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Cow Disease

Published: June 13, 2008

“Mary had a little lamb / And when she saw it sicken / She shipped it off to Packingtown / And now it’s labeled chicken.”

That little ditty famously summarized the message of “The Jungle,” Upton Sinclair’s 1906 exposé of conditions in America’s meat-packing industry. Sinclair’s muckraking helped Theodore Roosevelt pass the Pure Food and Drug Act and the Meat Inspection Act — and for most of the next century, Americans trusted government inspectors to keep their food safe.

Lately, however, there always seems to be at least one food-safety crisis in the headlines — tainted spinach, poisonous peanut butter and, currently, the attack of the killer tomatoes. The declining credibility of U.S. food regulation has even led to a foreign-policy crisis: there have been mass demonstrations in South Korea protesting the pro-American prime minister’s decision to allow imports of U.S. beef, banned after mad cow disease was detected in 2003.

How did America find itself back in The Jungle?

It started with ideology. Hard-core American conservatives have long idealized the Gilded Age, regarding everything that followed — not just the New Deal, but even the Progressive Era — as a great diversion from the true path of capitalism.

Thus, when Grover Norquist, the anti-tax advocate, was asked about his ultimate goal, he replied that he wanted a restoration of the way America was “up until Teddy Roosevelt, when the socialists took over. The income tax, the death tax, regulation, all that.”

The late Milton Friedman agreed, calling for the abolition of the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It was unnecessary, he argued: private companies would avoid taking risks with public health to safeguard their reputations and to avoid damaging class-action lawsuits. (Friedman, unlike almost every other conservative I can think of, viewed lawyers as the guardians of free-market capitalism.)

Such hard-core opponents of regulation were once part of the political fringe, but with the rise of modern movement conservatism they moved into the corridors of power. They never had enough votes to abolish the F.D.A. or eliminate meat inspections, but they could and did set about making the agencies charged with ensuring food safety ineffective.

They did this in part by simply denying these agencies enough resources to do the job. For example, the work of the F.D.A. has become vastly more complex over time thanks to the combination of scientific advances and globalization. Yet the agency has a substantially smaller work force now than it did in 1994, the year Republicans took over Congress.

Perhaps even more important, however, was the systematic appointment of foxes to guard henhouses.

Thus, when mad cow disease was detected in the U.S. in 2003,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was headed by Ann M. Veneman, a former food-industry lobbyist. And the department’s response to the crisis — which amounted to consistently downplaying the threat and rejecting calls for more extensive testing — seemed driven by the industry’s agenda.

One amazing decision came in 2004, when a Kansas producer asked for permission to test its own cows, so that it could resume exports to Japan. You might have expected the Bush administration to applaud this example of self-regulation. But permission was denied, because other beef producers feared consumer demands that they follow suit.

When push comes to shove, it seems, the imperatives of crony capitalism trump professed faith in free markets.

Eventually, the department did expand its testing, and at this point most countries that initially banned U.S. beef have allowed it back into their markets. But the South Koreans still don’t trust us. And while some of that distrust may be irrational — the beef issue has become entangled with questions of Korean national pride, which has been insulted by clumsy American diplomacy — it’s hard to blame them.

The ironic thing is that the Agriculture Department’s deference to the beef industry actually ended up backfiring: because potential foreign buyers didn’t trust our safety measures, beef producers spent years excluded from their most important overseas markets.

But then, the same thing can be said of other cases in which the administration stood in the way of effective regulation. Most notably, the administration’s refusal to countenance any restraints on predatory lending helped prepare the ground for the subprime crisis, which has cost the financial industry far more than it ever made on overpriced loans.

The moral of this story is that failure to regulate effectively isn’t just bad for consumers, it’s bad for business.

And in the case of food, what we need to do now — for the sake of both our health and our export markets — is to go back to the way it was after Teddy Roosevelt, when the Socialists took over. It’s time to get back to the business of ensuring that American food is safe.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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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에게도 연애할 권리를 달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50에서 100살까지 캐릭터들의 생일파티.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
50에서 100살까지 캐릭터들의 생일파티

아니 벌써, 빨강머리 앤의 머리 위에 해가 솟은 지 100년이 됐습니다. 우리가 주로 기억하는 빨강머리 앤은 1979년에 제작된 일본 만화 <빨강머리 앤>이지만, 만화 영화의 원작은 1908년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쓴 <초록 지붕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입니다. 만화영화 주인공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어 버린 미키마우스가 월트 디즈니의 손 끝에서 캐스팅돼 처음으로 만화영화에 데뷔한 지도 80년이 지났습니다. 미키마우스는 1928년 11월 <증기선 윌리>에 단짝 미니와 함께 처음 등장했습니다. <증기선 윌리>는 만화영화로는 처음으로 소리와 영상이 동시에 돌아가는 유성영화였지요.

