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놀이문화 – 대동놀이와 난장판 이론

이상일 (1983)

 , 출처 아르떼 http://www.art.go.kr
주제분류 공연예술>예술가
생산자 이상일
자료제공 이상일
자료형태 텍스트
생성일 1983년


1. 서론 : 놀이 문화론

‘놀이’가 문화론의 한 주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놀이’에 대한 인식의 드높임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놀이가 단순히 ‘시간 보내기’로 간주되는 한 ‘놀이’의 문화론적 사상체계가 이루어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놀이는 그 성격상 개인적 레벨과 집단적 레벨로 나누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집단적 놀이를 ‘대동(大同)놀이’로 간주하는 한 놀이는 생산(生産)과 작업(作業)과 같은 노동형태와 밀접하게 맺어진다. 노동형태와 연관된 놀이어야 비로소 놀이문화는 민중사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잡희(雜戱)’로 불려 나온 연극(演劇)은 어원적으로 놀이와 맺어져 있으나 ‘희(戱)와 극(劇)의 사회적 존재가 심히 희미해졌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한국의 놀이학자는 최남선(崔南善)이었다.
그는 연극을 나타내는 우리말이 짓, 굿, 노릇의 세 가지로서 그 세 가지가 다 같이 놀이와 드라마의 의미로 쓰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개념상의 혼유는 초창기의 놀이학에 있어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르상의 구별이 분명해지는 것은 개념의 확립이 성립된 다음에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사전적인 용례(用例)를 끌어 내는 것도 놀이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타당할 것이다. 이희승 편 <국어 새 사전>에 의하면

놀이 – 노는 일
놀음·노름 – 돈이나 재물을 걸고 따먹기를 다투는 내기, 도박
놀음놀이 – 여럿이 모여 즐겁게 노는 일

이상과 같은 표기(表記)에 의하면 ‘놀이’는 ‘노는 일’이라 하였고, 따라서 그것도 하나의 ‘일’이 된다.
명사 ‘놀이’의 어원이 되는 동사 ‘놀다’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뜻이 담겨 있다.

① 일 않고 세월을 보낸다.
②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지내다.
③ 박힌 것이 헐거워 흔들리다.
④ 윷·주사위 따위를 던지다.

위 뜻으로 보면 일·작업에 대비되는 한가함·게으름·여유의 소극적 놀이개념즐거움·신명·겨루기와 같은 적극적 행위개념의 두 가지 유형이 성립될 수 있으며 그 말 밖에 개인적인 놀이와 집단적인 놀이의 형태가 아른거린다.
그것만 가지고서는 놀이학의 놀이개념이 설정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놀이의 개념과 어원에 대해서는 국어학적인 측면에서보다 연극학·민속학·인류학·종교학의 측면에서 다루어 보는 것이 보다 포괄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이두현(李杜鉉)은 연극드라마의 원류를 인간의 모방본능 내지는 유희본능으로 보려고 한다. 놀이와 굿에서 연극적 모태(模態)를 가정하는 것은 최남선과 같은데 그는 동시에 인류학, 민속학적 측면에서 놀이의 시야를 확대한다. 연극이 뜻하는 ‘노릇’, ‘놀음’은 유희, 휴식, 가요(歌謠)를 뜻하는 어원 ‘놀’에서 나온다. 노릇과 노래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임은 놀이의 가무적(歌舞的) 성격과 관련해서 흥미 있는 일이다.
희극(戱劇)을 뜻하는 우리말인 노릇이라든가 ‘짓’ 가운데 손짓이나 몸짓은 마임(mime, 科)을 나타내는 말이다. 소리(音聲)없이 몸짓만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몸짓말에서 절주(節奏)가 따르면 몸짓춤(mime dance)으로 연결되고 거기에 다시 소리가 따르면 하나의 단락(거리·場面·幕)을 나타내는 짓거리(drama)로 발전되는 것이 ‘짓’행위의 연극적 발전 양태이다.
놀이를 노릇이나 짓으로 풀지 않고 굿으로 푼 장주근(張籌根)은 굿의 정의를 대감놀이, 옥이풀이, 성주맞이 등으로 부르는데 유의해서 신령(神靈)을 맞이해서 놀이를 시키고 신의 노여움이나 인간의 재액을 풀이시키는 굿의식에다 놀이를 대입시킨다. 가창(歌唱)되는 legomenon은 풀이로, 행위되는 dromenon은 놀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무속(巫俗)의 현장에서 현용준(玄容駿)은 세경놀이, 영감놀이 같은 놀이형식을 기본의식형식으로 삼아 불러 내는 신의 신화내용을 행동으로 연출하는 일종의 성극적(聖劇的) 의식(儀式)의 삽입으로 본다. ‘맞이굿’이 언어 위주의 기본의례와 무용 위주의 의례가 이중적으로 복합된 것임에 비하여 언어 위주의 기본의례에 극적(劇的) 의례가 이중적으로 복합 구성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런 측면에서 특히 놀이의 의미를 강조하는 김열규(金烈圭)는 ‘굿’의 집단적인 제의(祭儀)를 통찰하면서 개인제의인 고사(告祀)와 대조적이긴 하지만 굿의 효능을 높이고자 할 때는 고사와 굿이 복합적으로 병존하게 되고, 특히 굿이 연악(宴樂)일 때 놀이와 접경(接境)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간전승에 있어서는 놀이가 제의와 상충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호이징가(L Huizinga)식으로 말하면 유희와 종교적 행위의 동일성, 그리하여 제의나 주술, 축도(祝禱), 비의(秘儀) 등의 개념이 유희라는 개념 속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전(現傳)의 각종 민속적인 이른바 절후제의(節候祭儀)가 놀이로서 의식되고 또 표현될 때 ‘놀이’는 ‘굿’과 접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구별하자면 굿이 제의(rite)의 동의어로, 놀이가 축제(feast)의 동의어로 쓰일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놀이’는 신성한 유오(遊娛)의 두 측면을 갖는다. 성스런 행위인 dromenon은 무엇인가 실지로 행하여진 일이다. 이에 비해 가령 연행의 형태나 또는 경축(競逐)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행위, 곧 표상(表象)된 행위가 드라마이다. ‘놀이’는 신성한 것이면서 아울러 ‘꼭두각시 놀음’에 있어서처럼 연극이기도 한 것이다. 이때 놀이는 신성과 유오(遊娛)와 예술이 종합체가 된다. ‘놀이’에 관한 한 이 삼자의 구획(區劃)은 어려울 것이다.”(김열규,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일조각, 1971)

대체로 놀이가 행위의 측면에서 다루어지게 되면 그 놀이행위는 집단적 활성(活性)의 한 표현으로 간주되고 그렇게 해서 한국의 ‘놀이론’은 굿과 관련된 제의적 속성에 의한 관심이 예각화되어 있다. 그러나 놀이의 자기 완결적, 자족적 무상성(無償性)에 대한 논거는 결국 다른 철학의 세계에서 도입해 올 수밖에 없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놀이의 무상성은 무목적성으로서 생의 수행이라는 근거없는 자기내부진동을 가능케 한다.
핑크(E. Fink) 교수는 놀이를 세계상징이라고 보고 있다.

“놀이의 무근거성(無根據性)이 인간의 목적적, 유의적, 가치 규범적, 계획적 행동 속에 자리함으로써 놀이는 첫째로 ‘목적’, ‘의미’, ‘가치’, ‘계획’을 속으로 감춰야 하고 둘째로 가상(假象)을 매체로 해서만이 우주의 비유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놀이에서 세계의 계기가 조명되지만 그것은 놀이 속에 교차된 현실과 비현실의 이중성을 통해 굴절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놀이는 세계상징(Weltsymbol)인 것이다.”(E. Fink, Spiel als Weltsymbol, Stuttgart 1963, p239)

종교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제의·연희적 놀이론이 민속연희·예술·행사의 이름으로 거론됨은 당연하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민속의 행위체(event)로서 구체화되는 현장이 바로 놀이일 수도 있는 놀이의 오유성(娛遊性)과 참여성 – 같은 참여라 하더라도 단일참여와 대립참여가 있듯이 오유에도 단순놀이와 복합놀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 놀이론은 사회적 맥락을 더듬으며 전승된 놀이행위를 통해 민속문화론, 내지는 놀이문화론으로 격상케 되는 것이다.

