통해서 실존의 고통을 극복하고 영화연출가나 무대장치가가 되기를 원했으나 질병과 정신적 고통, 1920년대부터 정착한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침투, 1929년 대공황으로 순수와 예술적 실험을 표방한 아방가르드 영화는 난관에 봉착

당시 프랑스 영화는 루이 델뤽은 장 엡스탱, 제르멘 뒬락이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를 이끌고 있었으며, 영화소설협회 Socie'te' des Cin'eromans의 대표인 루이 날파 Louis Nalpas(외삼촌)는 아르또에게 영화출현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대부분 단역

1935년 멕시코로 떠나기 전까지 10여년 동안 20편의 영화들에 출연하거나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제작에도 관여

나. 영화배우로서의 삶

클로드 오탕 - 라라 (Claude Autant-Lara)의 전위적인 단편영화 사회면의 기사 Fait divers》(1924년)에 ‘제2의 신사’로 영화에 첫 출연(28세)

《나폴레옹》에서 마라, 《잔다르크의 수난》에서 장 마슈 역에서 뛰어난 역할을 선보였으나 연극무대에서처럼 세련되지 못한 감정표현과 거친 대사, 과장된 연기로 주목을 받지 못함

그가 맡은 배역은 주로 사회로부터 소외 받은 사람이거나 반역자, 정신병자, 계시자 등으로 아르또의 삶과 유사한 조건

“나의 삶은 어셔의 삶과 같다.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배우이면서 언젠가 그 고통을 실현하지 않는다면 영화에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어셔처럼 그 고통을 실현했다고 생각한다. 나의 모든 글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7)


2. 폭로, 서정성, 무성 믿음

라. 폭로자로서의 영화

영화를 믿었던 짧은 시기 동안 아르또는 프랑스의 추상적 실험영화와, 헐리우드영화의 상업적 구상영화라는 두 암초를 피해야 한다고 주장8)하면서

스크린은 실제의 삶, 자아, 육체, 새로운 정신의 차원 등 모든 잠재적 요소들을 투사하고 폭로하는 힘은 영화의 가장 큰 특징. 관객은 우발적이며 동시적으로 스크린의 현상들을 받아들이면서 그 현상들에 흡입되는 것, 즉 이 내적인 본질에 이른다고 보았으며

영화를 통해 삶의 원초적 뿌리, 꿈의 논리, 시적 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했다. 그는 영화가 하나의 마술이며, 연극을 대체할 수 있는 신비한 삶의 폭로자 

"가공하지 않은,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는 추상성 속에서 어떤 뜻밖의 사실을 폭로하는 데 유리한 마술적 분위기를 지닌다. 영화를 행동의 겉모습이나 사건에 관해 얘기하도록 사용하는 것은 그 수단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포기하는 것이며, 가장 심오한 목적을 저버리는 것이며 (...) 이미 언어가 노후해서 상징의 힘을 잃고, 정신이 재현의 역할을 하는 데 지쳐 있을 때, 영화는 인간적 사유의 전환점에 도달해야 한다.“9)

마. 이미지의 서정성에 대한 신뢰

아르또를 매혹시킨 것은 영화의 이미지의 시적 서정성

정서적 연결은 관중의 감정에 즉각 반응을 불러와서 스크린 앞의 관중들은 자연스럽게 삶의 인식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묘사된 현상의 더 깊은 의미를 감지하도록 도와 주는 것들은 자유로운 상상력 → 정신을 움직이는 힘. 이러한 장면들 속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탐구자, 숭고한 정신적 가치의 창조자임을 증명

살아 있는 이미지들이 정신이 자궁 속 점막을 뚫고 새롭게 이동하는 느낌을 줄 것. 이미지들은 모든 종류의 재현의 요소와 결함하여 떨림을 줄 것. 신경의 심오한 깊이를 흔들어 무의식을 움직이게 할 것. 여기서 사유는 무의식과 만나는 기회를 얻으며

이미지는 분절언어가 지니고 있지 않은 어떤 강력한 위반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영화는 분절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환타지의 투사무의식을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는 장소. 분절언어, 그것은 오래전부터 아르또가 경멸해오던 서구문화의 실패한 도구이다.10)

바. 무성영화에 대한 비판

아르또는 유성영화를 "말의 연극", 텍스트를 암기하는 연극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

정신에 직접 말하는 비조직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를 추구. 그에게 말이 아니라 충돌과 마찰, 경련, 폭발, 반작용, 유혹의 언어가 더 절실. 그것은 육체와 감각의 원초적 역동성을 재현

영화의 언어는 하나의 기호학. 논리적 연관성, 인과율의 법칙도 없이 자유자재로 이미지의 배출을 통해 삶의 다양한 면을 복구와 해체 한다. 동시에 모든 의미작용을 벗어난 채 삶과 감각을 따로 취하고 있는 사물의 점막 속에서 부각

하지만 유성영화는 말의 기능에 의존함으로써 이미지의 자발적이고 무의식적인 시에서 솟아나는 심오한 정신성을 파괴할 우려가 있다.11)


1. 아르또의 영화적 삶

가. 아르또 영화목록표 ※ <표2>는 아르또가 출연한 영화와 감독(괄호는 배역)12)

 아드또 영화목록  BIFI 영화목록1)
 《사회면의 기사 Fait divers》, CL. Autant-Lara, 1924 (제2의 신사).

《쉬르쿠프 , Surcouf》, Luitz-Morat, 1925 (배반자 모랠). ; 뤼츠-모라가 영화소설을 연출하여 만든 영화, 루이 날파(아르또의 삼촌)는 예술감독을 맡았고 아르또는 배반자 모랠 역을 맡았다.

《그라지엘라 Graziella》, M. Vandal, 1925) (체코 Cecco).

《유랑하는 유대인 Le Juif errant》,  Luitz-Morat. 1926 (자끄 뒤피 Jacques Dupuis)

《나폴레옹 Napoléon》, Abel Gance, 1927 (마라 Marat)

《잔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Carl Dreyer, 1928 (장 마슈 Jean Massieu).

《돈 L'Argent》, Marcel L'herier, 1928 (마조 Mazaud).

《타라카노바 Tarakanova》, Raymond Bernard, 1929 (치칸 Tsigane).

《베르덩, 역사의 비전 Verdun, visions d'historie》,  Léon Poirier, 1928 : 무성영화, 1931 : 유성영화 (지성인).

《서푼짜리 오페라 L'Opéra de quat'sous》, G.-W. Pabst, 1931 (거지 견습공).

《밤의 여인, La Femme d'une nuit》, Marcel L'Herbier, 1931 (배반자 자로슬라브).

《포부르 몽마르트르 Faubourg Montmartre》, Raymond Bernard, 1931 (폴스타 Follestat).

