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놀이문화 – 대동놀이와 난장판 이론

이상일 (1983)

 , 출처 아르떼 http://www.art.go.kr
주제분류 공연예술>예술가
생산자 이상일
자료제공 이상일
자료형태 텍스트
생성일 1983년


1. 서론 : 놀이 문화론

‘놀이’가 문화론의 한 주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놀이’에 대한 인식의 드높임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놀이가 단순히 ‘시간 보내기’로 간주되는 한 ‘놀이’의 문화론적 사상체계가 이루어질 수 없음은 당연하다.
놀이는 그 성격상 개인적 레벨과 집단적 레벨로 나누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집단적 놀이를 ‘대동(大同)놀이’로 간주하는 한 놀이는 생산(生産)과 작업(作業)과 같은 노동형태와 밀접하게 맺어진다. 노동형태와 연관된 놀이어야 비로소 놀이문화는 민중사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잡희(雜戱)’로 불려 나온 연극(演劇)은 어원적으로 놀이와 맺어져 있으나 ‘희(戱)와 극(劇)의 사회적 존재가 심히 희미해졌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한국의 놀이학자는 최남선(崔南善)이었다.
그는 연극을 나타내는 우리말이 짓, 굿, 노릇의 세 가지로서 그 세 가지가 다 같이 놀이와 드라마의 의미로 쓰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개념상의 혼유는 초창기의 놀이학에 있어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르상의 구별이 분명해지는 것은 개념의 확립이 성립된 다음에 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사전적인 용례(用例)를 끌어 내는 것도 놀이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타당할 것이다. 이희승 편 <국어 새 사전>에 의하면

놀이 – 노는 일
놀음·노름 – 돈이나 재물을 걸고 따먹기를 다투는 내기, 도박
놀음놀이 – 여럿이 모여 즐겁게 노는 일

이상과 같은 표기(表記)에 의하면 ‘놀이’는 ‘노는 일’이라 하였고, 따라서 그것도 하나의 ‘일’이 된다.
명사 ‘놀이’의 어원이 되는 동사 ‘놀다’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뜻이 담겨 있다.

① 일 않고 세월을 보낸다.
②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지내다.
③ 박힌 것이 헐거워 흔들리다.
④ 윷·주사위 따위를 던지다.

위 뜻으로 보면 일·작업에 대비되는 한가함·게으름·여유의 소극적 놀이개념즐거움·신명·겨루기와 같은 적극적 행위개념의 두 가지 유형이 성립될 수 있으며 그 말 밖에 개인적인 놀이와 집단적인 놀이의 형태가 아른거린다.
그것만 가지고서는 놀이학의 놀이개념이 설정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놀이의 개념과 어원에 대해서는 국어학적인 측면에서보다 연극학·민속학·인류학·종교학의 측면에서 다루어 보는 것이 보다 포괄적일 수 있다. 그래서 이두현(李杜鉉)은 연극드라마의 원류를 인간의 모방본능 내지는 유희본능으로 보려고 한다. 놀이와 굿에서 연극적 모태(模態)를 가정하는 것은 최남선과 같은데 그는 동시에 인류학, 민속학적 측면에서 놀이의 시야를 확대한다. 연극이 뜻하는 ‘노릇’, ‘놀음’은 유희, 휴식, 가요(歌謠)를 뜻하는 어원 ‘놀’에서 나온다. 노릇과 노래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임은 놀이의 가무적(歌舞的) 성격과 관련해서 흥미 있는 일이다.
희극(戱劇)을 뜻하는 우리말인 노릇이라든가 ‘짓’ 가운데 손짓이나 몸짓은 마임(mime, 科)을 나타내는 말이다. 소리(音聲)없이 몸짓만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몸짓말에서 절주(節奏)가 따르면 몸짓춤(mime dance)으로 연결되고 거기에 다시 소리가 따르면 하나의 단락(거리·場面·幕)을 나타내는 짓거리(drama)로 발전되는 것이 ‘짓’행위의 연극적 발전 양태이다.
놀이를 노릇이나 짓으로 풀지 않고 굿으로 푼 장주근(張籌根)은 굿의 정의를 대감놀이, 옥이풀이, 성주맞이 등으로 부르는데 유의해서 신령(神靈)을 맞이해서 놀이를 시키고 신의 노여움이나 인간의 재액을 풀이시키는 굿의식에다 놀이를 대입시킨다. 가창(歌唱)되는 legomenon은 풀이로, 행위되는 dromenon은 놀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무속(巫俗)의 현장에서 현용준(玄容駿)은 세경놀이, 영감놀이 같은 놀이형식을 기본의식형식으로 삼아 불러 내는 신의 신화내용을 행동으로 연출하는 일종의 성극적(聖劇的) 의식(儀式)의 삽입으로 본다. ‘맞이굿’이 언어 위주의 기본의례와 무용 위주의 의례가 이중적으로 복합된 것임에 비하여 언어 위주의 기본의례에 극적(劇的) 의례가 이중적으로 복합 구성된 것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런 측면에서 특히 놀이의 의미를 강조하는 김열규(金烈圭)는 ‘굿’의 집단적인 제의(祭儀)를 통찰하면서 개인제의인 고사(告祀)와 대조적이긴 하지만 굿의 효능을 높이고자 할 때는 고사와 굿이 복합적으로 병존하게 되고, 특히 굿이 연악(宴樂)일 때 놀이와 접경(接境)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간전승에 있어서는 놀이가 제의와 상충적인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호이징가(L Huizinga)식으로 말하면 유희와 종교적 행위의 동일성, 그리하여 제의나 주술, 축도(祝禱), 비의(秘儀) 등의 개념이 유희라는 개념 속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다.