2. 손진태의 놀이분류

이미 알아 온 것처럼 놀이가 관념적 혼유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형성하는 형태 양상 및 현상에 따른 분류가 가능해지고 특히 전승행사의 현장에서 그 형태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놀이문화의 기원에 대한 탐구에 앞서 우리는 현존하는 놀이현상과 형태에 따른 분류방법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놀이본성을 문화의 시점에서 성찰한 호이징가에 의해서, 그리고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간 카이오스에 의해서 본질적으로 규명된다. ‘인간은 단지 신의 도구(장난감)가 되도록 만들어졌다’는 뜻에서 인간정신은 오직 지고(至高)의 존재로 시선을 돌렸을 때만이 유희라는 마권(魔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한 호이징가는 단호한 판단 아래에서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궁극적인 것일 수 없다는 의식이 있다는 전제 아래 “모든 것은 헛되도다”라는 말 대신 “모든 것은 놀이로다(Alles ists Spiel)”라는 조금은 긍정적인 결론이 나온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놀이를 말할 때는 그 기원에 고대심성의 인간이 거론된다. 그 원초적 인간들이 먼저 자연체험과 대결하다가 그것을 제의(祭儀)형식으로 표현해 나아가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제의에 관한 관념이 이미 전통적 소재가 되어 버려서 그것을 미리 마련해 놓고 그것처럼 보이며 연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제의공동체(祭儀共同體)에는 공상적인 비유로써 간신히 자연체험의 제의화 과정에 접근해 갈 수 있을 뿐이다. 사상(事象)이 형상화되고 이미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작용하는 기능은 시적 기능이며 그 시적 기능은 좋게 말해서 유희적 기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호이징가 교수가 정의내리는 ‘놀이’는 다음과 같다.
놀이란 어떤 정해진 시공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행위 내지는 활동이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절대적 구속력을 가진 규칙을 따른다. 놀이의 목적은 행위 자체 속에 있다 그것은 긴장과 즐거움의 감정을 수반하며 그것이 일상적 삶과는 다른 존재라는 의식에 떠받쳐 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놀이의 특징으로 든 것은 첫째 자유로운 행위라는 것, 둘째 놀이는 독자적 성격을 지닌 활동이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로 일상생활 밖에 있는 놀이는 놀이가 시작됨으로써 일상적인 삶을 중단시킨다는 점이 강조된다.
놀이는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 일시적 행위로서 어느 순간에 시작되어 어느 순간에 끝난다. 그 사이 ‘일’은 중단된다. 놀이는 그대로 문화형식으로 정착된다. 정신의 창조물로서 살아 남는 놀이는 되풀이된다. 놀이공간에는 독자적인 절대적 질서가 지배한다. 놀이가 질서를 만들어 내어 놀이질서가 된다. 놀이가 부과한 질서는 절대적이라서 놀이질서의 내적 결합이 놀이를 미적 영역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호이징가가 말하는 문화적 놀이, 소위 놀이문화론은 적극적인 활동으로서의 놀이를 말하는 것이다. 놀이 분류는 여러 분야에서 가능해질 수 있지만 우선 적극성과 소극성으로 나누어 볼 때 오락, 예술, 도박 등 적극적 놀이와 살림에 매달리지 않는 여유나 느긋함 등도 소극적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놀이는 문화적 제도적 놀이와 본능적 자연적 놀이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놀이’라는 개념을 광의의 놀이, 협의의 놀이로 나누고 대체로 ‘놀이’라고 했을 때 넓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다시 시간에 중점을 둘 때는 여가·레저라 부르고 그 시간 속에서 행해지는 동작이나 상태를 중심으로 해서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놀이’로 간주한다.
일찍이 우리의 놀이문화의 분류를 시도했던 송석하(宋錫夏)는 <전승놀이의 유래>에서 그네와 씨름, 강강술래, 탈놀음, 줄타기에 대한 해설을 곁들인 적이 있지만 그보다 앞서 1935년 이미 지상을 통해 오락이라는 표현으로 민속놀이의 조장과 정화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는 놀이개념을 오락으로 파악했고 민속놀이를 농촌 오락, 또는 전승 오락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관념적, 구조상 혹은 계절적 등으로 나누어 분류한다. 실제적으로 놀이의 관념적 분류 혹은 존재상의 분류가 가능한지, 그가 말한 구조상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설정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적 놀이를 특히 계절적·지리적 분류를 통해 놀이형태의 대체적인 분포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놀이학의 선편을 놓은 그의 논문은 미흡한 체계, 그리고 방만한 구성 때문에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농촌 오락의 조장과 정화에 대한 사견(私見)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같은 종목의 오락(민속놀이)을 여러 관점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이를 보편적 놀이와 특수한 놀이로 나누었다는 점과, 분류의 표제야 어떻든 개인의 놀이와 단체의 놀이를 식별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 점으로 보면 송석하는 적어도 놀이를 놀이학으로 끌어올리고 하나의 문화론으로까지 가져 갈려고 했던 것 같고 그런 노력이 놀이의 기구, 관념, 존재 등의 분류로 나타났을는지도 모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농촌 오락의 조장>에서 그가 분류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첫째로 기구상의 분류이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음악·무용·유희 등은 단체와 개인으로 나누어진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는 단체오락으로는 줄다리기(索戰)를 들고 남성오락으로 석전(石戰)과 농악 그리고 여성오락으로 놋다리 밟기와 강강술래가 거론되고 있다. 개인오락으로서 남자는 씨름, 여자는 그네, 남자라도 노년층에는 바둑, 젊은 층에서는 연날리기, 여자의 노년층에서는 모래찜, 젊은 층의 꽃놀이 등이 분류된다.
둘째로 계절적 분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정월에 이루어지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절후(節候)제의, 혹은 풍요(豊饒)제의의 잔존형식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계절적 분류에 의한 ‘놀이’의 형태는 제의와 놀이 그리고 생산과 놀이에서 다시 다루어 보겠다.
셋째로 관념적 분류로서는 a) 정서감정상 b) 사행정상 c) 종교신앙상 d) 향악상 e) 체육경기상으로 나누어져서 카유아 놀이의 4요소와 근접된다. 지리적 분류에서는 남선지방, 중선지방, 북선지방이 나누어진다. 끝으로 존재상의 분류라고 해서 줄다리기, 농악과 같은 보편적인 것과 산대놀이, 차전놀이 같은 특수적인 것이 나누어지는데 특수한 것을 지리적, 계절적으로 나누고 다시 계절적인 것을 일반적이라는 표현과 노동적이라는 표현으로 나눈다.
그가 이 부분에서 보편적 놀이와 특수한 놀이로 나눈 근거는 상당히 애매하다. 사실은 다 같이 특수한 놀이라 하더라도 지리적 구분으로 나누어진 지신(地神)밟기 같은 것이 계절적 놀이의 일반적 놀이가 될 수도 있고 노동적 놀이로 분류될 수도 있어서 이 점에 송석하식 놀이 분류의 혼란이 엿보인다.
송석하는 대동(大同)놀이 같은 집단연희를 무의식 가운데 ‘전승오락’이라 부르고 있고 이 점에서 그의 체계적 놀이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가 열거한 놀이양태는 61종이지만 그것이 집단의식을 고양시키는 대동놀이의 그것과, 단순한 개인 차원의 오락성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이 흠이다.
그가 구분한 놀이양태 가운데 집단·대동놀이적인 것과 단순한 오락적인 것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집단연희(集團演戱) – 줄다리기, 놋다리 밟기, 강강술래, 석전, 농악, 꽃놀이, 가면극, 지신밟기, 목우희(木牛戱), 영월(迎月), 답교(踏橋), 차희(車戱), 野火戱(쥐불놀이), 炬火戱(횃불놀이), 사자춤, 연등제, 판소리극, 인형극, 그림자극, 서낭굿, 머슴날놀이(2월), 화전놀이(3월), 초파일놀이(4월), 단오놀이(5월), 유두놀이(6월), 백중놀이(7월), 추석놀이(8월), 복놀이, 천렵(川獵),머슴 초연(草宴), 두레놀음, 거북놀이, 조리희(照里戱), 소놀이, 투우, 극락(極樂)맞이, 별신굿

같은 전승놀이라 하더라도 비교적 의례적이며 오락•경기성이 강한 놀이양태는 다음과 같다.

기로회(耆老會), 씨름, 팽이돌리기, 바둑, 단소, 연 날리기, 그네 뛰기, 모래찜, 중로(中路)보기, 윷놀이, 널뛰기, 종경도(從卿圖), 경로회, 궁술, 골패, 투전, 장기

기타 그가 신식 오락으로 든 놀이들은 다음과 같다.

연극, 가극, 음악, 무용, 야담, 정구, 탁구, 축구, 낚시, 영화, 곡마, 축음기, 라디오, 당구, 화투, 마작, 등산, 사진, 역기, 골프. 승마(사교춤, 카드 놀이 등도 포함된다.)

그러한 신식 오락이 대체로 개인의 혼자놀이거나 집단적 혼자놀이 레벨로 ‘혼자놀이’, ‘방관적 행동’, ‘병행(並行)놀이’ 타입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초기의 집단놀이 형태인 ‘일방교통’ 스타일과 같은 상호교제가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둘이 사귈 때는 나머지 다른 하나가 제외되는 국부교제(局部交際) 양식을 거친다.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보유하는 전원 상호교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빈번하고 일체성이 극히 낮은 집단놀이는 전승연희집단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취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승된 놀이로 가장 보편적인 윷놀이, 그네뛰기, 널뛰기 등은 카유아가 말하는 겨루기의 요소라든가, 내기 그리고 아찔함과 함께 루두스적인 측면이 강하다. 놀이의 시간과 공간이 인공적으로 한정된다는 면에서 놀이의 시간과 공간은 특정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우리의 집단 대동놀이는 일정한 시간, 곧 계절의 특정된 고비에 베풀어지는 놀이로서 공간의 이동이 가능한 데다가 농경사회의 풍요제의적 흔적이 진하게 깔려 있다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3. 집단연희 – 노동·생산·여가

집단·대동놀이 형식이 농경사회의 풍요제의적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은 놀이의 자율적인 환경설정(環境說定)과 관련되어 있다.
놀이의 환경설정이라는 사유 가운데는 집단형성, 공동체 구성원의 사회성을 촉진하는 조건이 중시된다. 그 조건은 사회적 조건과 자연적 조건이 될 것이다.
개인의 사회화에 기여하는 놀이문화는 자기 중심적인 비사회적 언어의 개인의식이 전달기능을 갖는 사회적 언어로 바뀌면서 협동적 행위를 증가시키는 경우 집단중심적 심리, 집단의식으로 전환된다. 놀이의 종류로 말하면 연합(聯合)놀이, 협동(協同)놀이는 자기 욕구를 관철시키는 것만으로는 집단놀이의 성립이 불가능하므로 집단 구성원은 집단 목표를 고려하고 집단유지에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다. 놀이의 규정을 지키고 끊임없이 남과의 밸런스를 취하며 자기의 욕구를 통제해야 한다. 주고 받는 행위가 협동의 기본이며 사회적 행동의 원칙인 것이다.
자기의 욕구를 채우고 자기를 살리는 길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서 받아들여져 다른 멤버들과 함께 집단을 유지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대감에서 ‘우리 의식’이 생겨나고 우리 감정이 자란다. 집단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해서 볼 때 한국의 놀이를 개괄한 김광언(金光彦)의 리포트는 큰 도움을 준다.
<한국 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북편, 제주편, 경남·북편, 강원편, 경기편, 서울편 ;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조선의 향토오락>(조선총독부, 1941), <한국의 풍속상>(문화재관리국, 1970) 그리고 <한국의 민속예술>(문예진흥원, 1978) 등에 실린 민속놀이 약 200종을 개인놀이와 집단놀이로 나눈 그는 노래와 춤, 화려한 의상과 깃발 그리고 농악에 곁들여진 예술적 분위기를 가진 경우 집단놀이로 간주한다. 이렇게 전승되어 나온 집단연희를 대동놀이라 부른다면 이러 놀이를 통해 협동과 단결심 그리고 향토사랑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는 놀이는 계절제의 그리고 농경사회를 반영하는 풍요제의의 신화적 모의(模擬)극이나 경축희(競逐戱)의 연원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놀이의 종류를 김 교수의 조사보고에 따라 열거하면 31종이 된다.