《나무십자가 Les Croix de bois》, R. Bernard, 1932 (군인 뵈블레 Vieublé)

《새벽의 공격 Coup de fue 'a l'aube》, Serge de Poligny, 1932 (베크맨 Backman).

《마테르 돌로로사 Mater dolorosa》, Abel Gance, 1932 (가수선생 오르니 Hornis).

《자매의 동생 L'Enfant de ma soeur》, H. Wulschleger, 1932 (로슈 Loche).

《릴리옹 Liliom》, Fritz Lang, 1934 (경비원-칼가는 사람).

《르 쥬아브 샤비슈 Le Zouave Chabichou》, H. Wulschleger, 1934 (아델-카델 Abdel - Kader)

《뤼크레스 보르지아 Lucre'ce Borgia 》, Abel Gangce, 1935 (사보나롤 Savonarole).

《쾌니히마르크 Koenigsmark》, Maurice Tourneur, 1935 (시뤼스 베크 Cyrus Beck)

  Fait divers - 1923

Surcouf - 1924

Graziella - 1926

Napoléon Bonaparte - 1935

Napoléon vu par Abel Gance - 1925

Argent (L') - 1928

coquille et le clergyman (La) - 1927

Coup de feu à l'aube - 1932

Croix de bois (Les) - 1931

enfant de ma soeur (L') - 1932

Faubourg-Montmartre - 1930

Femme d'une nuit (La) - 1930

Juif errant (Le) - 1926

Koenigsmark - 1935

Liliom - 1933

Lucrèce Borgia - 1935

Mater Dolorosa - 1932

Mathusalem ou l'éternel bourgeois - 1926

Opéra de quat'sous (L') - 1930

Passion de Jeanne d'Arc (La) - 1927

Sidonie Panache - 1934

Tarakanova - 1929

Verdun, souvenirs d'histoire - 1931

Verdun, visions d'histoire - 1928

나. 《조개껍질과 목사 La Coguille et Clergyman》(1928)

Titre original : La coquille et le clergyman

Année de production : 1927

Réalisateur(s) : Germaine Dulac

Pays de production : France

제르멘 뒬락 Germaine Dulac

루이 뒬락 Marcel L'Herbier, 장 엡스탕 Jean Epstein, 아벨 강스 Abel Gance와 함께 아방가르드 영화의 선두주자. 뒬락은 심리학적인 분위기를 창출하는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작품중 《흥분 Fievre》(1921)과 《홍수 L'Inondation》(1924)

Plot

첫 장면은 조개껍질을 이용해서 어떤 액체를 다른 그릇에 옮기는 목사의 이미지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의 뒤에서 어떤 장교가 칼을 뽑아 들고 으스대며 내리친다. 목사는 조개껍질로 옮겨 담은 액체가 들어있는 플라스크 병을 깨뜨린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가 성관계를 갖는 장면 새로운 모체를 찾아 재탄생을 시도하는 듯, 새로운 존재,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기 위해 처녀막을 갈기갈기 찢는 것처럼) 그 다음의 에피소드들은 아버지의 형상과 대립하거나 갈등하고, 자기의 어머니이자 부인인 여자와 싸움하는 다양한 단계들이 묘사된다.

영화가 끝날 무렵 처녀막이 리듬에 맞추어 박동하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근친상간의 욕망과 꿈이 뒤섞인 채, 그것이 실현될 단계에 도달한다.  집과 풍경, 도시들이 서로 얽혔다가 풀어지고, 믿을 수 없는 천상의 함수호가 창공에서 만들어지는 등 몽환적인 이미지들이 액체에 실려서 밀물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융합은 실패로 돌아간다. 여인의 가슴을 덮고 있는 조개껍질 속에서 자궁의 점막이 서서히 굳어 가기 때문이다. 조개껍질은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새디즘적 충동을 각성시키는 불모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그 위에 목사의 머리가 높인 조개껍질이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가 입술을 조개껍질에 대자 머리는 자신이 눈을 감고 빨아들인 검은 액체로 변해버린다.”2)


아르또는 시나리오《18초》, 《조개껍질과 목사》, 《푸주한의 반항》 에로티시즘, 잔혹성, 사악한 행위, 근친상관, 신화 등의 주제의식을 다뤘는데 유일하게 영화화 된 것은 《조개껍질과 목사》이다. 이 작품은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외디푸스 신화의 주제로 목사의 아들은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엄마를 차지하며, 신화적 차원에서 읽으면, 자궁 속의 점막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 즉 새로운 탄생을 알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변신과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이르또는 이 영화에서 초현실주의의 그룹이 중시한 시적 이미지정신의 이미지, 꿈의 이미지, 시간과 회화적 이미지 등 모든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러나 영화는 실패

제르멘 뒬락은 아방가르드 영화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 감독지만 아르또는 그녀의 상투적인 영화 테크닉과 문법(스크린에서 살아있는 활기와 유머를 찾아볼 수 없었음)에 불만

아르또는《조가비와 목사》의 서문 '영화와 현실 Cinema et realite'에서 당시의 두가지 영화 형태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는데

1) 심리적이면서 서술적 형태를 띤 절충식 영화(그것은 연극의 테마와 테크닉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것에 그침으로서 불만족), 2) 추상예술로 간주된 순수하고 절대적인 영화(이것은 마치 일부의 화가들이 스크린을 그림의 연장으로 간주할 정도로 선과 색의 조형성에 치중)13)

제르멘느 뒬락의 영화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추상영화는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일치하면서, 혹은 이미지들 간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이미지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시각적 영화

정지된 쇼트에 의해 진행되고, 몇 개의 부감과 디졸브, 앞쪽 혹은 뒤쪽으로의 트래블랭과 각기 단 하나의 앙각 쇼트, 파노라마, 그리고 느린 화면 등 영화적 기법의 화려함은, 이 영화를 처음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섰던 아르토가 영화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는 이유였다.

이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는 아들이 자동분만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개껍질은 모체이며, 그 곳에서 그는 깊이 묵상하고 있다. 그러면서 탄생하지 못한 육체를 흡수하여 그 자신 새로운 육체로 거듭난다. 우리는 스크린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이미지와 형태가 진동하는 것을 본다.14)

영화의 본질은 이미지들보다 그것들을 통합하는 리듬과 그것들을 엮어내는 서정적 논리 속에 있다. 즉 꿈의 논리. 이 점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르또는 자신이 목사의 배역을 맡으리라 예상했으나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함

연출가 제르멘 뒬락의 생각은 아르또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녀의 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능하면 몽환적 이미지를 구체적 이미지로 대체

아르또는 이 영화가 어두운 정신의 진실을 폭로하는 데 미흡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의 특별함은 그것이 “사유의 은밀한 탄생”으로서의 진동. 이것은 “실제로 꿈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꿈의 장치와 닮을 수도 있고 그것과 결별할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이 “사유의 순수한 작업”15)

아르또는 비르모 Virmaux의 《초현실주의자들과 영화 Les surréalistes et le cinéma》를 분석하면서 이 영화야말로 최초의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그리고 뷔뉘엘 Bunuel과 콕토 Cocteau는 단지 꿈의 자의성에 만족하고 있다고 비난. 마찬가지로《조가비와 성직자》를 단순한 꿈의 의미로 이끌어 냈다고 비난한다.

