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내리는 동성로, 당나귀와 함께


대구에서 창원까지 12시간 200km를 미니벨로(당나귀=스테판)로 주파하기 위해 420일 창원중앙역에서 대구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패니어 2개를 달고 새마을 열차에 올랐는데 당나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맨 앞 열에 빈 자리가 있어 스테판[각주:1]에게 창자 자리를 양보했다. 


대구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경. 비는 더 거칠어졌다. 패니어에 든 우산을 펼치고 당나귀를 끌고 대구의 골목을 어슬렁 어슬렁. 날이 갠다면 합천보까지 가서 두 세 시간 쪽잠을 잔 뒤  부산까지 야간비행을 할 생각이었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동성로 곡목을 당나귀와 함께 걷다가 허기가 몰려와서 예전에 아는 분과 같이 갔던 카페에 들었다. 나이가 들면 방향감각이 둔해지는 것일까, 한 시간을 돌고 나서야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 대구 동성로에 있는 리틀이탈리아(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동 45-1). 당나귀를 널찍한 비가림막 아래 세워 두고 해물파스타를 주문했다. 아담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충전하고 몸을 말리는 사이에 먹음직스러운 파스타가 나왔다. 파스타가 내장으로 들어가자 엔진에서 달리자는 신호를 보냈다. 


파스타를 먹고 나서 지인의 차를 얻어타고 모처로 이동해서 커피를 마신 후 밤 늦게 지하철을 타고 후배가 살고 있는 대실역으로 갔다. 대실역은 대구지하철 2호선 서쪽 종점에 있다. 그곳은 낙동강과 가까운 곳이라 베이스캠프로 적당한 곳이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와 자전거여행과 4대강자전거도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후배는 박사논문을 마치면 외국에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고 있던 터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나는 작년에 4대강과 섬진강, 국토종주를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습지에 만든 2차선 고속도로, 마을과 문화를 소외시키는 루트... 4대강자전거도로는 문제점이 많다"고 논지를 이어가면서도 4대강에 설치된 보 때문에 자전거길이 불요불급한 애물단지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도 이야기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논지는 이왕 만든 4대강 자전거도로를 제대로 활용하고 국가의 인프라로 개선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종주를 하면서 느낀 점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습지를 보존하고 둑길을 활용한 지자체(담양군), 자동차가 잘 다니지 않는 국도나 농로를 활용한 사례(영산강), 폐철로에 명품 자전거길을 만든 지자체(남양주시), 이른바 라이더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길도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와 두발족의 이야기는 12시가 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 4시 반, 술이 덜 깬 상태로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고양이 세수를 마친 다음 차 안에 있던 당나귀를 깨워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작년 여름과 가을, 5대강과 국토종주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 라이딩은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했다. 도동서원과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다람재, 보 때문에 작은 하천이 강으로 변한 회강과 오광대의 발상지 밤마리마을, 길고 높은 고갯길에다 자전거에게 한쪽을 양보해서 박진감 넘치는 박진고개, 새로 난 산길 개비리길... 비록 12시간 200km를 달리겠다던 야심찬 계획은 실패했지만, 도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즐거우면 그만인지 싶었다. 


이 이야기는 위대하신 가카 때문에 불혹에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주인공이 될 뻔한 한 라이더의 이야기이다. 

 


☞ 요약 


◈ 총거리 : 166km

 시간 : 13시간26분 (Apr 21, 2013  ::  5:10 AM - 6:37 PM) 

 경로보기 (Runkeeper)

 구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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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의 서쪽에 있는 성서에 있는 후배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아침 5시10분 경 라이딩을 시작했다. 낙동강은 어둠에서 막 헤어나오려던 찰라, 습지를 잘라낸 고속도로 위에서 라이더는 새벽을 맞이 한다. 



다람재에 올라 도동서원을 내려다 보다


경북 고령과 현풍을 잇는 박석진교에 도착하자 갈림길이 나왔다. 박석진교에서 우곡교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박진교를 건너 현풍 시내를 지나서 다람재, 도동서원을 지나가는 길(23km)이다. 두번째는 박석진교를 건너지 않고 개진면(고령군) 청룡산 산길(2013.5월중 개통 예정)을 가는 방법이다. 


개진면 산길은 아직 개통이 되지 않았다는 표시가 있어 다람재 방향으로 당나귀를 몰았다.  작년에 현풍 전통시장에서 수구레 국밥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냥 지나갔다. 


도동서원 근처에 몇 군데 밥집이 있지만 합천군 율지면 밤마리마을까지 약국,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현풍에서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것이 좋다. 


강정고령보에서 다람재까지는 약40km, 다람재는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와 '현풍면 자모리' 사이에 있는 고갯길이다. 경사가 높고 시멘트 포장상태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당나귀로 업힐 하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끌바를 시작하니 당나귀가 쾌재를 불렀다. 


끌바로 오르는 산길이라 힘들지만 대구에서부터 처음 산길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얼굴을 때리던 강바람도 없고 파괴된 습지를 봐야 하는 눈과 정신의 피로감이 들했다. 예전에 만든 산길을 그대로 오를 수 있어 자연에게 덜 미안했다. 


다람재는 끌바로 쉬지않고 오르면 10여분 만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앞으로 고령의 구곡리와 옥산리, 왼편 아래쪽으로 도동서원을 감싸고 도는 낙동강 물줄기가 보인다.   


▲ 다람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도동서원과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느티골과 정수골을 잇는 다람재 아래에는 사림파의 거두이자 김종직의 벗이었던 김굉필 선생을 모신 도동서원이 있다.   


▲ 도동서원 입구에는 4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수월루를 지나 2) 환주문을 들어서면 3) 강학을 하던 중정당이 나온다. 예전에 수월루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은빛물줄기를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보에 막혀 갑갑하다.   


하마터면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주인공이 될 뻔


강정고령보에서 약 50km지점에 우곡교에 도착했다. 창녕합천보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송곡고개 방향(계속 직진)이지만 산길(일부 비포장)이고 미니벨로를 타는 게 힘들어서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로 하고 우곡교를 건너가고 말았다. 


사단은 여기서부터였다. 


Daum 위성지도를 검색해보니 '회천'은 넓은 모래사장과 얕은 물줄기가 보여서 자전거를 매고 건널 수 있다고 판단했다. 회천은 고령군 연리마을과 합천군 율지리 사이에 있는 하천(강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 회천 상류로 당나귀를 몰았다. 회천을 잇는 작은 다리나 배 한척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월오리(경북 고령군 우곡면)까지 갔지만 깊고 넓은 물줄기가 펼쳐졌다. 


하천 건너 포두둑방(합천군 덕곡면 포두마을)이 손에 잡힐 듯 했지만 하천의 모습은 위성지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대로 갔다가 고령읍까지 가서 산길을 둘러서 율지교까지 내려와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우곡교로 돌아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객기마을에서 객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위성지도상에 도하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마찬가지였다. 모래밭은 온데간데 없고 깊고 넓은 강으로 변해 있었다. 하류에 있는 보가 물길을 막고 있다보니 강물이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드문드문 짙고 푸른 웅덩이도 보였다. 


심호흡을 하고 물에 젖을만한 것들은 패니어에 넣고 당나귀를 들쳐맸다.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홀몸이 아니라서 한발 한발 도둑발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모래가 발목을 잡았다. 시원한 물이 발을 감쌌다.   


행복함은 잠시였다. 강을 절반쯤 건넜을까, 물빛이 짙은 곳을 지나가려고 한 발을 딪는 순간 마치 모래지옥에 사는 벌레가 개미를 끌어당기듯 균형을 잃고 수렁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이 목전까지 차올랐다. 당나귀는 죽을 듯이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 거렸다.  


모래지옥에 빠지지 않기 위해 무릎을 굽혀 정강이를 발처럼 사용했고 다른 한 발은 수영 발차기를 했다. 패니어가 물에 잠길 듯 했다. 당나귀는 나중에 구하고 몸이라도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패니어 속에서는 12개월 할부로 구입한 맥북에어가 들어 있었다. 


기적과도 같이 건너편 모래밭에 닿았다. 강을 건너자 마자 당나귀를 모래밭에 던졌다. 숨을 가다듬기 위해 모래밭에 털썩 누웠다. 패니어가 방수라서 노트북은 물에 젖지 않았다. 물에 젖은 몸을 뉘이자 모래밭은 이불과 같이 푸근하고 따뜻했다.  


위대하신 가카 덕택에 깡충깡충 건널 수 있었던 하천은 강이 되어 있었고, 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주인공인 머리가 하얀 미치광이 노인이 될 뻔 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公無渡河 / 公竟渡河 / 墮河而死 / 當奈公何

임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 임은 기어코 물속으로 들어가셨네 / 원통해라, 물속에 빠져 죽은 임 / 아아, 저 임을 언제 다시 만날꼬.



▲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 299 번지에서 월오리, 그리고 도하... 짧은 순간이지만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저 강을 건너지 마시길 당부 드린다.   



▲ 낙동강 자전거 종주를 하는 분들은 흰색으로 표시된 산길을 이용하길 권한다. 다만 밤마리 마을(오광대 발상지)에는 전통식당, 음식점, 구멍가게가 있다. 우산농장 앞에서 밤마리 마을까지는 1.7km


밤마리 마을에서 만난 풍류를 아는 견공

  

지금 생각해보면 강을 건너지 않았더라면 밤마리 마을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강을 건너서 포두마을(경남 합천군 덕곡면)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벽화가 그려진 마을에 당나귀를 세웠다. 


11시30분, 긴장했던 몸에서 먹이를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침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옛 주막 형태를 갖춘 음식점이 있었다. 마당에는 잘생긴 풍산개 한마리가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주인은 아직 식사때가 아니라서 반찬이 변변치 못하다면서 소박한 밥상을 내왔다. 부침개가 맛깔스러워서 막걸리 한 병을 시켰다. 주인은 견공께서 술을 잘 잡수신다는 해서, 먹다가 남은 막걸리를 한잔 올렸다. 그랬더니 정말 막걸리를 맛있게 잡수신다. 더 기가찬건 막걸리 보다는 맥주와 소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알고보니 이 견공께서는 멀리 부산의 모 술집에서 나고 자랐는데, 견공을 어여삐 여긴 주인장 따님이 데리고 왔다고 한다. 손님들이 재미로 줬던 술에 빠져 폐가망신할 뻔 하다가 이곳에서 치유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뭐든지 한번에 끊으면 탈이 나는 법. 소주를 2잔 정도 드시더니 잠에 빠져 노래를 부르신다. 알고보니 이곳이 밤마리 마을, 오광대의 고장이니 개도 풍류를 안다. 그러고보니 밤마리마을은 오광대[각주:2]의 발상지이다. 


▲ 견공께서 탁배기를 잡수신다. 탁주는 술이 아니고 밥이니 주인에게 일러 소주를 대령하라 하신다. 소주로 나발을 불더니 이내 꽃잠을 주무신다. 


▲ 1) 밤마리 마을은 우산마을(경남 창녕군 이방면)에서 율지교를 지나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2) 율지교에서 내려다 본 밤마리 마을, 이 마을에는 합천군에서 지은 초가집이 있는데 지금은 술과 음식을 파는 주막이 있다. 또한 풍류를 아는 견공이 살고 계신다.  3) 오광대 한 과장이 그려진 벽화에서 기념촬영 4) 회천으로 가는 길 (길 없음, 다시 율지교에서 우산마을로 가서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야 함)

 

길을 나눠쓰는 박진고개와 개비리길

 

강정고령보에서 박진고개까지 96km 약 8시간이 걸렸다. 박진고개(경남 의령군 낙서면)는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를 지내던 박진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박진감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높고도 길었다. 


박진고개는 엔진이 튼튼한 사람이 자전거로 완주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다. 들머리에서부터 업힐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당나귀와 함께 유유히 사진도 찍고 끌바로 고개를 올랐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박진고개 정상에서 박진교까지 다운힐의 기쁨도 만끽했다.  


▲ 박진고개는 도로 한켠을 자전거와 나눠쓰고 있다. 중간 분리턱이 없는 게 아쉽지만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이런 국도를 자전거 도로와 연계한다면 예산도 절감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 박진고개에 올라서면 적포에서 내려오던 낙동강 물줄기가 유어면 산에 막혀 굽어져 낙서면으로 흘러 내리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은 흘러 내리는 게 아니라 고여있다고 봐야 한다. 올 가을이면 적포교에서 박진교로 이어지는 또다른 길이 개통될 것으로 보인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구간은 박진고개에 비해 완만해서 초보자들이 이용하기에 좋아 보인다. 



박진교에서 5km 강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푸른색으로 그어진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줄곧 노란색과 흰색 선만 보다가 푸른빛을 보니 눈이 시원해진다. 작년에는 고곡마을(창녕군 남지읍)리로 해서 남지읍으로 달렸는데 올해 (산길)개비리길이 개통되었다. 


개비리길은 창녕군 남지읍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 창아지나루터까지 이어진 옛길이다. 물가(浦:개) 위 벼랑(비리)으로 난 길이라 해서 개비리라 불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포장 길이었는데 올해부터 황토색의 시멘트길로 만들어졌다.  


▲ 개비리길은 박진고개보다는 고도가 높지 않지만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가는 터라 마음이 가벼워 진다. 양아지마을에서 시작해서 남지읍까지 약 9km.  


▲ 주황색 길은 낙동강자전거도로이고 붉은색은 트래킹족을 위한 길로 보인다. 주황색 길은 자전거로 30분 정도면 지날 수 있다.  


월래 모래밭이었던 남지벌은 공원으로 바뀌어 유체축제가 한창이었다. 유채꽃에 날아든 벌과 나비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남지철교에 이르자 오후 3시, 약 10시간 100km를 달려서야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보통 100km 정도 달리면 몸에서 몇가지 고통스러운 신호를 보내는데, 아마도 지옥 문턱을 갔다온 경험 때문에 작은 고통 정도는 몸에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지읍에서 창녕함안보, 노리 고개를 지나서 작은 카페에서 당나귀를 멈춰 세웠다. 토스트가 맛있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카페에 앉아서 언덕을 내려오는 차들을 지켜보았다. 오후 4시40분, 목표를 위해 달릴 것인 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것인 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200km 돌파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네발 달린 의자로 앉아 있어야 하는 사무원으로서 모험을 감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본포교를 지나 낙동강자전거도로에서 벗어나 주남저수지로 가는 대산북로로 당나귀를 몰았다. 주남저수리를 경유해서 창원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 했다. 13시간반 166km. 패니어를 달고 미니벨로로 세운 나의 기록이었다.  

 

에필로그 : 본포교에서 창원으로 가는 길

▲ 자전거도 차로 분류되지만 자동차 함께 달리는 것은 불편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동차기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본포교에서 주남저수지를 목적지로 잡고 농로나 일반 국도를 이용하면 재미나고 안전한 라이딩을 할 수 있다. 


▲ 주남저수지 생태학습관에서 동읍으로 가는 30번 도로는 갓길이 좁고 자전거 길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주남저수지 생태학습관에서 왼쪽 도로를 따라 가다가 판신마을-무점마을-무신교를 기점으로 농로와 둑길을 이용하면 안전하고 재미있게 라이딩을 할 수 있다. 동읍 45번길을 따라서 가면 용강마을로 이어진다.  



▲ 예전에는 용강마을에서 의창대로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는데, 용강마을에서 만난 한 분이 신풍고개를 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의창대로에서 용강마을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현재 공사중인 것으로 안다. 


  1. 내가 당나귀라 부르는 짐승의 이름은 스페판(Stepan)은 스웨덴의 작가인 헬레나 윌리스2(Helena Willis)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말 이름에서 따왔다. 스테판은 다혼 벡터X271-2011 종이다. [본문으로]
  2. 오광대의 유래와 발전과정 (밤마리 마을 알림판 요약) 다섯 광대가 탈을 쓰고 춤을 추고 대개 다섯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오광대(五廣大)라고 한다. 밤마리 마을에서 1.7km 떨어진 곳에는 소학산(489m)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서낭제를 올리는 등 민간신앙이 성행했다고 한다. 서낭제는 오방신탈춤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인조 12년 (1635년) 나례도감이 폐지되면서 그에 종사하던 예인(광대) 일부가 이곳 포구 도시인 율지리에서 산대탈춤을 시연하여 오광대로 더욱 발전되었다고 추정한다. 한편 전설에는 350여년전 대홍수때 큰 나무꿰짝 하나가 덕곡면 밤마리에 떠내려와서 마을 사람들이 건져서 열어 보니 그 속에 많은 가면과 영노전 초권이라는 책 한권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탈을 쓰고 그 책에 쓰여져 있는 그대로 놀음을 하여 보았더니 마을에 재앙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탈을 쓰고 연극을 해왔는데 이것이 전파되어 동래, 수영야류(들놀음), 고성오광대 등 오광대로 불려지고 있다. 오광대는 산대가면극에서 나왔다. 산대가면극이 점차 연극으로 발전되어 가던 조선 인조 이후, 낙동강은 물자교통의 요지로 포구가 있던 율지(밤마리)에 전국 각지에서 여러 흥행단이 흘러 들어온 가운데 초계(경남 합천군)를 근거지로 광대일파가 형성되어 인근 고을로 전파시켰다고 한다. 경남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6호(통영오광대), 제7호(고성오광대), 제73호(가산오광대)가 있다. 또한 마산오광대, 창원오광대가 복원중에 있다. [본문으로]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역사와 상상이 만나는 길에 서다


31() 공휴일, 3일간의 연휴는 직장인에게 흔한 기회가 아니다. 제주도로 자전거 캠핑 가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배와 비행기 모두 자리가 없어서 경남 창녕과 밀양 산길을 타는 루트를 잡게 되었다.

 

길 이름은3.1 의열단[각주:1] 루트 정했다. 일제시대 경남지역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이 일어난 지역이 창녕군 영산면이고 창녕과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밀양은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이었던 의열단 전사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3.1의열단 루트의 백미는 영취산(739m) 화악산(926m) 산길이다각각 이십 리(8km) 거리에 표고차는 250~310m다. 영취산 심명고개, 화악산 봉천재는 옛날에 밀양과 창녕을 오고가는 지름길이었다. 


창녕에서 소를 팔고 넘어 오다가 고개에서 도둑 만났던 이야기, 나물을 캐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다는 등 숱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기에 더해서 의열단의 대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이 창녕에서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왔던 1945년을 떠올리며 역사를 자전거로 그 길을 달려본다.


