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를 떠올리면 죽은 아들을 안고 울부짓는 어머니의 사진이 떠오른다.
독일 베를린에도 나의 어머니가 있다.
그녀를 떠올리려면 먼저 숨고르기를 해야한다.
혁명군 아들의 시체를 안고서 울부짓다 못해 삶고르기를 하던 광주의 그 사진을 봤을 때처럼
베를린 장벽에서 그녀의 판화를 본 순간 전율을 참을 수 없었다.
5월 그날을 생각하며, 케터콜비츠를 떠올린다.
베를린 포츠담역 건너편 공장지대에서 20분에 1대씩 오는 베를린 외각 U-Banh(국철)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흥얼거린다.
카테리나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나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조수미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진 이 노래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의 현대사의 한 민주투사가 사랑하는 여인과 8시에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하지만 끝내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약속장소인 기차역, 카테리니로 가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암호를 주고 받을 동지도, 사랑하는 연인도 없는 이방인에게 이 철길은 Fasanenstr. 24
10719 Berlin (Charlottenburg)
여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혁명에 대한 차가운 정신이 교차하는 곳이다.
드디어 뚜루루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철컥 유태인을 실어나르던 기차가 다가온다.
영화 The Reader의 주연을 맡았던 케이트 윈슬릿처럼 무표정한 독일 시민들이 이방인을 본다.
2차대전 당시, 군인들과 탱크를 바삐 실어 나르던 철길,
도청을 향해 내달리던 계엄군의 서슬 소리가 들린다.
20여분이 걸렸을까? 퀄른에 도착했다.
동베를린과는 확연히 다른 서베를린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아름다운 곳이다.
예술가들이 많이 사는 이 곳을 구경하다
이 거리 24번지에 그녀가 있다.
미술관 입구에 적힌 그녀의 이름을 몰랐더라면 까페로 착각할 정도로 작다.
방명록에 한글로 또박또박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데요'라고 시작하는 글을 썼다. Selbstbildnis en face, lachend, 1888/89
화가이기 이전에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어머니이자 수많은 수식어들이 있지만, 르부르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그림과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함이 이곳에 있다.
어쩌면 우리가 5월 광주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녀가 들려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격정이 몰려온다. 정신을 수습하기 힘들어서 그만 주저앉을 지경이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쏟아내는 고통의 순간에 아이에게 한줌의 빛이 쏟아진다. 엄청난 침묵속에서 그녀는 외친다.
"씨앗들은 짓이겨져서는 안된다." 이제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 이 요구는 '전쟁은 이제 그만!'에서처럼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 1941
또한 아들딸을 잃은 5월 광주의 어머니에게 케터 콜비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새들아 오른쪽 날개를 꺾으렴.
너의 날개짓 뒷편에 불켜진
작은 통나무집에 들리렴.
파티에 간 부모는 올 줄 모르고
서리낀 창문에 울음을 토하는 아이를 보렴.
오늘 네가 내려가지 않으면
아이는 너를 잊으리.
너는 힘겨워 다시는
여기를 찾지 못하리.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듯
불밝히고 있는 어머니.
나는 성호를 긋다.
※ 케터콜비츠 미술세계 http://windshoes.new21.org/art-kollwitz.htm
※ 베를린 케터콜비츠미술관 http://kaethe-kollwitz.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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