가. 《Napoléon Boneparte》(1928)

Movie Type : Historical Epic, Biography

   Themes : Great Battles, Rise To Power, Crowned Heads

   Director : Abel Gance

   Main Cast: Albert Dieudonné, Abel Gance, Edmond van Daele,
      Gina Manès, Annabella, Antonin Artaud, Pierre Batcheff, Alexandre Koubitzky

   Release Year: 1927

   Country: FR

   Run Time: 235 minutes3)

아벨강스 Abel Gance

파리에서 태어난 아벨 강스는 1920년대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감독으로 《나폴레옹 Napoleon》(1927)을 통해 영화를 ‘제7예술의 경지’로까지 이끌었다.4) 강스는 25년 후의 시네라마보다 앞서는 폴리비전이라 불리는 세부분으로 연결된 스크린 프로세스를 처음 도입하였는데, 무성영화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듯한 이 스펙터클한 구성은 미국의 D. W. 그리피스 영감을 주었다.5) 그의 미완성 작품 나폴레옹은 프랑스 영화사에서 가장 야망작이라 할 수 있다. 강스 자신에 의해 부분적으로 삭제되고, 음향이 지나치게 남용되고, 시네클럽에서 이미 사용된 16미리 인화에서 촬영된 판만을 보았던 2세대의 영화 애호가들은 1982년 5시간 13분 분량으로 복원된 복사판을 볼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뛰어나고 자극적이고, 가끔 과장되고, 과대망상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프랑스 영화들 가운데 유일하게 표현의 힘을 지닌 영화이었다

Plot

1927년에 발표한 이 영화는 나폴레옹의 젊은 시절과 그의 성공과정을 다루고 있다. 초보적 태도와 나폴레옹에 대한 광적인 숭배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영화예술의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평가 받는데, 감독은 생 쥐스트, 아르또는 마라로 출연했다.



강스는 선언?에서
영화는 눈으로 들을 것이며 명석한 작시법에 의해 영화는 새와 바람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을 보게 될 것과, 예술적 가치들의 요란하고 격렬한 전복, 전보다 더욱더 광대한 꿈이 돌연히 화려한 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보았다. 온갖 심리 묘사를 마음껏 수정하기 위해 인쇄술뿐만 아니라 ‘꿈의 공장’, 화학수, 염료가 있다. 영상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힘을, 우리의 열정을 영상에 바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약점 혹은 절망스러운 멜랑콜리가 있다. 우리는 오로지 힘을 간파하기 위해 우리의 약점이나 멜랑콜리를 가능한 한 솔직히 드러내지 않겠지만, 예리한 시선들은 절망과 멜랑콜리 뒤편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우리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가 왔다! 16)

강스는 영화란 충격을 줄 수 있고 또한 이 충격을 대중과 민중에게 부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영화가 다른 모든 예술이 겪은 모호성들과 마주칠 것임을, 그리고 이미 마주치고 있다는 것을, 실험주의적인 추상화와 ‘형식주의적인 어리석은 짓’, 그리고 상업적인 이미지와 섹스, 피로 뒤덮일 것임을 예감17)

강스는 은유적 몽타주를 주장하고 나선다. 나폴레옹에서 국민의회와 폭풍우의 장면, 돈에서의 증권거래소와 하늘의 장면 등이 그러하다. 강스의 영화에서 지각의 가능성을 넘어서는 이중인화의 테크닉은 이미지의 배음들을 구성하는 데 사용된다.18) 


 


《The Passion of Joan of Arc》(1927)

당시 아르또의 야망과 포부는 대단했다. 연극과 영화의 비평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 열정으로 뒬락과 드레이어의 영화에 동시에 출연한다.19)

장 꼭도는 《잔다르크의 수난》을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의 역사적 기록처럼 보인다"고 말할 정도로 전략적이고 급진적인 형식의 실험이며, 내러티브 논리와 영화적 공간 사이의 고전적인 관계를 전복하는 걸작이라 평가한다. 그러나 개봉되자마자 비평가들에게 비영화적이며 연극적이라고 비난받았고, 스펙타클을 기대한 관객들은 고개를 돌렸다.

아르또는 사유의 무능력이란 사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결국 우리는 전능한 하나의 사유를 재건하려 하지 않고 이 무능력을 우리의 사유방식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삶을 믿기 위하여 이 무능력을 사용해야 하고 사유와 삶의 동일성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해 사유한다. 내가 건립할 모든 체계는 삶을 새로이 만들고자 하는 나의 인간으로서의 외침에 결코 필적하지 못할 것이다..”

아르또는 드레이어와 어떤 친화성이라면 이성이 ‘다시 회복’ 될 수도 있었을 아르또-그러나 항상 부조리를 통해였을-, 이것이 드레이어이다.

베로니크 타갱은 "드레이어는 역할의 내적 체험이 외부적으로 표명되는 것은 것을 억제한다. 인문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신체적 감정에서조차 우리는 현기증도 절정도 목도할 수 없다. 일격을 받은 인물은 그것을 고발함이 없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다. 즉 자신의 견고함을 성 정신적 자동기계가 그의 말기 작품들을 만들어냈는 지 이야기한다. 20)


 Genre: Historical Film

Movie Type: Hagiography, Biography

Themes: Tortured Genius, Heroic Mission, Message From God

Director: Carl Theodor Dreyer (덴마크)

Main Cast: Renée Maria Falconetti, Eugène Silvain, Antonin Artaud, Ravet, Maurice Schutz, André Berley

Release Year: 1928

Country: FR

Run Time: 114 minutes

드레이어 (1889. 2. 3 ~ 1968. 3. 20 )