파란색 친구들 스머프가 벨기에 만화가 페요의 만화지 네모칸 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 지도 50년이 됐습니다. 58년 10월 벨기에의 잡지 <스피로>(Spirou)에서 단역으로 잠깐 등장한 것이 스머프의 데뷔 무대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받을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할 수 없었던 짧은 출연이었습니다. 색색깔의 조각에 레고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도 올해로 50년째입니다. 레고 블록은 58년 1월 올레 커크 크리스티안센의 특허 등록과 동시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그 첫번째 블록을 쌓았습니다. 상상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레고 블록의 탄생이었던 거죠.

앤과 미키마우스, 스머프, 레고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세계 사람들에게 항상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Esc〉가 조촐하게나마 이들의 생일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생일상에 올려놓은 차림으로는 이제 제법 나이가 들어 버린 이들의 옛날 이야기와 지금도 매순간 변신하고 있는 지금 이야기, 사람들이 말하는 ‘당신의 의미’ 등입니다. 생일잔치에 들고 올 선물은 한줌의 추억과 동심이면 충분합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자녀, 친구들과 함께 오시면 더 좋습니다. 아, 초대장은 모두 받으셨지요?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



» 생일 맞은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가상대담.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
생일 맞은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가상대담- 이름에 얽힌 사연에서 비밀 결혼 고백까지

“그땐 그랬지.”

빨강머리 소녀에서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된 앤 셜리와 제법 중후한 멋을 풍기는 미키마우스, 한창 일할 나이인 레고와 나이는 들었어도 밝은 성격만은 그대로인 스머페트가 생일파티를 기념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름과 외모에 얽힌 사연부터 연애와 결혼 등 사는 얘기까지 옛 추억을 꺼내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들의 가상 대담이 이제부터 시작된다.

‘Ann’ 끝엔 반드시 ‘e’자를 붙여다오

스머페트 : 벌써 50년이 지났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저희 스머프들은 모두 1958년 페요 아저씨가 그렸을 때 이미 100살이었거든요. 예외는 있었어요. 파파 스머프만은 542살이었죠. 그렇게 나이가 많은 줄 모르셨죠? 그래도 저희 스머프들은 꼬박꼬박 생일파티를 한답니다. 노는 걸 좋아하거든요.

» 초창기 스머프 스케치(왼쪽)와 스머프들의 지도자인 파파 스머프.

레고 : 우리 레고 피규어는 레고 블럭보다 16살 정도 어려요. 레고 피규어가 처음 생긴 건 1974년이었거든요. 앤 할머니, 진심으로 생신 축하드려요. 그런데 아직도 기운이 넘치세요. 역시 성격은 변하지 않나봐요.

앤 : 나를 코딜리어라고 불러주겠니? 앤은 전혀 낭만적이지 못한 이름이거든. 나는 늘 내 이름이 코딜리어라고 상상해왔어. 코딜리어가 더 좋지만 앤이라고 부르려면 ‘Ann’ 끝에 ‘e’자를 붙여서 불러다오. ‘Ann’은 왜 그런지 싫고 불쾌하지만 ‘Anne’은 훨씬 품위가 있거든.

미키 : 네, ‘e’자가 붙은 앤 할머니. 저는 원래 월트 디즈니 아저씨가 제 이름을 ‘모티머’(Mortimer) 마우스라고 붙이려고 했대요. 그런데 월트 아저씨의 부인인 릴리안 아주머니가 ‘모티머’는 거드름을 피우는 이름 같다면서 재미있고 겸손한 느낌의 ‘미키’를 제안한 거죠. 제 이름이 모티머였다면 인생도 달라졌겠죠?(웃음)

스머페트 : 스머프라는 이름은 저녁 식사하다가 튀어나온 이름이라니까요. 페요 아저씨가 친구인 만화가 프랭퀸 아저씨와 저녁을 먹다가 “소금 좀 줄래?”라고 말해야 하는 걸 잘못 얘기해서 “스머프 좀 줄래?”라고 말해버렸대요. 그렇게 ‘스머프’라는 알 수 없는 이름이 만들어진 거죠. 그런데 사실 저희 본명은 ‘슈트롬프’(Schtrompf)예요. 고향인 벨기에에서는 저희를 슈트롬프라고 부르거든요. 스머프는 슈트롬프의 영어식 이름이랍니다.

레고 : 크리스티안센 아저씨도 레고라는 이름을 짓기까지 꽤나 고생했어요. 처음에는 회사 이름을 지으려고 직원들에게 공모전도 열었죠. 그런데 운명처럼 크리스티안센 아저씨가 레고라는 이름을 생각해냈어요. 레고는 덴마크어 ‘레그’와 ‘고트’의 합성어예요. “레그 고트(Leg Godt)”는 “재미있게 놀아”라는 뜻이죠.

스머페트 : 스머프 이름 짓는 법은 두 가지예요. 첫째는 하는 일에 따라 짓는 거죠. 뭐든 잘 고치는 ‘편리’나 항상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말이에요. 두번째는 성격에 따라 짓는 방법이에요. “내 말이 맞잖아!”를 외치고 다니는 ‘똘똘이’, 불평불만이 인생의 전부인 ‘투덜이’,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익살이’처럼 말이에요. 거울만 들여다보는 ‘허영이’도 있죠. 그런데 앤 할머니는 어릴 때와 비교하면 정말 예뻐지셨어요.