두레놀이, 시선 뱃놀이, 거북놀이, 소멕이놀이, 띄뱃놀이, 거리제, 고싸움, 나무쇠싸움, 쌍용(雙龍)놀이, 영등 굿놀이, 은산별신제, 좌수영 어방놀이, 지신밟기, 동체싸움, 농기세배, 강강술래, 놋다리밟기, 용호놀이, 문호장굿, 탑놀이, 산장군놀이, 줄다리기, 놋다리밟기, 관등놀이, 입춘굿, 사자놀이, 강릉단오굿, 다리굿, 세경놀이, 영감놀이, 대감놀이

위의 31종의 대동놀이도 지역적인 특수성을 갖는 것과 한국적 보편성을 갖는 놀이 형식으로 갈라질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놀이 시기도 원단(元旦), 단오 등 계절적 고비에 따라, 또는 아침, 밤 등 시차를 보일 수 있으므로 음악적이냐 무용적이냐, 혹은 무의적(巫儀的)이냐를 따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극적이냐, 행렬적이냐, 폐쇄적 공동체 구성이냐, 개방적 종합체냐를 따질 수도 있다. 그 놀이공동체 구성원이 성인남녀 공동인가, 성인 남성, 성인 여성, 혹은 어린이 놀이인가, 어린이 놀이라면 남녀 구별이 되어 있는가 등도 더 조사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놀이문화를 형성하는 향토오락에 대한 일제의 총독부 자료나 기타 1970년대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세시행사가 그대로 향토오락이며 민속놀이로 간주되어 있다.
이 점은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세시풍습이 향토오락이고 민속놀이라는 기존관념은 놀이의 문화론을 저차원에 머물게 할 뿐 아니라 놀이의 과거지향성을 강조하게 되고 더욱 놀이의 창조성을 외면하게 만든다.
민속놀이가 그대로 전통예술로 간주되는 마당에는 놀이와 예술의 상관관계가 타당한 논리적 전개없이 뒤섞이기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동놀이의 과거지향적 역사성과 사회성을 겨냥하면서 놀이문화의 자족(自足)적 충만감의 카타르시스 기능에 유의하면서 향토오락이라는 놀이의 속성을 천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나타난 향토오락의 분포순위는 다음과 같다.

산유(山遊, 伏놀이, 천렵, 약수행 등) – 306개 지역
쥐불놀이(횃불놀이, 달집 태우기 등) – 200개 지역
농악(지신밟기, 메구, 걸궁, 걸립 등) – 191개 지역
꽃놀이 – 172개 지역
달맞이 – 146개 지역
호미씻이(풋굿, 草宴, 백중놀이 등) – 131개 지역
줄다리기 – 106개 지역
광대놀이(가면놀이, 인형극, 줄타기, 소놀이 등) – 102개 지역
다리밟기 – 99개 지역
당제(堂祭, 서낭제, 도신제, 산신·용신제 등) -58개 지역
풍년제(豊年祭, 농사, 유두놀이, 칠석놀이 등) – 50개 지역
연등놀이(초파일, 등불놀이 등) – 47개 지역
두레 길쌈(들개삼, 모시두레 등) – 44개 지역

이러한 대동놀이가 계절제의와 농경행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생산과 일과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지역공동체 의식과 맺어져 있음은, 그러한 노동 형태의 소멸과 공동체 의식의 단절이 바로 대동놀이의 쇠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생산과 노동과 놀이는 일과 레저(餘暇)와 상관하여 그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대조하면서 고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것은 쾌락과 고통을 보는 시선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생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보완(補完)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파커(S. Parker)는 비산업사회에 있어서는 노동과 여가가 융합해 있다는 점에 유의한 왁스의 이론을 지지한다.
한나 아렌트 여사는 노동(work)을 개인 및 종족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활동으로 간주하고 노역(labor)은 사물의 인공적인 세계를 준비하는 비자연적 활동을 의미한다고 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진지한 활동을 생계를 위한 위치로 레벨다운시키는 것 같은 경향은 오늘날의 노동이론에 있어서는 명백하다. 그 이론은 거의 이의 없이 노동을 놀이의 반대로 정의내리게 한다. 그 결과 모든 진지한 활동은 그 성과에 상관없이 노동이라 불려지고 그래서 개인의 생활이나 사회의 생활과정에서나 불필요한 모든 활동은 장난 속에 포섭된다.”

놀이를 일, 생산, 그래서 노동과 관련시켜 대동놀이와 집단놀이 그리고 노동·생산놀이와 관련시킨다는 것은 특히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다.
놀이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놀이의 공통성(共通性)과 지방성(地方性)이라는 말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성, 특수성이라는 표현도 그 지역의 전승된 독자적 놀이로 생각되기 쉽다. 놀이의 특수성은 전파성(傳播性)을 생각할 때 반드시 어느 지역의 특수성이라기보다 세시행사로서 전해진 것이 다소의 변형(變形) 가운데 일부의 형식이 남았거나 어린이들의 놀이로 수용된 것들이 많다.
놀이의 형태나 현상은 그 지역 주민들의 어린 세대의 건강상태, 지역 주민들의 지능 발달 정도, 남녀차이, 환경 등에 의해 영향받는 것이다.
놀이의 동태(動態)를 보면 ① 아무것도 않는 행동, ② 방관적 행동, ③ 모래장난 같은 혼자놀기, ④ 미끄럼 타기 등 평행적(平行的)행동, ⑤ 자기 마음대로의 행동, ⑥ 아첨과 어리광의 행동, ⑦ 쫓고 쫓기기 놀이 등 두 사람 놀이, ⑧ 물놀이 등 세 사람 이상의 연합놀이, ⑨ 술래잡기 등 고차원적 연합놀이, ⑩ 카드놀이 등 저차원의 협동행동, ⑪ 연극 그룹 등 클럽조직의 고차원 협동행동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혼자 놀거나 평행놀이가 많다. 미개사회에서 벗어나 적어도 4, 5세 이상의 지능이 되면 집단놀이의 경향이 나타난다.
놀이의 의의는 신체적 발달의 측면, 지적 발달의 측면, 사회적 발달의 측면, 성격 발달의 측면에서 포착될 수 있으나 특히 어린 세대의 놀이는 성인들의 놀이와는 달라서 일이나 생활에 필요한 생산적 행동에 있어서의 긴장해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놀이, 곧 생활로서 거기에 넓은 의미의 학습이 있다. 열의라든가 긴장이 따르는 행동으로서의 놀이는 생산적인 행동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말을 바꾸면 일과 놀이의 의식의 미분화상태에서 분화하는 과정에 어린이들, 혹은 원초적 인간의 학습과 해방이 발달적으로 의의를 부여받는다.
놀이에 있어서의 인간관계의 발달적인 측면은 ‘혼자의 놀이’, ‘병행적인 놀이’, ‘연합적인 놀이’, ‘협동적인 놀이’처럼 자발적 집단형성의 과정에 인정되는 현상인 것이다. 놀이를 통해서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은 환경에서 오는 불안상태를 벗어나 자기 위치를 확보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접촉해서 인간관계를 확인하고 갈등이나 트러블을 경험하면서 공동체 의식이라든가 역할의식을 명확히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무리는 집단으로 발전, 공동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율심(自律心)과 사회성이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4. 놀이문화의 제의적(祭儀的)유래 - 난장판(orgy)

