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황산참사가 있은 뒤 영산이 예전 같지 않다. 3.1절이면 울리던 영산의 함성이 작아졌다. 일손을 놓고 뒷짐을 지고 놀이마당을 오르던 노인들도 줄었다. 각양각색의 노점상들도 볼 수 없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일까. 잿더미 위에서 파랗게 고개를 처든 봄날, 3월21일 영산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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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제 26호) 전수자 선생님들이 놀이마당에서 줄을 당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3.1문화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영산줄다리기다. 돌아가신 일봉 조성국 선생님 삶 그자체가 이 놀이에 녹아 있고 유희를 넘어 민중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이징하'는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되었고 순수한 생물학적 행위의 한계를 넘어선 하나의 의미라고 규정한다. 그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할 때 놀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영산줄다리기는 참여의 놀이이다.

 '영산줄다리기의 내적 원리는 애살(열성)로 만들어지고 신명으로 진잡이를 하고, 몰음(협화)으로 당겨진다.'  -일봉 조성국 -

조성국 선생님은 세상과 담을 쌓고 줄을 꼬는 문화인이 아니라 민속을 넘어서 민족과 민중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아왔다. 비록 그분은 세상에 없지만 아직도 그의 삶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영산줄다리기와 그 맥을 이어가는 전수자들이 살아 있다.

조성국 선생님은 경남 창녕군 영산면 출신으로 일제 이후 끊어진 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를 복원시킨 장본인이다. 박정희 정권 때 교원노조 활동을 하다 해직을 당한 후 지역에서 농군으로 양파재배법(1972)을 전파해 영산을 양파의 주산지로 탈바꿈하게 했다. 또한 창녕과 영산의 설화와 전래노래를 기혹한 '영축설화'(1974), '영산의 노래"(1975)를 펴냈다.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개성이 강조되면서 문명의 절박함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에서 일봉 선생을 중심으로 한 영산의 자발적인 들풀문화를 통해 자연친화적인 문화적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 부산대 채희완 교수-

영산줄다리기는 한 고장의 문화축제를 넘어서 1980년대 대학의 축제에도 널리 퍼졌다. 1982년 고려대 축제에서 처음 등장하여 이화여대, 부산대, 서울대 등 전국의 대학축제의 전형으로 번졌다. 그만큼 학생들을 모으기 쉽고 단합과 대동을 몸소 체험 할 수 있는 놀이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대학문화가 사라졌고 영산줄다리기를 하는 대학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졌다. 이 날 영산줄다리기도 참사의 영향으로 축제를 지양하고 발표회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작년처럼 거대한 군중이 만들어내는 숭고한 예술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골목줄다리기에서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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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줄다리기 전수자였던 김종곤(왼쪽) 선생님이 영산줄을 보고 있다.


조성국 선생님은 영산줄다리기의 축소판인 골목줄다리기에 애정을 쏟았다. 그 역시 지역의 교육자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영산줄에 쏟는 신명을 보고 대학으로 줄을 가져갔는지도 모른다.

놀이마당에서 영산줄다리기 발표회가 끝나고 영산초등학교에서 골목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여느 행사와 마찬가지로 연단에 선 선생님은 학생들을 정렬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참여한 학생들도 마냥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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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줄을 메고 시장으로 가고 있는 영산중학교 학생들


영산중학교 학생들이 골목줄을 메고 한복을 입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조용히 뒤를 따랐다. 어른들의 참여가 적어서 그런 지 골목줄이 아이들 손에 영산시장으로 옮겨지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마치 박제된 새끼용 2마리가 시장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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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골목줄이 영산시장에 들어서고 있다.


골목줄다리기에 앞서 진싸움 벌어졌는데 시장 골목에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골목줄이 당겨지는 순간 박제된 용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언제 합세했는지 동네 주민들도 줄을 당겼다. 누가 이기고 지는 것에는 다들 관심이 없다. 동쪽이 지면 서쪽으로 붙어서 줄을 당겨준다. 조성국 선생님이 말씀하신 ‘애살’ ‘신명’ ‘몰음’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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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줄다리기가 영산시장에 들어오자 동네 주민들이 흥겨운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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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에 앞서 진잡이 놀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골목줄다리기를 통해서 노동의 즐거움을 체험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아이들이 신명과 흥이 절로 났을까? 순간 나는 아이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뒤로 하고 대규모 군중을 동원한 메스게임을 즐기는 3인칭 관객의 시점이 아닌 함께 참여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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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줄다리기에 참여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학생들