평범한 임도지만 역사적 현실과 개인적 상상이 더해지면 무척 재미있고 의미있는 길이 된다. 물론 하루에  고개를 넘으려면 의열단처럼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    


김원봉은 1945 123 2진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그는 창녕을 지나 고향인 밀양을 방문하는데, 당시 밀양에는 10여명의 인파가 운집하여 그를 열렬히 환호했다. 1946 226 창녕을 거쳐 밀양으로 돌아온 박차정 열사의 골을 밀양 부북면 제대리 송악 공동묘지에 안장한다. - 약산 김원봉 평전』중에서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信徒)처럼 생활하였고, 수영·테니스 밖의 다른 운동을 함으로써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자기네들의 특별한 임무에 알맞은 심리 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오락도 하였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멋진 스포츠형의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아주 깨끗이 차려 입었다. - 님웨일즈아리랑중에서


베이스캠프로는 미르피아오토캠핑장(밀양시 하남읍 백산면)이 좋다


최근 밀양시 하남읍 낙동강변에 대규모 캠핑장 만들어졌다. 여름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 가을에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면 좋다. 캠핑장에서 출발해서 돌아오면 100km, 새벽 일찍 출발하면 저녁에는 도착할 있다.

 

3.1의열단 루트 장장 100km 주요 지점은 다음과 같다.

 

GPS 궤적보기(Runkeeper)

GPS 궤적보기(Wikiroc)

오토캠핑장-낙동강 자전거도로-창녕함안보-남지-영산면(영산만년교)-옥천면(노단이저수지)-영취산 산길(심명고개)-청도면 조천리-고법리-요고리-화악산산길(평밭마을)-부북면 위양리(위양저수지, 밀양연극촌, 박차정열사)-밀양시(밀양독립기념관, 김원봉-윤세주 생가터, 영남루)-밀양강-낙동강 자전거도로-오토캠핑장

구글어스파일 :  uiyeoldan-organization-for-the-independence-of-joseon-route.kml 


영취산 루트는 창녕군 옥천면에서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사명대사 생가터) 청도면 조천리로 넘어가는 산길로 나뉜다. 화악산 산길을 타려면 청도면 조천리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다. 노단이저수지에서 조천저수지까지 8km, 표고차 250m 이른다.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은 고라리로 내려와서 무안면에서 30 국도를 타고 본포교까지 와서 캠핑장으로 돌아가면 된다.

** 화악산 루트는 청도면 요고리 안곡마을회에서 부북면 위양리까지 8km(표고차 307m) 이른다


미리 알고 가면 힘나고 유익한 지식창고 

-아리랑, 웨일즈, 조우화 옮김동녘, 1984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문학과지성사, 1995

-약산 김원봉 평전, 김상웅, 시대의창, 2008

-약산 김원봉, 이원규, 실천문학사, 2005

-영화 아나키스트, 유영식감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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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연재기사 :

 1) 석정.약산, 중국에서 독립운동 덩치, 힘 키우다

 2) 밀양 내이동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두 열사  




낙동강 바람을 맞으며 영취산 심명고개에 오르다



▲ 봉하마을에서 날개를 달다. 창원에서 베이스캠프로 가기 전에 진영을 지나 봉하마을에 들렀다. 친환경 봉하쌀로 만든 국밥과 에너지의 원천인 봉하막걸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서 테마식당도 만원이었다. 대기표를 받고 먹어보긴 처음이다


▲ 영산으로 가는 국도. 베이스캠프에서 안동댐 방향으로 낙동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창녕함안보가 나온다. 보를 건너지 말고 낙동로 방향으로 직진하면 영산으로 가는 국도를 이용할 수 있다. 출출하다면 도천면에서 유명한 순대국밥을 먹어도 좋다.


영산 만년교(靈山 萬年橋). 영산면 중심가에 하천(동천)에 놓여진 만년교는 1780년 정조시대 백진기에 의해 축조되었다. 총길이 13.6, 3미터에 이른다. 물 흐르듯이 화강석을 다듬고 쌓은 이 석교는 보물 564호로 지정되어 있다.


3.1민속문화제가 열리는 놀이마당. 1919 3.12일 구중회를 비롯한 24인의 결사대가 영산 남산봉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을 기념하여 매년 민속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제 제25호 영산쇠머리대기, 26호 영산줄다리기가 이곳 놀이마당에서 펼쳐진다.


▲ 짬뽕으로 유명한 옥산반점(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362-2 055-521-3078). 화왕산과 영취산 가운데 있는 옥천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중국집이 있다. 잘게 썰은 돼지고기와 진한 짬뽕국물이 일품이다.


▲ 달과 별이 있는 노단이 저수지. 옥천저수지, 화왕산 매표소를 지나서 노단이 마을방향으로 가다 보면 저수지가 나온다. 날이 어두워져 비박장소를 찾지 못해 저수지 위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 하루를 묵었다. 한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산에서 내리치는 바람을 막아주고 밤하늘 별을 볼 수 있는 4성급 호텔에 버금갔다. 고라니가 우는 밤 10시경 고개를 돌리자 영취산 자락에서 둥근 달이 떠올랐다. 숙소로 허락해준 할아버지께 보답하고자 막걸리 2병을 남겨놓았다.


▲ 심명고개 아래에서 뒤돌아본 영취산 산길. 멀리 보이는 산은 화왕산이다. 노단이 저수지에서 심명고개까지는 천천히 와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는 길에 계곡(사방댐)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다.


▲ 심명고개는 영취산 자락에 있으며 창녕군과 밀양의 경계지점이다. 심명고개는 세 방향으로 나뉜다. 오른쪽 길은 영취산(1km 이후 자전거길 없음, 등산로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 서가정마을)이고 왼쪽으로는 가다가 오른쪽으로 p턴하면 밀양시 무안면 고나리마을(사명대사 생가), 직진하면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로 이어지는 산길이다조천리를 내려오면 청도면이다. 급경사 내리막이라 내려오면서 펑크가 2번이나 났다. 청도면에는 자전거 수리점이 없기 때문에 예비 튜브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꼬불꼬불 까마득한 화악산 길을 넘다


▲ 청도면에서 화악산 산길 찾아가는 방법. 1) 청도면에서 밀양방면으로 3km 가다보면 다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고법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2) 작은 하천길을 따라서 다시 4km 가다보면 요고리(안국마을회관) 3) 요고저수지, 요고길(하천 옆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4) 작은 마을회관 옆으로 임도가 있다. 이곳이 화왕산 산길이다. 운주암 표지판을 쫓아서 가도 된다.

 

▲ 봉천재까지 2.4km 경사가 급해서 끌바를 해야 할 구간이 많다. 임도를 오르다보면 왼쪽 산허리에 박힌 송전탑이 보이는데, 저곳으로 765kv 전류가 흐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 봉천재를 몇백미터 앞두고 뒤를 돌아보면 영취산과 이어지는 관룡산(740m), 열왕산(663m)이 보인다. 봉천재에서 좌측으로는 운주암(자전거길 끝남), 직선방향으로 재를 넘어서면 대항리(좌측), 평밭마을(직진방향) 갈림길이 나온다.

 

▲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작은 계곡을 지나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이 나온다. 평밭이라는 이름답게 400미터 고지에 넓고 평평한 들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마을 위로 송전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중이다.


항일무장투쟁 전사의 고향 밀양을 가다


▲ 밀양 의열단루트(25km)

위양지-밀양연극촌-밀양방향24번 국도-(좌측)청운마을-덕곡마을-제대사거리-송악마을(아가페어린이집)-박차정열사 묘소(독립투사이자 김원봉의 아내, 송악공동묘지)-제대사거리-밀양고등학교-내이동우체국-(좌측)해천길(현재 공사중)-김원봉.윤세주생가터-밀성고등학교-교동사거리-(우측)밀양독립운동기념관(밀양시립박물관)-밀양관아-영남루

 

▲ 평밭마을을 넘어서면 위양리까지 내리막길이고 밀양이 한눈에 잡힌다. 산길을 내려와서 좌측에 보이는 작은 연못은 위양못(위양지)이다

 

▲ 경칩을 앞둔 위양지. 신라시대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5월에는 이팝나무가 어울어져 찾는 사람이 많다. 위양지를 한바퀴 돌아서 둑 아래 농로를 따라서 1~2시 방향으로 가다보면 밀양연극촌이다.

 

▲ 밀양연극촌(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78). 폐교(구 월산초등학교)된 자리에 1999년 밀양연극촌이 개관했다. 문화게릴라로 불리는 이윤택 예술감독의 연희단거리패가 중심이 되어 가마골소극장, 우리극연구소 등 한국의 연극패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매년 여름에 밀양연극공연축제가 열린다


  • 작품명 : 약산 아리랑
  • 연   출 : 이윤택
  • 출   연 : 연희단거리패 및 우리극연구소 배우 
  • 시   간 : 100분  
  • 작품설명 : 2009년에 초연된 약산 아리랑은 밀양이 낳은 항일투자 김원봉, 그의 아내 박차정, 윤세주, 한봉근, 최수봉, 김익상 등 일제시대 젊은 아나키스트들의 질풍 같은 삶과 여정을 한국적 뮤지지컬로 재창조한 작품
  • 올해 5월에 공연이 열린다고 함


▲ 밀양시 내이동에 있는 김원봉 생가터를 알리는 작은 비석. 약산과 석정의 생가터는 찾기가 어렵다. 내이동우체국에서 밀양시청 방향으로 샛길(하천복원 공사중)을 따라서 50여미터 가다보면 차들이 주차된 공간이 나오는데 그 한 켠이 생가터이다. 이곳을 자주 지나다녔던 나 역시도 몰랐으니 지도 앱으로 주소를 입력해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주차장 구석에 작은 비석이 방치되어 있었다그리고 바로 옆은 윤세주 열사의 생가터이다. 역시 작은 간판 하나가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하천이 복원되면 기념관은 아니더라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태어난 위대한 혁명가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조선의용대 기념사진(1938. 10. 10)

석정 윤세주 열사(1901~1942). 3.1독립운동에 참가를 시작으로 조선의열단, 조선민족혁명단, 남경조선혁명간부학교를 창립하고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중국항일전쟁에 참가했다. 1920 경찰에 체포되어 8년간 투옥되어었으며, 1945 528 태항산에서 적탄에 맞아  순직했다.

 

▲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 약산(若山) 김원봉 (金元鳳, 1898 ~ 1958?). 경남 밀양출생의열단 단장, 혁명간부학교 교장, 민족혁명당 당수, 조선의용대 총대장, 한국광복군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임시정부 군무부장 역임했다.


▲ 우리나라 3대 누각(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 중 하나인 영남루. 1365년 고려 공민왕 때 세운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 객사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다. 밀양강을 끼고서 체육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길을 따라서 가면 낙동강을 만나게 된다. 

 

▲ 미르피아오토캠핑장 찾아가는 방법( 24km, 1시간30분). 밀양교(영남루 앞)-강변자전거도로(체육공원)-용두교-강변자전거길-예림교-예림교사거리에서 좌측 둑 아래 길 국립종지원-낙동강자전거길(안동댐 방향)-미르피아오토캠핑장


▲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쉼터(밀양시 상남면 외산리).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 강이 넓은 만큼 바람도 세고 차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미르피아오토캠핑장이 나온다. 자동차를 주차해둔 진영에 도착한 시간은 7시가 넘어서였다. GPS 앱은 125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역사를 묻다


해방 이후 조국에 돌아온 약산은 조선인민공화국(1945.9.8) 내각 군사부장에 선임된다. 신탁통치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그가 찬탁운동에 가담하면서 임시정부와 결별한다. 이후 우익과 친일파로부터 정치테러를 당하게 된다. 1947년 3월,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는 등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자 김원봉은 충격에 빠진다. 


그의 정신적 동지였던 여운형이 암살되자 장례를 주관하고, 1948년 4월19일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남한측 대표로 김구, 김규식, 박헌영과 함게 북한으로 넘어간다. 회의 이후 김원봉은 북한에 잔류하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검열상에 오른다. 


1958년, 옌안파와 함께 숙청되면서 남한과 북한의 역사에서 약산은 금기시 된다. 약산이 북한에서 숙청된 계기는 김일성의 정책, 특히 한국전쟁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위스처럼 중립국 형태의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가 북한에 남게 된 계기는 "북한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한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사마로에게 보낸 편지)고 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약산의 형제 4명과 사촌동생 5명이 보도연맹으로 몰려 살해당했다. 그 과정에서 약산의 동생 김봉철, 김학봉이 살아남았고 그의 아버지는 외딴 곳에 유폐되었다가 굶어 죽었다. 1980년대 이후 남한에서 재평가 여론이 일면서 훈장 서훈이 추진되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 


"김약산은 고전적인 유형의 테러리스트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상해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김약산은 언제나 조용하였고체운동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거의 말이 없었고 웃는 법이 없었으며, 도서관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투르게네프의 소설아버지와 아들 좋아했으며, 톨스토이의 글을 모조리 읽었다. 그는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모두 그를 멀리서 동경하였다. 그가 대단한 미남이었고, 로맨틱한 용모를 갖고 있기 문이었다. 한국의 톨스토이주의자 다수가 테러리스트로 되었다. 이것은 톨스토이 학이 결코 해결될 없는 모순들로 가득 있고, 그러므로 해결책을 구하려는 맹목적 노력 속에서 직접적인 행동과 투쟁으로 나아갈 필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아리랑



  1. 의열단 (義烈團) 의열단은 공약 제1조에 ‘천하의 정의의 사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에서 ‘정의’의 ‘의’와 ‘맹렬’의 ‘열’을 따왔다. 1919년 11월 10일 중국 길림에서 김원봉•윤세주•한봉근•한봉인•김상윤 등 13명과 결의, 의백으로 김원봉이 추대되었다. 의열단은 폭탄 국내 반입의거, 부산경찰서장 폭사의거, 밀양경찰서 폭사의거, 종로경
찰서 폭파의거, 일본 육군대장 저격의거, 일제 밀정 처단의거, 경북 의열단 사건, 동양척식
주식회사와 조선식산 은행 습격 의거 등 항일운동에 큰 행적을 남겼다. 의열단이 정한 암살대상, 이른바 칠가살(七可殺)로 다음과 같다. ①조선총독 이하 고관 ②군부 수뇌 ③대만 총독 ④매국적 ⑤친일파 거두 ⑥적의 밀정 ⑦반민족적 토호열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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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봉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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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라이더는 길과 도로가 전부다. 길은 벗이지만 도로는 적이 될 때가 많다. 길은 울퉁불퉁하고 불편하지만 자연과 더 가깝고 그만큼 즐거움을 준다. 도로는 라이더의 질주본능을 자극하지만 자동차 매연과 자연을 희생 위에 세워진 길이어서 불편한 존재다.  


작년 여름 4대강, 국토, 섬진강 자전거도로 종주를 끝내고 나서 블로깅을 하려던 마음을 먹었다가 접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을 기대하고 나섰지만 보로 강물을 막고 강은 예전의 그 강이 아니었다. 둑방과 마을길을 두고 습지 위에 만들어진 아스팔트 도로를 달릴 때 라이더로서 원죄의식이 어깨를 짓눌렀다. 4대강자전거도로는 길이 아니라 도로였기 때문이다.

 

남강자전거길 역시 국토해양부의 4대강사업 중 47공구에 해당된다. 경남 의령군 지정면에서 시작해서 진주시 남강댐까지 약 90km에 이른다. 남강 자전거길이 4대강 자전거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습지나 농지를 건드리지 않고 둑방(제방)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점은 지금 한창 공사중인 섬진강 자전거길과 비슷했다. 그래서 길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섬진강 자전거길(구례 인근) 우리나라 자전거길 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하는 곳은 섬진강이다. 생태와 문화를 잘 살려냈고 자동차들로부터 외면당한 도로를 활용해서 자전거 타기에 재미있고 좋은 길이었다.


부산, 창원, 김해, 양산에서 남강 자전거길을 가기 위해서는 낙동강(남지읍)으로 가야 한다. 남지는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남강댐에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버스나 KTX를 이용해서 진주로 가서 역으로 라이딩하는 것도 방법이다.


경로요약

▲ 일자 : 2013. 2.21()~2.22()

 거리 : 163km

 시간 : 15h9m(12:09 PM ~ 2.22 7.41 PM)

 경로보기 : http://runkeeper.com/user/dolbae/activity/150977403

 주요경로 : (주의해야 할 구간 붉은색) 

  • 경남도청(경남 창원시)-창이대로-원이대로(25)-도계교차로(의창대로)-의창검문소(갓길없음, 공사중)-용강마을회관-동읍소방서-동읍로(30, 주남저수지 방향 좌회)-주남로-주남저수지생태학습관-가술산남로(좌회전)-주남환경스쿨-죽송로(동면교회에서 우회전)-대산북로(60, 좌회전)-낙동강 자전거길-본포교(본포교 아래 자전거길 없음, 본포교 건너야 함)-낙동강자전거길-창녕함안보(건너감)-낙동강자전거길-계내삼거리-공장지대(칠서산업단지)-공단사거리(우회전)-장암보건소-구혜마을-구룡정사거리(지정방향)-남강자전거길 시작(사거리에서 100미터 왼쪽 둑길)-하기둑길(길 중단됨, 평기동마을회관으로 들어가야함)-평기언덕길-처녀뱃사공노래비-악양교-함안둑방(흙길이라 MTB가 아니면 끌고 가야 함, 경치좋음)-삼태삼거리-이목골로(S오일주유소에서 좌측방향)-백산둑길-사정동복지회관(길없음, 마을로 들어와 좌측 장백로 방향)-장백로(1040)-정주삼거리(우측 법수방향 1040)- 의령둑길-의령철교-휴카페(좌측)-남강로(1040)-둑길(골프장 옆)-남강로-화양둑길(벚꽃가로수)-화정로-화정둑길-화정로-금동교-좌측 산방산길-마한둑길-마호둑길-마한로(1040)-덕곡교-덕곡둑길-강변옆 비포장도로(확신할 수 없음. 길을 찾지 못해 진의로를 이용했음. 이 방향 길 인도 좁고 차량이 많아서 추천하지 않음)-송곡마을회관-집현둑길-남강로(1013)-덕오교-진주남강자전거도로-남강교(아래)-상평교(아래)-진양교-(아래)-진주교(아래)-진주성-남강댐(개인일정으로 상평교까지만 갔음)


창원에서 주남저수지 방향으로 가는 고개는 현재 공사중이다. 도로가 좁고 갓길이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창원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은 사격장 뒤 '소목고개(비포장 임도)'를 넘어 주남저수지로 가는 길을 이용한다. 


대한민국 철새도래지 주남저수지. 최근 찾아오는 철새 개체수가 줄고 있어 라이더로서 안타깝다. 주남저수지에는 습지체험관과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주남저수지에서 '본포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낙동강자전거도로를 만나게 된다. 멀리 보이는 곳이 본포교, 낙동강 종주나 남강종주를 하기 위해서는 본표교를 건너가야 한다. 다리 아래 길은 외산리, 이령리로 이어지는 산길이고 경사가 심하다. 


남한강 자전거도로처럼 낙동강에도 작은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이 많이 다닌다고 한다. * 버섯이 많이 들어간 토스트와 원두커피를 합쳐 5천원. 