공동체의 생활환경에 창조적으로 기여하는 집단작업과 대동놀이의 상관관계는 노역(勞役)이라는 일의 형태와, 놀이라는 일의 영역에서 서로 보완보다는 분리로 나타난다. 그 까닭은 노역이 노동과 개념상 혼돈되기 때문인 것이다. 처음에는 주술적(呪術的) 제의적 의미가 강했던 양식절차가 시대를 내려오면서 그 원래의 뜻을 잃고 제의에 참가했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유흥적 오락적 성향 때문에 그 절차가 형식만 가지고 전승될 때 우리는 그것을 놀이로 간주할 수 있다. 제의는 원래 생산기능이었다. 그런 경우 일(work이거나 labor이거나 간에)그것은 굿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굿의 제의는 일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굿은 곧 놀이였음은 일이 놀이와 상통했기 때문이다.
그런 놀이가 대동놀이이며 그런 일이 집단작업이며 그런 일의 제의가 마을굿이나 별신(別神)굿 같은 의식인 것이다. 거기에서 점풍(占風)의식으로서 흉내내기와 같은 경축희(競逐戱)
나 모의극(模擬劇)이 연행(演行)된 것이다.
그러므로 대체로 전승된 민속연희 혹은 세시행사는 제의에서 탄생된 것이며 집단작업의 일환이며 대동놀이였다. 놀이는 공동체의 생활환경이나 문화의식의 잔존형식인 것이다. 비록 오늘날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형식으로 남아 있는 놀이형식(民俗演戱)이라 하더라도 그리하여 그런 것이 마상재(馬上才)이거나 수박희(手搏戱), 농주(弄珠)·축국(蹴踘)·격구(擊毬) 같은 구기가 체능과 예능의 기예(技藝)로서 악부(樂府)에 이름이 남는 경우 그 유래는 보다 근원적으로 소급해야 할 것이다.
태초에 굿이 있었고 일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다.
농경의례(農耕儀禮)는 계절에 따라 풍요를 비는 고천제의(告天祭儀)이다. 그것은 일종의 일력(日曆)제의, 곧 캘린더·리추얼로서 일 년을 계절적으로 나누어 계절의 고비마다 쇠퇴하고 약화된 우주의 활력을 촉진시키고 대지와 인간의 생명력을 부활시키는 의식이다.
일찍이 인류는 비를 내리게 하고 햇빛을 밝게 하고, 가축을 증식시키며 수확을 늘리기 위해 양식을 집행했으며 주문을 외웠다. 이런 주술은 역사의 발전과 함께 종교적 이론으로 대치된다. 말하자면 여름과 겨울, 봄과 가을의 교체는 주술적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원인, 보다 위대한 힘에 의해 순환되는 것으로 과학화되는 것이다.
식물의 성장과 조락, 동물의 태어남과 죽음도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패턴과 마찬가지로 신들의 힘의 성쇠에 달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고대심성(心性)이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Osiris와 희랍의 Dionysos의 신들은 차츰 자연현상의 추상화(抽象化)에서 의인화(擬人化)되어 풍요의 신, 곡물의 신, 나무의 신 그리고 재생의 신으로 구체화된다.
이렇게 해서 종교적으로 보완된 고대 주술심성은 대적하는 죽음의 원리와의 싸움에 있어서 생명의 원리였던 신을 도울 수 있다고 믿게 되어 쇠약해 가는 신들의 생명력을 보충하고 신을 죽음에서조차 소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제의는 자연현상의 연극적 재현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남아서 전승된 캘린더·리추얼은 역서(曆書)에 따라 치러지는 민속으로서 이런 제의를 세시풍속이라고 불러 오는 우리는 새로운 계절적인 변화가 오는 고비마다 이 월력제의를 통해 재앙을 물리치고 풍요와 행운을 빌었던 고대심성을 추체험(追體驗)한다. 정월의 설, 2월의 연등, 5월의 단옷날, 6월의 유두, 7월의 백중, 8월의 가위, 9월의 중양절(重陽節)만이 아니라 입춘, 한식, 칠석, 동지, 제석행사 등도 월령체(月令體) 또는 달거리체의 작품이 되어 전승되어 온다.
고유의 민속행사가 외래의 요소와 겹쳐지면서 재래(在來)와 다른 차원의 민간전승으로 변형되는 것은 긴 역사 속에서 있을 수가 있다. 한가위, 유두 등에 한식, 백중, 칠석 등이 끼고 춘연등(春燃燈), 동팔관(冬八關)으로 일컬어지던 고려의 월령행사는 불사(佛事)인 관등(4월 8일) 행사로 탈바꿈되면서 한편에 영동 영등 등으로 알려진 영남지방 특유한 민간행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한 변형은 동지행사가 가졌던 축제적 성격이 해방 이후의 성탄절 행사로 탈바꿈되거나 양력설, 구정 등으로 분화된 ‘설’ 행사의 이중화(二重化) 등으로 부침되면서 이어져 간다.
월령행사의 다기적(多岐的)인 분철(分綴)에 앞서 우리는 일 년 열두 달의 세시풍습에 앞서는 행사로서 당연히 4계절의 계절제의를 예측할 수 있고 춘하추동의 네 계절 이전에 삶과 죽음의 자연 순환에 따른 부활과 죽음, 빛과 어둠의 이원론적 고대사유(思惟)를 바탕으로 한 봄(여름)의 삶과 풍요와 번성, 그리고 가을(겨울)의 조락과 죽음, 그리고 죽음(어둠)에의 대비라든가 빛(再生)에 대한 희망을 상정(想定)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세시풍습의 행사는 결국 12월령행사, 그리고 좁게는 4계절제의로 귀착되고 그것도 마침내 탄생과 죽음의 행사로, 죽음에서의 부활을, 결국은 활성(活性), 생명력, 풍요를 지향하는 고대심성의 다양한 발전양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세시풍습은 삶의 행사이다. 그것은 탄생을 지향하고 활력의 획득을 위한 인간의 극적 표현이다.
종교학적으로나 민속인류학에서 풍요의 환대(環帶)로 알려진 이 연상은 물 – 달 – 여성 – 대지의 관념으로 순환된다. 줄어졌다가 충만하는 가감(加減)의 법칙에 따라 줄어든 활력이 다시 새로운 생성력으로 충만되기 위하여 제의는 필수적인 것이다.
만월(滿月)과 만조(滿潮)와 잉태와 이어지는 풍요한 대지의 힘이 일상의 반복으로 쇠퇴하고 약화된 활성을 되찾고 생명력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계절 절기마다 베풀어지는 세시행사도 그 원류(源流)는 신화적 사건과 관련된 재현행사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신화가 제의의 구술상관물(口述相關物)이라면 그 제의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dromenon이 ‘행해진 것(thing done)’, 곧 행위였고 신화적 사건으로서의 천지개벽이라거나 시조전승(始祖傳承)을 극적인 행동으로 재현했다는 뜻이다. 행동으로 나타낸 드라마로서의 신화적 사건은 일 년의 시작인 원단(元旦), 그리고 겨울이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신화화와 그 의인화(擬人化)로 가장 극적인 표현을 얻는다.
일 년 열두 달의 운수를 선행해서 점치는 월운(月運)제의의 한국적 실례는 다리밟기이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가 전하는 바,

上元夜 踏過十二橋 謂之度盡十二月厄(上元條)

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결과를 선행적으로 모방하여 기대하는 결과를 재래케 하자는 주술로서의 열 둘이라는, 새로운 해의 운행(運行)을 나타내며 그 12달을 상징적으로 무사히 건너 앞으로 열두 달을 실지로 탈없이 지내 주기를 비는 행사인 것이다.
그런 형식이 겨루기놀이로 베풀어진 예로서 우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제의적 경축·대동놀이의 여러 형태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놀이형태를 김열규(金烈圭) 교수는 생생력(숫자를 生生力)의 상징표상으로 간주해서 집단적인 보강(補强)의 제의로 주목한다. 이런 제의에는 신성쟁투(神聖爭鬪)가 벌어지고 그것이 모의극(模擬劇)형식 혹은 경축희(競逐戱)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신성쟁투 속의 흉내와 겨루기는 놀이의 대립성을 극한적으로 표현한다. 편전(便戰)놀이형식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시련이 극화되어 나타난다.
그런 예가 줄다리기이며 불놀이이다. 석전희(石戰戱) 혹은 편전(便戰)도 여기에 속한다. 각종 향전(鄕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석전놀이는 서울·안동·김해·경주 등이 유명했고 참가인원의 사회적 성분도 다양해서 전문적인 투석꾼·일반서민·어린이 그리고 대군(大君)·양반·관원들도 참가했다. 돌을 던지며 공격하는 투석꾼과 방패로 막으며 수비하는 양군이 막대기로 치거나 탈기(奪旗)로 승패를 내는 경우도 있었던 석전이 궁중에 들어가 군사희(軍事戱)가 되고 중국 사신의 관광 대상이 되어 제의적 측면이 사라지고 오락화된다.
그러나 향전으로서의 석전놀이가 베풀어지던 장소 그리고 시기 등으로 보아 그것이 점풍(占豐)제의적 놀이라는 점은 확실한 것이다. 매년 초에 평양 백성들이 이부(二部)로 나뉘어 대동강에서 수석으로 서로 던져 훤호치축(喧呼馳逐)하였다. 왕이 포열(布列)하고 관전했다는 수석희전이나 고려의 우왕(禑王)이 관전했다는 석전희와 맥락을 같이하면서 그 가운데 제의적 의의를 간직했으리라는 짐작은 확실하다.
이러한 세시행사나 연희(演戱)전승 행위의 반복은 모든 제의적 행위에는 거룩한 모델(原型)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신이나 영웅이나 조상이 태초에 이룩한 행위를 어느 정도까지 정확히 반복함으로써 그 위력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사제에 의한 의례와 주문 혹은 말로써 세계를 처음 만든 창조신을 모방하여 그의 힘을 얻어 낼 수 있다는 주술적 신앙에서 나온다.
종교적 연중행사는 일 년 동안 태초에 이룩한 우주창생의 위업들을 기념함으로써 인류를 천지창조와 함께 있게 하고 인류의 기원과 만물의 근원을 함께 있게 한다.
바쿠스의 사제(Bacchant)는 난장판의 제의를 통해 고난의 디오니소스 드라마를 모방하고 오르페의 신도들(Orphiker)은 이니시에이션 의식을 통해 오르페우스의 근원적 짓거리를 반복한다.
생식(生殖) 탄생 농경활동과 관련해서 우주창생의 신화가 규범적 모델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성행위가 농사와 연관되어 있고 생성력(生成力) 의식이 풍요와 관련되어 신혼(神婚)모델을 갖는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잊혀진 상태에 있다. 그러나 밭에서의 부부교섭이나 상징적 결합에 대한 관습은 이미 고대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신혼의식이나 축제의 난장판이 태초의 카오스를 극복하는 신성의 코스모스 이행(移行)을 흉내내고 그래서 우주창생이나 시조전승의 신성한 드라마의 어느 에피소드를 모방하는 의식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원시존재론적(原始存在論的) 관념(primitive ontologische Vorstellung)을 사고의 고대형식으로 바꾸어 놓을 때 오늘날 남아 있는 세시행사가 그들의 주기적 우주창생의 모방과 반복을 통한 새 계절의 시작과 관련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정월행사 같은 것은 세계의 창조를 해마다 새롭게 갱신하는 계기가 되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무렵의 주기적 행사들은 그로써 시간의 무효가 이 신화적 순간에 가능해져서 낡은 세계가 무너지고 그것이 재창조된다는 희망과 결부된다.
주기적 재생의 심벌리즘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풍요의식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크리스마스와 규현제(圭顯祭) 사이에 12월이 유럽의 농민들에게 1년 12달의 예조(豫兆)로 간주되어 그달 그달의 날씨와 비를 이 열이틀 사이의 기상과 맞추어 예상하는 행사도 그 연원을 따지고 보면 연말연초의 여러 제의의 시나리오가 이니시에이션·세레머니에서 생겨났으면서도 다소 변형된 형태로 신화나 민간전승 속에 보존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우리의 입춘굿이나 양주 소놀이굿이 보여주는 풍요제의 점복(占卜)형식과 그 연원을 함께 한다. 이미 그 형태가 사라져 버린 입춘굿의 세시행사나, 단순히 민속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재현되는 양주 소놀이굿은 한낱 민속연희의 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민속은 계절이 바뀔 무렵의 이니시에이션·세레머니로서의 푸짐한 활력과 생명력을 얻어 그것을 농사에 연결시킬려고 했던 신화적 고대심성의 반영이자 계승임은 분명한 것이다.
입춘굿이나 소놀이굿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모든 굿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드러나는 카오스의 재현 – 그 난장판의 놀이이다. 그러나 이 난장판은 신성혼례(hierogamy)의 모방인 것이고 그에 상응한다. 이 카오스는 일반적으로 성의 해방, 가치의 뒤집힘 때문에 더욱 난장판이 된다. 그러나 난장판이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고 질서를 향한 인위적인 장치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신성의 범례(範例)를 흉내내지 않고서는 인간은 어떤 보다 나은 것을 행할 수 없다. 세계의 번성, 특히 식물과 동물의 삶의 운영이 이 모방에 관련되어 있다. 방종이나 일탈(逸脫)이 종교양식의 경제학(Ökonomie)에서 치유적 역할로 가득해진다. 그것이 인간과 사회와 자연과 신들 사이의 벽을 허는 것이다. 권능(權能)과 생명과 씨앗의 순환을 한 지평에서 다른 지평으로 환치(換置)시키고 모든 현실영역 사이의 본성이 비어 버린 것들은 다시 채워진다. 분열되었던 것은 다시 하나로 보완되고 소외(abgesandert)되었던 것이 다시 위대한 보편적인 어머니 품에서 하나로 녹는다. 난장판은 활성적이고 거룩한 힘을 순환시킨다.”(Eliade, Die Religionen und das Heilige, Salzburg 1957, p408)