“현전(現傳)의 각종 민속적인 이른바 절후제의(節候祭儀)가 놀이로서 의식되고 또 표현될 때 ‘놀이’는 ‘굿’과 접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구별하자면 굿이 제의(rite)의 동의어로, 놀이가 축제(feast)의 동의어로 쓰일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놀이’는 신성한 유오(遊娛)의 두 측면을 갖는다. 성스런 행위인 dromenon은 무엇인가 실지로 행하여진 일이다. 이에 비해 가령 연행의 형태나 또는 경축(競逐)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행위, 곧 표상(表象)된 행위가 드라마이다. ‘놀이’는 신성한 것이면서 아울러 ‘꼭두각시 놀음’에 있어서처럼 연극이기도 한 것이다. 이때 놀이는 신성과 유오(遊娛)와 예술이 종합체가 된다. ‘놀이’에 관한 한 이 삼자의 구획(區劃)은 어려울 것이다.”(김열규, <한국민속과 문학연구>, 일조각, 1971)

대체로 놀이가 행위의 측면에서 다루어지게 되면 그 놀이행위는 집단적 활성(活性)의 한 표현으로 간주되고 그렇게 해서 한국의 ‘놀이론’은 굿과 관련된 제의적 속성에 의한 관심이 예각화되어 있다. 그러나 놀이의 자기 완결적, 자족적 무상성(無償性)에 대한 논거는 결국 다른 철학의 세계에서 도입해 올 수밖에 없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놀이의 무상성은 무목적성으로서 생의 수행이라는 근거없는 자기내부진동을 가능케 한다.
핑크(E. Fink) 교수는 놀이를 세계상징이라고 보고 있다.

“놀이의 무근거성(無根據性)이 인간의 목적적, 유의적, 가치 규범적, 계획적 행동 속에 자리함으로써 놀이는 첫째로 ‘목적’, ‘의미’, ‘가치’, ‘계획’을 속으로 감춰야 하고 둘째로 가상(假象)을 매체로 해서만이 우주의 비유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놀이에서 세계의 계기가 조명되지만 그것은 놀이 속에 교차된 현실과 비현실의 이중성을 통해 굴절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놀이는 세계상징(Weltsymbol)인 것이다.”(E. Fink, Spiel als Weltsymbol, Stuttgart 1963, p239)

종교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제의·연희적 놀이론이 민속연희·예술·행사의 이름으로 거론됨은 당연하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민속의 행위체(event)로서 구체화되는 현장이 바로 놀이일 수도 있는 놀이의 오유성(娛遊性)과 참여성 – 같은 참여라 하더라도 단일참여와 대립참여가 있듯이 오유에도 단순놀이와 복합놀이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면, 놀이론은 사회적 맥락을 더듬으며 전승된 놀이행위를 통해 민속문화론, 내지는 놀이문화론으로 격상케 되는 것이다.