스머프가 모자를 벗지 않는 건 대머리라서?

앤 : 고아원에서 머럴러·매슈 아저씨네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비쩍 마른 체구에 빨강머리, 촌스러운 주근깨까지 아주 볼품없었지. 그때는 누가 내 머리색 얘기를 꺼내면 불같이 화를 냈단다. 길버트가 나를 ‘홍당무’라고 놀렸을 때 석판으로 길버트 머리를 내려치기도 했지. 그런데 10대 후반이 지나 20대에 접어들면서 주근깨도 사라지고, 빨강머리에 대한 애정도 생기더라구.

» 일본 애니메이션 속 앤(왼쪽)과 캐나다 드라마 속 앤의 모습.

미키 : 저는 맨 처음 <증기선 윌리>로 데뷔했을 때만 해도 팔다리가 더 가늘었고 배도 더 나와 있었어요. 처음에는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이었죠. 흰 장갑을 처음 낀 것은 1929년 <오프리 하우스>라는 비디오에서였어요. 흑백에서 색깔 있는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1935년 <더 밴드 콘서트>에서 였죠.

스머페트 : 사람들이 저희에게 꼭 물어보는 게 있어요. 몸이 파란색인 이유예요. 사실 파란색인 이유는 단순해요. 초록색이면 자연 색깔 때문에 묻혀버리게 되고, 빨간색은 너무 화려해요. 노란색은 또 조금 불길한 색이잖아요.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색깔은 제외하고 보니 파란색이 남은 거죠. 또 왜 꼭 흰색 옷과 모자를 쓰고 다니냐고 물어봐요. 저희 스머프들은 잠을 자거나 목욕을 할 때도 모자를 벗지 않거든요. 뭐 대머리라서 그렇다는 설이 있다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그래도 저는 아니에요. 이렇게 머리카락이 길게 있잖아요.(웃음)

» 초기 레고 블럭(왼쪽)과 마니아를 양산한 〈스타워즈〉시리즈.

레고 : 레고 피규어인 저희가 지금 이 모습을 하게 된 건 피규어가 나온 지 4년이 지난 1978년이에요. 그때부터 지금처럼 작은 피규어가 된 거죠. 사실 레고 피규어인 저희들은 외모에 대해 불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생겼어요. 사람들이 촌스러운 머리를 ‘레고 머리’라고 하는 거예요. 제 머리 모양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미키마우스 형은 방송에 영화까지 카메라를 많이 받으면서 확실히 더 세련되어진 것 같아요.

미키 : 그렇긴 하지.(웃음) 1928년부터 쭉 단편영화만 하다가 첫번째 장편영화에 출연한 게 1940년 <판타지아>였어요. 마법사 견습생 모습 모두들 기억하죠? 티브이 데뷔는 1955년 <미키마우스 클럽>이었어요. 저 덕분에 디즈니는 1932년에 아카데미 명예상을 받기도 했다니까요. 50번째 생일이었던 1978년에는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만화 캐릭터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새겼어요.

앤 : 나는 주로 일본과 캐나다를 오가면서 활동했어. 1979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제작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을 맡은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이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거든. 내 이야기를 드라마와 영화로 만든 건 여러 편 있었지만 가장 잘 만든 작품은 1985년 캐나다 케빈 설리반 프로덕션에서 만든 <초록 지붕 집의 앤>이지. 매건 팔로가 내 역을 맡았는데 연기가 아주 그만이었거든. 상도 많이 받았지. 한국에서는 1984년 일본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 일부가 방영됐어. 1화부터 50화까지 전부 방영된 건 1986년부터였지. 성우 정경애씨가 내 목소리를 연기했어. 노래도 기억나지?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미니마우스는 어떻게 여자주인공이 되었나

스머페트 : 저희도 세계적인 인기 면에서는 뒤지지 않아요. 1975년 벨기에에서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다음 1981년 미국 한나 바바라 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엔비씨(NBC)를 통해 방영됐어요. 시청률이 42%나 나왔죠. 그 이후 8년 동안 272화가 나갔어요. 지금도 전세계에서 상영되고 있죠.

레고 : 우리는 거꾸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편이에요. 1999년 <스타워즈> 시리즈는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었죠. <인디아나 존스>와 <배트맨> 시리즈도 나왔어요. 전세계 어린이들이 해마다 5억 시간을 레고 놀이에 쓰죠. 또 계산해보면 지구상에 1인당 평균 52개의 레고 블럭을 갖고 있어요.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죠? 그나저나 앤 할머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길버트 할아버지와도 잘 지내세요?

앤 : 그럼. 우리는 아이를 여섯이나 낳았어, 젬과 월터, 쌍둥이인 낸과 다이 셜리, 릴러까지. 그렇지만 전쟁 때문에 아이들을 잃기도 했지. 지금도 가슴이 아파.