사라져 가는 일 년의 마지막 며칠간은 천지창조 이전의 카오스 – 사자(死者)의 방문, 조령(祖靈)에의 치성, 소등(消燈)과 점화(點火), 성적(性的) 방종(放縱), 상하관계의 뒤집힘 등등으로 해서 가치의 역전(逆轉) 등과 함께 카오스(난장판)의 재현으로 간주된다. 이런 난장판이 근원적 태초의 신화세계와 맞닿아 그 시간과 시점에서 새로운 창조의 힘을 얻는, 곧 해체를 통한 질서 및 활성의 획득과 관련된다고 보면 농경사회에서는 수확에 따르는 위기, 곧 씨를 뿌릴 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위기는 땅에서의 형태(Form)의 해체와 난장판 카오스 속의 ‘사회적 형태’의 해체 사이의 대칭(對稱)을 강조하는 것이다.
계속된 역법(曆法)개정의 결과로 고대 로마시대의 농신(農神·die Saturnalien) 제사는 마침내 일 년의 끝과 시작이 이가 맞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게 했지만 그 연원은 결국 원초적 제의, 곧 신화적 우주창생의 주기적 회귀형태이자 그 잔존형태로 남은 것이다.
우리는 우주창생의 주기적 회귀형태를, 제의의 모의적 재연의 난장판을 통한 근원적 생명활력의 획득과 관련시키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비교적 짧은 주기적 회귀를 비탄과 환희의 극적 양식을 통해 부활과 풍요를 가능케 하는 주술적 형식으로 보아 왔다,
이러한 관념과 양식은 송년의 카오스와 신년의 코스모스 이행(移行)이라는 절차로 문헌에 정착된다. 이러한 패턴은 원래 ‘물 – 달 – 여성 – 땅’으로 상호연상되어 생성의 띠를 이룬다. 그러니까 우주창생의 신화나 풍요제의의 관념 속에는 근원적 활력에 대한 의식이 스며 있는 것이다.
세모(歲暮)·제야(除夜)제의에 해당되는 나례(儺禮)나 경신수야(庚申守夜) 등에서 종교적 의식을 떠난 난장판(orgy)은 새로운 질서의 재래(齎來)를 맞는 인공의 카오스이다. 겨루기형식과 난장벌림을 지닌 이러한 사례들의 한국적 형태들은 새해의 정화(淨化)를 기약하고 묵은 부정(不淨)을 쫓는 형식으로 소란과 방종과 불양(祓禳)을 수반함으로써 이것을 우리는 ‘모순의 제의’라고 부를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12월조(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闕內 自除夕前日 發大砲 故火葥 鳴鑼鼓 郞大儺驅疫之遺制(12월 除夕條)

이 난장판의 의식에는 놀이다운 측면이 강해서 그것이 제의인지 놀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几倡優雜伎至外官遊妓無不被徵遠近坌集旌旗亘路充斥禁中 (大東韻付群玉)

世宗朝於庚申年 聚宗親 或 棒以過庭 古詩亦有守庚申而作 此等事 固非經傳所所載 然逐疫觀儺 亦是世俗所爲(成宗實錄 10年 12月 卷 112)

불양과 정화, 난장과 오예(汚穢)가 병립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질서가 퇴행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며 그 병립은 대립의 양태를 취하면서 카오스를 통해 새 활력을 얻어 묵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는 프로세스를 갖는다.
이 프로세스는 일종의 극화(劇化)이다. 말하자면 혼돈을 의식적으로 꾸며 내는 이 제의절차는 그것이 비록 무의식적이라 하더라도 절차를 꾸미는 의식 속에 드라마의 구성 같은 의식적 작용이 있고 그 제의절차 가운데 연희적인 것의 강조가 인간적 놀이性의 강조이고 보면 연극적인 것의 발전형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영국 엘리자베스조의 축제행사가 셰익스피어 희극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섹스의 드러남과 역할의 뒤집힘(상하 관계의 역전)으로써 ‘허용된 난장판’이라는 질서의 형식을 빌렸던 것이다. 방종을 조장하고 주인의 권위를 우습게 만드는 무질서의 왕(The King of Misrule)이 모의적으로 떠받들려져 일종의 바보들의 잔치가 베풀어지기도 했던 그런 관습은 곧 사회적 관습을 문란케 하는 반란의 제의(Ritual of Rebellion)이었다.
무질서의 왕이 버티고 있는 집에서의 난장판과 대단한 혼란을 묵인해 주는 이 가짜 주인이나 왕의 실례는 moris dance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는 여름날 일요일의 오락으로 교구(敎區)의 젊은이들이 장난꾸러기의 우두머리를 골라 카오스의 왕(my Load of Misrule)을 뽑고 그를 호위해서 행렬을 벌이는데 마을 처녀들이 준 스카프나 레이스 등으로 장식을 하고 방울이나 여러 악기를 울리며 설교중인 교회로 몰려가 야료를 부리고 밤새 술마시고 춤추며 광란의 안식일을 보낸다.
이와 같은 난장은 제의의 근원성이 망각된 민속적 행사의 잔존형식이다. 따라서 세시행사 가운데 이러한 단편적 형식이 그 자체로 전승이 되면 이 연희전승이 앞뒤의 맥락도 없이 독립된 행사로- 제의적 종교적 의의는 없어지고 오락적인 놀이로 희석되어 버린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제의절차로 구성된 난장의 잔존형식으로 그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이원적인 견해가 나타난다.
제의가 지닌 ‘놀이적 요소’를 두고 그것을 ‘희완’으로 보느냐 신성으로 보느냐는 일찍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조선조 실록에서 방파(放파), 내농작(내농작), 경신수야, 나례 등 관중의식이 호사롭거나 작폐가 되어 말썽이 될 때는 그것이 기년(기년)이나 축역(축역)의 종교적 행사로 보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된다. (……)

5. 겨루기 – 신성모방의 놀이화

이러한 견해의 차이를 오늘날 우리는 근원에의 회귀라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신화의 모의적 재연을 통한 삶의 행사는 활력의 충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시행사는 삶을 지향하고 활력의 획득을 기약한다는 뜻에서 일정한 패턴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겨울을 나고 봄을 기약하는 계절,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일 년의 시작에다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설이나 입춘, 연등 그리고 수릿날(端午) 같은 새로운 계절의 시작, 봄의 시작과 일 년의 고비 등이 가장 제의적으로 뜻이 있고 추수를 전후한 겨울과 어둠의 시작 속에서 목숨의 유지와 부활을 기원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의행사의 핵심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시행사의 핵심은 정초행사에 있고 부수적으로 가을의 상달행사 같은 삶과 죽음의 상징으로 압축된다 할 것이다.
삶과 죽음으로 상징되는 봄과 겨울의 제의행사는, 거듭 근원적으로 놀이일 수밖에 없다. 믿음과 제의절차를 통해 통제된 신화적 현장에 태초의 사건을 재연하고 있는 인간의 유희본능은 난장판을 통해 세속을 신성과 연결시킨다.
따라서 난장판을 형성하는 축제화는 세시행사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장치이다. 난장판이 없는 신성의 제장(祭場)에서는 인간의 유희본능이 그 자족성(自足性)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불발로 끝난 유희본능은 근원으로 이르는 활력의 획득을 기약하는 길을 차단함으로써 복수한다. 난장판이 없는 신성은 결국 인간을 근원으로 데려갈 수 없고 태초의 시공으로 옮겨 앉지 못한 심령은 해방되지 않는다. 풀어지지 않은 마음은 시원의 생명력을 얻어 내지 못한다. 축제의 난장판은 제의를 제의답지 않게 만드는 장본인이면서 제의의 오의(奧義)를 가장 극명하게 찌른다.
따라서 제의가 없는 축제의 난장판은 있을 수 있어도 축제의 난장판이 없는 제의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스러운 행위는 축하되어진다. 그것은 축제의 프레임 속에 든다. 성역에 모여드는 민중은 함께 공동의 기쁨을 나눈다. 불양, 제물, 춤, 경축놀이, 연극, 비의(秘儀) 등 이런 모든 것은 축제라는 프레임 속에 들어가 버린다.” (Huizinga, Homo Ludens, Hamburg 1956, p.202)