2. 손진태의 놀이분류

이미 알아 온 것처럼 놀이가 관념적 혼유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 자체가 형성하는 형태 양상 및 현상에 따른 분류가 가능해지고 특히 전승행사의 현장에서 그 형태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놀이문화의 기원에 대한 탐구에 앞서 우리는 현존하는 놀이현상과 형태에 따른 분류방법을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놀이본성을 문화의 시점에서 성찰한 호이징가에 의해서, 그리고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간 카이오스에 의해서 본질적으로 규명된다. ‘인간은 단지 신의 도구(장난감)가 되도록 만들어졌다’는 뜻에서 인간정신은 오직 지고(至高)의 존재로 시선을 돌렸을 때만이 유희라는 마권(魔圈)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한 호이징가는 단호한 판단 아래에서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궁극적인 것일 수 없다는 의식이 있다는 전제 아래 “모든 것은 헛되도다”라는 말 대신 “모든 것은 놀이로다(Alles ists Spiel)”라는 조금은 긍정적인 결론이 나온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놀이를 말할 때는 그 기원에 고대심성의 인간이 거론된다. 그 원초적 인간들이 먼저 자연체험과 대결하다가 그것을 제의(祭儀)형식으로 표현해 나아가는 과정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제의에 관한 관념이 이미 전통적 소재가 되어 버려서 그것을 미리 마련해 놓고 그것처럼 보이며 연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는 제의공동체(祭儀共同體)에는 공상적인 비유로써 간신히 자연체험의 제의화 과정에 접근해 갈 수 있을 뿐이다. 사상(事象)이 형상화되고 이미지화되어 가는 과정에 작용하는 기능은 시적 기능이며 그 시적 기능은 좋게 말해서 유희적 기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호이징가 교수가 정의내리는 ‘놀이’는 다음과 같다.
놀이란 어떤 정해진 시공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행위 내지는 활동이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절대적 구속력을 가진 규칙을 따른다. 놀이의 목적은 행위 자체 속에 있다 그것은 긴장과 즐거움의 감정을 수반하며 그것이 일상적 삶과는 다른 존재라는 의식에 떠받쳐 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놀이의 특징으로 든 것은 첫째 자유로운 행위라는 것, 둘째 놀이는 독자적 성격을 지닌 활동이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셋째로 일상생활 밖에 있는 놀이는 놀이가 시작됨으로써 일상적인 삶을 중단시킨다는 점이 강조된다.
놀이는 그 자체로서 완결되는 일시적 행위로서 어느 순간에 시작되어 어느 순간에 끝난다. 그 사이 ‘일’은 중단된다. 놀이는 그대로 문화형식으로 정착된다. 정신의 창조물로서 살아 남는 놀이는 되풀이된다. 놀이공간에는 독자적인 절대적 질서가 지배한다. 놀이가 질서를 만들어 내어 놀이질서가 된다. 놀이가 부과한 질서는 절대적이라서 놀이질서의 내적 결합이 놀이를 미적 영역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호이징가가 말하는 문화적 놀이, 소위 놀이문화론은 적극적인 활동으로서의 놀이를 말하는 것이다. 놀이 분류는 여러 분야에서 가능해질 수 있지만 우선 적극성과 소극성으로 나누어 볼 때 오락, 예술, 도박 등 적극적 놀이와 살림에 매달리지 않는 여유나 느긋함 등도 소극적 놀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놀이는 문화적 제도적 놀이와 본능적 자연적 놀이로 나누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놀이’라는 개념을 광의의 놀이, 협의의 놀이로 나누고 대체로 ‘놀이’라고 했을 때 넓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것을 다시 시간에 중점을 둘 때는 여가·레저라 부르고 그 시간 속에서 행해지는 동작이나 상태를 중심으로 해서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놀이’로 간주한다.