1912년 덴마크의 노르디스크 영화사에서 자막을 쓰는 작업으로 영화일을 시작한 칼 드레이어는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1919년 《의장》으로 감독 데뷔한 뒤 ,《잔다르크의 수난》으로 명성을 날린다. 《흡혈귀》(1932), 《분노의 날》(1943), 《말씀》(1954), 《19제투르뒤》(1964)로 이어지는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디테일에 대한 고집과 제작의 모든 면에 완벽한 통제권을 행사하고야 마는 작업방식 때문에 《잔다르크의 수난》세트에 막대한 공이 들어갔다. 실제로 성이 지어졌고, 엑스트라들에게는 고증에 입각한 옷이 입혀졌다. 이를 디자인한 헤르만 바름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세트를 당담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거물이었다. 그러나 감독은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자한 성의 전경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고 인물의 클로즈 업에 의존해 영화 전체를 끌고간다. 잔다르크가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 배역이었던 배우 르네 팔코네티는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적대적인 세계와 싸우는 한 여성의 고통과 비극을 클로즈업 기법과 고도의 단순미를 살려 만든 무성영화이다. 1932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독특한 공포영화 《흡혈귀》를 발표하였다. 종교영화로 평가받는 《오데트》(1955)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금사자상을 받으며 최대의 성공작이 되었다.6) 그의 작품들은 편집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한 복잡한 카메라 움직임, 오래 지속되는 광각촬영을 통해 회화적 화면을 완성해내는 뛰어난 촬영, 표현주의적인 세부, 그리고 급진적인 내러티브 공간의 구축으로 특징. 종교적 주제를 단순하고 엄격하면서도 파격적인 스타일로 그려내었던 드레이어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루이스 부뉴엘,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영화 역사의 외곽에서 근본적이고 초자연적인 주제에 일관된 관심을 보였던 '첫번째' 작가. 일련의 이미지의 연속에 대해 어떤 전능함 혹은 아주 강력한 역량을 갖는, 환기하고 설명하며 지식을 갖춘 목소리,  음향이 시각이미지와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으면서 반비례되는 효과7)

그러나 드레이어의 예술적인 '완전주의'는 평생 그에게 제한된 제작비와 대중들의 무관심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수난받았던 잔다르크처럼, 마치 '마녀'처럼, 영화역사의 외곽에서 숨어서 작업했고, 그의 모든 작품들은 사후에야 차례로 복권

Plot

영혼의 고통과 구원에 대한 '초월적' 영상의 무성영화. 끊임없이 삽입되는 긴 자막과 독백과 대화가 화면에 표시되지만 배우들은 그것들에 의도적인 입맞춤을 하지 않는다. 잔 다르크의 재판과 처형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을 영화화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감정과 고뇌 자체에 대한 묘사에 충실한 영화.

아무런 분장도 하지 않은 그녀의 얼굴이 커다랗게 클로즈 업 될 때 드러나는 표정은 감동적이며, 순백에 배경에 대응하며 빈번하게 사용되는 극단적인 클로즈 업은 심리적 리얼리즘을 고양시킨다. 드레이어는 미셀 시몽, 앙또넹 아르또, 위렌느 실벵 같은 유명인사를 배우로 기용하기도 했다. 메이크 업을 금지한 것은 드레이어와 촬영감독 루돌프 마떼였다. 콘트라스트가 약한 판크로마틱 스톡을 선택한 마떼의 촬영은 우주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줄 만큼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허세에 대한 경멸, 부르주아의 체면에 대한 증오, 고난과 순교에 대한 집착으로 영화 속에 수난받는 여성들을 등장시킨다. 주인공은 고난과 사악함, 죽음과 고통을 겪으며 패배하지만 언제나 영혼이 승리하리라는 낙관적인 확신으로 끝맺는다. 날카로운 직관과 객관을 통해 심리학적 사실주의 방법으로 신화와 전설의 세계를 영화로 만들어 무성영화시대 마지막 작가로 평가받는다. 원판으로 개봉되지 못하고 검열판으로 극장에 올려진 영화 <잔다르크의 수난>은 그나마 개봉되자마자 민족주의자들의 거부 반응에 부딪혀야 했다. 프랑스의 '성녀'인 잔다르크를 덴마크인인 칼 드레이어가 찍었다는 데서 오는 거부감이었다.


Ⅲ. 영화 언어의 환멸


1. 영화언어의 환멸

가. 폭로되지 못한 이미지

아주 짧은 순간, 아르토는 영화를 ‘믿었고’, 에이젠슈테인이나 강스의 선언과 동일하게 보일 수 있는 선언들,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사유 등에 대해 되풀이 얘기했다. 그러나 곧 그는 이 모든 것을 단념하고 만다. “무수한 망막의 그물 속에 끈끈이처럼 달라붙은 이미지들의 어리석은 세계는 우리가 그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가능한 이미지를 결코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詩는 단지 가능한 시, 존재할 수도 있었을 시일 뿐이며,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은 결코 영화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21)

아르또는 스크린에서 자신의 숨겨진 모든 것이 폭로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영화적 테크닉의 결함에 의해 여지없이 왜곡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배우로서 필연적으로 요구되어지는 타협(상업적, 창의성, 육체의 전신 감각의 표현) 때문에 아르또는 자아의 배우, 즉 배우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어서 영화를 포기22)

나. 영화언어의 환멸

시나리오 작가나 영화감독이 영화 밖에 있는 미학과 주제들을 위해서 영화적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즉 영화의 언어로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기 위해 영화의 언어를 이용

심리학은 독창적이고 심오한 행동의 야만성을 밝히기 위해 부차적으로 이용될 뿐. 영화, 연극, 회화에 대한 아르또의 생각은 언제나 동일했다. 그는 각 예술의 고유한 표현방식을 엄격히 고수할 것을 요구했고 영화는 무엇보다도 시각적인 상황을 탐구해야 하는 것이며, 영화는 오직 시각적으로 번역된 텍스트일 뿐이다.

다. 몽타주에 대한 환멸

아르또가 보기에 카메라는 리비도, 삶, 잔혹하게 절단하는 해부도를 포착하는 도구이다. 모든 언어, 모든 글쓰기처럼 영화의 그것들도 실제로는 분절과 결렬과 거세를 거치면서 진행된다. 카메라의 눈은 관찰하려는 충동처럼 육체를 유령의 오브제로 드러낸다. 리비도를 파편화, 세분화된 충동으로 축소시키고 만다. 영화는 우리를 오브제의 삶으로 이끌고 갈 뿐이다.

결국 몽타주를 통한 절단된 장면들의 인위적인 조작, 현실의 공허함을 확인하도록 할 뿐이다. 그 모든 것들은 유령의 겉모습에 불과하다. 아르또는 “영화가 너무 빨리 낡아버렸다”고 탄식하면서 이 예술에 걸었던 모든 희망을 포기했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사진으로 찍힌 오브제들이 기적적으로 스크린에서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리는 감히 그것들이 창조하기에 이르는 겉모습 속의 구멍이나 허무의 형상으로 생각할 수 없다. 내가 하는 말은 영화의 형상이 결정적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이미지를 제시하기에 앞서 선별과 선택을 허용하면, 그것은 변화하고 스스로를 뛰어넘는 이미지들의 행동을 가로막을 것이다. ... 영화의 세계는 죽은 세계, 환각적이고, 토막난 세계다. 영화는 사물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지도 않고, 그들의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하지도 않으며, 표피만을 붙잡도록 하는 형태들에 불과하다. 또한 매우 제한적인 시각적 앵글들의 조합일 뿐이다.”23)

인용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르또의 주장이 역설적으로 들린다. 즉 영화가 구체적 이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의 영역을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즉 구멍과 허무의 영역까지도 이미지가 침범함으로써 사유의 여지를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세상의 모습을 선별하고, 사물들의 잔류물을 필터링하기 때문에 오히려 빈 공간을 만들어낼 소지가 있다. 여기에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둔 상상의 공간이 있는 것이다. 카메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철저하게 함축된 것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제시된 이미지들이 작가의 의식을 관통한 렌즈가 삶을 분류하고 융합시킨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시는 필름 위에 기록됨으로써 파괴될 것이다.