영산줄다리기는 참여의 놀이이다. '호이징하'는 놀이는 문화보다 더 오래되었고 순수한 생물학적 행위의 한계를 넘어선 하나의 의미라고 규정한다. 그 의미를 제대로 찾지 못할 때 놀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따금거리는 지푸라기가 옷 속으로 파고드는데도 놀이에 몸을 던지는 ‘애살’, 경쟁이 아닌 ‘신명’으로 상대를 인식하고 용이 똬리를 틀듯 서로 엉기어 붙어 줄을 당기는 ‘몰음’을 골목줄다리기를 통해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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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어린 아이들도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놀이를 하고 있다.


놀이 자체가 파괴된 오늘날, 그나마 골목줄다리기가 있어 다행이다. 아이들의 자발적인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신명’을 느끼게 해준 영산의 아이들이 고맙고도 대견하다. 또한 놀이 구조를 만든 선생님과 영산줄다리기 전수자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내년에는 어서 빨리 아픔을 치유하고 한바탕 축제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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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08일

부산의 책을 말한다 <11> 일봉 조성국 선생 글모음Ⅰ,Ⅱ

 

경남 창녕군 영산면 들판은 다시 '위~야차' 하는 함성으로 들끓어 오를 것이다.

함성의 주인공은 영산의 주민들, 학생들, 전국의 민속과 문화 연구자들 그리고 관광객과 사진가들…. 대회장 주변에는 국밥솥들이 내걸리고 막걸리는 거저 퍼마실 수 있으며 마을은 큰잔치의 열기로 들썩댄다. 이날 잔치를 위해 이 지역 주민들은 비용을 추렴하고 돼지를 잡고 지름 약 50㎝ 길이 80m의 줄을 손으로 꼰다.

영남에서 3·1만세운동을 최초로 일으킨 영산의 문화단체인 3·1민속문화향상회가 지난 1961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는 3·1민속문화제(매년 2월28일~3월3일)의 절정인 영산줄다리기는 어김없이 신명 나는 마당을 펼칠 것이다.(올해는 다음달 2일)

#고인의 삶 생생하게 담아낸 책

 
영산줄다리기(영산줄당기기)  
경남 창녕군 영산 출신인 고 일봉 조성국 선생(1919~1993)은 일제 때 거의 맥이 끊기고 해방 뒤 개발시대에는 잊혀져갔던 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일명 영산줄당기기)를 복원시켜 진정한 의미의 마을굿, 공동체의 잔치로 자리잡게 한 사람이다.

또 그는 80년대 향락과 소비 문화 일변도로 치닫던 전국의 대학축제 현장에 '공동체와 신명의 놀이'인 영산줄을 몸소 지고가 노는 법을 자세하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노력으로 1982년 고려대에 처음 등장한 영산줄다리기는 이화여대 서울대 영남대 부산대 전남대 등 전국 대학축제에 '화왕산 억새불'처럼 번지면서 그 현장을 우리 대동놀이의 마당으로 바꾸었다.

 

 



 
생전 조성국 선생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는 양파알을 다듬고 있다.  
부산의 도서출판 전망이 2004년 펴낸 일봉 조성국 선생 글모음 '1권 원다리 만년교는 님의 기개요'와 '2권 연지못 항미정은 그대의 향기'는 선생의 삶을 본인의 글과 후진의 추모글로 생생하게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그의 10주기를 앞두고 결성된 추모문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천규석)가 전체적인 진행을 맡았지만 최초 발의와 실무 작업, 출판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간행사업은 부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생전의 조성국을 문화계의 큰 어른으로 대하며 깊이 교류했던 채희완(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를 비롯해 화가 송문익 등은 책의 발간을 주도적으로 발의했다. 채 교수가 소장인 부산의 민족미학연구소는 실무를 맡았다.

이 책을 통해 일봉 조성국의 일생을 만나게 되는 독자들은 그를 단순히 무형문화재 영산줄다리기의 최초 예능보유자이자 복원자로만 자리매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영산에서 10여년 동안 교편을 잡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향토교육자였고, 4·19혁명과 5·16 쿠데타를 거치면서 교원노조에 연루돼 박해를 당한 해직교사였다. 그 뒤 그는 농사꾼으로 변신해 이 지역 최초로 양파재배에 눈을 돌려 창녕이 양파의 주산지로 떠오르는데 주춧돌을 놓았다. 이 때 쓴 책이 이 글모음에도 실린 '양파재배법'(1972). 그 사이 창녕과 영산의 민속과 설화, 전래노래를 정리한 '영축설화'(1974)와 '영산의 노래'(1975)를 펴내 지역문화운동 부문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걷는' 모습을 보여줬다.