일찍이 우리의 놀이문화의 분류를 시도했던 송석하(宋錫夏)는 <전승놀이의 유래>에서 그네와 씨름, 강강술래, 탈놀음, 줄타기에 대한 해설을 곁들인 적이 있지만 그보다 앞서 1935년 이미 지상을 통해 오락이라는 표현으로 민속놀이의 조장과 정화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는 놀이개념을 오락으로 파악했고 민속놀이를 농촌 오락, 또는 전승 오락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관념적, 구조상 혹은 계절적 등으로 나누어 분류한다. 실제적으로 놀이의 관념적 분류 혹은 존재상의 분류가 가능한지, 그가 말한 구조상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설정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적 놀이를 특히 계절적·지리적 분류를 통해 놀이형태의 대체적인 분포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놀이학의 선편을 놓은 그의 논문은 미흡한 체계, 그리고 방만한 구성 때문에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농촌 오락의 조장과 정화에 대한 사견(私見)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같은 종목의 오락(민속놀이)을 여러 관점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놀이를 보편적 놀이와 특수한 놀이로 나누었다는 점과, 분류의 표제야 어떻든 개인의 놀이와 단체의 놀이를 식별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 점으로 보면 송석하는 적어도 놀이를 놀이학으로 끌어올리고 하나의 문화론으로까지 가져 갈려고 했던 것 같고 그런 노력이 놀이의 기구, 관념, 존재 등의 분류로 나타났을는지도 모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농촌 오락의 조장>에서 그가 분류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첫째로 기구상의 분류이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음악·무용·유희 등은 단체와 개인으로 나누어진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는 단체오락으로는 줄다리기(索戰)를 들고 남성오락으로 석전(石戰)과 농악 그리고 여성오락으로 놋다리 밟기와 강강술래가 거론되고 있다. 개인오락으로서 남자는 씨름, 여자는 그네, 남자라도 노년층에는 바둑, 젊은 층에서는 연날리기, 여자의 노년층에서는 모래찜, 젊은 층의 꽃놀이 등이 분류된다.
둘째로 계절적 분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정월에 이루어지는 놀이가 대부분이다. 그것이 절후(節候)제의, 혹은 풍요(豊饒)제의의 잔존형식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계절적 분류에 의한 ‘놀이’의 형태는 제의와 놀이 그리고 생산과 놀이에서 다시 다루어 보겠다.
셋째로 관념적 분류로서는 a) 정서감정상 b) 사행정상 c) 종교신앙상 d) 향악상 e) 체육경기상으로 나누어져서 카유아 놀이의 4요소와 근접된다. 지리적 분류에서는 남선지방, 중선지방, 북선지방이 나누어진다. 끝으로 존재상의 분류라고 해서 줄다리기, 농악과 같은 보편적인 것과 산대놀이, 차전놀이 같은 특수적인 것이 나누어지는데 특수한 것을 지리적, 계절적으로 나누고 다시 계절적인 것을 일반적이라는 표현과 노동적이라는 표현으로 나눈다.
그가 이 부분에서 보편적 놀이와 특수한 놀이로 나눈 근거는 상당히 애매하다. 사실은 다 같이 특수한 놀이라 하더라도 지리적 구분으로 나누어진 지신(地神)밟기 같은 것이 계절적 놀이의 일반적 놀이가 될 수도 있고 노동적 놀이로 분류될 수도 있어서 이 점에 송석하식 놀이 분류의 혼란이 엿보인다.
송석하는 대동(大同)놀이 같은 집단연희를 무의식 가운데 ‘전승오락’이라 부르고 있고 이 점에서 그의 체계적 놀이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가 열거한 놀이양태는 61종이지만 그것이 집단의식을 고양시키는 대동놀이의 그것과, 단순한 개인 차원의 오락성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이 흠이다.
그가 구분한 놀이양태 가운데 집단·대동놀이적인 것과 단순한 오락적인 것을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집단연희(集團演戱) – 줄다리기, 놋다리 밟기, 강강술래, 석전, 농악, 꽃놀이, 가면극, 지신밟기, 목우희(木牛戱), 영월(迎月), 답교(踏橋), 차희(車戱), 野火戱(쥐불놀이), 炬火戱(횃불놀이), 사자춤, 연등제, 판소리극, 인형극, 그림자극, 서낭굿, 머슴날놀이(2월), 화전놀이(3월), 초파일놀이(4월), 단오놀이(5월), 유두놀이(6월), 백중놀이(7월), 추석놀이(8월), 복놀이, 천렵(川獵),머슴 초연(草宴), 두레놀음, 거북놀이, 조리희(照里戱), 소놀이, 투우, 극락(極樂)맞이, 별신굿

같은 전승놀이라 하더라도 비교적 의례적이며 오락•경기성이 강한 놀이양태는 다음과 같다.