창녕 길곡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서면 넓은 낙동강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이 고개는 외산리를 돌아나온 물줄기가 본포리에 닿기전에 생겨난 삼각지가 있었다. 


칠서산업단지(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남강자전거길을 시작하려면 박진교(남지교에서 약 1시간, 16km)까지 가야하지만 칠서산업단지를 지나서 장암보건진료소(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1200)로 가는 것이 좋다. 


장암보건진료소를 지나자 마자 오른쪽 언덕을 오르면 남강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다. 비포장 둑길을 따라 2km 가다보면 남강자전거길이 시작된다. 남강은 남지(경남 창녕군 남지읍) 상류에서 낙동강 물줄기가 한층 넓어진다. 


구룡정사거리에서 지정면(의령군) 방향으로 가다보면 자전거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왼쪽 둑방길에서부터 남강까지 약 90km. 


자전거와 농기계가 함께 다니는 하기둑방길. 4대강과 달리 남강은 강변에 농지가 많다. 친환경 농업을 한다면 공원보다는 농지를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 방안으로 생각된다. 


무등고개. 하기둑방길은 약 2.5km에서 끝나고 하평마을로 내려와 무등고개를 넘어야 한다. 



처녀뱃사공 노래비.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고 윤부길(가수 윤향기, 윤복희의 부친)씨가 한국전쟁 피난시절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던 중 여기 대산면 악양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 나루터에는 군에 입대한 후 소식이 끊긴 박기준(한국전쟁중 전사)씨를 대신하여 여동생 등 두 처녀가 교대로 노룻배의 노를 저어 길손을 건내주며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애절한 사연을 들은 윤부길씨가 “낙동강 강바람…”라는 노랫말을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의 노래로 1959년에 ‘처녀뱃사공’이 발표되어 국민 애창곡으로 널리 불려지게 되었다. 출처 : 노래비(함안군)


자전거도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함안 둑방길. 함안 둑방길에는 부드러운 흙이 깔려 있어 자전거를 타기에는 불편하지만 옛날 둑방길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굳이 자전거를 탈 필요없이 내려서 끌고가는 매력도 있다. 함안 둑방길은 마라톤대회, 가을에는 코스모스 축제로 유명하다. 


모래톱이 살아 있는 남강 그리고 등이 굽은 사평재(경남 함안군 법수면). 강과 길이 만나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붉은악마의 원조라 불리는 홍의장군(곽제우) 동상과 정암루, 솥바위가 있는 의령. 이곳에서부터 강 건너 자전거도로를 타게 된다. *홍의장군 동상옆 힐링카페는 아늑하고 커피가 구수하다.


10년을 내다보고 심은 벚꽃길 화양제(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이리). 화양제는 6월1일 의병의 날을 기념하여 '의병마라톤대회'의 중요한 코스다. 몇년 뒤 봄이면 남강과 어우러져 흩날리는 벚꽃을 볼 수 있다.


진주와 의령을 잇는 지름길인 자릿대재와 산방길. 의령군 화정면 금동리에서 진주시 대곡면으로 넘어가는 절벽 위 꼬부랑 고개가 있다. 이 고갯길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거리는 약 5km.  


산방길은 남강자전거길 코스중에서 가장 경사가 심하다. 고도차가 150미터, 일부 구간은 비포장이기 때문에 준프로급 라이더가 아니면 여러번 끌바를 해야 한다.  


산방길을 내려와 대곡리, 마진리 둑방길을 지나면 월강교(경남 진주시 대곡면 덕곡리)가 나온다. 표지판은 덕곡리둑방길을 따라가라고 나오지만 둑방길 끝 지점에 정확한 표시가 없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길은 확인하지 못했고, 녹색선(덕곡리 농로, 노인요양원이 있는 고갯길)으로 가는 것이 좋다. 파란색 길은 갓길이 없고 차량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진주(상평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남강댐까지는 11km 남았지만,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경상대학교 후문 'Evans'로 자전거를 몰았다. 숙박을 하려는 라이더는 상평교 근처에서 모텔을 구하는 것이 좋다. 


경상대학교 후문 'Evans'에서 열창중인 인디밴드 바나나코(https://www.facebook.com/ralalamusic)

바나나코에서 작년 9월에 발매한 싱글앨범 <그냥, 랄라라>를 부르고 있다. 


<그냥, 랄랄라>는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아이튠즈에서 바나나코 노래를 들으며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 했다.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진양호를 따라서 하동 옥종면 자전거길을 탐사하고 캠핑장을 이용하면 좋다. 진주에서 일정을 마칠 사람들은 진주성과 진주의 맛집을 탐사하고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냥, 랄랄라>

흔들리다 문득 꿈이란걸 알고는 
방구석 깊숙한 곳 절묘한 각도의 눈빛에 눈뜬다.

여신의 손을 잡고
날 비웃는 사람들에게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요란하게 다가오는 우울한 것들의 소리에
달콤하게 흘러가던 일상이 밟힌다. 슬프다.

여신의 손을 잡고
날 비웃는 사람들에게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랄랄라

http://youtu.be/0vw7NYx5U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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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 남강댐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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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전라남도 남해안 자전거 여행 

 

23일 일정으로 고흥반도와 완도, 해남, 강진을 거치는 전라남도 남해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 전라남도 5개 군을 자전거로 달렸고 때로는 배를 타고 다도해 섬을 지났다. 이번 여행은 스테판(Stepan ; 다혼 벡터X27[각주:1]-2011의 애칭)과 함께 했다. 자전거의 이름을 스테판이라 명명한 것은 스웨덴의 작가인 헬레나 윌리스[각주:2](Helena Willis)의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말 이름에서 따왔다.

 

일정 : 2012.5.26 ~ 5.27

거리 : 280km (배로 이동한 거리 제외)

경로 : 보성군, 고흥군, 완도군, 해남군, 강진군

   - 1일차 : May 26, 2012  ::  7:26 AM - 8:35 PM / 경로 자세히 보기

               낙안읍성-벌교-여호항-남열해돋이해수욕장-해창만-외나로도

- 2일차 : May 27, 2012  ::  9:11 AM - 6:36 PM / 경로 자세히 보기

               내나로도-발포리-녹동-도선(금일항)-금일도(일정항)-도선(당목항)-조약도-고금도

               고금도(상정항)-도선(당목항)-신지도(송곡선착장)-신지대교-완도(해변공원)

- 3일차 : May 28, 2012  ::  9:21 AM - 1:34 PM / 경로 자세히 보기

                 완도-장보고기념관-청해진로-완도대교-신남교-해안관광로-강진베이스볼파크-강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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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낙안읍성에서 벌교

 

25일 오후 네 시, 여수엑스포를 관람하고 타고 온 자가용을 직원에게 맡기고 스테판과 나, 이렇게 둘은 순천시내에 덩그러니 남았다. 작년 이맘때 쯤 순천만에서 벌교까지 라이딩 한 기억이 떠오른다. 만약 한 시 경이라면 그렇게 가도 나쁘지 않겠지만 지금은 무리다. 하는 수 없이 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벌교로 가기로 했다.


스테판은 허리가 접어지는 녀석이라 기차, 버스, 택시 어디든 쉽게 무임승차 가능하다.  벌교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450. 태백산맥문학관을 둘러 보고 벌교 꼬막과 희정할매곱창구이(857-1387)의 유혹을 뿌리치고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벌교에는 터미널 옆 모텔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묵을만한 숙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낙안읍성에 가서 초가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이 미뤄왔던 계획이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스테판낙안으로 가는 보리밭에서


      벌교에서 낙안읍성까지는 넉넉잡아서 40분이면 충분하다. 자전거 전용 도로는 없지만 조정래길로 명명된 도로와 낙안벌판은 다리 근육을 푸는데 제격이다. 낙안읍성 매표소에서 입장료(2천)을 지불하고읍성 가운데 있는 잔디민박(016-9609-6664)’을 숙소로 정했다캠핑을 해도 좋을 만큼 넓은 잔디밭이 매혹적이다.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니 화장실이 딸린 큰방에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해서 4만원인데 5천원 깎아서 3만5천원을 지불했다. 민박집에서
휴대폰을 충전시켜두고 저녁 끼니를 때울 겸 주막을 어슬렁거렸다. 민속마을 안에는 주막집이 두 곳인데, 음식이 예전만 못했다. 을씨년스러운 장터에서 국밥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서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읍성을 둘러봤다. 

  

낙안읍성의 백미, 돌담길과 초가 스테판과 묵었던 잔디민박 전경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3~4만원대 민박집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민박집이 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방이 없는 걸로 착각할 수 있다. 제주도의 전통 대문인 '정낭'을 활용하거나 낙안읍성의 전통을 살린 안내표지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안읍성은 벌교와 순천이 가까워서 가족단위로 관광을 오는 외국 친구들에게 소개하기에 좋은 곳이다. 하지만 홈페이지 콘텐츠가 부실하고 온라인 예약시스템은 없다. 또한 주막의 음식이 맛깔스럽지 못하며 초가집 컨셉을 제외하고는 집집마다의 특색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     낙안읍성 저녁풍경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초가집은 참 평화롭다.

    저녁 안개에 질세라 밥짓는 연기도 달콤하다. 

    고즈늑하다, 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낙안읍성.


  


 

바다를 벗삼아 고흥반도를 달리다 


 

5월26일 오전 726, 첫 라이딩을 시작했다. 민박집 대나무 문을 열고 나와서 읍성의 남쪽 문을 빠져 나왔다. 어제 왔던 조정래길(857) 대신 보리가 익어가는 들판과 마을길로 갔다. 보리밭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서 원동마을, 연동마을, 중흥마을을 지나서 벌교를 앞두고 어제 왔던 조정래길(857)에 합류했다


  •  벌교 꼬막정식 
    오전 8시, 벌교에서 꼬막정식으로 아침 
    아침 치고는 값이 비싸지만(1만5천원), 
    장거리 여행을 위해서 칼로리 보충 필요 








벌교에서 아침을 먹고 고흥으로 들어가는 나들길을 찾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위치와 경로를 확인했다. 삼광중학교 정문(장좌육교 교차로)에서  벌교장례식장 방향의 남하로(843)를 나들길로 선택한다. 2차선 도로지만 자전거 두 대 정도는 지날 수 있는 길이 있어 라이딩 하기에 좋다

 

삼광중학교에서 대포리 마을회관까지는 약 10km. 대포리부터는 갯벌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물만난 짱뚱어처럼 즐겁다. 해안 가까이서 달리고 싶은 욕망이 핸들바를 비틀지만 초행길이라 되도록 모험을 하지 않았다. 새로운 길을 달릴 때의 스릴도 있지만 돌아 나와야 하는 고통도 따르기 때문이다.  



  •  죽암마을 갯벌
    갯벌에는 게와 짱뚱어가 지천이다. 
    짱뚱어는 게으르면서도 친절하다
    할머니들이 몸이 불편한 걸 생각해서 마을 앞까지 와서 '날 잡수시오하며 어슬렁댄다. 
    죽암마을 할머니들은 잡을 생각을 않는다.

  








죽암마을에서 800미터 지나면 작은 방조제가 있다. 고흥에서 처음 만난 방조제다. 방조제를 지나면 삼거리(남양면왕주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 망월로를 따라 갔다. 망월로부터는 왼쪽 바다가 깊어진다. 삼거리에서 4.5km 가다보면 마을숲(방풍림)이 보인다. 신정은하수꼬막마을 아랫쪽에 있는 마을숲의 이름은 '고흥월정리 해안방풍림(전라남도 기념물 제116)[각주: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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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정리방풍림
    길이만도 400미터에 이르고 100여년 이상된
    이팝나무와 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지름 3m가 넘는 사철나무가 유명하다. 









월정리 마을숲에서 땀을 식히고 시계를 보았다. 10시30분, 해가 다리에 붙었던 해가 엉덩이에 붙기 시작한 시간이다. 월정리 팽나무의 짙은 그늘에서 보란듯이 나태해진 고양이가 되고 싶었지만, 벌써 한 시간 째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월정리 마을숲을 뒤로 하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망주초등학교에서 남양로(과역면 방향)를 따라서 과역면까지 약 14km. 15번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가 뚫리면서 남양로는 자전거 천국이다. 차가 없는 평지에서 미니스프린터답게 스테판이 미친듯이 질주한다. 클립신발을 신고 왔다면 더 빨리 달렸을 것 같다.

 

과역면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물과 간단한 과자를 샀다. 석봉리 호덕마을, 신곡리 인학마을, 신기, 신전마을을 경유하는 과역로(843)로 스테판을 몰았다. 점암초등학교에서 다시 지도를 확인한 후 여호항으로 향했다. 

 

여호마을 끝자락에 붙은 하얀 등대 갈대밭 너머 여호항 등대와 여수만이 보인다.

 

여호마을은 외딴 곳이라 두 발로 갔다가 다시 두 발로 돌아 나와야 한다. 여호 앞바다는 물이 깊고 옥빛이다. 이곳에는 여수엑스포 아쿠아리움에 갇혀 있는 흰고래 Beluga가 살 것 같다. 벨루가는 툭 튀어나온 이마에 하얗고 매끈한 몸에다가 항상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의 고래다. 새소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어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불린다.

 

흰 고래 벨루가에게 바친 스테판 벨루가 맞은편 붉은수염고래

 

여호마을을 빠져 나와서 방내마을로 업힐을 시작한다. 팔영산을 왼쪽에 끼고 나팔꽃이 무성하게 핀 방조제를 지나면 점안면 오산리에서 고개가 나타난다. 초반 라이딩이었다면 저속으로 올랐겠지만 중간쯤 가다가 끌바로 오른다. 

 

고개를 넘으면 산성삼거리까지 시원한 내리막길이다. 용암, 간천마을 방향(좌측)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해맞이로(남열해수욕장방면 Namyeol Beach) 가는 길은 고흥반도에서 표고차가 심한 곳 중 하나다. 하지만 노란 꽃들이 몸을 흔들며 라이더를 반겨 준다. 


우전리에 심어진 꽃길은 라이더 힘이 된다.고흥반도의 다랭이 논과 사자바위


우천마을에서 난이도 높은 업힐이 시작된다. 클립형 신발이었다면 불편했을텐데, 아무래도 장거리 여행에서는 평페달이 편할 때가 많다. 페달에서 발을 떼고 고개를 조아리며 길을 걷는다. 왼쪽에 넓은 푸른 바다와 다랭이논이 펼쳐져 있다. 


오후 3시10분(산성삼거리에서 8km)  거의 40분이 걸려서야 고개(전망대 : 발사체 모양)에 오를 수 있었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고개 너머에는 상상 그 이상의 풍경이 펼쳐졌다그동안 끌바로 고생한 투덜거림은 한순간이다. 남열해돋이해수욕장 하얀 포말이 손짓에 고생했던 기억들은 사라진다.  


  •   남열해돋이해수욕장

    하얗게 포말이 이는 곳이 해수욕장

    해수욕장과 마을 사이에 짙은 소나무 숲이 있다. 

    바다 건너 보이는 섬이 나로도다.



갈대로 만든 파라솔과 깨끗하고 넓은 모래해변 울창한 소나무 숲은 캠핑족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닷가 파라솔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바닷물에 발을 담궜다. 태양열휴대폰충전기를 꺼내 충전을 하고 의자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개인적으로 제주도 표선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해수욕장이 아닐까 싶다. 


음식점과 편의시설이 없는 게 흠이지만, 오히려 이 흠이 다른 해수욕장과 확연히 구분된다. 필리핀 팔라완에 있는 모 휴양지처럼, 말 그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해수욕장으로 그대로 남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행정당국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캠핑족들이 무단으로 소나무 숲에 차를 몰고 들어와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300여대 규모의 넓은 주차장이 가까이 있지만 저마다 차를 몰고 숲으로 들어왔다. 우리나라 캠핑 문화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안타깝다. 


남열마을과 바다 풍경. 두고 온 남열해돋이해수욕장이 눈에 아른거린다. 

 

해돋이해수욕장 고개 너머에는 남열마을이 있다. 남열마을에서부터 지붕없는 미술관(전망대)까지 1km 업힐이 시작된다. 해돋이해수욕장에서 눈요기를 했으니, 이제부터 고생길 시작이다. 다행히 지붕없는 미술관을 지나면 영남면까지 시원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바다를 곁에 두고 라이딩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 기분은 사뭇 다르다. 바다가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힘든 구간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래서 푸른 바다는 혼자 여행하는 자전거족의 든든한 벗이다. 


영남면을 1km 앞두고 바다와 다시 멀어진다는 게 아쉬웠다. 지도상에서 볼 때는 임도가 아닌 포장길로 표시되어 있었다.  뱀처럼 휘워진 구불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원하게 뚫린 아스팔트로 갈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핸들을 꺾었다.  


좌측으로 농로를 타고 가다보면 작은 방조제가 나온다. 방조제 끝 지점에 민가(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심) 옆으로 임도가 시작된다. 오후 5시. 햇살은 길어지고 산은 짙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산에서 나오는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끌바로 산길을 오른다. 


금사리마을까지 약 9km. 일부 구간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멘트길이지만, 잔돌이 많아서 차마 스테판을 타고 지날 수 없었다. 타이어가 얇아서 펑크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스테판은 처음으로 상전 대접을 받았고, 나는 푸른당나귀(MTB)가 그리웠다. 

  

MTB가 아니라면 영남면으로 영남면 임도로 들어가는 입구(좌측)

비포장 길이 대부분인 임도 황토길에서 한 컷

 

길은 힘들지만 호젓한 바다가 있어 상쾌하다. 다도해의 이름모를 섬들과 아름다운 갯벌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고흥 바다와 갯벌은 경남 지역의 섬들과는 다른 원시적인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잘 보존된 환경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으로 여기고 잘 가꾸고 보존해줬으면 좋겠다. 

 

임도 중간에서 본 갯벌과 무인도 금사리 항구와 소나무 숲 황금빛으로 물든 금사리 갯벌

 

금사리에 도착한 시간은 6. 지금까지 90km를 달렸고 8시간 가까이 스테판과 함께 했다. 체력이 고갈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무릎에서 오고 있었다. 30km를 더 달려야 외나로도까지 갈 수 있다. 보통 페이스라면 2시간 뒤면 외나로도에 도착할 수 있다. 


그동안 고장없이 달려 온 스테판을 격려하며 해창만(팔영로 77)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옥강삼거리에서부터 좌측 우주로(15)를 따라 2km 업힐이 시작된다. 특히 봉암삼거리에서부터 옥강리 고개까지 업힐이 심하고 갓길이 없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외나로도까지 17km. 

 

공사가 한창인 해창만 자전거 도로 해창만과 병풍처럼 선 팔영산

봉암삼거리에서 옥강리 고갯길 옥강리 고개에서 99.99km 돌파


옥강리 고개에 오른 시간은 오후 7시(100km 지점). 10km 이동하는 데 1시간이 걸린 셈이다. 우산리 고개에서 내나로도까지는 내리막이라 금방이다. 우산마을을 지나 동래도삼거리에 이르면 내나로도가 손에 잡힌다. 