미키 : 저 역시 미니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영화 속에서 한번도 결혼식을 올린 적은 없지만, 저희는 결혼을 한 사이예요. 모르셨죠? 제가 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은 월트 디즈니 아저씨가 잘 알고 있죠. 1933년 어느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미키마우스의 사적인 삶에서 그는 미니와 결혼을 했다. 그것이 발전해 미니마우스가 스크린에서 여자 주인공이 된 것”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죠.

» 1928년 〈증기선 윌리〉속 미키마우스(왼쪽)와 3차원 미키마우스.

스머페트 : 스머프 마을에는 별다른 연애 사건이 없어요. 제가 유일한 여자이기 때문에 ‘덩치’와 ‘편리’가 저를 두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스캔들은 없었죠. 그런데 왜 저만 여자냐구요? 사실 저는 가가멜이 만든 악당이었어요. 제가 처음 스머프 마을에 왔을 때는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죠. 그런데 파파 스머프가 저를 착한 스머프로 만들어 줬어요. 그런데 내년에 나오는 스머프 영화에는 저 말고 또다른 여자 스머프가 등장한대요. 흠, 내가 더 예뻐야 할 텐데.

레고 : 저희도 세상에 할 말이 있어요. 우리도 연애하게 해달라! 레고 머리도 연애할 권리는 있다! 레고 시리즈 다음 주제로 ‘레고 피규어들의 사랑 만들기’, 어떤가요?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자료·사진 제공 월트디즈니·레고코리아·아이엠피에스·동서문화사(<그린 게이블즈 빨강머리 앤>)

일러스트레이션 권오환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元老에 길을 묻다 <6> 천규석 농민운동가 / 대담 변홍철 녹색평론 주간

1965년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경남 창녕에 귀농한 '농민'이자, 한살림운동과 공생농두레농장을 통한 농민운동의 선구자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천규석(69) 대구한살림 이사. 그는 흙에 바탕을 둔 생명주의 실천가로 도농직거래를 통한 지역자치 공동체의 부활을 위해 애써왔다. 창녕 남지의 공생농두레농장을 10여 년 운영해온 그는 요즘 대구시 남구 대명9동 대구한살림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농장을 다녀온다고 한다. 천규석 선생과 대담에 나선 이는 녹색평론 변홍철 주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잡지로 녹색담론을 이끌어가는 녹색평론의 일꾼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달 29일 녹색평론사 편집실에서 이뤄졌다. 선생은 지난해에만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와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 가 발병난다'라는 2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이들은 지난 1987년의 민주화운동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1시간 여 동안 농업과 농촌문제를 토론했다.

 
  천규석 대구한살림 이사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자신의 저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변홍철 주간=선생님, 지난해는 책을 2권 내셨는데 지난 한해가 어떠셨습니까. 또한 대구한살림의 살림살이는 좀 어떠하신지요.

천규석 이사=대구한살림은 제가 능력이 없어 장사가 잘 안돼요. 대형매장 등과 비교하면 불편하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제 때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용을 잘 안 해요. 조합원 숫자가 줄지는 않아 실패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변=책에 대해서도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은 자본과 산업문명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는데요. 사회적 논쟁이 심화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목주의를 왜 침략주의라고 규정하시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천=책을 내면서 산림자원만 훼손하는 것 아닌가 싶어 미안하고 부끄럽네요. 유목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심지어 경전처럼 떠받드는 학자나 지식인도 있고 '무식한 농사꾼이 들뢰즈 같은 학자의 원서도 안 읽고 유목주의를 비난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모든 텍스트는 자기 안목으로 읽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봐요. 아무튼 저 같은 농사꾼이 보기엔 지금 유행하는 유목주의는 세계시장주의나 상업주의와 한 통속이라는 것, 나아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코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변='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선생님의 비판은 요즘 정부가 하는 이미지 조작을 보면 수긍이 갑니다. 가령 최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정부 측 광고를 보면, 말을 타고 깃발 휘날리며 대륙을 달리는 침략주의 혹은 팽창주의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거든요.

천=진리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지요. 유목주의에 아무리 정교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그것은 정착 농경민에 대한 침략이거나 교역으로 살 수밖에 없던 비자립적 삶의 방식임에 틀림없죠. 자생·자치적 농촌 공동체를 흔들고 해체해야만 유지가 가능한 오늘날의 시장주의와 수탈이 본질인 국가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유목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변=한미FTA라는 큰 변수가 있겠습니다만, 지금의 우리나라 농정이 앞으로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천=지금까지 보면 농정이란 게 오히려 농업을 죽여왔어요. 농업을 핑계로 먹고사는 관련 귀족들, 관료와 교수들 배만 불리는 것이지요.농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각종 예산을 책정해 자기네들끼리 나눠먹는 식이지요. 심지어 농촌을 황폐화하는 수많은 도로 공사들도 그런 농업 관련 예산에서 나오는 거예요. 실제 소농들을 소리 없이 정리하면서 농업 기득권 세력들의 이익만 챙기게 하는 것이 지금 한국 농정의 본질이에요.