기로회(耆老會), 씨름, 팽이돌리기, 바둑, 단소, 연 날리기, 그네 뛰기, 모래찜, 중로(中路)보기, 윷놀이, 널뛰기, 종경도(從卿圖), 경로회, 궁술, 골패, 투전, 장기

기타 그가 신식 오락으로 든 놀이들은 다음과 같다.

연극, 가극, 음악, 무용, 야담, 정구, 탁구, 축구, 낚시, 영화, 곡마, 축음기, 라디오, 당구, 화투, 마작, 등산, 사진, 역기, 골프. 승마(사교춤, 카드 놀이 등도 포함된다.)

그러한 신식 오락이 대체로 개인의 혼자놀이거나 집단적 혼자놀이 레벨로 ‘혼자놀이’, ‘방관적 행동’, ‘병행(並行)놀이’ 타입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초기의 집단놀이 형태인 ‘일방교통’ 스타일과 같은 상호교제가 이루어지기까지에는 둘이 사귈 때는 나머지 다른 하나가 제외되는 국부교제(局部交際) 양식을 거친다.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보유하는 전원 상호교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빈번하고 일체성이 극히 낮은 집단놀이는 전승연희집단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취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승된 놀이로 가장 보편적인 윷놀이, 그네뛰기, 널뛰기 등은 카유아가 말하는 겨루기의 요소라든가, 내기 그리고 아찔함과 함께 루두스적인 측면이 강하다. 놀이의 시간과 공간이 인공적으로 한정된다는 면에서 놀이의 시간과 공간은 특정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우리의 집단 대동놀이는 일정한 시간, 곧 계절의 특정된 고비에 베풀어지는 놀이로서 공간의 이동이 가능한 데다가 농경사회의 풍요제의적 흔적이 진하게 깔려 있다는 것이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3. 집단연희 – 노동·생산·여가

집단·대동놀이 형식이 농경사회의 풍요제의적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은 놀이의 자율적인 환경설정(環境說定)과 관련되어 있다.
놀이의 환경설정이라는 사유 가운데는 집단형성, 공동체 구성원의 사회성을 촉진하는 조건이 중시된다. 그 조건은 사회적 조건과 자연적 조건이 될 것이다.
개인의 사회화에 기여하는 놀이문화는 자기 중심적인 비사회적 언어의 개인의식이 전달기능을 갖는 사회적 언어로 바뀌면서 협동적 행위를 증가시키는 경우 집단중심적 심리, 집단의식으로 전환된다. 놀이의 종류로 말하면 연합(聯合)놀이, 협동(協同)놀이는 자기 욕구를 관철시키는 것만으로는 집단놀이의 성립이 불가능하므로 집단 구성원은 집단 목표를 고려하고 집단유지에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다. 놀이의 규정을 지키고 끊임없이 남과의 밸런스를 취하며 자기의 욕구를 통제해야 한다. 주고 받는 행위가 협동의 기본이며 사회적 행동의 원칙인 것이다.
자기의 욕구를 채우고 자기를 살리는 길은 어느 집단에 소속해서 받아들여져 다른 멤버들과 함께 집단을 유지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대감에서 ‘우리 의식’이 생겨나고 우리 감정이 자란다. 집단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해서 볼 때 한국의 놀이를 개괄한 김광언(金光彦)의 리포트는 큰 도움을 준다.
<한국 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북편, 제주편, 경남·북편, 강원편, 경기편, 서울편 ; 문공부 문화재관리국), <조선의 향토오락>(조선총독부, 1941), <한국의 풍속상>(문화재관리국, 1970) 그리고 <한국의 민속예술>(문예진흥원, 1978) 등에 실린 민속놀이 약 200종을 개인놀이와 집단놀이로 나눈 그는 노래와 춤, 화려한 의상과 깃발 그리고 농악에 곁들여진 예술적 분위기를 가진 경우 집단놀이로 간주한다. 이렇게 전승되어 나온 집단연희를 대동놀이라 부른다면 이러 놀이를 통해 협동과 단결심 그리고 향토사랑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는 놀이는 계절제의 그리고 농경사회를 반영하는 풍요제의의 신화적 모의(模擬)극이나 경축희(競逐戱)의 연원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놀이의 종류를 김 교수의 조사보고에 따라 열거하면 31종이 된다.