영화적 글쓰기 역시 아르또가 모든 형태의 글쓰기에 부과한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스크린 위에는 현실의 진동하는 점막이 유입될 수 없다. 영화는 층층응고된 사문화된 비전만을 제공한다. 닫혀있는 세계인 것이다. 사실 사진과 같은 환상의 기술은 시각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르또가 보기에 그것은 영원한 시각적 울림을 위한 마술, 동시적이고 무의식적인 시를 창조하는 데 역부족이다. 더구나 말하는 영화는 명확한 이미지의 창조는커녕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영상의 시는 말에 의한 설명이 최소화되었을 때 더욱 넓은 공간을 차지할 것이다.


2. 시나리오


시나리오는 영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야기를 극화시키는 시각 매체이다. 따라서 영화적 글쓰기는 시나리오와 함께 시작된다. 이러한 두 성향, 즉 이미지와 글 사이의 거리는 양쪽으로부터 소외될 위험성이 있다. 문자에 의한 이미지의 소외, 즉 문학 텍스트에 의한 시네마의 소외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문학작품을 조잡한 각색으로 재생한 시나리오는 본래의 시적, 시각적 잠재성을 배반할 우려가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이중의 위험을 피하려면 의미를 생략한 채 이미지를 전개시키거나 논리와 심리적인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은 영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미지의 여기저기에 구멍을 뚫어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투사의 힘과 사물의 연결만으로도 의미를 포착하게 하는 강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꿈이 시나리오의 모델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은 꿈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몽환적 문학을 기초로한 시나리오는 의식의 논리와 담론의 체계를 꿈과 무의식의 논리로 바꿔놓은 것이다. 우리에게 사물의 원시적 특성을 재발견하도록 이끄는 이 퇴행적 운동은 유머를 통해 영화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서 아르또는 채플린, 버스터 키튼, 막스 브라더스의 영화를 모델로 인용했다. “꿈으로 가득 찬 영화는 우리에게 순수한 삶의 물리적 감정을 주는데, 넘쳐나는 유머 속에서 승리감을 맛보게 한다. 사물, 형태, 표현들의 어떤 움직임은 오로지 현실의 놀라움과 떨림으로만 표현된다. 그 현실은 말단에 있는 정신이 고함지르는 것을 듣는 것 같은 아이러니와 함께 파괴되는 듯하다”(같은 책 p.20.)

Ⅳ. 사유의 부활


1. 들뢰즈


가. 영화 이미지와 사유와의 관계

들뢰즈는 영화에 의해 사유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아르또(A. Artaud)에게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24) 

아르또가 말하는 영화의 진정한 대상- 주체는 ‘무잠재력’과 ‘무능력’이다. 아르또는 사유가 유지 유일하게 우리가 아직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사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지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만드는’능력을 믿는다. 그는 전체를 사유하게 하는 능력을 믿지 않고, 그와 반대로 ‘무의 형상’ ‘외관들 안의 구멍’을 도입하는 ‘분리하는 힘’을 믿는다.

아르또에게 우리가 고전 영화에서 보았던 몽타주에 의한 전체나 이미지에 의한 내적 독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상가 안에 다른 사상가가 현존함으로써, 사유하는 나의 완전한 독백은 깨뜨려진다. 이것이 아르또가 말하는 사유의 무능력이고, 영화의 진정한 주체이다.

사유의 이러한 경험은 현대 영화와 관련을 가진다. 우리는 앞의 도표에서 현대 영화의 실제가 간극, 분절, 분산 다시 말해 균열, 틈이라는 것을 보았다. 현대 영화의 이미지는 감각- 운동으로 존재하기를 멈추고, 순수한 시각적 - 청각적 상황을 가진다. 감각- 운동의 절단에 의해 인간은 세계 안에서 참을 수 없는 어떤 것에 의해 얻어 맞고 사유 안에서 사유할 수 없는 어떤 것과 대결하는 천리안이 된다(IT 220). 감각- 운동 고리가 끊어지게 됨으로써 우리는 사유할 수 없음과 대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자동장치 는 마비된 미이라가 된다.

영화란 신경-생리학적인 떨림의 문제이며 이미지는 사유를 낳게 하는 신경의 파동, 충돌을 생산해야만 한다. “사유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던 어떤 산파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란 자신의 탄생 자체, 즉 항상 은밀하고 심오한 탄생의 반복이라는 작용 이외의 어떠한 작용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지의 대상은 사유의 작용이며 사유의 작용이야말로 또한 우리를 이미지로 이끌어가는 진정한 주체

이어서 초현실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은 유럽영화에 나타나는 ‘꿈’에 대해서,  사유의 ‘문제’에 대한 너무 쉬운 해답을 보여줘서 불충분하다고 보았음25)

무엇보다도, 자동기술이 구성의 부재가 아니라 비판적이고 의식적인 사유와 사유의 무의식, 즉 정신적 자동기계(검열 혹은 억압과 충돌의 무의식을 결합하는 꿈과는 아주 다른)를 결합하는 더 상위의 저절이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문학과 자동기술의 합치를 믿는다. 이에 덧붙여 아르또는 자신의 관점은 아주 앞선 것이어서, 추상영화와 꿈-영화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던 제르멘느 뒬락과는 관계가 그것을 증명하듯, 초현실주의자들에게조차 잘못 이해될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주제들은 아르또의 책 제3권에 개진되어 있다.