변=올해는 대선도 있고 여러 의미에서 소위 '87년 체제'에 대한 평가와 극복이 우리사회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만.

천=87년 이후 소위 '민주화세력'들도 그전의 박정희 식 성장주의 세력과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봐요. 처음부터 농업에 대한 철학,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로서의 농업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고 봐야지요. 실제로 87년 이후 20년 동안 농업은 엄청나게 퇴보했고 몰락해왔잖아요.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부의 독점과 갈등, 차별, 나아가 엄청난 생태계 파괴, 민주주의 위기 등은 결국 이러한 농업의 몰락, 농촌공동체 파괴와 관련이 있어요. 그렇다면 87년 체제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도 농업의 가치를 중요한 화두로 끌어들여야만 의미가 있을텐데, 농업 및 생태환경 문제가 그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가 편 가르기, 파워게임에만 몰두해 있으니, 풀뿌리 민중의 생존이나 운명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변=지난해 녹색평론이 중심이 돼 '지역직거래'를 화두로 농업 관련 좌담을 열기도 했는데요. 그 핵심은 도시의 노조 및 학교와 지역 농민회 간의 직거래를 중심으로 농업 회생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지요. 이 새로운 길을 잘 닦아나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변홍철 주간
천=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크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 좌담 이후 노동자, 농민 단체 관계자들이 대화를 해온 것은 분명합니다. 농민은 원래 자치적 인간이고 농촌마을은 하나의 작은 자치공화국이에요. 그런데 오랫동안 농업이 시장에 너무 깊이 편입되다 보니 농민과 농촌이 가지고 있던 자치 역량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농촌은 생산만 하고 유통이나 가공은 모두 대도시 상인이나 대기업에게 빼앗겼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농산물 유통을 도시에서 하지 말고 사람과 돈을 농촌으로 이전해서, 농촌이 중심이 된 유통을 하자는 것이 직거래운동의 취지 아닙니까.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을 설득해 유통의 역량도 농촌으로 되돌려야 해요. 가공을 비롯해서 대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문들도 농촌마을로 되돌리는 운동이 필요해요.

변=바로 그런 재구조화, 사회적 재편을 위해서도 좀 더 나은 정치권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전농 같은 농민운동측도 그렇고요.

천=현실적으로 그런 정부를 기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조직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 차원에서의 자치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겠지요. 무엇보다 '자기혁명' '자치혁명'이 필요하고 그것이 토대가 돼야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변=지난 95년께 시작한 창녕 공생농두레농장은 요즘 어떻습니까. 두레농장 10여 년을 돌아보시면서 한 말씀해주시지요.

천=사실 두레농장은 땅이 1만 평 정도에 불과해요. 뜻있는 젊은이들이 이를 근거로 해 인근 마을들을 재공동체화 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것인데 처음엔 귀농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주위 마을과 유대를 가져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무료 한방 진료나 심지어 무료 과외까지 해주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처음에 유기농을 하니 '도시놈들이 들어와 별 미친 짓을 다한다'며 비웃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반 농민들도 유기농을 하지 않으면 팔아먹기도 힘들게 됐는데 문제는 판로예요. 판로 개척이 안 되니 이제는 유기농 하겠다는 농민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형국이 돼 버렸어요. 이런 점에서 마을공동체 실험은 실패에 가깝지요. 유기농 판로는 정말 문제예요. 이런 데서 진정한 의미에서 도농직거래 도농연대가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 사셔야 합니다.

천=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더 있겠어요. 늘 잔소리나 하고 실수나 거듭하는 것 말고.


# 약력

◇천규석

1938년 경남 창녕 출생. 서라벌예대 및 서울대 미학과 졸업. 65년 귀농. 90년 한살림운동 대구공동체 조직. 창녕 공생농두레농장 운영.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2대 공동의장 역임. 현재 대구한살림 이사. 저서로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쌀과 민주주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등 다수.

◇변홍철

1969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98년부터 녹색평론 근무. '대구경북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연대' 정책위원. 대구지역청년단체 '땅과 자유' 회원. 현재 녹색평론 주간

 

- 출처 : 국제신문 2007년 2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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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한 세상의 아름다운 만화
프랑스 만화가 레제르 작품집…빼뚤빼뚤 그림체로 현실 꼬집어
구본준 기자
» 프랑스 만화가 레제르 작품집
밝고 신나는 상상속 세상이 아니라 정반대로 괴롭고 어두운 현실을 그려내는 만화가들이 있다. 서구 만화계에서 이런 만화를 그리는 작가로는 미국의 로버트 크럼과 프랑스의 장 자크 레제르가 꼽힌다. 마흔두살에 요절한 만화가 레제르(1941~1983)는 60~70년대 격동하던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포착했던 도전적인 만화가다. 앞서 단편들로 소개되었던 이 레제르의 작품들을 큼직한 2권짜리 책으로 묶은 작품집 <레제르>(미메시스 펴냄)가 출간됐다.