두레놀이, 시선 뱃놀이, 거북놀이, 소멕이놀이, 띄뱃놀이, 거리제, 고싸움, 나무쇠싸움, 쌍용(雙龍)놀이, 영등 굿놀이, 은산별신제, 좌수영 어방놀이, 지신밟기, 동체싸움, 농기세배, 강강술래, 놋다리밟기, 용호놀이, 문호장굿, 탑놀이, 산장군놀이, 줄다리기, 놋다리밟기, 관등놀이, 입춘굿, 사자놀이, 강릉단오굿, 다리굿, 세경놀이, 영감놀이, 대감놀이

위의 31종의 대동놀이도 지역적인 특수성을 갖는 것과 한국적 보편성을 갖는 놀이 형식으로 갈라질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놀이 시기도 원단(元旦), 단오 등 계절적 고비에 따라, 또는 아침, 밤 등 시차를 보일 수 있으므로 음악적이냐 무용적이냐, 혹은 무의적(巫儀的)이냐를 따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극적이냐, 행렬적이냐, 폐쇄적 공동체 구성이냐, 개방적 종합체냐를 따질 수도 있다. 그 놀이공동체 구성원이 성인남녀 공동인가, 성인 남성, 성인 여성, 혹은 어린이 놀이인가, 어린이 놀이라면 남녀 구별이 되어 있는가 등도 더 조사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놀이문화를 형성하는 향토오락에 대한 일제의 총독부 자료나 기타 1970년대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세시행사가 그대로 향토오락이며 민속놀이로 간주되어 있다.
이 점은 비판적으로 수용되어야 할 것이다.
세시풍습이 향토오락이고 민속놀이라는 기존관념은 놀이의 문화론을 저차원에 머물게 할 뿐 아니라 놀이의 과거지향성을 강조하게 되고 더욱 놀이의 창조성을 외면하게 만든다.
민속놀이가 그대로 전통예술로 간주되는 마당에는 놀이와 예술의 상관관계가 타당한 논리적 전개없이 뒤섞이기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대동놀이의 과거지향적 역사성과 사회성을 겨냥하면서 놀이문화의 자족(自足)적 충만감의 카타르시스 기능에 유의하면서 향토오락이라는 놀이의 속성을 천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나타난 향토오락의 분포순위는 다음과 같다.

산유(山遊, 伏놀이, 천렵, 약수행 등) – 306개 지역
쥐불놀이(횃불놀이, 달집 태우기 등) – 200개 지역
농악(지신밟기, 메구, 걸궁, 걸립 등) – 191개 지역
꽃놀이 – 172개 지역
달맞이 – 146개 지역
호미씻이(풋굿, 草宴, 백중놀이 등) – 131개 지역
줄다리기 – 106개 지역
광대놀이(가면놀이, 인형극, 줄타기, 소놀이 등) – 102개 지역
다리밟기 – 99개 지역
당제(堂祭, 서낭제, 도신제, 산신·용신제 등) -58개 지역
풍년제(豊年祭, 농사, 유두놀이, 칠석놀이 등) – 50개 지역
연등놀이(초파일, 등불놀이 등) – 47개 지역
두레 길쌈(들개삼, 모시두레 등) – 44개 지역

이러한 대동놀이가 계절제의와 농경행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생산과 일과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지역공동체 의식과 맺어져 있음은, 그러한 노동 형태의 소멸과 공동체 의식의 단절이 바로 대동놀이의 쇠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생산과 노동과 놀이는 일과 레저(餘暇)와 상관하여 그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대조하면서 고찰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것은 쾌락과 고통을 보는 시선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건강한 생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필요한 보완(補完)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 파커(S. Parker)는 비산업사회에 있어서는 노동과 여가가 융합해 있다는 점에 유의한 왁스의 이론을 지지한다.
한나 아렌트 여사는 노동(work)을 개인 및 종족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활동으로 간주하고 노역(labor)은 사물의 인공적인 세계를 준비하는 비자연적 활동을 의미한다고 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진지한 활동을 생계를 위한 위치로 레벨다운시키는 것 같은 경향은 오늘날의 노동이론에 있어서는 명백하다. 그 이론은 거의 이의 없이 노동을 놀이의 반대로 정의내리게 한다. 그 결과 모든 진지한 활동은 그 성과에 상관없이 노동이라 불려지고 그래서 개인의 생활이나 사회의 생활과정에서나 불필요한 모든 활동은 장난 속에 포섭된다.”