지역 공동체가 그들의 신성한 종교의식을 체험하고 수용할 때의 정신 자세는 엄숙과 진지함인데 진정 자발적인 유희심성은 가장 엄숙하고 진지한 것이다.
월령제의, 계절제의로서의 세시풍습 가운데 제의형식으로서의 행사에 곁들여 놀이되는 난장판의 모의적 재연에도 호이징가의 통찰은 적용된다. 대체로 경축놀이, 겨루기 형식을 취하는 놀이는 그 자체가 표면적으로 제의적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난장판의 축제형식임은 그 연원에서부터의 불가피한 속성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동국세시기에 나타난 줄다리기가 양파경축희라는 사실은 그 결과로 농년을 점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제의이기도 했던 줄다리기는 제주도에서는 8월 15일, 영호남에서는 상원(上元)에 행해졌는데 오늘날 세시풍습으로 남은 광산(光山) 고풀이나 부안(扶安) 줄다리기, 순천(順天)시 大垈동 줄다리기 등도 봄의 계절제의이자 경축희임이 분명하다.
세시행사로서 오늘날 향토색 짙은 민속놀이로 간주되는 것으로는 농악과 민요 민속극 민속무용을 빼고 나면 호남의 강강술래, 고싸움놀이, 장흥 보름 줄다리기, 벽골제 쌍용놀이가 두드러진다. 영남에는 동래 지신밟기, 좌수영 어방놀이, 기와밟기, 차전놀이, 한장군놀이가 있고 충청도지방의 은산별신굿, 속리산 탑돌이, 아산 줄다리기 그리고 중부지방의 관등놀이, 대감놀이, 답교놀이, 거리제가 유명하고 제주도의 세경놀이, 해녀놀이, 영등굿놀이와 평안도의 다리굿 등이 손꼽힌다.
이러한 집단적인 민속놀이가 정월의 상원이나 추석명절날에 독립적으로 거행되는 세시풍습적인 모습을 띄거나 향토제사의 한 오신(娛神)과정으로 놀이된다는 사실 자체에서 우리는 그 연원을 신화적 난장판으로 소급시키면서 역사적 사실의 변모까지 추적해야 할 것이다.
이 ‘난장’들은 이미 신화성이 소멸되어 난장판의 흔적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 나타나는 도착현상이라거나 오예관념, 성의 남발 등으로 해서 그런 대로 제의의 신화적 연원과 맞닿으면서 계절제의의 세시 행사적 편린을 그 축제형태 속에 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축제적 난장형태는 대체로 겨루기 형태를 취한다. 줄다리기 풍습은 이미 그 자체가 남녀형태나 안팎 마을의 대결형태를 취하고 있거니와 안동이나 의성지방의 기와밟기(놋다리 놀이)와 같은 여성취향의 놀이조차 남북마을의 대상관계가 놀이의 절정에 끼어든다. 안동에서는 두 패가 서로 부딪쳐도 싸우는 일이 없지만 의성 놋다리 행렬은 전진후퇴를 되풀이하던 공주행렬을 건장한 아낙네의 행렬로 바꾸어 두 팀의 주장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대결과 안전을 벌여 맹렬하고 과격한 싸움의 놀이를 진행한다.
역사적으로 위장된 민속놀이 가운데 한장군놀이 형태가 있고, 동제나 별신제 형태로 위장된 민속놀이가 사실은 연원적으로 <조선전>의 고천제의와 맥락을 같이하며 결국 카오스의 회귀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굿은 경수희형식을 빌려 대립과 겨루기를 통한 생명력의 획득, 곧 일러 생명력이라고 불려지는 예조의 풍요의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로써 남녀 어울림 같은 소박한 성의 놀이가 제의형식으로 거행되고 있음으로 봐서 굿의 제의절차 가운데 부정·오신·공수·뒷전의 도식이 수행되고 가무오신의 절차가 작은 난장판의 도인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판별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굿거리 과정에 끼여드는 ‘신을 놀리는 장면’과 대규모 제의절차에 필연적으로 마련되는 난장판은 ‘카오스의 코스모스 이행’의 모형이고 우주창생의 신화에 의한 생명력 획득을 위한 카오스에의 회귀와 귀환이다. 따라서 그런 절차 가운데 끼여 있던 줄다리기 같은 예조를 점치는 경축놀이가 오늘날 하나의 세시행사로, 앞뒤의 단락이 잊혀진 채 전승되었다고 해서 단순히 그것을 한갓 민속놀이로 간주해 버리는 것은 근원을 잊어버린 관찰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세시행사는 단순히 독립적인 민속놀이가 아니라 커다란 제의형식 속의 그 일환으로서의 놀이이며 그 놀이도 예조 점복의 성격을 지닌 경축놀이로서 그 놀이는 제차에 속하기보다 가무오신의 순서 속에 끼여드는 난장판의 상승무드를 부채질하는 기능인 것이다.
난장판에 신혼(神婚)을 가장하거나 빙자한 매춘이 있고 점복을 빙자한 놀음판이 벌어지고 씨름판이나 그네뛰기 같은 겨루기가 있으며 떡장수 엿장수 등 상거래 장바닥이 이루어지는 것은 세속의 적나라한 표현인 동시에 그것이 적나라하면 할수록 더욱 바닥에 이르는 카오스의 혼란이 극명해지고 따라서 그 극치에 이르러 신성의 회귀가 그만큼 빨라지고 가까이 다가서는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놀이의 고조는 바로 카오스의 고조이며 그것은 코스모스의 활성적인 힘의 부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는 권장되고 치열한 놀이는 난장판의 작력을 가까이 부른다. 뒤집어 말하면 난장판이 극도에 이르는 만큼 신성의 회복과 코스모스의 질서는 다가오고 그만큼 종교적인 의미에서 구원과 해방은 가깝다. 놀이의 겨루기가 그 대립과 갈등, 곧 아곤(agon)의 겨루기와 알레아(alea)의 내기가 극명해지면 해질수록 난장판의 미미크리(mimicry)적 의태(擬態)와 일링크스(ilinx)적 소용돌이는 더욱 고조된다. 그렇게 해서 제의가 끝난 다음에도 그 놀이는 선명한 인상으로 살아 남을 수 있고 그 신성한 놀이는 일상 속에서 단순한 놀이, 그 신성유희의 모형으로서 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제장의 놀이가 세시행사의 민속놀이 형식으로 남고, 그것이 전승민간놀이로서 계절과 제의에 상관없이 오늘날 현대적인 놀이로 변모되어 지역공동체나 학원 등지에서 체육경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근원적인 것의 일부가 그 놀이 가운데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낸 까닭에 우리는 잊어 버린 전부 대신에 그 일부에서 잠재되어 있는 원초에의 꿈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세시행사로서 향토색 짙은 민속놀이로 간주되고 있는 영산의 쇠모리대기, 안동의 차전놀이, 광산의 고싸움놀이(고풀이) 등이 절차와 형식을 갖춘 줄다리기의 변형이라는 사실은 부인될 수가 없고 그것들이 오늘날 산발적으로 일실되어 버린 경축제의의 고형을 일부 전승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경축제의에 부수적이었던 계절제의 굿절차의 일부였을 가능성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남아 있는 세시행사라는 일부 민속놀이를 통해 고대제의 – 굿의 ‘난장판’을 쉽사리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안동지역 문화권 조사에서도 소개되었으며 기원으로 소급된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 남녀 서낭놀이의 의태(擬態)는 원칙적으로 고대제의의 풍농의식과 벽사의식의 변형임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런 전승이 역사화하는 경우 경산의 한장군놀이의 여원무(女圓舞)처럼 왜구를 무찔렀다는 구전(口傳)이 된다.
그 여원무는 여장한 남자 ‘화랭이’ 등 화랑도 유풍에다 춤을 곁들인 고대부족국가시대의 오월제 발상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오월제는 반드시 유럽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류문화의 봄제전에 관한 보편적 형태이다. 봄의 양기를 받아들임은 죽음에서의 부활이자 바로 풍요의식의 핵심인 것이다.
정초의 새 질서의 재구성과 마찬가지로 봄의 풍요는 프레이저나 해리슨에 의하면 신화적 죽음과 부활, 곧 계절의 의인화(擬人化)가 된다. 그리하여 봄이 오면 아드니스의 신화, 디오니소스의 신화가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의식절차를 달리하고 그 의식절차 가운데 놀이적인 것이 독립되어 한장군놀이 같은 특수형태가 되는 것이다.
5월제의 지역화 및 다양화는 ‘수목의 신’, ‘5월의 여왕’, ‘May pole’의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공동적 정서를 의식으로 정리하고 공동체 전체에 의해 공식적으로 느끼고 표현한 정서를 제의절차로 구성했다가 놀이로 발산시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 놀이된다. 살아 있는 현실에서 공동체적 정서는 많은 인격화와 의인화를 수반한다. 공동체적 놀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대동놀이’의 배후에는 정서가 집중된다. 제전이 베풀어질 때면 그 리더가 의인화시킨 상징적인 나무나 인형에 전체집단의 정서가 모인다. 드라마행위는 그 리더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 초점이 기억되고 규명되고 이미지화된다. 줄다리기를 원형으로 한 놀이형식이 지역에 따라 변형을 일으킬 가능성은 많다. 줄다리기의 양편 대결이 줄다리기형식을 빼고 그 핵심만 남은 것으로 보아 나무쇠(木偶) 싸움이나 동채(軍戰)놀이는 중요 무형문화재 33호로 지정된 관산의 고싸움 놀이와 마찬가지로 줄다리기 형식의 중요부분의 변형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거기에 집중된 공동체 정서가 문제되어야 한다.
이 대결의 양상은 비록 매체는 다르다 하더라도 줄다리기 원형에서 출발한 가능성이 많고 보면 그 대결의 원천도 겨루기를 통한 난장판의 신성감정 고양으로 풍년의 점복이나 예조와 같은 풍요제의, 곧 계절제의의 잔형임을 알 수 있다. 정월 보름과 같은,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계절적 전환기, 그리고 달이 차는 생성력의 절정기를 맞아 대결의 형식 속에 곁들여 벌어진 난장판의 흔적도 그와 다른바 없다. 영산의 나무쇠 놀이는 관줄다리기와 함께 구경꾼 응원대 등으로 해서 인해를 이루고 씨름대회 그네대회 닭싸움 시조창대회의 겨루기와 이를 계기로 벌어지는 장바닥의 서커스단, 약장수, 밥·술장수, 엿장수 등등 모든 세속적 난장이 벌어짐으로써 이제 그 원형과 원류는 잊혀져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줄다리기의 편린들 – 전남지역 몇 군데의 모습은 아직도 원초적인 양태를 띄고 있다.