우산마을에서 나로대교까지 시속 40km/h 이상 속도로 질주한다.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고 나로대교에 도착했다. 나로대교는 자전거와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이 따로 있지만, 다리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자전거 도로가 없고 대형차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내나로도로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외나로도로 가는 길


내나로도(7시22분)에서 나로2대교, 최종 목적지인 외나로도 여객선터미널(봉래면)까지 약 한 시간이 걸린 8시30분에 도착했다. 외나로도 여객선터미널에는 원양어선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횟집과 식당에서 배를 채운 관광객이 드문드문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인공위성이 발사된 나로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 자전거족이 다니기엔 위험한 도로였다. 관광지라서 인심도 그렇고 음식도 별로였다. 특히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해 호텔에서 묵었는데 무려 10만원을 지불했다.


외나로도에서 녹동이나 완도로 이동해서 자전거 여행을 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말이 여객터미널이지 녹동이나 완도로 가는 배편이 없었다. 도로가 좋아지면서 섬과 섬을 이어주던 다리 역할을 하던 도선이 사라진 것이다.  


비싸지만 모텔급의 숙소에 누워서 텐트를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내일은 완도까지 가야하는데, 나로도의 끔찍한 도로에서 스테판을 타는 것이 두려워 진다. 배로도 갈 수 없으니 새벽에 나로우주센터까지 갔다가 택시로 나로도를 빠져나올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미니벨로로 117km를 달렸으니 후회는 없다. 다리가 놓여졌지만 나로도는 참 외롭고 고독했다. 

 

먼 바다에서 돌아와 불밝히며 작업하고 있는 원양어선.

 

PS로도 여행을 계획하는 라이더가 있다면 내나로도 동일면에 있는 동포갯벌생태체험장(011-604-4903, 061-834-4903)을 권한다. 소나무 숲에 섬처럼 아늑하게 자리잡은 펜션인데, 가족단위로 묵어도 좋을 것 같다. 또는 나로2대교 건너기 전에 하얀노을호텔도 좋다.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아 시설이 깨끗하다. 



나로도공용터미널 버스시간표




  1. 다혼 벡터X27 2010년 단종된 ‘스피드 프로 TT’ 후속 모델로 폴딩형 미니스프린터의 계보를 잇고 있다. 벡터 시리즈는 내장기어와 휠셋, 티아크라 STI 레버가 장착되었다. 7005번 알루미늄 프레임에 스램 내장 기어와 시마노 변속계가 특징이다. 뮤시리즈처럼 프레임이 곡선형을 유지하고 있고 이전 모델보다 강성을 유지한 탓에 무게는 10.2kg으로 증가했다. 불혼바는 장거리 라이딩시 편안함과 속도감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만 업힐시 상당한 힘이 요구된다. 자세한 내용은 : http://bikem.co.kr/content/read.php?num=2287 참조 [본문으로]
  2. From "Olga and Stefan and dig gold," children's book, Raben & Sjogren, fine art on www.hoppahage.se [본문으로]
  3. 월정리 방풍림(Windbreak Forest in Woljeong-ri, Goheung) This forest is an artificial forest which the people of the community planted to protect against the wind. Every yeor they hold a special memorial service called “Byeolsinje” on the first Full Moon day of the year after choosing a big zelkova tree from the forest to serve as the Holy Spirit, Where an altar is embanked around it. [본문으로]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424일 일요일 해운대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삼랑진으로 갔다. 첫 출발지로 삼랑진으로 선택한 것은 낙동강, 봉하마을, 주남저수지로 이어지는 생태 라이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을 노공이산(盧公移山) 낮춰 부르며 봉하마을과 주변 생태계를 친환경적으로 복원한 한 바보의 행적을 답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는 생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로 자신을 버려달라고 유언했다나는 정치와 경제에 관해선 젬병이라, 예전부터 노공이산의 봉하마을 생태환경 조성에 관심이 많아서 자전거로 호흡하며 느껴 볼 생각이었다. 또한 그 길을 자전거로로 가보려는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노공이산의 농촌의 생태복원은 미완성이다. 삼랑진에서 출발하여 봉하마을을 기점으로 생태 라이딩 코스를 그려봤다. 파란색 선은 실제로 다녀왔던 길이고 붉은색은 추천하는 코스다. 괄호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낙동강을 너머 노공이산의 길

 

자전거를 내린 곳은 삼랑진역. 삼랑진(三浪津)은 밀양, 양산, 김해 가운데 있는 곳이다. 느린 유속의 낙동강에 층층이 쌓인 '충적토'는 비옥해서 일본 제국주의도 탐낼 정도였다.

일본침략 시절 경부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이자 일본의 농장주들이 모여살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삼랑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딸기가 재배된 곳이지만 4대강 공사로 향긋한 봄딸기를 맛 볼 기회가 줄어 든 것 같다.

 

 

  

봉하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낙동강인도교를 건너야 한다. 인도교 위는 낙동강 상류와 하류를 조망할 수 있다. 노공이산도 낙동강을 볼 때마다 손을 뻗어 잡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회상할 정도로 좋아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 낙동강은 4대강공사로 사람과 생물들의 생활 터전이 파괴되었다. 그나마 한뼘 남은 오염된 습지로 쫓겨난 개구리가 봄날 알에서 깨어나 호들갑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죽음을 목전에 앞둔 울부짖음이었다. 

 

모래톱이 사라지다

습지가 사라지다

농지가 사라지다

 

삼랑진에서 봉하마을은 사십 리(16km) 떨어져 있다.  인도교를 건너면 좌측으로는 생림면, 우측으로는 한림면으로 갈라 진다. 나는 마사리 고개를 넘어 모정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갔다. 고개를 넘어서면 넓은 벌판이 보이에는데, 모정마을을 지나 철길 옆 길을 따라 한림면으로 갔다. 한림에는 노공이산이 자주 갔던 화포천을 만날 수 있다. 

화포천은 노공이산이 자주 찾던 곳이다. 한림면 공장지대를 지나면 철길 옆 버드나무와 갈대가 우거진 늪이 나온다.  푸른 풀숲 사이로 개구리들의 소리가 맑다. 낙동강 개구리가 장송곡이라면 여기는 왈츠에 가깝다. 철도 공사로 아직 주변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화포천은 자연습지의 모습으로 되돌아 오고 있었다. 

 

어떤 이는 새만금을 예로 들면서 봉하마을 비전에 대해 일종의 쇼로 노무현을 반환경적인 사람으로 잘라 말한다노공이산도 새만금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지만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9조원이라는 막대한 국책사업을 접을 수는 없었다 

그를 지탱했던 상식원칙기준으로 봤을 때 새만금 사업의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는 국책사업이었다. 이른바 그는 설거지를 맡은 것이다. 어쨌든 노공이산은  대통령에서 물러나 봉하에 내려와서 봉하마을과 화포천을 친환경적으로 복원하려 했다. 

 

“나중에는 우리 농장 한번 보세요. 아니면 뒤의 숲을 한번 봐주세요. 또 화포천을 한번 봐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나 또는 다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와서 보고 그거 괜찮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생태환경을 최대한 복원시켜 보고 싶습니다. - 200889일 방문자들과의 대화  

  


개구리를 지켜주는 파수꾼, 학이 돌아온 마을

 

노공이산은 생태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개구리를 지켜주는 파수꾼 학을 자처했다. 개구리는 뱀의 천적인데, 학이 있으면 뱀도 개구리를 쉽게 잡아먹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균형이 맞춰진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각은 무척 자연스런 생태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때 학이 되고 싶었던 노무현에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2008년경 노공이산은 화포천과 수로를 청소하면서 갈대에 불을 놓는 사진을 보았다. 봉하마을 주변을 청소하면서 지저분한 갈대밭을 태운 것이었다. 나는 생명들의 서식지인 갈대에 불을 지른다며 비판했고 사람들로부터 급진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친환경 농사를 짓겠다는 노공이산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마자 
일반 정치인이 하는 언론플레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
갈대밭에 불을 놓아야 하는 지 고심을 했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글을 보면서 나의 성급한 판단을 반성하게 됐다. 

 

봉하마을로 가기 전 화포천 근처에 갈대로 지은 집이 있는데 용강사’라는 절이 있다. 용강사에는 스님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노공이산의 사진이 걸려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노공이산은 남녀노소에게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용강사 앞 낚시터를 지나서 비포장길로 들어서면 대통령의 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노공이산의 길이 시작된다.


2011년 봉하 들판

2008년 봉하 들판

2011년 봉하 습지


한림 정수장을 내려서면 푸른 들판과 부엉이 바위가 한 눈에 들어온다노공이산이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곳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노공이산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생태농업은 3년만에 30여만평에서 550톤의 친환경 쌀이 생산한다. 

찰보리가 자라는 들판에는 학 두 마리가 날개를 편다. 수로에는 수초가 돋아났고 인기척에 놀란 물고기와 개구리들이 물보라를 만든다. 논과 논 사이를 가르는 물길, 이 길은 노공이산이 화포천으로 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길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눈둑에 앉아서 부엉이 바위를 본다.
 
동네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농사를 짓던 그가 없지만 새파란 보리가 싹을 틔웠다. 화학비료가 뿌려지던 넓은 들에는 오리들이 뛰어놀던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이쯤되면 그에게 담배와 술 한잔 아니 건낼 수 없다.       

 

2010년 봉하마을 첫 가을걷이

2010년 봉하 오리쌀 첫 수확



사저밖을 나와서 모자를 벗고 손을 흔들어주던 그는 없지만, 그때와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주차장은 자연으로 돌아간 그의 흔적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촌로들이 절반 이상은 차지한다. 그들의 손에는 국화꽃과 주름진 추모의 기도가 있다.     

노공이산은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서 냉정하게 평가해주길 원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현학적인 분석을 내놓으며 그의 정책을 애둘러 희석화했고 
보수언론과 권력이 반칙적인 집중포화를 날렸지만 사람들의 '작은 비석'에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그가 봉하마을과 화포천을 친환경공동체로 만들었지만 외형적으로 봉하마을 밖으로 뻗어가지 못했다. 정조 이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쓴 인물을 담장 가까이에서 보고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올려지던 그의 글을 볼 수 있었던 행복한 추억은 사라졌지만, 당대의 객관적 증언자인 나 개인은 그가 남긴 숙제를 하기 위해 봉하를 떠나 주남저수지로 갔다.

노공이산이 남긴 숙제의 길

“생태숲, 생태농장, 생태습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해주고 기쁘게 해주는 자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약자인 개구리를 지키는 파수꾼 학이 좋습니다”

 

봉하마을을 벗어나면 공장지대가 모여 있는 본산이다. 우공이산은 생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본산지역 공장지대를 방문해서 간담회를 열었다. 주변 생태계와 공장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본산 공장지대를 2km 지나면 창원시 대산면의 평야가 펼쳐진다. 자로 잰듯 반듯한 농지는 봉하마을과 비슷했지만 이곳의 수로에는 녹조가 끼었고 각종 쓰레기로 넘쳐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먹는 사람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다.     

 

봉하마을 수로

대산마을 수로


외형적으로는 노공이산의 봉하마을과 비슷하지만 환경은 정 반대다. 자연환경을 배려하지 않고 비료와 농약으로 농작물을 키우는 것과 4대강사업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길이다.  

 

그나마 철새의 낙원이라 불리는 주남저수지에 도착했을 때는 한 숨 돌릴 수 있다. 주남저수지는 크게 신남, 주남, 동판저수지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대산면 보건소에서 신남저수지까지 대략 5km 거리다. 저수지 둑방길에 올라서면 물만큼 평평한 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둑방길은 노공이산이 삶과 닮았다. 물웅덩이도 많고 울퉁불퉁한 길이지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튀어오르는 진흙도 반갑고 길가에 핀 들꽃들도 가련하니 곱다. 오염된 길을 달려온 수고를 시원한 봄 바람이 간질거리며 씻어 준다. 해가 정수리에 있다면 둑방길은 바삐 갈 필요도 없고 그처럼 소걸음으로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 좋다. 

 

2008년 논길을 걷는 우공이산

2011년 주남저수지를 걷는 노인


 

신남저수지와 붙어 있는 주남저수지는 노공이산이 만들었던 습지의 축소판이다. 철새가 떠난 텅 빈 저수지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것과 같다고 느껴진다. 둑 아래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람사르문화관에서 책을 읽거나 연인의 손을 잡고 걷는 사람들이 있다. 

봉하마을에서 주남저수지까지 10km. 넉넉잡아도 자전거로 한 시간 거리다. 주남저수지의 풍부한 유기물이 대산면 평야를 적시고 봉하마을까지 이어진다면 우공이산의 꿈이 물길로 트는 것과 같다. 그 길위에 사람과 자전거가 다닐 수 있다면 최고의 명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남저수지 버드나무

주남저수지는 낙동가의 범람으로 만들어진 배후습지 중의 하나이다. 약180만평 저수지에는 국제 습지보호협약인 '람스르습지'에서 주목하는 철새 도래지이다. 주남저수지 탐조대 주변에 있는 '람사르문화관' '생태학습관' '주남환경스쿨'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과 생태탐방을 안내받을 수 있다. 또 생태학습관에서는 1~2인용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하는데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고 2시간 사용 가능하다. 초보자도 자전거로 주남저수지 주변 7~9km 탐방할 수 있는데,  3시간 정도면 봉하마을과 주남저수지를 충분히 둘러 볼 수 있다.  
- 홈페이지 : http://junam.kr


 
삼랑진에서 주남저수지까지 백리를 달렸으면 이제 
노무현식의 승부를 던져야 할 때가 온다. 서울, 부산, 전라도로 가야 할 사람들의 목적지는 창원시. 주남저수지 입구에서 동읍과 북면으로 나뉘는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노공이산이라면 어떤 길을 갔을까? 그의 말을 빌리자면 강물은 갈짓자로 흐리기도 하고 또 거꾸로 흐르지만 결국 바다로 간다.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처음 가는 길도 두렵지는 않다.

 

동읍으로 빠지는 빠른 길이 있지만 북면 방향을 해서 화목마을 감나무밭 언덕을 넘어가는 길을 선택한다. 화목마을 고개를 넘으면 고암마을이고, 큰 길에서 좌측으로 가면 대한마을이다. 곧은 아스팔트를의 유혹을 떨치고 곱사등처럼 굽은 길로 가는 재미를 맛보고 싶다면 대한마을에서 지도를 펼쳐보길 바란다. 

대한마을(오체향마을)에는 주말농장을 찾는 사람들로 울긋불긋했다. 농장 앞 울창한 소나무 숲에는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파헤치기 보다는 가꾸기를 원했던 노공이산은 “600년 된 성당보다는 600년 된 숲이 더 웅장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라는 생태적 명언을 남겼다. 

대한마을 주말농장에서 들판. 정면에 보이는 산을 넘어가면 창원시다.



대한마을에서 자전거로 창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속도로 아래 터널 2곳을 지나야 한다. 첫 터널은 남해고속도로이고 두 번째는 79번 국도 아래다. 오체향마을 주말농장을 뒤로하고 정면을 보면 철탑과 고속도로가 보인다. 제일 가까운 철탑 옆에 자동차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굴이 보인다.

굴현 고개를 넘어가면 창원고속버스터미널까지 10km. 창원시내에 들어서면 자전거전용도로가 있다. 창원에 도착했을 때도 봉하마을에서 자원봉사자가 달아준 바람개비는 여전히 돌고 있었다. 창원에 도착하기만 하면 버스나 기차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봉하에서 바람개비

창원에서 바람개비



ps. 노무현 가치를 내세운 후보가 패배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가 못다한 생태 네트워크는 점점 뻗어 나갈 것으로 믿는다.  
 

 

“왕과 귀족이 누리던 권리를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사회로 가는 것, 인간의 권리가 확대되어 나가는 게 역사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와 평등이 꽃피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게 진보입니다. 진보의 철학은 연대입니다. 가난한 사람끼리 의지하고, 또 힘 있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끼리도 의지하고,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이 의지하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의지하고 협력하는 사회가 진보의 가치입니다.

  
이동 경로
 * 봉하마을에서 유등면 대산미술관, 수산, 대산면 평야지대, 주남저수지 경로 추천 

위 고도표를 보면 3군데 정도 언덕이 있고 나머지는 평지로 나타난다.

삼랑진역 삼랑진 지하차도 - 송진초등학교 삼랑진소방서 낙동인도교 좌측 금곡로 모정마을 한림 한림343(영강사 방향)영강사 대통령길(봉하로) – 노무현대통령생가 봉하로 본산로(3거리에서 진영 방향 직진) – 한림로(본산교회에서 좌회전) – 본산교회에서 400미터지점 우암교 우암교 건너자 마자 좌측 진산대로260가술삼거리에서 대산 방향(직진) 대산면보건소 주남로(대산면 주민자치센터에서 좌측방향) – 교차로 200미터 지점에서 우측 방향 (대산면소방서에서 봉강가술로를 따라서 가도 된다) – 신남 마을까지 농로 계속 신남 배수장 둑방길 죽동길 주남3배수장 람사르문화관 가월교에서 좌측 교차로(동읍로 30)에서 북면방향 2km 지점에서 좌측 화목마을 방향(SK 주유소 전)구룡사(구룡암) – 암자 뒷길 고암마을 농장길 고암교에서 좌측 방향 대안마을회관 주말농장터 농로 남해고속도로 아래 터널 통과 터널 지나서 우측으로 50미터 내려와서 바로 좌측(생태농원) - 79번국도 아래 굴다리 통과 좌측 천주로 굴현고개 의안교차로에서 좌회전 창원39사 앞 사거리 도계광장교차로에서 좌회전 명곡동 두만강양꼬치 창원시외버스터미널  자세히 보기

 

사진으로 보기
 

기차에 자전거 싣기

삼랑진에서 봉하마을 방향잡기

삼랑진 소방서 지나서 낙동강 인도교

인도교 건너서 한림 방향

한림으로 넘어가는 언덕

언덕에서 방향잡기

한림면사무소 지나서 오른쪽 용강사 방향

한림 공장지대에서 용강사 방향

철길을 사이에 두고 화포천과 노공이산의 길이 있다.

용강사에 걸려 있는 노공이상 사진

노공이산 길

작은 비석을 찾아온 시민들

노공이산이 담배를 피우던 식당에서 장군차 국수를 먹다

본산방향으로 직진. 우측으로 꺾어서 가산리를 지나 유등리로 가는 코스도 좋다.