레제르의 가장 큰 특징은 지렁이 기어간 흔적처럼 삐뚤빼뚤 꼬불꼬불한 그림체로, 성냥개비로 만화를 그리는 <고인돌>의 박수동 화백을 연상시킨다. 이런 그림선은 그가 자신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른 미학적 선택이었다. 레제르는 인간세상의 추함을 주목했던 만화가다. 인간의 추잡함, 허위의식을 꼬집는 것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레제르는 생전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최악을 그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역설적일 수밖에 없고, ‘추함의 아름다움’으로 정의할 수 있다.

작품집에 소개하는 만화의 내용은 거친 그림체처럼 무정부적이고, 통렬하고, 때때로 슬프다. <우리 아빠>의 아빠는 술주정뱅이 실업자다. 성에 관심이 많은 <빨간 귀>의 주인공 학생은 늘 부모와 선생님에게 따귀를 맞아서 ‘빨간 귀’란 별명이 생겼다. 대책없는 남성우월주의자이자 인생 낙오자인 백수 이야기 <지저분한 뚱땡이>의 주인공은 헐렁한 팬티 사이로 늘 한쪽 불알이 삐져나온 모습이다.

레제르는 독자보다 작가들이 더 좋아하는 만화가에 가깝다. 분명 사람을 잡아끄는 강한 힘을 지녔지만, 처음에는 좀 부담스럽게 보이기 쉽다. 계속 보면서 음미해야 하고, ‘코드가 맞아야’ 통하는 측면이 있어 쉽고 편하게 볼 만화는 아니다. 대신 ‘코드가 맞으면’ 무척이나 매력적인 만화란 평을 듣는다. 만화가 박수동 화백은 책 말미에 쓴 추천의 글에서 “우리 모두의 상식에 어퍼컷을 먹이고 고만한 상상력에 뒤통수를 치는 작가”라고 평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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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이 퐁퐁 와~ 디자인 놀이터 '디키빌'


입력날짜 : 2008. 01.24. 00:00

 지역 최초 어린이 디자인체험관 내일 개관…보고 만지고 만들고 체험거리 '풍성'
 색 모양 빛 착시 투시 등 기본 원리 저절로
 
 "삼원색이 합쳐지면 무슨 색이 될까? 도레미 음계에 색깔이 있다는 것 아니?"
 광주 첨단지구에 위치한 광주디자인센터 2층 디키빌. 도슨트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내는 꼬마손님들로 북적였다. 개관을 앞두고 시험 운영중인 이곳은 '꼬마디자이너들이 살고 있는 디자인 마을'이라는 의미의 어린이 디자인 체험관. 놀이하듯 즐기며 디자인의 기본 원리와 개념을 익힐 수 있게 설계된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 놀이터다.
 광주디자인센터가 디자인 문화 확산과 디자인 조기교육을 위해 국·시비 23억3천여만원을 투입, 773.55㎡(234평) 규모로 완성해 25일 첫 문을 연다. 디자인 체험교육시설은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에서는 처음이다.

 종합안내소에서 받은 상상망토를 걸치고 푸른 빛깔의 통로를 지나면 알록달록 디자인 세상이 펼쳐진다. 문화광장, 놀이광장, 보물연구소, 디자인 공작소, 마술건축소, 디자인 휴게소 등 7개존 28개 코너로 구성된 공간을 체험하는데 1시간30분이 소요될 정도로 다채롭다.
 디키빌의 첫 관문은 0-5세를 위한 놀이터다. 원색의 불풀과 조립 블럭으로 색감과 질감을 느끼는 디자인 연못, 스크린을 통해 동화를 보는 디자인 벤치와 점·선·면의 형태 원리를 체험하는 미디어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다.
 6-10세들을 위한 놀이광장에서는 디자인을 구성하는 요소인 색깔 모양 빛 등을 보다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손으로 핀을 눌러 모양을 만드는 핀 스크린, 드럼을 두드리며 색을 소리로 느끼는 뉴턴의 색음, 색의 혼합 등 색채원리를 파악하는 색깔 놀이,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신체놀이도 흥미롭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에 직접 서서 그림자를 찍어 비교해보고, 마술창문을 들여다보면 착시와 투시 원리도 알 수 있다.
 보고 만지며 자연스레 디자인의 기본 요소를 익힌 다음에는 상품으로서의 디자인을 접하는 순서다. 알레시, 필립스탁 등 세계 유명디자이너의 작품과 장애인 등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유니버셜디자인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디자인 체험의 끝은 아이가 직접 디자인해 보는 것이다. 주차금지 휴게소 표시 등 픽토그램 스티커, 시계 만들기, 종이 박스 표정 만들기, 책상 의자 만들기 등 체험거리가 풍성하게 준비돼있다.
 광주디자인센터 교육전시팀 최유리 대리는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디자인을 체험하며 창의력과 상상력을 북돋는 교육의 장"이라며 "재미와 교육,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체험관은 인터넷(www.dekivill.com)이나 전화, 예매 등을 이용한 예약제로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3천원(어린이)-5천원(일반). 매일 오전 10시·오후2시 두차례 도슨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문의 (062)611-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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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이식 자전거들과 그 매력


