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상세보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펴냄
역사평론가 이덕일의 조선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 시대의 절망을 딛고 민중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 정약전, 고문 끝에 목이 잘리면서도 신앙을 지켜낸 정약종, 지배 권력의 공격 속에서 좌초된 꿈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정약용은 닫힌 시대에서 열린 사회를 지향했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 책은 당대 현실에서 우러나온 실학과 선진 과학문물, 그리고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상으로 침몰해가는 조선사회



다른 목적이 있었다. 제주도 여행 후 한국 가톨릭의 아픈 역사를 엿보기 위해서 정약용의 형 정약현, 약현의 딸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차에 마땅한 책이 없어 '이덕일'씨가 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골랐다. 이율배반이라고 해야할까, 조선 정치에서 개혁의 격변기를 살았던 정약용과 정조를 사뭇 그리워하며 쓴 그의 책이 가슴팍에 꽂히지 않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람의 행동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가가 아닌 학자로서 세상을 살아가야할 몫이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장관 임용을 두고 침묵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산의 정신이 담긴 '목민심서'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일이다. 정치가는 '청백리'를 강조하지만 국민들은 무엇을 본으로 삼아 살아야 할지 가치관의 혼란, 이율배반적인 세상이다. 땅투기꾼에 이중국적을 과감히 내치지는 못할망정 두둔하는 정부에 희망이란 게 있을까. 다산의 재능과 순수함을 이용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정조와 노론의 지배속에서 피눈물을 흘린 다산 형제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비극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희곡이라 할 수 있다.


시냇가 허물어진 집 뚝배기처럼 누웠는데
겨울바람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드러났다
묵은 재에 눈 덮인 아궁이는 차갑고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스며든다
집 안의 물건은 쓸쓸하기 짝이 없어
모두 팔아도 7,8전이 안되겠네
개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 같은 마른 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는 헝겊으로 발라 막고
무너 앉는 시렁대 새끼줄로 얽어 맸네
놋수저는 이미 이정에게 빼앗기고

무쇠 솥은 이웃 부자가 빼앗아갔네
검푸르고 해진 무명이불 한 채 뿐인데,
부부유별 따지는 것은 마땅치 않구나
어깨 팔뚝 그러난 적삼 입은 어린 것들,
한 번도 바지 버선 못 입었으리
다섯 살 큰아이는 기병으로 올라있고,
세 살 작은애도 군적에 올라있네
두 아이 군포로 500전을 바치고 나니,
죽기나 바랄 뿐 옷이 무슨 소용이랴
강아지 세 마리 아이들과 함께 자는데,
호랑이는 밤마다 울 밖에서 으르렁대네
남편은 산에서 나무하고 아내는 고용살이 가니,
대낮에도 문이 닫혀 분위기 비탄하구나
아침 점심 다 굶다가 밤에 와서 밥을 짓고,
여름에는 갖옷 입고 겨울에는 베옷 입네
들 냉이 깊은 싹은 땅 녹기를 기다리고,
이웃집 술 익어야 지게미라도 얻어먹겠네
지난 봄에 꾸어 먹은 환곡이 닷 말인데,
이 때문에 금년은 정말 못살겠네
나졸들 사립문 밖 닥칠까 겁날 뿐,
현각에서 곤장 맞을 일은 걱정도 안 되네
오호라! 이런 집이 천지에 가득한데
구중궁궐 깊고 깊어 어찌 다 살피랴
직지사는 한나라 때 벼슬,
고을 수령을 마음대로 내쫓거나 죽였지
폐단의 근원 어지러워 바로잡히지 않고,
공수, 황패 나와도 뿌리뽑기 어려우리
먼 옛날 협정의 유민도 본받아,
새로운 시 한편 베껴 임금님께 돌아갈까.
 
- 다산이 암행어사로 임명받아 한 농촌의 실상을 시로 표현한 '적성촌의 한 집에서' -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