아르또의 선언과 에이젠슈테인의 선언은 첫 눈에 보아서는 전혀 대립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에서 사유에 이르기까지에는, 사유 속에서 사유를 낳도록 해야 하는 충돌 혹은 진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유에서 이미지에 이르기까지에는, 우리에게 다시 충격을 줄 수 있는, 일종의 내적독백 속에서 (꿈이라기보다는) 구현되어야만 할 형상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아르또에게는 전혀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아직 영화에 근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영화의 진정한 주체 - 대상을 정의할 수 있는 것, 즉 무능력감에 대한 확인서이다. 영화가 주장하는 것은 사유의 역량이 아닌 사유의 ‘무능력함;이며, 사유란 결코 이 이외의 다른 어떤 문제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이 존재하기 어려움, 사유의 한 중심에 자리잡은 무력감. 영화의 적들이 영화에 비난했던 것("나는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을 사유할 수 없다. 움직이는 이미지들이 나의 사유를 대체해버렸다“라고 말한 조르주 뒤아멜처럼), 바로 그것을 아르토는 영화의 어두운 영광, 그것의 깊이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실상 아르또에게는 영화가 바깥으로부터 유입해오는 단순한 억압의 문제가 아니라, 중심에 선 억압, 붕괴 그리고 내면의 화석화, 끊임없이 사유를 희생자이자 대리자로 만드는 이 ‘사유의 약탈’이 문제였다. 아르또는 영화가 옆으로 빗나가 추사와 구상 혹은 꿈만을 만들 수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을 때, 영화를 믿기를 단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본질적이로 이 사유의 한 중심에 자리잡은 사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한, 아르또는 영화를 믿을 것이다.

아르또의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검토해보자면 <32>의 흡혈귀, <백정의 항거>의 광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18초>의 자살한 사람 등과 같은 주인공은 “자신의 사유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해져서”, “단순히 이미지들, 혹은 모순적인 잉여 이미지들만이 눈앞에 지나가는 것을 볼 뿐”으로, 그의 “의식은 강탈당했다”. 정신적 혹은 심리적 자동기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생각들을 형식적으로 서로로부터 연역하는 사유의 논리적 가능성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26) 그렇다고 해서 자동기계적 이미지와 함께 회로를 구성하면서 만들어질 사유의 물리적 역량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신적 자동기계는 미라, 즉 “사유를 정의하는 사유의 불가능성”을 증언하는, 이 분해되고 마비된, 그리고 화석화되고 결빙된 심급이 되어버린 것이다. 표현주의는 이미 이 모든 것, 즉 사유의 탈취, 인격의 이중화, 최면술적 마비, 환각, 날뛰는 정신분열증 등을 친숙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다시 한번 아르또의 독창성을 오해할 여지가 있다. 더 이상 사유가 표현주의에서처럼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에서처럼) 억압, 무의식, 꿈, 성욕, 혹은 죽음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결정하는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더 상위의 ‘문제’인 것처럼 사유와 대립하고, 또는 결정할 수 없는 것, 환기할 수 없는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27) 배꼽, 혹은 미라는 사유가 부딪히게 될 환원 불가능한 꿈의 핵이 아니라, 바로 이 꿈들이 서로 부딪히고 튀어올라 부서지는 사유의 핵, ‘사유의 뒷면’이다. 표현주의가 불면에 밤의 처방을 했다면, 아르또는 꿈이 대낮의 처방을 감당하게 한다. 표현주의적 몽유병자는 <18초> 혹은 <조가비와 성직자>에서의 아르또 식의 깨어 걷는 환자에 대립한다. (331)

그러므로 표면적인 단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아르또의 기획과 에이젠슈테인의 개념화 사이에는 절대적인 대립이 존재한다. 아르또가 말했듯이 물론 뇌의 은밀한 현실과 영화를 결합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이 내밀한 현실은 전체가 아니라 오히려 틈 혹은 균열이다. 28) 영화를 믿는 한, 아르또는 전체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아닌, ‘무의 형상’, ‘외관 속의 구멍’을 이끌어들일 ‘이산적 힘’에 기대어 영화에 신용을 건다. 영화를 믿는 한, 아르또가 신용을 거는 것은, 이미지로 되돌아와 내적 독백의 요구와 은유의 리듬에 따라 그것들을 연쇄시킬 힘이 아닌, 다수의 목소리, 내적인 대화, 즉 하나의 목소리에 항상 내재하는 또 다른 목소리에 의해 이미지들을 ‘탈-연쇄시킬’ 힘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르또가 전복시킨 것은 영화-사유의 관계 전체이다. 즉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몽타주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전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한편으로 이미지를 통해 언표될 수 있는 내적독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르또는 에이젠슈테인의 논증을 뒤집었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만약 사유가 그것을 낳는 (신경, 골수) 충돌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유는 단지 이 유일한 사실, 즉 우리는 아직 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자신에 대한 사유의 불가능성 만큼 전체에 대한 사유의 불가능성, 끊임없이 화석화되고 해체되고 무너져 내리는 사유, 그것에 대해서만 사유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영원히 이제 앞으로 오게 될 사유의 존재, 이것이 하이데거가 보편적 형식의 기저에서 발견한 것인 동시에 아르또가 가장 특별한 문제, 자신의 고유한 문제로서 살아낸 것이기도 하다.29)

하이데거에서 아르또로 가면서 모리스 블랑쇼는 무엇이 사유하게 하는가, 혹은 무엇이 사유를 강요하는 힘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아르또에게 귀속된 것임을 알게 된다. 사유를 강요한 것, 그것은 ‘사유의 무능력’, 무의 형상, 사유될 수 있을 전체의 비존재성이다. 블량쇼가 문학의 도처에서 진단한 것은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탁월하게 재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사유의 원천이면서 동시에 그 장애물일 사유 속에 존재하는 사유할 수 없는 것의 현전,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는 나의 모든 독백을 깨뜨리는, 사유하는 인간 속에 존재하는 한없이 많은 또 다른 사유자. (332)

그러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떤 점에서 본질적으로 영화에 관계하는가? 어쩌면 이것은 문학, 혹은 철학, 혹은 정신의학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이것이 영화의 문제가 되는가? 다시 말하면 영화의 특이성, 다른 분과와의 차이점 속에서 영화의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가 되는가? 사실 동일한 문제가 다른 수단을 통해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같지 않다.

우리는 사유의 문제, 즉 사유의 본질적인 무능력이라는 문제와 이로부터 연유하는 문제들을 접근하기 위한 영화의 방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나쁜 영화(혹은 때로는 좋은 영화조차)는 관객에게 주입된 꿈의 상태, 혹은 이미 여러 번 분석한 대로 상상의 참여의 상태에 만족한다. 그러나 개별 영화들의 보편성이 아닌 영화 그 자체의 본질이란, 더 고양된 목표로서 오로지 사유와 그 작용 이외의 어떤 것도 갖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장-루이 셰페르의 책이 갖고 있는 힘은 어떤 점에서, 그리고 어떻게

다. 비사유 impensé

사유의 무능력이란 사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결국 우리는 전능한 하나의 사유를 재건하려 하지 않고 이 무능력을 우리의 사유방식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삶을 믿기 위하여 이 무능력을 사용해야 하고 사유와 삶의 동일성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해 사유한다. 내가 건립할 모든 체계는 삶을 새로이 만들고자 하는 나의 인간으로서의 외침에 결코 필적하지 못할 것이다...”