민속학자 심우성의 도움으로 1978년 펴낸 '영산줄다리기·쇠머리대기'는 가치가 바래지 않은 민속학 자료로 남아있다. 1970년대 인간문화재들의 권익과 올바른 전통 계승을 위해 '한국인간문화재연합회' 결성을 주도했고, 고은·김윤수와 함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의 초대 공동의장을 떠맡았던 그의 행보는 또 어떤가. 이 책에는 여러 이유로 고향에서는 '욕하는 후배들이 더 많았던'(천규석의 간행사 중) 보기 드문 어른으로서 생을 살다간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책을 통해 본 지역문화의 현주소

이 책을 읽으면서 겹쳐져 떠오르는 책이 있다. 고(故) 무위당 장일순의 삶을 되돌아본 '좁쌀 한알'이다(아래기사 참조). 당대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결코 부각시키지 않았고,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운동 지역운동 사회운동을 펼쳤으며, 후진들을 돕고, 고향에서는 곡해되기도 하며 지역을 초월해서는 큰 어른으로 존경받는다는 점에서 장일순과 조성국의 닮은 데가 분명 있어 보인다. 둘은 1993년 만나 인사도 나눴다.

그들을 따랐던 사람들이 그들이 타계한 뒤 뜻을 모아 같은 해인 2004년 한 달 사이로 추모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우연치고는 묘하다. 그런데 무위당 장일순 선생에 관한 책은 한 언론사의 '2004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판을 거듭하면서 대중과 잘 만나고 있다.

반면 조성국 선생의 책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결과를 얻기 힘들 정도이고 서점에도 없어 전망출판사(051-466-2006)에 직접 문의해야만 한다. 조 선생의 책은 세련되게 구성된 저서라기보다 '양파재배법' 등 그가 남긴 모든 글을 담은 자료모음 형태여서 대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거인의 삶을 다룬 책과 대중 사이에 놓인 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은 지역문화계의 현실과 지역문화계의 분발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조봉권기자 bgjoe@kookje.co.kr


 
일봉 조성국선생 글모음 Ⅰ,Ⅱ/조성국 외 지음 / 도서출판 전망/각권 1만5000원  
# 이 책은…

1919년 태어난 일봉 조성국 선생은 1993년 12월 타계했다. '원다리 만년교는 님의 기개요'(1권), '연지못 항미정은 그대의 향기'라는 아취 있는 제목의 책 2권이 일봉 조성국 선생 글모음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의 도서출판 전망에서 출간된 것은 2004년 4월이었다.

추모문집 간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천규석(농사꾼·대구 한살림 및 공생농두레 이사)씨는 간행사를 통해 "10주기를 앞두고 선생님이 농민운동 민주화운동 등 사회운동 과정에서 만난 채희완(부산대), 정지창(영남대), 오상훈(부산대), 한양명(안동대) 등 학자들에 의해 발의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강철오 김종곤 남기령 송문익 신수식 심우성 이기봉 정영해 차재현 최정완 등 창녕군 영산지역 인사들과 전국의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참여 인사들의 숫자가 많고 면면도 다양했으며, 이미 간행된 저서와 이곳 저곳에 실린 원고, 인터뷰 기사와 좌담 등 챙겨야 할 자료도 많았다. 또 많은 필자들에게서 추모글과 생전의 일화에 대한 글도 따로 청탁해 실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간행 작업은 까다로웠다. 도서출판 전망의 서정원 대표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부산 지역 문화계가 주축이 돼 태어난 이 책은 귀중한 자료로 남게 됐다.

※'좁쌀 한알'(글 최성현·도솔·2004)=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이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으며 지난 2004년 '시사저널' 선정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좁쌀 한알' 속에 실린 설명을 옮기자면, 장일순은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이 단 한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이 시대 단 한분의 선생님이라고 꼽은…' 사람이다. 이 책에는 독재 치하에서 '원주캠프'를 이끌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생활운동을 통해 사회운동을 일으켰으며, 한살림 운동을 제창하며 생명운동으로 나아가는 터를 닦은 그의 생애가 일화 형식으로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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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