6. 놀이의 축제성 – 대동놀이

굿의 제의절차에 걸립형식, 지신·마당밟기는 앞놀이에 해당한다. 앞놀이에서 돋우어진 흥과 신명이 영신과 접신을 쉽사리 가능케 하고 그렇게 받아들여진 신성을 다시 가무오신으로 즐겁게 해서 난장판을 이루어 신성한 태초의 카오스를 연출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강조해왔다. 생명과 활성의 원천에서 쇠잔한 힘이 수맥과 만나도록 꾸며진 신화적 재연의 모의적인 굿이 난장판을 통해 놀이화될 때 겨루기의 요소가 큰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을 우리는 익혀 왔다.
고대제의의 제차의 형식화는 특정한 제의절차, 곧 단락거리의 확대나 심화를 수반할 것이 분명하다. 그 가운데서도 제의로 들어 가기 전의 준비과정에 해당되는 걸립이라거나 부정거리는 어쩌면 일종의 행차요, 퍼레이드로서 그것은 끝판의 난장판을 결정짓는 대위법적 관계를 맺는다.
원효로 남이(南伊)장군당에서 베풀어졌던 굿절차의 걸립형식은 완전히 행차, 행렬의 대표적 케이스로서 이러한 행렬화는 대체로 모든 동제에 부수되는 보편적 행사로 보인다. 걸립 행렬의 제도화는 특히 수영·동래 야유의 대동놀이 등에서 보이는 ‘길놀이’가 대종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길놀이 類에 지신밟기, 탈놀음 등이 끼여들었다고 보면 그런 가설을 적극적으로 펴는 경우 줄다리기 같은 경축희마저 극단적으로 말해 이입·전파돼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연원을 망각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동놀이는 대체로 1, 2부(部)로 나누어진다. 제1부가 길놀이 형식의 행렬인 추념대열이고 제2부가 판놀이로서 굿놀이의 핵심이 여기에서 펼쳐지는 것이라면 종교적 신앙심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굿놀이에의 절차가 사라져 오직 제1부격인 길놀이 행렬이 우위에 올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길놀이 행렬과 판놀음 굿 행사는 각기 독립되어 분리되기가 쉽다고 보아야 한다. 독립 분리된 길놀이 행렬도 그 길놀이를 유도하는 농악대의 지신밟기 걸립형식은 말하자면 축제행렬의 소규모 선행행렬이라 할 수 있다. 그로써 앞으로 일어날 난장판의 예비적 흥취로서의 즉흥적인 놀이가 베풀어지고 그 다음 판놀음으로써 달놀이의 놀이적 봉납과 줄다리기의 경축희 형식이 굿의 예축행사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제의의 난장판이 소멸되고 형식만이 남은 행렬은 축제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유럽적인 형태의 축제는 대부분이 이러한 연원을 갖고 있는데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오월제인 봄의 제전은 바로 이러한 행렬의 축제인 것이다.
이러한 행렬형식은 한국적인 축제에서도 강릉 단오굿, 은산 별신굿 등 지역공동체적 향토신앙이 짙은 곳에 남아 있다. 대체로 지신밟기 형식으로서, 혹은 민속연희가 전승되는 곳, 예컨대 동래·수영야유 등에 탈놀이 선행연희로서 행렬의 축제성이 강조된다.
그것은 경산의 한장군놀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5종에 달하는 행렬을 지닌 이 놀이는 ① 무부 화랭이가 춤추는 여원화(관)무 ② 행렬 ③ 유랑 연예인들의 협률(協律) ④ 난장 그리고 씨름 그네뛰기 백일장 등이 벌어지고 제의기간 중 묵인되는 도박판의 난장과 그 난장 및 협률에는 무당굿(난장굿)이 끼었을 가능성이 유보된다.
따로 행렬이라 했지만 여원화무(女圓花舞) 자체도 행렬의 일부이고 장대로 받드는 ‘감사(監司)뚝’도 원시적 민간신앙의 한 표상이자 행렬을 꾸미는 일부일 것이다. 監司뚝의 장대는 ‘May pole’ – 봄을 상징하는 식목신앙의 잔형으로 보이며 따라서 이 장대에는 겨울과 봄의 대립이 결과적으로 봄의 승리로 상징되는 까닭에 행렬에 동원된 감사뚝의 장대는 강릉 단오굿의 ‘팻대’와 유사하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동제에서 모셔지는 신간과 함께 그 유래를 고대의 제의로 연관지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오월의 장대’에서 상징되는 봄의 구현은 물오른 나무나 급기야 꽃의 행렬로 꾸며지며 봄의 제전에 따르는 행렬은 줄다리기와 같은 겨루기의 경축희를 고비로 하는 난장판에서 행열화한다. 따라서 실제로 행렬은 난장판으로 들어 가는 축제의 서두이며 이 서두의 전율은 봄의 승리로 예감되는 난장판의 열기로 이미 확정된 것이어서 행렬 그 자체가 바로 축제로 승화되는 것이 예사이다. 마침내 그 난장판의 무질서가 무질서 자체로 규탄되어 소멸되는 과정에서는 제의의 시작이었던 행렬이 바로 축제행사로 이행될 수밖에 없다.
행렬 자체가 축제행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유럽적 행렬에서 목격하게 되거니와 우리의 재래적 향토제전들도 점차 이러한 경향을 띠고 있다.
각종 향토문화제가 그런 식으로 형식화되어 감으로써 제의적 난장성을 상실해 가고 의식화됨으로써 난장을 부르는 겨루기는 망각의 저편에 버림받는다. 그래서 의식화나 형식화가 강조될수록 겨루기는 행렬의 축제 속에 함몰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후술하는 은산별신굿 등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다른 말로 바꾸면 세시행사가 고형일수록 행렬보다 겨루기와 난장에 치중된다는 논리와 맞닿으며 걸립이나 지신밟기 같은 축제의 예비적 선행형식은 시간과 더불어 그 연원이 잊혀져 축소되거나 빈약해진 상태로 전승된다. 그것은 큰 제차에 딸린 작은 형식으로 연명되거나 아예 사라졌거나 각종 농악의 잔존양식으로 독립되었을 가능성도 많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의 필봉마을 농악굿은 정월달의 매구굿으로 잡귀를 몰아 내고 한 해의 무사와 번영을 빌며 마을의 친목을 도모하는 ‘합(合)굿’으로서의 농경생활과 결부된 고대제의의 잔존형식이다. 생활현장에서 일과 장단의 기능을 다하고 풍요의식의 일환으로 소급되는 필봉마을의 농악은 ‘매구’, ‘굿’, ‘두레’로 불리는 풍물굿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절차를 지닌 a) 당산제굿, b) 샘굿, c) 마당밟이굿 그리고 d) 판굿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농악은 제의성(당산굿, 샘굿)과 행렬(마당밟이굿) 그리고 예능 놀이성(판굿)을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 어쩌면 원래 지니고 있었을 길놀이다움이 사라지고 앞놀이가 분화된 필봉마을 농악에서는 길놀이(지신밟기·걸립)의 분화 및 분화의 분철적 예능화가 현재화되어 있고 판놀이나 겨루기의 경축성은 망각되었거나 길놀이적인 농악 자체의 굿절차 속에 함몰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길놀이적인 행렬축제와 판놀이, 겨루기의 본격적인 굿의 제의성 사이의 절차적 망각과 탈락 혹은 부분의 확대와 첨가는 비교적 고풍스러운 세시행사일수록 주술적 겨루기의 놀이형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논급해 왔다.
행렬의 축제화는 은산별신제의 앞놀이 형식인 ‘진(陣)대베기’에서 두드러지거니와 그에 앞서 동제의 제의절차에서 우리는 걸립이나 부정거리의 이름으로 그 선행형식을 보게 된다.
동제의 일반적 절차는 ① 걸립 및 당주선정 ② 금기·불양·정화(부정거리) ③ 영신 ④ 치제 ⑤ 도신오유(禱神娛遊·兩派競逐戱·난장판) ⑥ 공수(神託) ⑦ 송신(뒷전거리)이다.
금기와 불양이 표리관계에 있다 함은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과의 격리의 원칙에서 이루어진다. 마을굿이 묵은 살(煞)을 푸는 것이고 새로운 복덕을 비는 형식인 한에서 신성의 완전타자, 바로 외경의 신비로서의 완전타자인 신성이 내리는 시간과 공간에 세속적 오염을 방지하는 금기는 세속적 세계를 차단함으로써 동제는 완전타자로서의 그 존재양식을 분명히 한다. 동제에 걸립 새신 등이 수반되지 않고 당제사뿐인 경우 마을 굿이 신성일변도여서 이런 경우 세속이 일방적으로 폐쇄당하는데 비해 도신(禱神)걸립 유가(遊街) 등이 수반되는 경우 신성과 세속은 대립되면서 동시에 이 양자는 등가성(等價性)을 지닌다.
특히 별신제의 경우 열두거리의 제차는 무당을 통해 신성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만신의 이름이 불려지고 본향이 풀이되고 신의 신성이 내리는 순간에 가장 세속적인 것, 가장 인간적인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에로티시즘의 노정, 상하관계의 뒤집힘 같은 반란, 주지(양반이나 승려)에 대한 윌슨(M. Wilson)이 이르는 바 소위 제전의 반란(모티브)은 일상적 생활규범에서의 제도화된 일탈이며 이것은 신성의 완전타자에 대해서 ‘세속적 완전타자’로 잠재해 있던 집단의 꿈이 제의적 연희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제의적 연희가 세속적 걸립이나 가무오신이나 난장판의 놀이적 축제적 흥취와 도취를 배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세속적 완전타자로서의 유흥은 단순한 가무로서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겨루기의 양파경축희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광대놀이가 수반되기도 하는 제의적 광란은 난장판의 핵심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금기와 불양의 절차가 ‘절리(絶離)의 제의’인 반면 흥겨운 신명의 부분은 ‘과도(過渡)의 제의’로서 무질서와 혼돈을 거쳐 새 질서를 준비하는 절차이다. 따라서 치제(致祭)가 끝나고 놀이로서의 겨루기가 추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한 제의의 한 형태 내지는 절차의 하나인 것이다. 그 앞뒤 맥락이 잊혀지고 놀이형태만이 남아 전승된 민속놀이가 희완지사(戱玩之事)로만 여겨지는 것은 연원이 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의적 앞놀이 형식과 제차 속의 가무오신 장면 같은 난장벌림의 놀이 그리고 제의절차 자체인 겨루기의 경축희가 그대로 그 연원을 잊고 세시행사로 남았을 때 그것을 단순히 민속연희 혹은 향토 오락으로 간주하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고대제의의 놀이적 정착에 대한 변이과정을 유의하고 그 변이 가운데 현대적 양태가 바로 앞놀이의 축제적 행렬화에 큰 여울목이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축제적 행렬 혹은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걸립이나 지신밟기, 풍악놀이 혹은 농악은 말하자면 예비적 축제이며 그 예비적 축제가 그대로 행렬형태 등으로 굳어져 축제화되어 가는 프로세스가 우리의 민속 세시행사에 두드러진다는 사실은 지적되어 넘어가야 한다.
굿의 제의절차가 제차의 정도에 따라 커지고 확대 심화되어 그것이 제1부 제2부식으로 앞놀이 뒷놀이로 크게 구분되다가 차츰 앞놀이 형식이 축제행렬로 독립되어 간다는 가설은 제차 자체의 단락이 그 자체로 공동체집단의 정서와 공명하여 확대되거나 탈락하는 경우 그 중단단계로 제차의 거리가 세시행사거리와 중복되면서 그 거리의 단락이 다시 확대되거나 탈락하는 과정과 함께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유보된다. 우리의 세시행사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행사거리들이 들쭉날쭉한 가운데 망각된 것, 내용없는 형식의 전승,무의식적인 보존 등으로 장식된 외피 속에 축제의 핵심을 간직한 행사 중의 하나가 은산별신제이다.
무속적 민간신앙에다 유교적인 제례의식을 갖춘 은산별신굿에는 백제의 광복군들을 위한 위령제를 겸한 진법의 행군이 있다. 동제의 정성과 엄숙한 금기에다 신나는 농악의 굿거리 장단을 갖춘 이 별신제 때는 산신당과 가정마다 원새끼에 백지를 오려 끼워 늘인 금줄이 쳐진다.
진법에 따른 진대 베기 행렬은 출진령을 받아 은산장터를 떠나 20리 내외 동북방으로 향하여 진대 선정지에서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네 그루의 참나무를 베고 이 진대 운반 행렬은 왕복 10km의 길을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간다.
이 행렬의 축제적 분위기 조성은 다음 날의 꽃받기(花燈운반)에서 절정에 오른다. 꽃받기는 별신당 신립에 바치는 꽃다발과 꽃등을 받아오는 행사이다. 꽃은 조화이며 꽃을 만드는 절(부여의 고란사, 적곡의 정혜사 등)에 미리 주문해 두었다가 받아온다.
항아리에 담은 꽃다발(華柱)이 여섯, 깃대에 매단 꽃등이 여섯이다. 꽃등에는 오색 종이의 술(발)을 달아 가느다란 깃발처럼 바람에 날린다.
이 축제 행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나발, 2) 영기, 3) 대기(별신대제라고 쓴 농기), 4) 24방기와 음양기 네 개, 5) 농악대(농악수 6명 – 쟁수 2명, 징, 장고, 북, 나팔수 각 1명) 6) 꽃등과 꽃다발, 7) 사령집사 및 ·기수, 8) 선배비장, 9) 삼현육각, 10) 통인, 11) 대장, 12) 통인, 13) 중군, 14) 후배비장(선후배비장과 통인 대장 등은 구군복 무관차림의 승마, 대장은 원래 백마), 15) 좌수, 16) 축관 2명, 17) 별자 2명, 18) 무당 약간 명, 19) 군졸 30명, 20) 임원 등 1백 명이 넘는 인적 구성으로 그 행렬의 길이는 100미터를 넘는다. 별신제의 행렬은 거기에 제물과 화주 및 육화주가 7), 8) 사이에 끼게 된다.
은산별신굿은 13일에 걸쳐 첫날과 사흗날에 진대 베기와 꽃받기 행렬을 동원하고 이틀, 나흗날은 쉬었다가 제5일째에 상당(별신 올림) 별신제사 그 다음 이어 상당굿 그리고 6일~9일에 걸쳐 행원과 축원이 있고 열흘째 하당굿(별신 내림), 열이튿날에 독산제 그리고 마지막날에 장성제를 올린다. 이 축제는 사이사이에 쉬는 날을 두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며 1930년대만 해도 별신제 기간 중에 줄타기, 땅재주 넘기, 사발돌리기 등 남사당패가 운집하고 갖가지 잡희와 잡기가 은산 바닥에서 벌어져 본격적인 난장벌림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이런 놀이의 축제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런 대동놀이는 개인 레벨의 놀이를 철저히 넘어선다. 말하자면 대동놀이로서의 민속연희는 세시행사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원류는 풍요제의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동놀이는 풍요제의·계절제의를 받쳐 주던 농경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개인의 놀이 차원을 넘어서는 집단화의 노동협력이 풍요와 다산을 기약한다는 무의식적인 발상에서 가능했고 따라서 산업사회로 지향하는 현대에 있어서는 그런 믿음의 상실과 함께 대동놀이의 성격도 농경사회체제에서 산업사회 구조로 바뀌어 나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받들어 주던 향토성이 경작지와 관련된 한에서 대동놀이가 농경의식의 잔존형식이라면 이제 대동놀이는 산업장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을 바닥에 깔고 그만큼 다양화될 추세에 있는 것이다.
산업체에 따른 공동체 의식의 배양에 놀이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현대화된 믿음이라 할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얻어진 믿음을 바탕으로 계절적으로 활성과 생명력을 얻어 내던 방법으로서의 제의적 놀이가 이제는 산업사회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연고성과 생산에 대한 신뢰가 그 산업체의 명절에 놀이의 축제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한 대동놀이의 놀이종류 형태 현상은 이제 분명히 달라진 것이며 그것이 곧 현대적인 발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산업현장에서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대동놀이는 일찍이 우리의 전승적인 농경사회의 놀이 형태를 발전시킨 것이고 그 놀이를 유지시켜 주었던 지역 공통체의 구성원 – 곧 우리의 민중들이 지녀온 의식을 그 깊은 바탕에 깔고 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7. 결론 : 민중의식의 향방