본산교회에서 좌측 방향

대산면으로 가는 소로

국도에서 대산면 방향으로 직진

주남저수지 상류 신남저수지

신남저수지 둑방길

신남 저수지 꽃길

친절한 길없는 표지판

주남저수지 둑방길

주남저수지 생태공원

4월 주남저수지

주남저수지 앞 꽃밭

주남저수지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주남저수지 람사르문화관

북면 방향으로 도전

구룡산 용천암으로 가는 길

화목마을 감나무 사이길

구룡암 소나무 길

구룡암 뒷길

고암마을 농장길

오체향마을회관에서 좌측 주말농장 방향

굴현 고개로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아래 터널

굴현고개로 가는 길

굴현고개로 가는 2번째 터널

굴현 고개 아래 산마루 식당

굴현고개 아래 창원시내로 빠지는 길

창원시내

명곡동 양꼬치 집

부산행 버스에 실린 바람개비와 자전거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메칸더V는 프랑켄슈테인?


벚꽃이 몇 남지 않은 가지에 붙은 꽃잎을 땅으로 호출하듯 자전거를 몰았다. 일본 원전 사고와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고장 소식은 자전거를 굼뜨게 만들었다. 솔솔 불어오는 봄바람에 노래라도 부르고 싶지만 메칸더V’는 원자력에너지에 힘을 얻는다며 세뇌당한 기나긴 세월이 한심하다.

 

메칸더V

<메칸더V> 1977년 일본에서 만든 SF애니메이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에 방송되었다. 메칸더 로봇의 가공할 힘은 원자력에너지였다. 도쿄전력이 만든 홍보영화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 무적의 메칸더 V되여 원자력 에너지에 힘이 쏫는다 ... 랄라라라랄라라라 공격개시 ... " 



45억년 전 지구는 방사능으로 불덩어리로 존재했다고 한다. 방사능이 지구 깊숙한 핵 속으로 사라지고 그곳에 바다와 육지가 생겨났다. 원자력 에너지는 우라늄이라는 돌덩어리에서 추출된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45억년동안 닫혀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인간은 막대한 에너지를 얻은 대신에 인간으로선 통제할 수 없는 세슘 137, 요드 131 등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악마를 깨운 것이다. 
 

원자력에너지가 각광을 받는 것은 화석연료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경제성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다. 원전 1기당 1시간 동안 1000~1400h를 생산하는 데 비해 화력발전소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1GW 전력을 생산할 때 석탄은 1041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데 비해 원자력은 17톤밖에 배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자력이 유일한 대안이고 직접적인 피해는 미비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메칸더V처럼 지구의 영웅으로 생각되던 원전이 안전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케케묵은 사실이 밝혀졌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1차적인 원인이 자연재해라고 치더라도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지속될 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방사능은 인간은 물론 반감기를 지나면서 농작물과 가축을 오염시키고 먼 미래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로 25년째 방사능 증후군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학자의 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 체르노빌의 방사능 수치가 심각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했으며 유엔의 WTO 보고서 역시 체르노빌의 피해는 경미하다고 말한다. 토치(torch)보고서는 25만명의 인구가 암에 걸렸고 6~7만명의 인구가 암에 걸려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방사능 피해는 70년간 사망자만도 9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사능, 프랑켄슈타인의 저주' 4.23일 방송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원자력은 과연 대안일까?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르몽드 디폴로마트키>에서는 원자력을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프랑스에너지규제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에 재생 가능한 에너지 개발에 1억 유로 정도가 투자됐고, 그로 인한 7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2012년에는 이 분야에서 3 5천 개의 지속적인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원자력 산업이 지난 반세기 동안 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이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강주현 옮김, p.319



똘끼 라이더의 개 풀 뜯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


지난 47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며 하루 2리터씩 빗물을 마셔도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4월12일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고장으로 멈춰버렸다. 나흘 뒤 똘끼로 무장한 자연주의자는 정부의 발표를 굳게 믿고 미량의 방사능을 마시면서 '대안에너지'를 찾아서 '개풀 라이딩'을 시작한다. 

똘끼 라이더

그의 별명은 '똘끼 라이더'로 몸의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자전거의 구조역학을 이용하여 원심력, 탄성, 그리고 가속도라는 물리적인 법칙을 이용하여 이동한다. 자전거를 만드는 과정과 그의 입에서 연간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하더라도 원전과 비교할 수 없는 청정에너지로 운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번 라이디에서 개풀 뜯는 에너지 정책을 제안한다.   

 

똘끼 라이더가 제안하는 '개 풀 뜯는 동부산 친환경에너지 청사진'

 

해운대 마천루

에너지낭비세를 부가하다
해운대에 들어선 마천루로 주변 지역의 햇빛이 차단되고 나무들은 산소배출량이 급감한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던 해풍을 먹던 해송들도 골바람에 시들어간다. 30층 이상의 주상복합건물에 세금 폭탄을 부가한다. 이른바 '에너지낭비세'라고 불리는 세금은 국제유가에 따라 변동되고, 태양광 유리창이나 LED전구를 사용할 경우에는 감면한다. 거둬들인 세금으로 친환경에너지 사업에 투자하고 30%이상 에너지를 절감한 건축물에 한하여 부가세를 면제한다.
 

달맞이 고개

전기자동차 전용 도로를 만들다
해운대 달맞이고개는 벚꽃과 까페로 유명하다. 자동차 매연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심한 곳이다. 벚꽃이 흡수하기에는 무리다. 스위스의 체르마트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통제하고 전기자동차나 자전거 통행만 허락한다. 물론 말은 허용된다. 노약자와 장애인들에게는 관광용 리프트를 공짜로 제공한다.   



 

기장 죽성

풍력과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다. 
기장군 대변마을은 동해상에 위치해 있어 바람과 파도가 제법 이는 곳이다. 이곳에 풍력발전소와 조력발전소를 건설한다.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단지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지역 인재를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지역 주민들에겐
 무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대신 주변의 숲과 바다를 보존하고 관리하게 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고리 원자력

반감기연구소 설립과 고리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다. 
수명이 연장된 1호기는 가동을 중지하고 원자력의 민주적인 통제를 위해 학자, 시민단체, 지역주민, 관계자로 안전위원회를 구성하여 원전의 안전한 폐쇄를 도모한다. 2020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발전소 주변은 비핵화박물관 및 친환경 에너지 홍보관으로 리모델링 한다.  


 



대룡마을

마. 햇빛농업 문화예술단지를 건설하다.  
기장군과 울주군에 친환경 농업단지를 건설하고 집집마다 무상으로 태양열발전시스템을 제공하여 에너지 자립도를 높인다. 송전탑을 녹여서 농기구를 제작하여 필요한 주민에게 나눠준다. 주말농장을 장려하여 도시민과 농촌주민의 네트웍을 강화하고 생명농업전초기지 만든다. 배룡마을 등 문화예술인들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죽성 해송

바. 굿바이방사능연구소 설립
나무와 야생화 등 식물을 통한 요오드와 세슘을 분해하는 연구소를 설립한다. 이와 함께 벌목된 해송과 야생화를 복원한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방사능 피해지역 외국인 치료와 생태계 복원 프로그램을 수출한다.  





대안에너지를 고민하는 길  - 해운대에서 대룡마을까지 

벡스코 해운대해수욕장 달맞이고개 송정해수욕장 기장해안로 연화리 대변 기장해안로 죽성 죽성로 죽성리해송 기장군청 기장대로 일광로 일광해수욕장 이동 신평해안공원 임랑 월내 길천교차로(좌회전) – 천산로(한빛아파트) – 오리길(한빛아파트 3단지 뒷길) – 개천마을회관 대룡마을 개천마을회관 신리 (금산사 

 

Apr 16, 2011  ::  10:05 AM - 2:53 PM. Distance 48.17km / Duration 3:38:06 / Avg. Pace 4:32min/km / Avg. Speed 13.25km/h / Climb 591m 자세히보기

 

 

달맞이 고개로 오르는 길에 벚꽃이 지고 있다. 벚꽃이 졌다고 해서 아쉬워하지 않는다. 내년이면 다시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1908년 프랑스 신부가 한라산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했고 1912년 독일의 식물학자가 정식학명으로 등록되었다. 일본의 국화라고 불리는 왕벚나무의 고향은 우리나라인 셈이다. 스위스의 체르마트처럼 달맞이에서 송정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전기자동차, 자전거, 도보만 허용한다면 친환경적이고 매력적인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송정을 지나서 연화리 고개에서 대변항이 내려다 보인다. 대변항에서 기장해안로를 따라 죽성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있다.

영화 <친구>의 촬영장소였던 대변 바닷가. 대변에서 죽성리 월전까지는 4km. 이곳에서부터 황토빛 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죽성에 가면 더 짙은 색의 바위를 볼 수 있다. 

죽성으로 넘어가는 기장해안로. 이 지역에 자생하던 해송은 남벌로 대부분 유전적으로 열성인자의 어린 나무들과 일본의 리기다소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죽성리 월전마을. 月田마을은 산을 깎아 만든 밭이라는 뜻으로 순우리말로 달밭이다. 이곳에서 고산 윤선도는 7년간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그래서 달밭은 윤선도의 시처럼 애살스럽다.


두호마을에 있는 성당 모양의 드라마세트장. 죽성로를 따라 두호마을에 들어서면이국적인 건물이 나오는 데 TV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드라마 세트장이다. 두호마을에 고산 윤선도가 달빛을 보며 시를 읊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두호마을에 언덕에는 300년 넘은 해송이 있다. 여러 갈래의 소나무가 들보가 되고 줄기를 따라 기둥과 도리를 이루고 가느다란 줄기는 멋진 추녀의 곡선을 이룬다. 파란 서까레는 날아갈 듯 우리나라의 한옥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다. 

소나무가 한반도에 자라기 시작한 건 6,000여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학명이 파이넌스 덴시 플로라(Pinus Densiflora)인데 파이너스는 산에서 나는 나무라는 뜻의 켈트어 피(Pin)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 말로는 솔이라 부른다. 솔은 위에 있는 높고 으뜸이란 의미로,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수리라는 말이 술에서 솔로 변하여 되었다는 학자들의 풀이가 있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며 소나무로 불을 지폈고 나무 껍질에서 꽃가루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먹거리를 얻기도 했다. 죽을 때도 소나무 신세를 진다. -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나무 백가지』, 이유미


조선시대에 때 고려시대 때 황폐화된 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엄격히 통제했다. 특히 정조의 뛰어난 소나무 정책은 유명한 일화가 있다.

… 수원에 노송지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는 약 200년 전 정조가 심어 보호한 것으로, 정조는 백성들이 자꾸 이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자 이 나무에 엽전을 매달고 꼭 이나무를 베어 가야 할 형편이면 이 돈을 가지고 가서 땔감을 살지언정 나무는 베지 말라고 하자 백성들은 이에 마음이 욱직여 그로부터 나무를 상하게 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  『위의 책』

죽성 두호마을에서 일광면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장군청으로 빠져나와서  2km 대로를 타다가 오른쪽 '일광해수욕장'으로 가야한다. 기장은 중부산관광단지 건설로 수많은 소나무들이 잘려나갔다.  지금으로부터 210여년 전 정약전의 '송금정책' 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약하자면 백성들이 소나무를 심고 가꾸기를 장려한다는 정책으로 초가집의 기둥과 들보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기른 자에게 품계를 올려주어 포상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소나무를 길러 울창하게 숲을 이루어 놓으면 나무 크기에 따라 그 마을에 대해 1~2년동안 세금을 감면해주자는 정책이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그린벨트 지역에 경작을 엄격히 금지하면서 소나무를 길러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친환경 정책이다.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덕일 

임랑마을에서 월내마을에서 고리원자력발전소까지는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일광해수욕장에서 고리원자력발전소까지는 대략 10km. 옛날에는 원자력의 발전소가 시골 노인들이나 초등학생들 수학여행 코스 중 하나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에서는 원전을 서로 유치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지금은 원전을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표적이 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금이라도 원전 제일주의 망상에서 벗어나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본받아 원전 건설을 재검토하고 지역 주민과 함께 대안에너지를 찾는데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고리 원전의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을 치유하고 싶다면 배꽃이 핀 대룡마을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길천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자마자 신암방향으로 우측 언덕을 오르면 된다. 다시 한빛아파트 3단지 삼거리에서 개천’ ‘대룡마을로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된다.

월내에서 대룡마을까지는 대략 5km. 대룡마을은 기장군 장안읍에 있다. 예술가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농촌지역이 예술마을로 거듭난 곳이다. 대룡마을에는 ‘Art in Ori’ ‘Space223’ ‘농업역사박물관’ ‘통나무건축학교’ ‘동물농장등 농업과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대룡마을 곳곳에는 버려진 나무로 만든 문병탁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주변 공간을 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그의 작품. 나무동물에게서 조화롭게 살자는 자연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원전에서 길을 잃어버린 인간의 미래에 대한 경종처럼 들린다. 

 

대룡마을과 산 하나 사이에 있는 신리 마을에 벚꽃이 지고 배꽃과 복사나무가 피었다. 배나무, 복사나무, 벚나무의 공통점은 장미과에 속한다. 특히 배나무 근처에는 향나무를 찾아볼 수 없는데, 향나무는 배나무에 병을 옮기는 중간 숙주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방사능 물질을 치유할 수 있는 생명의 나무는 없는 것일까


 

배밭에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전의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풍력과 태양광 등 대안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경제성보다는 지구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EU 회원국인 독일에서는 반핵을 인류의 가치로 삼고 있는 녹색당이 창당이래 최고의 지지율을 받고 있다. 녹색당은 독일, 그리고 EU에서 원전을 폐기하고 대체에너지를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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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벚꽃장에 어슬렁어슬렁
 

43, 진해 벚꽃이 왔다는 소식에 해운대에서 지하철, 사상에서 버스를 타고 진해구  용원으로 봄놀이 간다. 직행버스로 진해까지 갈 수도 있지만, 동행한 자전거는 산길을 따라 용원에서 진해로 가자고 한다.

 

용원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  

바닷가 근처 인심 좋은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은 어때?”

내가 지하철과 버스 짐칸에 실려와서 달랑 3천원밖에 쓰지 않았잖아, 이 구두쇠야!”

그의 요구로 우리는 불야성으로 불리는 용원(웅동2) 시내에서 가장 최신 모텔로 들어갔다. 자전거 10대를 넣고도 남을 만큼 넓은 최신식 모텔은 무려 45천원.

 

나는 그를 홀로 남겨두고 시내버스를 타고 진해로 가서 선배를 만나고 돌아왔다. 그는 단단히 토라져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솔직히 그와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비포장 산속을 달리는 것 말고는 없다.

 

도구는 인간에게 새로운 자유를 안겨주지만, 때론 거추장스럽다. 바로 너 자전거!

~ 내일은 가슴을 덜컹대면서 신나게 달려 보자구. 진해에는 벚꽃장이 섰다지…”

 

그는 화려한 벚꽃과 오도가도 못하는 자동차 사이를 휘젓고 다니길 좋아한다. 나는 그런 그를 세워두고 소사리 김달진문학관과 진해의 근현대사유적을 둘러보고 경화시장에서 대구전과 막걸리에 취할 생각이다.

 

군항제벚꽃장으로 호명하고 어슬렁어슬렁 장돌뱅이처럼 산길을 가는 이유는 진해를 수놓은 벚꽃이 지면 근현대사의 그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화려한 벚꽃보다 산길에 핀 민들레가 더 그립다.

 

백일산길에서 만난 민들레

사람들 모두

산으로 바다로

신록철 놀이 간다 야단들인데

나는 혼자 뜰 앞을 거닐다가

그닐 밑의 조그만 씬냉이꽃을 보았다.

 

이 우주

여기에

지금

씬냉이꽃이 피고

나비 날은다.

 

- 김달진, 『씬냉이꽃』

 

 

어슬렁 경로 (43km)

자세히보기 http://runkeeper.com/user/dolbae/activity/30516554

웅동2 - 해안도로 - 김달진문학관(웅동 소사리) - 소사생태길(10km) - 백일 아침고요 산길(3.5km) – 천자봉 해오름 길 (10km) – 중앙로 진해역 내수면 환경생태공원 - 여좌천 충무로 진해시외버스터미널

 

 

진해의 소소한 보물과 근현대사 유적

 - 김달진문학관 : http://www.daljin.or.kr/

 - 시인의 마을 소사리와 웅동벚꽃장 : http://gnfeel.tistory.com/101

 - 진해우체국은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다 : http://blog.daum.net/win690/15937126

 - 화려한 벚꽃으로 본 진해의 일본 흔적 : http://po.idomin.com/75


개 풀 뜯는 소리

 

 진해 산길은 편도 23km, 소사생태길과 백일아침고요산길 산을 넘을만큼 경사가 심한 반면, 천자봉해오름길은 내리막과 평지로 이어져있다.

 

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용원으로 간다. 자전거 바퀴를 빼지 않고도 짐칸에 넣을 수 있고 요금은 1,900 (진해까지는 4,000원 내외로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사이버틱한 용원의 최신모텔(45천원). 주위에 유흥가가 몰려있어 가족이나 연인끼리 숙박하기에는 환경이 좋지 않다. 용원 해안도로에 있는 모텔은 경치는 좋지만  시설이 열악하다.


진해 시내에서 저녁을 먹는다면 석동에 있는 이가네 원조 가야밀면(055-544-8933)’을 추천한다. 소갈비와 물밀면의 궁합이 좋다. 웅동 안골포삼거리 경남은행 정류소에서 20분에 한 대 가량 진해를 거쳐 창원으로 가는 버스(159, 757)가 밤 늦도록 있다. 용원에서 가까운 웅1동에는 수육과 밀면을 파는 '가야밀면'(055-544-7908)이 맛있다.  


웅동 안골포삼거리에서 언덕을 넘어서면 바다가 있다. 왼쪽으로는 거제행 카페리를 타는 곳이고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마천지방산업단지가 나온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육지를 만들어버린 신항만. 진짜 경제가 살아날 지 환경재앙으로 기록될 지는 두고두고 볼 일이다.


마천산업단지 교차로에서 직진, 청안해오른아파트 뒷길을 돌아 고가다리 아래를 지나면  웅동1동이다. 웅동1동에서 김달진문학관까지는 800미터 떨어져 있고 임도 입구는 서원탑훼미리마트에서 200미터 거리에 있다.   


산길를 타기 전에 소사리에 들렀다. 월요일이라 월하 선생님의 문학관과 생가를 둘러볼 수 없었지만 김씨공작소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잡종스럽지만 소소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월요일 커피점도 문을 닫았다. 길고양이가 지나는 길목에 앉아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옛 추억은 꽁뜨다라는 말이 카라멜처럼 달콤하다.


월하 김달진문학관이 있는 소사리 마을에는 아담한 옛 추억들이 시간의 틈 사이로 들어차 있다소소한 옛 추억을 떠올 릴 수 있는 골목을 길고양이처럼 어슬렁대다.


 

진해 드림로드의 첫 구간은 소사 생태길에서 시작했다. 안민고개까지 23km 가량 짧지만 먼 길이다. 길에서 쉬는 것까지 포함하면 족히 3시간 가량 잡아야 한다.