아르또는 잔혹영화란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사유로부터 연역되듯 서로 연역되는 일련의 정신의 상태를 전개한다”고 말하고 있다.30)

연극과는 달리 영화에 이러한 튻jd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자동기계적 기능이다. 자동기계적 이미지는 역할 혹은 배우뿐만 아니라 사유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요구한다. 선택된 것만을 잘, 그리고 효과적으로 선택하라. 이 전체를 구성하는 것은 비사유, 그리고 사유 사이의 관계이다.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예술에 대한 아르또의 성찰과 실천들은 20세기 후반의 영화인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노트』(Notes sur le cinématographe), 전후 앙드레 바쟁이 주도한 『시네마 평론』(Les Cahiers du cinéma), 『에스프리』(Esprit) 등에서 영화에 관한 아르또의 이름은 끊임없이 거론된다.



 

각주
1) 『잔혹연극론』앙토넹 아르또, 박형석 역, 현대미학사, 1994, p.145.
 
2) •『프랑스 영화사 Histoire Du Cinéma Français』, 장 피에르 장콜라 Jean-Pierre Jeancolas, 김혜련 역, 2003년, 동문선. 
   •『프랑스 영화 Cinéma Français』, 뱅상 피델 외, 김호영 역, 2000년, 창해ABC북.
3) 까뉴도(이탈리아의 평론가)가 「제 7 예술 선언」(1911)을 발표하면서 예술을 ‘리듬예술’과 ‘조형예술’로 분류하면서, 리듬예술(움직이는 예술 ; 시, 음악, 무용), 조형예술(움직이지 않는 예술 ; 건축, 회화, 조각)으로 나눔. (위의 책 인용) 
4)
주요 작품으로는 페르난드 레제(Fernand Leger)의 『기계무용(Le Ballet Mecanique)』(1924), 만 레이(Man Ray)의 『귀가(Le Retour a la Maison)』(1923), 르네 끌레르(Rene Clair)의 『동작개시(Entr'acte)』(1924), 장 꼭도(Jean Cocteau)의 『시인의 피(Le Sang d'un Poete』(1930), 루이 브뉘엘(Luis Bunuel) 의 『L'age d'or)』(1930)
5) 배우로는 르네 끌레르 감독의 『짚으로 만든 이태리제 모자(Un Chapean de Paille d'italie』(1927)에서의 알베르토 페르장(Alberto Perjean), 자끄 페테(Jacques Feyder)감독의 에밀 졸라(Emile Zola)원작인 『못생긴 여자(Therese Requine)』(1928)에서의 Gina Manes, 칼 드레이어(Carl Dreyer)의 『잔다르크의 열정(La Passion de Jeanne d'acre』에서의 팔코네티(Falconnetti) 
6)
무성영화만을 고집하던 루이 델뤽, 장 엡스탕, 르네 끌레르, 자끄 페데, 장 르로와르(Jean Renoir) 감독들은 대중들의 눈에서 사라져갔다. 르네 끌레르나 줄리앙 뒤비비에(Jullian Duvivier)를 제외하면 1930∼4년 사이는 상업영화의 황폐기였다.
7
)『영화에 관하여 A propos du cinéma』, O.C., III, p.130. 아벨 강스와 장 엡스탱이 에드가 포우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 La Chute de la Maison Usher》을 연출하는 것에 대해서
8) 질들뢰즈, 시네마Ⅱ 시간-이미지, 시각과 언어. p.328 
9) 『아르또와 잔혹연극론』p.80.(『영화에 관하여』, O.C., t. Ⅲ, p.66.) '
10) 『아르또와 잔혹연극론』p.81. 
11) 『아르또와 잔혹연극론』p.82. 
12) 『아르또와 잔혹연극론』, p.77. 
13) 프랑스국립영화연구소 http://www.bifi.fr/ 
14)『아르또와 잔혹연극론』, p.85.
15)『아르또와 잔혹연극론』, p.81. 
16) 질들뢰즈, 시네마Ⅱ 시간-이미지, 시각과 언어. 140. 
17)『시간-이미지』, p.315. 
18) http://www.answers.com 
19)『아르또와 잔혹연극론』,
p.77.
20) 「씨네21」 영화감독사전 
21) 프랑스 영화사, p.44~45. 
22)『시간-이미지』, p.315. 
23)『시간-이미지』, p.321. 
24) http://cinetheque.egloos.com/705039, 김응일 
25
)『시간-이미지』, p.458,
26
)『아르또와 잔혹연극론』, p.88. 
27)『시간-이미지』, p.336, 373. 
28) Artuad, “La vieillesse précoce du cinéma", Oeuvers completès, Gallimard, Ⅲ, p.99 
29)『아르또와 잔혹연극론』p.79~80. 
30) 같은 책, p.83. 
31
) 신제임(2000), 들뢰즈의 영화와 "이미지-사유"의 관계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32
)『시간-이미지』, p.140.
33) 이런 의미에서 철학적 전통(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은 정신적 자동기계를 취하게 된다. 이것은 발레리 Valéry의
‘테스트 씨’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크 리비에르 Jacques Rivière는 아르또와 발레리를 근접시키고 있지만, 이것은 그의 유명한 서신(1권)이 보여주는 수많은 오독 중의 하나일 뿐이다.
34) 내게는 성욕, 억압, 무의식과 같은 말들이 영감 혹은 정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다(Ⅲ, p.47).
35) Maurice Blanchot, "Art명“, Le livre à venir, Galliard, p. 59. 아르또는 ”운동의 항들“을 전복시켜 ”박탈감이 우선은 단순한 결핍으로서 나타나는 총체성이 아닌, 이 박탈 자체를 최우선의 자리에 놓는다. 우선적인 것은 존재의 충만함이 아니라 균열과 틈이다. 
36) Heidegger, Qu'appelle-t-on penser?, p. 22~24. "무엇보다도 사유를 자극하는 것은 우리는 아직까지 사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세계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더욱더 사유하도록 하는 것이 되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아직 사유하고 있지 않다는. (...) 사유하도록 하는 현재 우리의 시간 속에서 가장 사유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우리는 아직 사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37)『시간-이미지』, p.342 
38) 위의책, p.349

 아르또와 잔혹연극론 상세보기
박형섭 외 지음 | 연극과인간 펴냄
브레히트와 함께 20세기 서양연극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앙또냉 아르또. 초기 아방가르드 연극과 초현실주의 등을 거쳐 1932년에 발표한 <연극과 이중>은 잔혹연극론이라는 연극미학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잔혹연극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잔혹연극의 이론, 잔혹연극과 동양사상 및 동양연극, 잔혹연극과 한국연극이라는 세 갈래로 서술한다.
시네마 1(운동-이미지) 상세보기
들뢰즈 지음 | 시각과언어 펴냄
영화에 나타난 이미지와 기호들의 분류에 대한 연구서. 이미지의 첫 번째 유형인 운동-이미지를 그 주된 변주들인 지각-이미지, 감화-이미지, 행동-이미지, 그리고 그것들을 특정짓는 기호들과 함께 다루어 상세히 설명했다.