놀이문화, 특히 집단연희의 대동놀이를 전승시킨 민중은 놀이 속에 원천적으로 생산의 창조성을 인정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표현을 바꾸면 생산이라는 ‘일’이 단순히 노역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직업이었기 때문에 그 창조적인 생산을 위하여 놀이는 시적 기능을 다한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일’이 창조적 생산이 아니라 한낱 고달픈 노역으로 떨어졌을 경우 놀이문화는 고달픈 일에서 헤어나는 사회적 매커니즘이 되거나 창조적 생산을 그리는 민중의 거칠은 향수가 되거나 할 수밖에 없다.
민중의식은 놀이를 통해 그들의 잃어버린 근원을 회고한다. 아니면 그것은 놀이의 형상화라는 예술형식을 통해 그들의 소박하나 끈질긴 생명력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일 그 자체가 노역이 아니라 창조적 작업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민중의식은 바로 그러한 공동작업을 위한 우리 의식이 될 것이다.
우리 의식이 공동체 의식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 의식은 연희·축제형식을 통해 그 의식이 드높여진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공동체 의식이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사라져 간다. 놀이문화의 근원적 해석도 망각되었다. 남은 것은 민속 연희의 잔해뿐이며 그것을 전승해 나가던 민중도 개별화된다.
신화를 잃은 시대는 놀이도 잊고 민중, 곧 공동체의 기반도 상실된다. 신화가 신화로 놀아지고 놀이가 놀이로 놀아지고 민중이 민중으로 놀던 시대가 사라져 간다.
놀이를 철학으로, 그리하여 신화의 놀이해석을 시도했던 핑크는 신들은 지속적인 영속성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나 일이나 싸움에는 인간적인 진지함이 결여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신화에서 그려지는 사랑·일·싸움은 일종의 기분풀이이며 말하자면 놀이인 것이다. 신들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놀이한다.

“그들(神들)의 싸움은 놀이 – 장난감을 사용한 놀이였다. 그 장난감이 인간이었으며 인간은 유한한 생을 걸어 실제로 싸우고 다치고 비통한 고뇌를 경험했던 것이다. 무서운 생각이지만 모든 인간적 고통이나 근심도 신들의 눈으로 보면 드라마인 것이며 끝내 부동하는 경쾌함으로까지 드높여진다. 이와 같이 일체의 인간 척도를 넘어서 초인간적인 것으로 드높여진 것이 놀이이다.
우리는 신들의 신성을 예감하면서 까마득한 결핍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가 놀이를 알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또한 인간이 놀이를 알고 놀이를 통해 생존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해방과 구원을 경험하고 이 경험을 불변의 상태로 몽상적인 본질에 귀결시키는 까닭에 인간이 신성한 초인간적 불사의 편안한 본질의 표상에 이르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Fink, Spiel als Weltsymbol, Stuttgart 1963, pp150~151)

놀이문화와 민중의식은 놀이의 제의적 발생과 연관된 근원성에 대한 성찰과 함께 공동작업을 위한 노역의 분담과 사전·후의 위락 그리고 위락에 의한 공동체 의식 내지는 정체성의 공감에서 두드러진다.
그런 의미에서 놀이의 민중론 내지 놀이문화와 민중의식은 지역·향토성과 놀이형태 및 전승 그리고 그것을 노는 민중이라는 놀이 전승 담당자의 인식에 의해 다루어질 것이다.
그런 삼자합일의 안목에서 비로소 놀이는 문화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런 안목에서 호이징가의 놀이문화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카유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막연히 전개했던 겨루기(경기·쟁투)의 놀이와 창조(허구·예술)의 놀이를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여 놀이를 경쟁(agôn·겨루기), 우연(alea·내기), 모방(mimicry·흉내), 도취(ilinx·소용돌이)의 네 가지로 대별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고 서로 조합된 경우의 매력이 더 크다. 카유아는 여기에다 해방·기분풀이·자의(恣意)와 같은 자족의 욕구를 동인으로 삼는 파이디아(paidia)와 그와 반대되는 어려운 상태에서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 예를 들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구하고, 그 고통을 극복하는 통제적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루두스(Ludus)를 첨가하였다.
그렇게 되면 놀이를 구성하는 심리적 요인은 한쪽에 편안함, 또 다른 한쪽에 긴장감이 있고 그 사회에 도취와 창의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인 삶에서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는 긴장 -> 편안함에의 욕구와, 무위의 심심함에서 풀려나기 위해 어떤 자극을 얻을려는 권태(편안함) -> 자극(긴장)에의 욕구라는 또 다른 일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형식에 우리가 관여하게 되는 경우는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을 설정해 볼 수 있으며 그 집단적 놀이가 경쟁과 협동, 긴장과 편안함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함수를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개인 중심의 놀이보다 집단적 협동과 경쟁이 고대제의의 연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이의 민중의식은 집단형식을 통해 공동체의 심상을 그려 내는 시적 상상력과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놀이가 개인적 차원의 자유, 자족감, 완결성, 무상성 등으로 해서 비일상성을 강조할 때 그 개인적 레벨은 개인의 유희적 시적 상상력과 함께 집단적인 공동체 의식의 꿈의 반영이 되어 민중적 예술충동이 의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에 있어서의 민중의식은 축제형식과 예술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 상관관계에 유의한 뷜러(A. Bühler)의 말로써 결구를 삼는다.

“예술과 인간사회의 상관관계에 따라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끼여드는 것이 가능하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은 독자적인 감정의 개인적 언표(言表·Aussage)이자 동시에 그것은 자기 사회와 문화에 대한 태도 표명인 것이다. ··· 예술은 유희활동의 발현이라고들 한다. 놀이가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직접적 관련을 가질 때는 그 말이 타당하다. 거기다가 놀이와 마찬가지로 예술이 일상적 활동의 테두리 밖에 나와 있는 그들 고유의 규칙을 가졌으며 – 다시금 놀이와 마찬가지로 – 즉각적으로 파악되는 실제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유희 이상의 것이다. 예술은 보다 깊은 근원을 갖고 있으며 무익한 것이 아니다. 정신과 정서를 위해 예술은 다른 방법으로서는 불가능한, 가능한 표현(eine Ausdrucksö glichkeit)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예술은 문화 속에 있어야 하고 그런 까닭에 문화기능으로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참고 : 웹페이지 게재의 제한으로 인해 어원 표기와 각주를 삭제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학술적 내용의 전달에 미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점은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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