연일 티비에서 유가가 올랐나 떨어졌나 하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동차의 연비가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로 등장하는 요즘, 문뜩 거리를 보니 한국 사람들 참 자전거를 안타는구나 싶었다.  몇년 전 일본에 여행갔을때 느꼈던 충격 중의 하나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길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침이면 다들 자전거를 타고 내앞을 지나가는 여고생들, 앞뒤로 아이를 태운 아줌마들, 짧은 치마를 입고 열심히 페달질을 하는 야릇한 느낌의 여자 회사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필자가 남자인지라 특히 여자들의 모습 밖에 기억에 없는데, 여하튼 내가 일본에 왔는지 중국에 왔는지 모를 정도 였다. 


물론 일본이 극심한 교통체증과 잘 발달된 대중교통이 있다손 치더라도, 한국에서는 인디500에 참가하듯 목숨걸고 타야하는 교통 환경이라 치더라도, 그리고 우리 한국사람 특유의 그놈의 체면 때문에 좀 더 있어보이는 네발을 우선 시 하는 경향이 있다 치더라도, 한국보다는 일본의 자전거 이용률이 월등히 높은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웰빙이다 뭐다 해서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둔치나 공원 같은데에서 타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이땅에서는 자전거는 흔하면서 흔하지 않은 물건임은 틀림없다.  나 또한 자전거를 여드름 나면서 부터 등한시 해왔기에...


그렇다면 나도 이젠 자전거를 하나 사서 타고 싶은데 체질적으로 (사람들은 멋있다고는 하지만 무식해 보이는) MTB는 싫다.  1년 내내 아스팔트 땅 위에서 탈 수 밖에 없는데 그놈의 오프로드형 바퀴는 효율적으로 속도도 나지않고 무겁고 좋지않다.  그렇다고 멋지고 가볍고 큰 키의 싸이클 타느냐 그것 또한 동양인의 길고 긴 다리길이 문제상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떤 자전거를 타는냐? 그것이 문제인데 그래서 조사 하다보니 용의자 선상에 오른것이 역시 디자인 적으로나 아이디어 적으로나 괜찮은, 도시적 느낌의 접이식 자전거가 아닐까 한다.


자 그럼 그 접이식 자전거의 세계로 가보도록 하자!


유럽과 일본에서 21세기 시작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r&m사의 BD-1씨리즈.  자전거로 해외 여행을 즐겼던 독일의 자전거 매니아 둘이서 의기투합의 결과 탄생하였다.  주행성능, 접이능력, 디자인성을 높이 평가 받아 각국의 굿디자인상을 수상하였다.


딱 보기에도 클래식스러운데 역시나 영국제이다.  영국의 컴퓨터 엔지니어가 심심풀이로 만든 것이 히트상품이 되었다.  BROMPTON사의 BROMPTON.



F1경기장에 자주 등장하는 간판 "BRIDGESTONE"  이 회사는 세계적인 일본의 타이어 회사인데 자전거도 생산하고 있다.  이 TRANSIT Carbon은 일단 체인을 쓰지 않는 획기적인 샤프트드라이브, 측 축구동으로 페달의 힘을 타이어에 전달한다.  앞뒤 서스펜션이 달려있고 소재는 카본 모노코크이다.  문제는 가격인데 한 190만원.... 그냥 보기만 하자 뭐.

이태리 남부 시칠리에서 태어난 Di Blasi사의 Tricycle: 노란색 세발자전거.  기어변속에 우수한 접이능력을 보여주지만 한국에서 타려면 낯짝 또한 두꺼워야 되지 않을까?

미국 오레곤주에서 전과정이 수공으로 생산되는 BIKE FRIDAY사의 Pocket Rocket.  실루엣이 예쁜 온로드 싸이클이다.  조금은 처참하게 접혀지기는 하지만 예쁜 자전거임에는 틀림없다.  주행성능, 밸런스감에서도 전문가들의 절찬을 받았다고 한다.

각사의 접이식 자전거들.  아이디어 디자인등이 재미있다.  특히 자전거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있는것은 마치 한국 이름 같은 미국의 Dahon사의 제품들.  디자이너가 박사님이다.

  박사님이 나와서 말인데, 접이식 자전거계의 또 하나의 유명한 박사님 제품이 있으니 바로 다음의 영국의 알렉스 몰튼박사의 작품(?)들일 것이다.



우리가 '미니'라 부르는 영국의 오스틴 미니의 서스팬션 설계로 유명한 몰튼박사가 비행기 자동차설계를 통해 길렀던 지식과 경험, 반세기의 연구성과를  집약시켜 설계한 프레임부분.  이 작은 접이식 자전거로 1986년 자전거로써는 세계 최고속 82킬로를 달성한다.  디자인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그 프레임의 형태 또한 아름다워 주로 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유명건축가, 디자이너가 특히 많다고 한다.