천자봉 어미의 젖을 먹고 소사 생태길에 진달래가 피었다. 꽃샘추위에 벚꽃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소사 산길은 백일마을까지 이어진다. 백일마을에서 다시 백일아침고요길이라는 산길이 시작된다.



백일아침고요길은 짧지만 경사가 심해서 바퀴가 헛돈다. 지나가는 개미가 비웃을 정도로 느린 속력으로 쉬지않고 오르면 솜사탕처럼 달콤한 희열을 맛볼 수 있다.


백일아침고요길에서 만난 키 작은 민들레. 쉬지 않고 산길을 가고 싶지만 자전거에서 차마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백일아침고요길은 한창 공사중이다. 굳이 나무를 밀고 새로운 길을 내기 보다는 기왕 있는 길을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알아침고요길 정상에 오르면 진해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인다. 일본제죽주의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화된 계획도시이자 일본제국주의의 첫 군항이다.




백일아침고요길을 내려오면 천자봉해오름길종점을 만난다. 안민고개로 가는 산길은 화살표 방향으로 가야 한다.




500미터 가량 가다가 갈림길(왼쪽 화장실)을 만나면 직진해야 한다. 아랫길은 화장장과 진해로 가는 도로다.



130분 안민고갯길에 도착. 안민고개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왼쪽 도로를 따라서 진해로 내달렸다.

 



진해를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누비자를 이용하거나 자전거대리점에서 대여를 하는대게 좋다. 해군사관학교 내 벚꽃을 보려면 정문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벚꽃 구경으로 배가 출출하다면 중앙시장이나 경화시장을 찾는 것이 좋다. 허기를 달랠만한 음식들이 지천이다.



여좌천 벚꽃이 만개했다. 활짝핀 벚꽃보다 공간을 메우다 떨어지는 꽃잎이 좋다.

 

화려한 벚꽃이 지면 시간이 멈추고 근현대사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그늘을 쉽게 지울수도 있지만 침략의 역사와 잡종의 문화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교실이다.


 



 

에필로그 – 10년 전 진해 벚꽃장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필름 카메라를 메고 진해를 돌아 다녔다. 벚꽃이 피자 시간이 멈춘 것 처럼, 그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 할아버지가 선구자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어가 서툰 재일교포였는데, 남북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격정에 못 이겨 옆에 계시던 할머니와 뜨거운 키스를 하더라.

                                             이순신장군 동상 뒤에 보수탕이 우뚝 서 있다.


멀리서 벚꽃장을 보러 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다 한 때 한 인물 하신 듯 하다.



그때는 벚꽃미인대회도 있었는데, 시민단체에서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진해에는 미군부대가 있는데,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잦았다. 미군부대 정문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여인이 렌즈에 포착되었다.


 

  여좌천 벚꽃이 피는 날 여인들은 사랑을 하고, 지는 날에는 진해만으로 흘러가는 벚꽃처럼 어떤 이는 이별을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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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은 낯설게하기


닦고 조이던 자전거가 밤새도록 봄비에 젖었다. 다음날 아침 창문을 밖으려 빗물을 날려버린 매서운 바람이 안겨왔다. 평소보다 두텁게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213일 토요일 오전 950, 해운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에 자전거를 실었다피곤한 몸을 누이고 뇌 속에 기억된 지도를 꺼내 경로를 그려본다. 심장이 가슴을 핥으며 낯설게하기를 시작한다

자전거여행은 육상으로 비유하자면 장거리에 해당된다. 하지만 페달을 밟기도 전에 단거리 선수에게 오는 긴장감이 밀려온다. 짐칸에 실린 자전거는 괜찮을까?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저녁에는 누구를 만나지? 그 길은 그대로 있을까? 더구나 이번에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에 피가 더 뜨겁다.
 

 


버스 짐칸이 좁아서 앞바퀴와 안장 분리했더니 딱 맞게 들어간다.


자전거특별시 창원시

! 신호가 떨어졌다. 총성이 울린 지 한 시간 뒤, 간판도 없는 대로에 나 홀로 자전거를 조립한다. 낯익은 길,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전거를 몰아간다. 20대를 창원에서 보냈지만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 하루 이상은 머물 지 않았다. 넓은 도로와 공원, 깨끗한 도시 이미지가 영 정이 가지 않았기 때문인데,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바퀴을 조립하고 고개를 들자 자전거 도로가 붉은 미소로 환영한다.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처럼 8단 기어를 넣고 메타세쿼이아 미녀들을 헤집고 간다. 이 무대 위에선 나는 낯설게하기 여행을 시작해볼 참이고 그 출발이 좋다.

마산, 창원, 진해를 세 시를 통합해서 출범한 창원시는 자전거특별시라 불릴 정도로 자전거에 남다른 애정과 정책을 펴고 있다. 구 창원시에만 자전거전용도로 18개 노선 100.8㎞, 겸용 도로 103개 94㎞ 등 총 194.8㎞에 이른다. 또한 자전거법도 개정했을 정도로 창원은 자전거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처럼 자동차 도로를 뚝딱 떼어내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었다.  

 

횡단보도에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다. 신호만 잘 받으면 자동차보다 빠르다.  
 

인도에도 자전거 도로가 있고 버스 정류소 근처에는 누비자라는 자전거가 있다.

 

명품 자전거 길을 가다



⇡ 거리 : 31.64km, 주행시간 : 3시간... 자세히보

창원병원 맞은 편 도로를 따라 가다가 남창원역네거리에서 공단로를 따라 진해 안민고개로 페달을 밟았다. 안민고개 입구에서 마루까지 3.5km 언덕길이다. 20여분 가까이 숨을 토해내야 다다를 수 있다. 고갯마루에서 진해 방향으로 1km 내려가다 보면 전망대와 커피 가게 옆 비포장 임도가 있는데 천자봉 해오름 길의 시작이다.

 


안민고개 전망대에서 본 진해. 아침햇살을 받은 바다는 우윳빛이다.
 

 


140kg 거구의 선배가 해오름 길을 미끌어져 간다.

 

똑딱이 카메라로 촬영한 임도 동영상

  
천자봉 해오름 길은 만장대까지 약 10km. 이번에는 백일 아침고요 산길이라고 명명된 만장대에서 백일뒷산까지 3km를 더 가볼 생각이다. 소사 생태길(백일 뒷산에서 소사 화등산) 7km 더 뚫렸으니 대략 20km 명품 MTB 코스가 완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다녀봤던 MTB 코스 중에 최고의 점수를 줘도 아깝지 않다. 
 

산 중턱을 가로지르며 고개를 돌리면 아름다운 진해의 풍경이 펼쳐진다. 땅은 적당히 다져진 마사토로 초보자들도 무난히 즐길 수 있다. 쉴새 없이 오르내리길 10km, 자전거를 멈춘 곳은 만장대라는 곳이다. 여기서 진해로 내려가는 길이 있지만 백일 아침고요 산길로 올라간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경사가 심해서 끌고 오른다. 설상등반을 하듯 발바닥 전체를 땅에 붙이고 고개를 숙이며 가쁜 숨을 몰아 쉰다. 고개를 들자 커다란 소나무고 춤을 추며 의자를 가리킨다. 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싱싱한 바다가 펼쳐진다.

 


백일 아침고요 산길로 접어드는 언덕  


 소나무 아래 전망대에서 본 거가대교와 남해바다


'백일 아침고요 산길'은 백일마을(진해구 웅천동) 이름에서 따왔다.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고 아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백일기도를 하였다는 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어쨌든 이 길은 빛바랜 풀과 듬성듬성 날아온 솔잎이 만든 따뜻한 길이다. 그래서 해오름길보다는 조용히 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백일마을로 내려가는 풀길, 멀리 솟은 봉우리는 천자봉이다.  

봄볕에 강아지들이 어미 젓을 빨다 낮잠을 자고 있는 듯 고요한 백일마을


백일마을을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소사 생태길로 이어진다. 농로를 따라 내려가면 진해구 웅천동이다. 

 

웅천에 있는 천주교 공소 

 

다시 안민고개를 오르다.


⇡ 거리 : 26.62km, 주행시간 : 2시간30분... 자세히보


백일마을을 한바퀴 돌아서 웅천으로 내려왔을 때 시간은 2시30분. 조선사발로 유명했던 웅천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웅천에서 용원 방면으로 가다보면 '웅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돼지수육과 밀면을 잘하는 집을 알고 있다.  

나름 미식가로서 자부심이 있는 우리는 진해 시내에서 밥을 먹기로 하고 STX 조선소 옆길로 해서 '수치'까지 왔다.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
관광지에서 밥을 먹지마라'는 교훈을 깨고야 말았다. 그저그런 회와 매운탕을 비싼값에 치른 탓에 진해구로 넘어가는 언덕은 곱절 힘이 들었다. 

선배는 진해 중앙시장 지하 건물에 있는 횟집과 삼겹살집을 떠올렸고 나는 경화시장에 있는 국밥집과 막걸리를 생각했다. 수치 뒤를 한바퀴 돌아서 행암동에 이르면 수평선처럼 펼쳐진 진해 시내를 통과할 수 있다. 큰 도로보다는 골목을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중심가를 통과해서 경화역에 도착했다.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진해구 역시 인도와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고 있었다. 도로 자체가 좁아서 창원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벚꽃이 흐드러진 경화역, 안민고개 둘만 꼽더라도 라이딩 코스로 반은 먹고 들어 간다고 봐야 한다.

경화역 끝자락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앞 슈퍼에서 따스한 오후 햇살과 커피를 즐기다 안민고개로 방향을 잡았다. 진해에서 창원으로 넘어가는 안민고갯길은 반대쪽 길보다는 수월하다.
경화고가차도 아래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4km에 이른다.

다리 한짝이 내 두짝에 맞먹는 무게와 파워를 가진 선배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30분을 꾸역꾸역 올라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해는 창원시내를 반 쯤 삼킨 상태였고 식은 땀을 몰래 파고든 바람이 찼다. 
 

고갯마루에서 커피를 마시고 창원으로 내려왔을 때 수영장에 뛰어들어 배를 뒤집고 한 시간 누워있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다. 하지만 멋지게 깔린 붉은 융단이 노을을 대신해서 힘을 실어 주었다. 친구네 집까지 8km를 쉬지않고 달려도 피곤하지 않다.

하루동안 창원을 여행하면서 예전과 다르게 정이들었다. 노동자정당 후보가 국회의원이 됐고 여당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에서 야권단일화 후보가 도지사에 당선됐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 지면서 자동차들도 질서를 지키며 자전거와 동등한 관계를 지키고 있다.

 


친구집에서 맞은 만한전석. 자전거 여행에서 최고의 음식은 가정식이란 걸 입증.


창원에서 가져온 자투리 생각

자전거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자전거만큼'님의 블로그에 실린 이 글은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전거와 관련된 현실적인 정책 대부분은 보수에서 입안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의 이러한 정책은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자본주의와 역행한다. 어쩌면 자전거 정책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작은 실천 중의 하나일뿐, 근본적인 환경정책은 제대로 시행조차되지 못하고 있다. 환경문제가 대중들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보수정치인들은 자전거정책으로 올인한다. 3000CC  자가용을 주차장에 숨겨두고 자전거를 집 앞에 내놓은 그들에게 대중은 표를 던진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자전거를 선호한다?
나의 주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 대부분은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친환경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건강보다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진보라고 자청하는 사람들은 비싼 자전거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듯 하다. 왠만한 중고차 가격의 자전거를 보면 부유층의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전거가 우리 사회의 교통혼잡과 환경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 사실을 생각한다면 아니꼽게만 볼일은 아닌 것 같다. 자본의 돼지로 퇴보한 자신의 육체를 바꾸고 환경문제를 생각한다면 자전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다. 

본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
거제 옥포, 창원, 울산의 공통점은 노동자들의 도시다. 이곳에 가면 자전거도로가 발달되어 있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자동차 출퇴근으로 치르는 교통체증과 주차혼잡을 자전거가 덜어주고 있지 않을까?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4년동안 타고 다녔던 디젤 자가용과 이혼을 앞두고 있다. 5만여Km 아무런 사고 없이 세상을 보여준 그녀를 떠나보내려니 금단현상처럼 허전하고 갑갑하다. 자가용을 처분하기로 결심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환경에 대한 대단한 배려도 아니다. ‘그냥’이라고 해야 옳을 듯싶다. 불연 듯 바뀌어버린 계곡의 바람이라고나 할까, 하긴 법정스님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긴 했다.

 

30대 초반에 생애 첫 차를 샀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직하면서 강아지가 해변을 만났을 때 발광하는 것처럼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광야를 달리고 싶었다. 경차를 살 수 있었지만, 인생 뭐 있냐는 식으로 큰 차를 샀다. 사회적 체면에다 갖다 붙일 이유는 무궁무진했다. 

 

자가용으로 좋은 점도 많았지만 후회스럽다. 엎어지면 코 닿는 집과 회사의 거리, 주차로 인한 스트레스, 3년 동안의 갚았던 할부금과 높은 유지비, 길거리에 쏟아낸 이산화탄소……. 지난 일주일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을 했다. 이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돈’이었다.

 

자가용과 이혼하면 자동차보험, 각종 세금, 주유비 등등 최소한 한 달에 40만원 이상 위자료가 입금되지. 매월 빠져나가던 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들어온다는 생각을 해봐. 무엇보다 합의금으로 명목으로 당장 목돈도 생기잖아. 

 

오늘, 자가용과 당분간 이별하기로 결심한다. 내일이면 안녕이다. 그러면서 작은 꿈을 가져본다.  차를 처분한 돈으로 전기차 등 친환경 관련 주식에 투자할 생각이다. 매월 적립되는 위자료를 모아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볼 생각이다. 몇 년 뒤엔 멋진 전기차를 살 생각이다. 
 

두려울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다. 나에겐 튼튼한 두 발이 있고 멋진 자전거가 한 대가 있다. 그리고 접이식 자전거와 재혼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여행을 다닐 생각이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오랜만에 칠불사를 찾았다. 칠불사에 가려고 한 건 아니지만, 비가 지나간 뒤에 봄햇살에 몸이 근질한 벚꽃처럼 내 다리도 가려워서 그랬나 보다. 원래는 대성야영장에서 야영을 하고 의신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자전거로 가고 싶었지만, 국립공원법에 자전거와 애완동물은 출입금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만약 걸리면 자전거를 압수당한다.

12시에 모임이 있어 2시간 가량 시간이 남아서 쌍계사 위 동정산장에 주차를 하고 자전거를 꺼냈다. 동정산장은 제작년 4월3일 노무현 대통령이 벚꽃구경을 다녀오면서 들린 곳이다. 식당 한켠에 퇴임후 봄나들이에 염화시중의 미소를 띤 노무현 대통령 기념 사진이 걸려 있다. 

칠선계곡까지 대략 6km, 거리는 짧지만 온통 오르막이다. 이번 목표는 기어를 1단으로 낮추고 쉬지않고 가보는 것이다. 지나가는 차들도 없고, 우렁찬 계곡 물소리의 박자에 맞춰 아스팔트에 자전거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계곡이 누런 흙탕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칠불사를 2km 앞둔 곳에서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공사를 하고 있었다. 겨울을 견뎌낸 수중생물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섬진강에서 올라오는 연어가 다니기에는 힘든 계곡이지만,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을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 칠불사 아래 범왕교 위에서 진행되는 공사 때문에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하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한 시간 가량 높은 언덕과 싸우며 올랐더니 칠불사다. 칠불사는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멀리 인도에서 건너와 가락국의 불교를 꽃피운 허왕후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맺어진 일곱 왕자들이 이곳에서 부처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칠불사 대웅전(정면)과 아자방(왼쪽). 뒤쪽으로 까치집처럼 달린 것이 겨우살이이다.

하지만 지리산에 있는 사찰이 대부분 그렇듯, 칠불사에도 아픔이 찾아왔다. 칠불사는 국군과 빨치산이 마지막으로 교전하던 대성골과 인접한 곳이다. 칠불사는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누명으로 소각되었다. 또한 80년대 신군부가 칠불사를 재건하는 데 적잖은 도움을 줬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칠불사는 아자방으로 유명하다. 창밖에서 아자방 내부를 둘러보고 서둘러 내려왔다. 칠불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스키를 타듯 시원하게 미끄러졌다.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도 몸을 펼치면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알아서 속도를 조절해준다. 

5분도 안돼서 법왕골과 대성골이 만나는 곳에 도착했다. 법왕골의 누런 물빛이 대성골의 푸른 물을 만나 맑아진다. 멀리 반야봉에는 눈꽃이 피어 있다. 반야봉에 하얀 꽃이 녹으면 그 물을 받아 마신 하동 십리벚나무에 꽃이 피겠지. 물고기들이 오를 수 없는 보와 어로가 사라지면, 허왕후가 그랬듯 황어를 앞세우고 물고기들이 돌아오길 기원해본다.    

Start Time 9:46 am / End Time 11:25 am
Duration 1:27:56 h : m : s / Distance 13.01 km
Avg. Pace 6:45 per km / Avg. Speed 8.88 km/h
Climbed 515m / Burned 608 cal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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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 칠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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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12월24일 오후 5시, 지리산 둘레길을 자전차로 여행하기 위해 자동차에 차를 담아서 부산을 출발하여 함양에 7시30분에 도착했다. 함양재래시장 들머리에 있는 조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조양식당은 순대와 국밥으로 유명한 곳인데, 이번엔 수육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탓인지 식당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주문이 밀려 있다. 애기집이라고 불리는 부위가 나왔는데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배를 채우고 오늘의 목표지점인 달궁야영장으로 차를 몬다. 뱀사골을 지나서 덕동에 있는 달궁야영장에 도착했더니 9시였다. 야영장에는 텐트 몇 동이 보였고 눈이 온다고 했는데 밤하늘에 별이 크리스마스를 축복하고 있다. 겨울 야영지에서는 식수를 얻기 힘든데 달궁야영장 역시 식수장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텐트를 펴고 침낭에 누워서 라디오를 켜고 독거노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번 자전거 여행은 지리산 자락 달궁에서 시작한다. 달궁계곡을 따라 내려와서 뱀사골, 그리고 실상사에서 본격적으로 둘레길 여행을 시작할 생각이다. 실상사 근처에 있는 매동마을을 지나서 인월, 운봉, 주천까지 가서 정령치 고개를 넘어서 달궁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하지만 정령치 고개는 보통 12월 중순부터는 도로가 얼어서 자동차나 자전거가 지나갈 수 없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제법 내려서 운봉까지 갔다고 24번 국도를 따라서 달궁으로 되돌아 오는 것으로 여행을 마쳤다. 

