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한 세상의 아름다운 만화
프랑스 만화가 레제르 작품집…빼뚤빼뚤 그림체로 현실 꼬집어
구본준 기자
» 프랑스 만화가 레제르 작품집
밝고 신나는 상상속 세상이 아니라 정반대로 괴롭고 어두운 현실을 그려내는 만화가들이 있다. 서구 만화계에서 이런 만화를 그리는 작가로는 미국의 로버트 크럼과 프랑스의 장 자크 레제르가 꼽힌다. 마흔두살에 요절한 만화가 레제르(1941~1983)는 60~70년대 격동하던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포착했던 도전적인 만화가다. 앞서 단편들로 소개되었던 이 레제르의 작품들을 큼직한 2권짜리 책으로 묶은 작품집 <레제르>(미메시스 펴냄)가 출간됐다.

레제르의 가장 큰 특징은 지렁이 기어간 흔적처럼 삐뚤빼뚤 꼬불꼬불한 그림체로, 성냥개비로 만화를 그리는 <고인돌>의 박수동 화백을 연상시킨다. 이런 그림선은 그가 자신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른 미학적 선택이었다. 레제르는 인간세상의 추함을 주목했던 만화가다. 인간의 추잡함, 허위의식을 꼬집는 것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레제르는 생전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악을 그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역설적일 수밖에 없고, ‘추함의 아름다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작품집에 소개하는 만화의 내용은 거친 그림체처럼 무정부적이고, 통렬하고, 때때로 슬프다. <우리 아빠>의 아빠는 술주정뱅이 실업자다. 성에 관심이 많은 <빨간 귀>의 주인공 학생은 늘 부모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아서 ‘빨간 귀’란 별명이 생겼다. 대책없는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인생 낙오자인 백수 이야기 <지저분한 뚱땡이>의 주인공은 헐렁한 팬티 사이로 늘 한쪽 불알이 삐져나온 모습이다.

레제르는 독자보다 작가들이 더 좋아하는 만화가에 가깝다. 분명 사람을 잡아끄는 강한 힘을 지녔지만, 처음에는 좀 부담스럽게 보이기 쉽다. 계속 보면서 음미해야 하고, ‘코드가 맞아야’ 통하는 측면이 있어 쉽고 편하게 볼 만화는 아니다. 대신 ‘코드가 맞으면’ 무척이나 매력적인 만화란 평을 듣는다. 만화가 박수동 화백은 책 말미에 쓴 추천의 글에서 “우리 모두의 상식에 어퍼컷을 먹이고 고만한 상상력에 뒤통수를 치는 작가”라고 평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