<참고문헌>

잔혹성의 미학 :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 연극의 미학적 접근 ; 프랑코 토넬리 지음 ; 박형섭 옮김.

1 K705627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DDC ADM 792.015 T664e한

잔혹영화 : 부뉘엘에서 히치콕까지 / 앙드레 바쟁 지음 ; 성미숙 옮김.

K460502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KDC AEM 688.09 바72ㅈ c.1

잔혹연극론 / 앙토넹 아르토 지음 ; 박형섭 옮김.

K411901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KDC AEM 680 아238ㅈ c.1

아르또와 잔혹연극론/ 박형섭 ...[등저].

K676518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DDC ADM 792.01 아238ㅂ

프랑스 영화사/ 장 피에르 장콜라 지음; 김혜련 옮김.

K718809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DDC ADM 791.430944 J43h한

영화의 철학과 미학: 프랑스 영화학의 경향/ 류상욱 지음.

K3094730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DDC ADM 791.430944 류51ㅇ c.2

프랑스 영화의 이해= (Le) cinema Francais/ 김호영 지음.

K686958 제1도서관 2층 예체능자료관 단행본:DDC ADM 791.430944 김95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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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프랑스 영화연구소 BIFI에서 찾아낸 아르또 관련 자료. 프랑스 영화필름, 사진, 시나리오 등 자료가 데이터베이스 되어 있는 곳이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영어서비스가 될거라고 담당자가 말했었는데 아직은 프랑스 서비스밖에 안되는 것 같다. 주소는 http://www.bifi.fr/ 

Nom : Artaud

Prénom : Antonin

Documents dont Antonin Artaud est l'auteur(저자)

2 dossier(s) d'archives

dossier(s) par film

dossier(s) projet de film

1 ouvrage(s)

frères Marx (Les) / Robert Benayoun. - Paris : Seghers, 1980

 

Documents dont Antonin Artaud est le sujet

7 article(s) de périodiques

Au non savoir / Jean-André Fieschi

in : Cinéma n° 11, printemps 2006

cinéma est un métier affreux... (Le) / Dominique Païni

in : Cinéma n° 11, printemps 2006

Histoires d'Artaud / Marie-Anne Guérin

in : Cahiers du cinéma n° 476, février 1994

Invocation d' Antonin Artaud / Jean-Michel Frodon

in : Cahiers du cinéma n° 605, octobre 2005

Penser, mais donner à voir / André Frank

in : Etudes cinématographiques n° 32, 1970

Une promesse mal tenue / Alain Virmaux

in : Etudes cinématographiques n° 19, Printemps 1965

Vivement le désordre / Philippe Grandrieux

in : Cahiers du cinéma Hors série, novembre 2000

13 ouvrage(s)

Antonin Artaud : blows and bombs / Stephen Barber. - London ; Boston : Faber and Faber, 1993

Antonin Artaud : textes, documents, témoignages / [Alain Gheerbrant, Henri Parisot]. - Paris : K, 1948

Antonin Artaud : qui êtes-vous ? / Alain et Odette Virmaux. - Lyon : La Manufacture, 1986

Artaud : un bilan critique / Alain et Odette Virmaux. - Paris : P. Belfond, 1979

Artaud / Dulac : La coquille et le clergyman : essai d'élucidation d'une querelle mythique / Alain et Odette Virmaux ; traduit en anglais par Tami Williams. - Paris : Paris Expérimental, 1999

Artaud vivant / Odette et Alain Virmaux ; avec le concours de Jacques Durand et Max Chaleil. - Paris : Nouv. éd. Oswald, 1980

Artaud, ein inszeniertes Leben : Filme, Zeichnungen, Dokumente / Vorwort Jean-Hubert Martin. - Düsseldorf : Museum Kunst Palast, [s.d.]

C'était Antonin Artaud / Florence de Mèredieu. - Paris : Fayard, 2006

Film and theatre / ed. Richard Schechner. - New Orleans : Tulane University, 1966

occhio tagliato (L') : documenti del cinema / dadaiste e surrealista / a cura di Gianni Rondolino. - Torino : Martano, 1972

surréalistes et le cinéma (Les) / Alain et Odette Virmaux. - Paris : Seghers, 1976

triboulet (Le) : cinq rencontres avec André S. Labarthe / Centre des arts d'Enghien-les-Bains ; dir. de la publ. Dominique Roland, Patrick Le Bescont. - Enghien-les-Bains: : Centre des arts d'Enghien-les-Bains ; Trézélan : Filigranes, 2004

vanguardias literarias y el cine (Las) / [organización y patrocinio, Ibercaja]. - [Zaragoza : Ibercaja], 1996

1 pochette(s) de photos

 

Films de 25

page suivante>Argent (L') 아자(돈) 1928 

  • Titre original : L'Argent
  • Année de production : 1928
  • Réalisateur(s)감독 제작자: Marcel L'Herbier [erbe]
  • Pays de production : France

     

    Bonaparte(나폴레옹파? bonaparte) et la révolution - 1971

  • Titre original : Bonaparte et la révolution
  • Année de production : 1971
  • Réalisateur(s) : Abel Gance
  • Pays de production : France

     

    coquille(조개껍질 cokij),  et le clergyman(klergiman, 목사) (La) - 1927

  • Titre original : La coquille et le clergyman
  • Année de production : 1927
  • Réalisateur(s) : Germaine Dulac
  • Pays de production : France

     

    Coup de feu à l'aube - 1932

  • Titre original : Coup de feu à l'aube
  • Année de production : 1932
  • Réalisateur(s) : Serge de Poligny
  • Pays de production : France ; Allemagne

     

    Croix de bois (Les) - 1931

     

    enfant de ma soeur (L') - 1932

    Fait divers - 1923

    Faubourg-Montmartre - 1930

    Femme d'une nuit (La) - 1930

    Graziella - 1926

    Juif errant (Le) - 1926

    Koenigsmark - 1935

    Liliom - 1933

    Lucrèce Borgia - 1935

    Mater Dolorosa - 1932

    Mathusalem ou l'éternel bourgeois - 1926

    Napoléon Bonaparte - 1935

    Napoléon vu par Abel Gance - 1925

    Opéra de quat'sous (L') - 1930

    Passion de Jeanne d'Arc (La) - 1927

    Sidonie Panache - 1934

    Surcouf - 1924

    Tarakanova - 1929

    Verdun, souvenirs d'histoire - 1931

    Verdun, visions d'histoire - 1928

     

    http://www.bifi.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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