자전거로 다녔던 길
- 거리 : 약 65km
- 소요시간 : 약 8시간
- 이동경로 : 09:50분 달궁 출발 - 덕동교 - 뱀사골 - 원천마을(지리산토비스콘도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 삼화마을 진입 - 삼화마을 농로 - 실상사- 산내면 대정삼거리(인월방향)-매동마을(창원,금계로 가는 둘레길, 인월로 가는 둘레길의 중간 지점) - 장항교 (장항마을에서 인월로 이어지는 둘레길 이정표 있음, 산길이라 자전거로 불가능) - 장항교를 건너기 전 포장된 농로- 60번 국도-종군마을(종군마을에서 다시 둘레길 시작) - 구인월 포장 도로 - 둑길 - 구인월교 - 월평 -  흥부골 자연휴양림(오르는 구간 경사 심함) - 산길 - 옥계저수지 - 지리산대덕리조트 - 24번 국도 및 부흥교 (※  주의 : 인월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서 둘레길 표시를 확인하고 포장된 마을길 진입해야 한다) - 둑길 - 비전마을(황산대첩비, 국악마을) - 긴 둑길 - 14: 30분 운봉 도착 - 인월(24번 국도를 이용)- 산내면 - 뱀사골 - 18:20분 달궁 도착 

달궁오토캠핑장에 야영을 시작했습니다. 땅은 얼었지만 부드럽고 배수가 잘 되는 마사토가 깔려 있어 텐트 치기엔 좋다. 추위 때문에 식수장의 물은 나오지 않지만 전기는 사용할 수 있다.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서 나가 봤더니 고양이가 찾아 왔다. 크리스마스 이브 짐승들도 외롭나? 원래 짐승들에게 먹이를 주는 건 그렇지만, 날도 날이고 배가 부른 걸 보면 임신한 것 같아서 호도과자와 치즈를 나눠 먹었다.   

△  술은 임신한 고양이에게 해롭기 때문에 술과 음식물을 텐트 안으로 가져왔다. 피츠로이 베스터블(현관)을 이용하면 음식보관과 간단한 취사를 할 수 있다. 다만 물을 많이 끓이면 텐트 내부가 수증기로 젖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 해야 한다. 
 
△  아침, 텐트 밖이 서리가 맺혔다. 피츠로이 내부에는 결로가 맺혀 있지 않았다. 역시 피츠로이!! 

 △ 본격적으로 자전거 여행을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MTX 빔렉(검은색)과 사이드프레임(은색)이 결합된 모습이다. MTB 자전거는 보통 짐받이 안장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는데, 제 자전거의 경우 싸구려 짐받이(3~4만)를 달 수 없어서, 적재중량이 적고 비싼 프레임(7~8만원)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빔렉은 E-Type로 미국의 토픽(Topeak)에서 나온 제품이다. 처음에는 과연 짐을 실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빔렉은 전체 프레임을 고정시켜주고 사이트 프레임은 가방과 바퀴의 접촉을 막아주기 때문에 짐을 안정적으로 실을 수 있다. 물론 사람을 태울 순 없다. 9kg~14kg 정도가 적당하다. 

빔렉이 자전거에 부착된 모습

사이드 프레임과 바퀴 공간


빔렉과 가방의 1차 결합

빔렉과 가방의 2차 결합

가방을 사이드 프레임에 고정


텐트를 정리하고 자전거를 타기 전에 바퀴, 브레이크, 기어, 체인을 점검한다. 육각렌치나 1회용 펑크 수리 도구를 휴대하고 다니면 좋다.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배낭이 무거우면 어깨에 무리를 준다.  카메라, 취사도구 등 무거운 짐은 자전거 트렁크에 싣고 우비, 수첩, 지갑 등 가벼운 것들은 배낭에 넣었다. 하지만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된다.  

늘 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뱀사골 계곡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늦은 아침에 계곡에 햇살을 받은 바위가 금빛이다. 7~8시 경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더 운치 있을 것 같다.   

오전 11시20분경 실상사에 도착했다. 낯익은 스님이 염불을 드리고 있다. 올해 실상사는 지리산과 중생들을 위해 할 일이 참 많다. 지리산 댐과 케이블카도 막아야 하고 둘레길도 본래 취지대로 잘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염불소리가 더 애틋하다. 실상사 찻집에서 지리산댐 반대에 서명을 하고 우전을 마신다. 포근하고 아늑한 차 향기에 취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실상사 다리에서 대봉 곶감을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담요까지 가져오셨다. 5개 5천원인데 마수라며 한 개를 더 주신다. 곶감을 한 입 물었더니 시원하고 달콤한 지리산 향기가 혀를 감싼다. 먹는 비용을 아끼려고 음식을 바리 싣고 왔는데, 둘레길 주민들에게 미안해진다. 둘레길 사람들은 아무런 보상없이 자신의 터전을 내어놓았는데, 먹거리를 도시에서 싸들고 왔으니 말이다.     

산내면 삼거리에서 실상사 귀농학교 언덕을 지나면 그 유명한 매동마을이다. 매동마을 언덕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창원, 금계, 벽송사로 이어지는 둘레길이 있다.  왼쪽으로 가면 인월, 운봉, 주천으로 가는 둘레길이다.  

장항들에서 본 장항교. 멀리 삼거리가 보이는데 오른쪽으로는 매동마을, 왼쪽으르는 종군마을, 인월로 가는 60번 도로이다. 장항마을에서 시작되는 둘레길은 산길을 따라서 종군마을로 이어져 있고, 종군마을에서 농로를 따라가면 인월이 나온다. 자전거로 좁은 산길을 간다는 건 걷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위험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장항다리 옆 아스팔트 농로를 따라서 간다. 100여미터 못 가서 다시 인월로 이어지는 도로와 만난다. 

장항마을에서 60번 도로를 따라서 4Km 달려오면 왼쪽으로 종군마을이 있다. 다리를 건너서 종군마을에 들어서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서 600미터 정도 달리면 오른쪽으로 둑길이 펼쳐진다. 둘레길은 백미는 흙길이다. 비가 많이 와서 바닥이 질퍽하지만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보다 기분이 좋다. 짐받이와 가방이 춤을 추지만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다. 인월까지는 이어지는 둑길은 1.5km, 자전거로 5분이면 갈 수 있다. 인월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해서 운봉으로 가는 지도를 얻었다. 연휴 때문인지 둘레길을 찾은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 인월에서 월평마을회관을 지나서 흥부골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 대신에 일반 도로를 선택한다. 경가사 높아서 자전거를 끌고 간다. 산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부러워진다. 하지만 흥부골을 지나면 멋진 임도가 1.5Km 펼쳐진다. 짐받이도 가방에 든 짐들도 전쟁을 한판 치루고 나면 옥계저수지, 지리산 대덕리조트, 부흥교에 도착한다. 여기서 둘레길 방향을 잘 봐야 한다. 대부분 운봉으로 이어지는 60번 도로를 따라서 가는 분들이 많다. 인월 쪽으로 부흥교를 건너면 맞은편에 부흥탑이 보인다. 거기에 가면 운봉으로 이어지는 둘레길 표시가 나온다.     

부흥탑에서 1.3km 둑길을 따라 오면 환산대첩비와, 국악의 가왕(歌王), 국창으로 불리는 송흥록 선생과 박초월 생가가 있는 비전마을이 나온다. 두 명창이 살았던 생가를 옛날 모습으로 복원하고 판소리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송홍록 선생은 순조와 철종에 이르는 명창으로 판소리의 계면조와 진양조를 완성하고, 메나리조를 도입한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린다. 제자 박만순과 그의 동생 광록 등으로 이어지는 송문일가를 이뤘다고 기념비에 적고 있다.

비전마을 앞에는 쉼터가 있다. 이곳 쉼터에 범숙학교(대안학교) 학생들이 만든 재미난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옛날 길은 상인들이 개척했다면 이번 둘레길의 공은 범숙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있는 지도 모른다.   

비전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보슬비가 부슬비로 바뀐 상태였다. 멀리 황산벌에서 비전마을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순례자처럼 보인다. 솔직히 운봉에서 매동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은 볼거리가 많이 없다. 그런데도 멀쩡한 길을 두고 진흑탕 흙길을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전마을에서 운봉읍 서림공원까지는 10리(4km) 둑길이 이어진다. 진흙길이라서 평소에는 15분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자전거로 30분이 넘게 걸렸다.

운봉 서림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자전거가 진흙놀이를 한바탕 즐긴 개구쟁이처럼 보인다. 운봉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차가워서 식당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운봉은 여름에도 서늘하다고 한다. 운봉은 해발 470m의 산악분지로 무더위에도 30도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상 내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완사면에는 면양 목장이 유명하고 고랭지 채소가 생산된다.

운봉 서림공원에는 서천리 당산이 있다. 원래는 당산나무, 솟대, 돌장승이 있었는데 솟대는 사라지고 돌장승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장승은 '벅수'라고도 불리는데, 그 어감이 마치 장승이 나를 보고 "벅수야" 하고 부르는 것 같다. 벅수가 벅수를 보고 나니까 배가 고팠다. 운봉읍에서 김치찌개를 잘 하는 '수미네식당'을 찾아서 끼니를 해결한다. 주인에게 정령치를 넘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주천과 정령치 고개는 다음으로 기약하고 24번 국도를 따라서 인월에 있는 '둘레길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탐방지원센터에서는 둘레길 지도, 민박, 대중교통을 안내하고 있다. 실내에는 지리산 나무와 생태와 관련된 전시물이 있고, 난로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난로에서 불을 쬐면서, 해먹지도 못할 밥이며 취사도구를 실고 다녔던 걸 생각하니 돌장승이 나에게 '벅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의구, 벅수야'라는 말이 '의구~ 바보야'로 들린다. 1박2일 이상 자전거 여행을 다닐 게 아니면 자전거 짐받이를 달지 않는 게 좋을 듯 하다. 자전거도 자전거지만 사람이 피곤하다. 또 돈 몇 푼 아낀다고 짐을 늘리지 말고 둘레길에서 따뜻한 밥을 사먹는 게 100번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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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 운봉 돌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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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유등마을에서 시호2구로 가는 강둑에서 소를 만났습니다. 자전거가 다가오자 덩치 큰 소가 슬며시 자리를 내어줍니다. 이 소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는 과연 없을까요?


'4대강살리기' 가물막이(하천에 물을 막는)공사가 시작되던 때 경남 합천에서 김해 한림정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리저리 계산을 해보니까 대략 200km 정도 달렸더군요. 낙동강이 워낙 굽이치며 흘러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낙동강의 한 줄기인 황강(경남 합천군 대병면 합천댐)에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한국형 뉴딜정책이라 불리는 4대강살리기 사업 중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자전거 도로'입니다. 낙동강만 해도 743km, 4대강 전체로 따지자면 1,728km에 이르는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강을 따라서 쭉 뻗은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는 이야기에 쏠깃했습니다. 국토부가 발표한 환경영향평가에서 공사구간에서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발표 역시 자연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 길은 다니면서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습니다. 4대강살리기 사업이 친환경적으로 시공하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이었습니다.

합천보 근처의 강둑길. 농민들이 자주 다닌 강둑은 비포장길이지만 자전거가 다니기에도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보가 만들어지면 수위가 상승하면서 오른쪽 농경지는 침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들과 동물들의 서식지인 갈대숲과 습지가 불도저 밀려서 짓이겨졌습니다. 합천보에서 한림까지 이어지는 낙동강에는 여전히 모래 채취가 이루어지고 있고, 눈으로 확인한 곳만 여섯군데가 넘었습니다. 특히 창원시 대산면 인근 낙동강에서는 엄청난 모래를 채취한 나머지 삼각주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조상들은 강의 범람에 맞서며 둑을 쌓아왔습니다. 강둑을 방패 삼아서 마을과 농지를 넓혀왔지요.  강둑 반대 편에서는 삼각지와 강기슭을 중심으로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털었습니다. 강둑은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경계였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비옥한 삼각주를 넘보면서 동물들의 서식지가 위협을 받게 되었고, 그나마 농지로서의 가치가 없는 갈대숲과 강기슭이 동물들의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4대강살리기 공사로 강둑 옆 습지와 갈대숲은 이미 파괴되고 있습니다. 

어릴적에 강둑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로 다닌 적이 있는데, 저녁무렵 강둑을 걸어본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포근한지 알겁니다. 새들이 하나 둘씩 삼각주로 돌아오고, 반대편 마을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강둑을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해가 저무는 강둑에 앉아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길을 두고 왜 억지로 길을 내려고 할까요? 낙동강 자전거길은 강둑을 활용해도 좋지 않을까요? 길이 끊어진 구간에는 항상 다른 마을로 이어져 있습니다. 직선보다는 곡선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간혹 강둑에서 만난 소, 염소,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입니다.  

합천보에서 가장 가까운 외삼학 마을에 있는 은행나무. 강둑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이 나무도 보지 못했을 겁니다.


합천보의 청사진을 보면 보 주변으로 공원과 산책로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개발 예정지에 농지를 갖고 있던 분들은 당장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변으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강둑 너머 어떤 마을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테니까요. 

강둑길의 장점은 여러 마을과 강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으면 농로를 따라서 페달을 밟아서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그린웨이(Green Way)가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그린웨이는 안전하고 편리함과 함께 생태계 보존에 힘을 쏟습니다.

미국 뉴욕의 워터프론트 그린웨이의 모습.



낙동강을 따라 늘어서 강둑은 친환경 보행로 그 자체입니다. 짧게는 1km, 길게는 4km 조금만 정비하면 외국에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길입니다.  끊어진 길 끝에는 새로운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벗어나 농로를 따라서 또 다른 마을로 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스웨덴 친구가 우리나라 강둑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반듯한 도로를 만들지 말고 강둑을 살리면서 그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개인적으로 봉하마을이 사례를 들고 싶습니다. 친환경 농사로 강과 습지가 점점 살아나고 있습니다. 정치사상이 다른 분들도 화포천과 봉화마을 농로를 걷다보면 감탄하실 겁니다. 

근래 낙동강 주변으로 농지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국유지이기 때문에 3년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정도의 보상을 하고 그곳을 밀이서 공원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공원보다는 농지입니다. 국유지에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면 강도 깨끗해지고 농민들도 땅을 떠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자전거 족으로서 한말씀 드리자면, 자전거 도로를 만들 비용으로 하폐수처리장과 마을 하수도를 정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전거족은 그저 강둑길처럼 작은 오솔길이면 족합니다.

낙동강 자전거 여행 구간

< 1일차 > 합천군 대병면에서 창년군 부곡온천
09:30분 합천자연학교 출발  - 1026 지방도로 성리삼거리 (합천댐방향 좌회전) -  합천테마파크 - 용주교 진입, 1026도로 (합천읍방향으로 좌회전) -  좌회전 (합천댐방향 좌회전 09:50분) -   남정교삼거리 (강변길을 따라서 현대대성주유소까지 진입 10:20분) -  24번국도 군부대 앞에서 에서 임북리 방향으로 좌회전 - 임북리둑방길 - 10:30분문림교(합천군 율곡면 문림리) 24번국도 진입   - 문림교 - 율곡 강둑길 (율곡농협 순신장군 백의종군로 시작 지점에서 좌회전) - 1034 도로 -  서문수양관 도착 1시- 낙민3구 둑방길 (합천군 쌍책면) - 전두환 생가 -  갑산 강둑길 - 갑산정수장 - 갑산1구마을 - 방골재(터널) -낙민3구 - 24번국도 옆 농로 - 초계석재 - 농장 -  13:00분초계면 24번국도 - 초계면사무소, 초계시장 -  창녕방향 24번국도 - 청덕면 사무소 - 청덕교 - 외삼학 강둑길(합천보 공사현장 입구) -  합천보 공사현장 - 청덕교 - 24번국도 적포, 창녕 방향 -  중적포마을 - 적포 강둑 (상적포 마을에서 하적포 마을)14:40분 - 24번국도 - 16시 적포삼거리 - 창녕방향 적포교 - 67번 국도 이남삼거리 우회전 창녕방향 - 등대마을  강둑길 (창녕군 유어면) - 유어면사문소 - 유어면 삼거리에서 우회전 (영산, 부곡방면) 79번 국도 -  동정삼거리(창녕군 장마면) 우회전 부곡방향 -  영산 - 18:30분 부곡온천 도착 및 1박
< 2일차 > 창녕군 부곡온천에서 김해시 봉하마을 (한림정에서 부산까지는 무궁화호)
10:30분  부곡출발 - 수산, 초등방향 1008국도 - 임해진 삼거리에서 좌회전 (수산방향) 11:00 - 언덕 (청학로) - 학포리 - 본포교 - 본포교 끝에서 대산방향 - 현대건설 공사현장에서 창원시 대산면 취수장 방향  - 일동마을을 통과하여 일동초등학교  -  수산교 -  모산삼거리에서 직진 60번 국도 - 유청마을회관(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마을 댓거리추어탕(291-6967) - 대산미술관 12:50 - 유등 강둑길(유등취수장)  - 시호리(김해시 한림면) - 시호리 강둑길 -   모정취수장 - 철길 따라 한림정역  -  영강사 -  화포천 - 지광사 - 노무현 대통령 생가 - 한림정역 16:08분 출발, 무궁화호 이용 - 삼랑진 환승 - 부산해운대 도착 17:52분


경남 합천군 대병면 들판입니다. 이곳은 함양 울산간 고속도로가 곧 들어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합천읍에서 쌍책면까지 황강 주변의 갈대숲을 밀어내고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와 콘크리트 강둑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학리마을에 합천보 건설을 위해 공사차량 출입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소들이 둑에서 사라지자 길이 풀로 자전거가 덮일 정도로 무성합니다.

새들의 서식지인 황강 하류에 공사차량의 길이 생겼습니다.

합천보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불도저가 갈대숲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합천보 청사진을 보면 이곳에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납니다.

낙동강 중에서도 물살이 빠른 이곳에 보가 설치됩니다.

적포리 강둑 오른족에 무성한 갈대숲과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멀쩡한 강둑길을 두고서 오른쪽 갈대숲에 도로가 납니다.

오래전부터 낙동강을 젓줄삼아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도 올해까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드는 토지보상 비용이 1.5조라고 합니다. 낙동강 하류인 부산까지 내려가는 곳에는 수많은 농지가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도 낙동강에 드는 비용만 2조 가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포교 근처에서 엄청난 양의 모래가 어딘가로 실려가고 있습니다.

모래 채취 때문에 유속이 빨라지면서 삼각주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본포교 아래 고인물에 녹조가 끼면서 심한 악취가 납니다.

강따라 가면 아름다운 풍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직선보다는 곡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늦더라도 이마을 저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에 있는 댓거리 추어탕(055-291-6769) 입니다. 먹을만 합니다.

김해시 한림에서 삼랑진, 원동, 부산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체력이 다 해서 한림역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원래 접이식 자전거가 아니면 기차를 타지 못하지만 혼자 왔다고 하니까 승객들 불편을 주지 말고 맨 뒷좌석에 타라고 합니다.

시간이 있어 한림면 근처에 있는 봉하마을로 가는 길에 뚱뚱한 기러기 구름을 만났습니다.

