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목적이 있었다. 제주도 여행 후 한국 가톨릭의 아픈 역사를 엿보기 위해서 정약용의 형 정약현, 약현의 딸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차에 마땅한 책이 없어 '이덕일'씨가 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골랐다. 이율배반이라고 해야할까, 조선 정치에서 개혁의 격변기를 살았던 정약용과 정조를 사뭇 그리워하며 쓴 그의 책이 가슴팍에 꽂히지 않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람의 행동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가가 아닌 학자로서 세상을 살아가야할 몫이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장관 임용을 두고 침묵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산의 정신이 담긴 '목민심서'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일이다. 정치가는 '청백리'를 강조하지만 국민들은 무엇을 본으로 삼아 살아야 할지 가치관의 혼란, 이율배반적인 세상이다. 땅투기꾼에 이중국적을 과감히 내치지는 못할망정 두둔하는 정부에 희망이란 게 있을까. 다산의 재능과 순수함을 이용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정조와 노론의 지배속에서 피눈물을 흘린 다산 형제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비극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희곡이라 할 수 있다.
시냇가 허물어진 집 뚝배기처럼 누웠는데
겨울바람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드러났다
묵은 재에 눈 덮인 아궁이는 차갑고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스며든다
집 안의 물건은 쓸쓸하기 짝이 없어
모두 팔아도 7,8전이 안되겠네
개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 같은 마른 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는 헝겊으로 발라 막고
무너 앉는 시렁대 새끼줄로 얽어 맸네
놋수저는 이미 이정에게 빼앗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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