위의 프레임은 몰튼 자전거의 2세대형 프레임이지만, 1960년 1세대 프레임부터 자전거에 서스팬션를 도입시켰고 공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에 의해 인간에게 가장 효율적인 바퀴간의 거리, 힘의 분산, 중심점 등을 계산해서 만든 제품으로 접이식 자전거 주제에 모든 자전거를 통틀어 명품 중 명품에 속하는 놈이다.

Alex molton의 Am씨리즈중 하나



최신형 알렉스 몰튼 Am speed Pyron.  가격은 알려하지 마시라.. 현실이 슬퍼지니까. ^^;


P.S : 여담인데.....스트라이더,몰튼,브롬프튼,스쿠트등등,뛰어난 접이식자전거들은 영국제가 많은데, 접이식자전거가 본격적으로 생산된것은 2차세계대전중의 영국공군단 소속 낙하산부대가 재빠른 이동을 목적으로 ,당시 BSA(버밍검스몰암즈)사에 의뢰해 제작했던것이 전후 민간기업에게 펴졌다고 합니다.중절모를 쓴 신사들과 닭벼슬머리를 한 펑크족들이 위화감 없이 공존하는,즉 보수와 전위가 공존하는 영국이기에 전통적인 자전거에 전위적인 공업디자인가 합쳐진 접이식자전거들이 많은것 아닐까요?

 

 

ideaholic 에서 퍼왔읍니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한국판 플란더스 개` 싸고 "동물학대" vs "감동장면"
[TV리포트 2006-04-14 09:20]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범`한 화제를 다뤄 시청자들의 이목을 붙잡고 있는 SBS ‘세상에 이런일이’가 난데없는 구설수에 휘말릴 조짐이다. 13일 소개한 ‘강릉 파트라슈’ 이야기가 비상한 관심속에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

이날 방송은 명작 만화 ‘플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파트라슈’처럼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개를 다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예컨대 한국판 `파트라슈`인 셈.

방송에 따르면 화제의 개 `곰이`는 ‘썰매 끄는 개’로 유명한 ‘알래스카 말라뮤트’ 종으로, 몸이 아픈 주인을 도와 자신의 몸집보다 몇배 되는 수레를 끌었다.

놀라운 사실은 주인이 훈련을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그 같은 일을 해낸다는 것. 개 주인은 현재 협심증, 심근경색에 대장암까지 앓고 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폐지를 주워 가계를 돕고 있는 중이며, 곰이는 주인을 대신해서 폐지수레를 잡았다.

그런데 바로 그 곰이의 모습에 의견이 분분하다. 시청자들은 게시판을 통해 ‘동물학대’와 ‘감동 스토리’라는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자 쪽 주장 하나를 들어보면 이렇다.

“아무리 말라뮤트가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크고 무거운 수레를 끌기엔 무리다”

이들은 특히 방송 중 보여진 곰이의 발톱에 다 닳아 없어진 모습과 관련, “곰이가 힘에 부쳐 하는 것 같았다”며 “적절한 양의 노동을 시켜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반대쪽 입장은 곰이가 자의적으로 수레를 끌었다는데 중점을 뒀다. 한 네티즌은 “곰이가 수레를 끌려고 준비할 때 꼬리 흔들며 아저씨 반기는 모습이 기특했다”며 “곰이가 싫었으면 그런 모습을 보였겠냐”고 반박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어렵게 살아가는 주인을 위해 가족같이 지내는 개가 힘겨운 짐을 들어주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부분 생활형편이 어렵고 건강도 좋지 않은 주인을 위해 무거운 수레를 끄는 ‘곰이’가 안쓰러운 한편 ‘대견스럽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일부선 여전히 “딱한 형편은 이해하지만 곰이에게 행해지는 일들이 너무 괴롭고 마음 아팠다”며 “곰이가 자의든 타의든 수레를 끄는 이야기가 감동스토리로 미화될 가치는 없다고 보인다”고 일침을 가했다.

방송은 ‘곰이’에 대해 ‘알래스카 말라뮤트 종은 수백 킬로그램의 짐을 끌 정도로 힘이 좋다’는 부가설명을 달았지만 시청자들의 비판을 비껴가진 못했다.

(사진 = 방송장면)

[TV리포트 윤현수 기자]vortex723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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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치즈를 먹다 몇조각 떼줬더니 그 맛을 아는지 달라고 계속 조르네요.
요즘은 사료 말고도 계란 노란자를 주는데 단번에 삼키는 바람에
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술안주로 육포를 삼켰다다 강제로 뱉게 했더니
저렇게 삐져 있네요. 

돌배가 정기적으로 먹는 간식은 애견용 쿠키인데,
쿠키를 꺼내면 방방 뛰어다니길래 "앉어! 발~!" 이렇게 훈련을 한답니다.
발, 하기 전에 자세입니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