화포천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하지만 화포천도 개발에 밀려 그 넓은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봉하마을 수로입니다. 물색이 탁해서 이곳도 오염됐겠구나 싶었는데, 물속에 파란 수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수로 끝에는 정화시설이 있어 화포천으로 깨끗한 물을 내보냅니다.

봉하마을 수로에 청둥오리가 놀고 있습니다.

봉화마을에 또다른 볼거리 논습지가 있습니다.

다시 한림역으로 돌아와서 4시10분 기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부산으로 갑니다. KTX가 달려오는데, 녀석은 저와 자전거를 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저녁에 해운대역에 도착했습니다. 온 몸에 흙이 잔뜩 자전거를 보니 녀석이 고생 꽤나 했지 싶습니다. 그래도 환경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진 않아서 녀석과 제가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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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고달픈 도시인 생활 8년차,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부산이다. 오늘은 섬진강이 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꺼내고 지도를 펼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한다. 

부산이라는 곳은 자전거에게는 꽉 막힌 산성과 같은 도시다.  낙동강을 건너서 경상남도 진해, 마산, 진주, 하동 이렇게 가고 싶지만 두바퀴로 갈만한 길은 아주 아주 힘들다. 불법과 목숨을 감수하고 만덕터널, 대티터널, 백양터널을 지나거나 산을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어쩔 도리없이 차에다 자전거, 텐트, 침낭, 코펠...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여기에 자전거 한 대를 더 실어야 하니, 앞이 캄캄하다. 혼자 내뺄까 하다가 그래도 동지가 있으면 즐겁지 아니한가? 진해에 들러 선배 꼬셔서 섬진강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뒷자석을 접으면 자전거 두대와 자질구레한 짐들을 실을 수 있다.


진해를 출발해서 세시간 가까이 달려서 하동 평사리공원에 도착했더니 새벽 2시다. 인근에 평사리야영장, 쌍계야영장 두곳을 고르다가, 아침에 깨끗한 마음으로 토지의 서희를 만나려고 평사리에 터를 잡았다. 

평사리야영장은 넓은 주차장과 깨끗한 잔디로 이루어져있다. 주차비 천원, 야영비 만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새벽 2시에 도착한 지라 돈을 받는 악양청년 분들도 없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지만, 섬진강 모래사장에 텐트를 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차에서 자고 일어나면 피곤이 등에 붙어서 하루종일 괴롭힌다. 그래서 캠핑용 텐트를 장만했다.


하동에 귀농하려고 했던 탓인지 평사리는 마음의 고향과 같다. 자전거를 타고 10여분 달려서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의 무대에 섰다. 통영에서 자라서 서울에 사셨던 분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소설을 쓰셨을까? 

문학을 모르는 사람도 이곳에 서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면 나름 파노라마를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의 파노라마는 이런 거다. "김준구는 섬진강을 파서 운하를 만들어서 돈을 벌 생각을 했겠지? 서희와 길상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지 세트장에서 평사리 넓은 들과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행인

햇살이 자뭇 늘어진 10시경 검두마을 앞 재방길에 들어섰다. 고분고분한 아스팔트가 지겨워서 그런지 선배가 둑방길을 달린다. 하얀 개망초 위로 검은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1km 정도의 비포장 도로지만 정겹고 꼭 살아남았으면 하는 길이다.


아침을 걸러서 그런지 배가 고파서 화개장터를 앞두고 밥집을 찾았다. 화개장터에 가면 자연산 어쩌구 저쩌구 내걸린 현수막이 가득하지만, 섬진강에서 자라는 메기, 재첩은 찾아보기 힘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허름한 식당에서 양식 메기탕을 시킨다.

화개장터에서 밥을 먹어야 제맛이지만 바가지를 쓰고 시끄러운 관광객들 틈에 끼느니, 여기가 진수성찬이다. 인심좋은 아주머니가 참게까지 넣어서 끓여준다. 소주 한 병 마셨더니 이만삼천원 나왔다.

화개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진 십리벗꽃길을 달린다. 사람과 자전거를 위한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기분이 좋은 선배가 쌍계사를 영어로 '더블치킨템플'이라며 우스개 소릴 한다.

짙은 벗나무 그늘을 따라서 4km를 달려가면 쌍계사가 있다.


이왕 도시 촌놈들이 이곳까지 왔으니, 검두마을에서 우회전해서 농로로 자전거를 이끈다. 아직 휴가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쏟아지는 계곡에 아무도 없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에 몸을 씻고 오동나무 그늘에서 옷을 말리며 낮잠을 잔다. 인기척이 나서 깨어보니 평상을 만든 농민이 와서 다가와서 되레 웃으며 푹 쉬었다 가라고 한다. 넓은 오동나무 잎만틈 주인의 마음씨도 넓다. 하지만 달려드는 벌레 때문에 10분을 못견디고 자리를 뜬다.

혹 계곡에 발을 담그려는 분들은 바닥이 미끄럽기 때문에 샌들을 가져가면 좋다.


12시쯤 쌍계사에 도착했다. 복장이 좀 거시기해서 부처님이 노하실까 일주문을 넘지 못하고 돌아섰다. 바퀴를 돌려서 십리벚꽃길(1023도로) 반대편1024 도로를 따라 화개로 달린다. 이쯤 되면 독이 오를 대로 올랐고, 자전거 여행에 맛이 들어간다. 초보자인 나도 무릎에 괜스레 힘이 들어간다. 내리막길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잠깐이면 화개까지 닿을 수 있다. 

화개에서 평사리 공원까지는 넉넉 잡아서 1시간이면 충분한데, 여행이 이렇게 끝난다면 재미가 없다. 이른바 개고생을 해보기로 한다. 남도대교를 건너서 경상도 하동길을 왼쪽으로 두고 전라도 광양길로 달린다.   

섬진강을 끼고 나란이 바다로 가는 길이지만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하동길은 즐비한 식당과 편의점이 들어서 있지만 광양길은 주위에 매화나무, 배나무가 가득한 길이다.

매실나무가 많기 때문에 도로가에 굴러다니는 노란 매실을 맛볼 수 있다.


평사리와 연결되던 배는 끊어진 지 오래라서 하동까지 내려가서 다시 평사리로 올라가야 한다. 초보자에겐 무척 고된 길이다. 식당과 편의점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늘마저 없다. 다만 차들이 많지 않아 자전거 타기에는 좋은 곳이다.

화개에서부터 다암면까지 가게는 찾아볼 수 없다. 다암면에 도착해서야 작은 구멍가게를 발견하고 물과 빵을 샀다.  

광양시 다암면 다암초등학교에 있는 수양벗나무. 나뭇가지가 위로 자라지 않고 땅으로 향하고 있다.


오후 4시, 섬진강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위에서 아이들과 꼬막을 줍는 여인들,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 정겨운 풍경이다. 평사리공원까지 다시 올라가려다, 저질체력을 섬진강 앞에서 다 보여준 지라 식당에 들러 녹차냉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택시를 타고 평사리공원으로 갔다.  

섬진강 다리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강을 따라 가다보면 남해를 만난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섬진강 자전거 여행. 이것으로 일단락.




경상도 길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평사리공원)→화개→(1023)쌍계사→(1024)화개
전라도 길 : 화개남도대교→매화마을다암면→섬진강다리→하동

 
총거리: 67.664 km
예상소요시간 : 오전 8시~오후 4시 (8시간)
하동에서 평사리공원까지 택시이용 : 055-884-3835 (하동개인 / 13,000원)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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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을 찾았다. 귀농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합천댐을 돌아보려고 자전거를 싣고 왔다. 하늘은 맑고 살은 따갑다. 아직 여름이 푸름을 잡수시고 계시지만, 물과 꽃들은 붉어간다. 신이 최초로 만든 꽃 코스모스. 향기도 꿀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지만 나비가 부지런히 단맛을 보려고 날개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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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그렇다. 제가 키운 여린 것들을 떨쳐내기가 쉽진 않을거야. 제일 연약한 이파리부터 가을을 맞는다. 황매산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견디려면 나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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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계곡에 들러 자전거를 세우고 물을 본다. 물속에서 산과 구름을 넘어가는 어린 생명들이 물뱀이 지나가자 화들짝 놀란다. 그러나 잠시 어느 것 하나 다름없이 그대로다. 나만 그렇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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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큰 두꺼비 한 마리가 이방인을 노려본다. 내가 보기엔 네녀석이 더 이방인인듯... 두꺼비는 거북한 배를 움켜쥐고 방귀를 뀌며 강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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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려고 물가에 갔다 온 사이 강아지 한마리가 지갑을 물고 도망가는 바람에 한바탕 사투를 벌였다. 으르고 달래고 녀석의 호기심을 돌려보려고 빵 한 조각 건냈더니 좋다고 꼬리친다. 인간과 개의 역사에서 꼬리만 흔들면 인간이 먹이를 줬고 그래서 개는 종족을 보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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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면 상천리에서 본 죽죽리, 힘겨운 비탈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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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를 세번 넘었을까, 언제나 힘겨울 때 안겨주는 풍경이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이 숭고하다. 가뭄에 등가죽이 타들어간 거북이가 물에 합천호를 헤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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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죽리 천수논. 지금은 물을 끌어올려 농사를 짓지만 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여기가 밭이었을 것이다. 고개마루 왼쪽으로 가면 댐을 따라서 한바퀴 돌 수 있는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시간이 없어 오른쪽 길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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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 지는 모른다. 예전에 봤던 나무, 꽃, 나비, 사람들마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며 쓴 편지도 우채통에 들어가는 순간 가을을 지나 겨울이다. 날개가 부서지는 찬 바람이 부는 날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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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를 봐라보고 거가대교가 공사중인 왼쪽에 강서구에서 관리하는 공용주차장(무료)이 있고 오른쪽 백미터 지점에 녹산선착장이 있다.


중고로 구입한 자전거를 싣고 강서구 녹산에 도착하다. 해운대에서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오려고 했지만 부산은 자전거 타기가 참 고약한 동네다. 터널을 통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산을 넘어서 낙동강을 건너기에는 체력적으로 부담된다.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강서구에서 관리하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녹산선착장에 도착하다. 자동차가 있는 가덕도 주민들은 녹산과 가덕도를 잇는 임시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배편이 많이 줄었다. 현재 녹산에서 첫배는 6시40분, 마지막 배는 5시40분으로 한 시간 간격으로 있다. 그것도 선창과 눌차 방면으로 가는 배가 그렇다.  가덕도 종주가 목표인만큼 자전거와 나 단 둘이서 밀애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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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운반비 왕복 1,000원에다 승선비 왕복 2,600원이면 부산에서 제일 큰 섬 가덕도를 갈 수 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선창 선착장(다리 건너서 눌지 선착장이 있다)에 도착. 평일이지만 사람들이 꽤많다. 학교급식 거리라든지 생필품 등이 가득하다. 가덕도에 다리가 놓여지면 이 배도 운항을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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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등산지도

  • 첫날 길 :  선창 출발 (15시) - 천가초등학교 - 소양원 - (능선 정상까지 경사 A급)- 국군용사추모비 - 영주암 (숲길이 아름답다. 하지만 영주암부터는 내리막길 경사 A급) - 천성 - (경사 B급)- 대항  - (경사 B급) - 내항  - 대항 - 새바지 - 대항  
  • 이튿날 길 : 대항(10시 출발)  - 천성 - (경사 B 급) - 장항 - 선창 (12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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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지도보다는 국제신문 지도가 더 자세하고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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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가초등학교를 지나서 천성으로 넘어가는 오솔길

천가초등학교를 지나 천성으로 가는 길은 봉고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이다. 배에서 물건을 실은 차를 몇대 보내고 나면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이곳도 곧 관광지로 변할 것이다. 전망좋은 이곳을 돈 있는 사람이 몇이나 소유했을까? 몇년 뒤 여기에 모텔이 얼마나 지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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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원 아래 언덕에서 뒤를 돌아보면 선창과 눌지항이 보인다.

조용한 길을 가다 뒤를 돌아보면 선창과 눌지 마을이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쉬엄쉬엄 페달을 밟아 온 탓에 등에 맺힌 땀방울이 가볍지만 언덕을 접어들때 길가에 널부러진 솔방울만큼이나 땀이 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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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서 만난 아이들과 소나무. 길이 뚤리면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제거해야 할 대상 1호. 나무를 베어낼 명분을 찾고 있을 개발업자들이 무섭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헉헉 대는 나를 보고 산악자전거냐고 묻는다. 딴에는 자전거가 비싸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헬멧과 바지와 중고 자전거가 싸구려 티는 안난다. 어디가냐, 물었더니 집에 간단다. 학교에서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이 깊은 산골짜기에 집이 있다니 복받은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 소양원에 사는 아이들? 그게 무슨 대수랴. 맑은 녀석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기어를 1단으로 내리고 비탈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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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봉과 매봉 사이에 있는 국군용사추모비.

선창 마을, 소양원도 소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 길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끌고 가다 타고 가다 능선에 도착했다. 왼쪽으로는 연대봉으로 가는 비포장 도로가 있고 정면으로 난 길은 천성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국군용사추모비 옆 공터에서 물을 마신다. 가방에 든 책을 꺼내 읽으려다 그만둔다. 이곳에서 <지젝이 만난 레닌>을 읽기에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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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용사추모비에서 영주암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오솔길, 이 아름다운 길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사르르, 맺힌 땀과 이별이다. 바퀴살이 땀을 털어낸다. 내리막이다. 소나무 병사들을 제치고 달려간다. 풀잎이 손을 흔든다.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속도를 즐긴다. 아름다운 길이다. 자동차 한대 겨우 지나갈 길 옆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풀들과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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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암에서 본 연대봉

소나무 숲 길에 작은 암자가 있다. 영주암이다.  높지도 않은 산이지만 항상 구름에 봉우리가 가려져 있다. 영주암에서 50미터 내려오면 장항과 천성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지도에서는 국군추모비에서 갈라지는 길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지도가 잘못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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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내려다본 천성마을. 땅을 팔아서 돈을 만져볼 사람도 있겠지만 연대봉과 마을 사이에 아스팔트 길이 나고 동쪽으로 난 바닷길 위에 거가대교가 들어선다.

천성마을로 가는 길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뒷바퀴가 들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자전거와 함께 천천히 길을 내려간다. 놈이 앞서 가려면 내가 한발 더 앞서려고 한다. 그렇게 천성에 도착했다. 인연이 있는 천성공부방에 들러서 사모님께 인사하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거가대교 공사가 한창인 언덕을 넘어 대항으로 간다. 소양원 언덕보다는 경사가 급하지 않지만 쉬지 않고 오르려고 하다보니 꽤 힘들다. 언덕 아래 매실농원에서 막걸리 한잔에다 파전을 먹고 월요일에 찾은 손님이 반가운 듯 주인이 매실과 자두를 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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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가대교 공사현장에서 얼마 되지 않는 길에서 만난 도둑게

대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돌아왔을 때 도둑게와 마주쳤다. 자기도 놀라고 나도 놀란다. 금새 바퀴 사이로 숨는다. 밤에 몰래 사람들이 사는 집에 들어와서 밥을 훔쳐먹는다는 녀석. 어디서 무엇을 훔쳤길래, 당황하는 기색이 붉다. 너는 먹을 것을 훔쳤지만 인간은 너의 삶을 훔쳤기에 내가 더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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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능선을 따라가면 연대봉, 오른쪽 산 정상은 국수봉이다. 그 가운데 샛길을 따라가면 새바지 마을이고 그 바다를 건너면 다대포가 있다.

대항이다. 지리적으로 가덕도에서 외항과 더불어 남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다. 거가대교 때문에 오염되고 있는 천성과는 달리 겉보기에 평화롭고 바닷물이 깨끗해 보인다. 대항에서 녹산으로 가는 배가 하루에 4편 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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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항 마을에 있는 정자나무

대항이 새롭게 단장된 곳이라면 외항은 개발이 안된 곳이다. 군사지역이라서 그런가 보다. 옛 우물터도 보이고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속에서 보았던 마을처럼 보인다. 한 고개를 더 넘어가면 가덕도 등대가 있다. 그곳까지 가고 싶었지만 군사지역이라는 표시를 보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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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내려다본 대항마을, 어둠 너머 새바지마을이 있다.

대항에 다시 왔을 때 어둠이 내린다. 곧 비가 내릴 태세다. 새바지마을에 일본사람이 만든 동굴이 보이는 언덕에서 다대포를 건너 본다. 구름이 짙어 노을을 보긴 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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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초소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본 새바지마을 해안

작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몽돌을 쓸어가는 파도소리가 세차다. 파도에 씻겨지는 메마른 돌멩이처럼 옷이 젖는다. 자전거를 일으켜 대항으로 휘파람 불며 내려간다.  바람소리가 충분하여 나의 불협화음은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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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분이 운영하는 민박집, 바닷가가 붙어 있어 잔잔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대항에는 햇살이 남아 있다. 집게를 펴고 눈을 굴리는 게처럼 생긴 민박집에 짐을 내렸다. 집 한채를 나 혼자 쓰는데 20,000원이다. 신식 펜션보다는 불편하지만 창문을 열고 누웠더니 잔잔한 파도소리가 제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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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포구에서 멈춰버린 어선

다음날, 평일이라서 아침을 하는 곳이 없다. 빵과 우유를 먹고 천성을 지나 두문, 장항, 율리를 지난다. 신항만이 들어서면서 크고 새로운 배들이 들어왔지만 작은 배들은 죽어가고 있다. 생명들이 멀리 떠나거나 죽은 바다에 떠 있는 고기잡이배가 을씨년스럽다. 생태주의자는 아니지만, 무엇을 위해 저렇게 파헤치고 시멘트로 숨을 틀어막는 것일까? 경제를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세계화 시대의 비판적 페다고지가 가능한지 소나무 아래서 책을 편다. 지구 온난화... 전지구적인 재앙의 시점에서, '비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어쩜 레닌과 프레이리의 유령이 다시 춤을 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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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이 메워지고 컨테이너항으로 개발되고 있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여행의 끝자락, 잿빛 하늘을 보며 절망한다. 데리다는 마르크스는 죽었다고 선언하고 자본주의의 문신이 판을 칠 때 이른바 '새로운 세계질서'가 가져올 재앙에 대해서 경고했다. 장기적으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비판의식' 뿐이다고 말한 부분에 밑줄을 친다. 모든 '시작'은 이미 언제나 정치적 행위이다. 지금 나의 행위는 조롱이자 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비판이다. 산을 깎아 바다을 메우는 인간들의 폭력성을 바로 눈 앞에서 경제라는 이름으로 박수를 쳐줄 순 없다.

윌리암스의 <나무들>이라는 시를 떠올린다.

나무들은-나무들이기에

몸부림치고 비명을 지르고

크게 웃으며 저주한다-

전적으로 버림받았다

인간족속에 욕설을 퍼붓는다


제기랄, 개자식들은

비를 피할 만큼의

상식도 없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