놀이를 일, 생산, 그래서 노동과 관련시켜 대동놀이와 집단놀이 그리고 노동·생산놀이와 관련시킨다는 것은 특히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다.
놀이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놀이의 공통성(共通性)과 지방성(地方性)이라는 말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지방성, 특수성이라는 표현도 그 지역의 전승된 독자적 놀이로 생각되기 쉽다. 놀이의 특수성은 전파성(傳播性)을 생각할 때 반드시 어느 지역의 특수성이라기보다 세시행사로서 전해진 것이 다소의 변형(變形) 가운데 일부의 형식이 남았거나 어린이들의 놀이로 수용된 것들이 많다.
놀이의 형태나 현상은 그 지역 주민들의 어린 세대의 건강상태, 지역 주민들의 지능 발달 정도, 남녀차이, 환경 등에 의해 영향받는 것이다.
놀이의 동태(動態)를 보면 ① 아무것도 않는 행동, ② 방관적 행동, ③ 모래장난 같은 혼자놀기, ④ 미끄럼 타기 등 평행적(平行的)행동, ⑤ 자기 마음대로의 행동, ⑥ 아첨과 어리광의 행동, ⑦ 쫓고 쫓기기 놀이 등 두 사람 놀이, ⑧ 물놀이 등 세 사람 이상의 연합놀이, ⑨ 술래잡기 등 고차원적 연합놀이, ⑩ 카드놀이 등 저차원의 협동행동, ⑪ 연극 그룹 등 클럽조직의 고차원 협동행동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혼자 놀거나 평행놀이가 많다. 미개사회에서 벗어나 적어도 4, 5세 이상의 지능이 되면 집단놀이의 경향이 나타난다.
놀이의 의의는 신체적 발달의 측면, 지적 발달의 측면, 사회적 발달의 측면, 성격 발달의 측면에서 포착될 수 있으나 특히 어린 세대의 놀이는 성인들의 놀이와는 달라서 일이나 생활에 필요한 생산적 행동에 있어서의 긴장해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놀이, 곧 생활로서 거기에 넓은 의미의 학습이 있다. 열의라든가 긴장이 따르는 행동으로서의 놀이는 생산적인 행동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말을 바꾸면 일과 놀이의 의식의 미분화상태에서 분화하는 과정에 어린이들, 혹은 원초적 인간의 학습과 해방이 발달적으로 의의를 부여받는다.
놀이에 있어서의 인간관계의 발달적인 측면은 ‘혼자의 놀이’, ‘병행적인 놀이’, ‘연합적인 놀이’, ‘협동적인 놀이’처럼 자발적 집단형성의 과정에 인정되는 현상인 것이다. 놀이를 통해서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은 환경에서 오는 불안상태를 벗어나 자기 위치를 확보하고 다른 구성원들과 접촉해서 인간관계를 확인하고 갈등이나 트러블을 경험하면서 공동체 의식이라든가 역할의식을 명확히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무리는 집단으로 발전, 공동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율심(自律心)과 사회성이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4. 놀이문화의 제의적(祭儀的)유래 - 난장판(orgy)

공동체의 생활환경에 창조적으로 기여하는 집단작업과 대동놀이의 상관관계는 노역(勞役)이라는 일의 형태와, 놀이라는 일의 영역에서 서로 보완보다는 분리로 나타난다. 그 까닭은 노역이 노동과 개념상 혼돈되기 때문인 것이다. 처음에는 주술적(呪術的) 제의적 의미가 강했던 양식절차가 시대를 내려오면서 그 원래의 뜻을 잃고 제의에 참가했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유흥적 오락적 성향 때문에 그 절차가 형식만 가지고 전승될 때 우리는 그것을 놀이로 간주할 수 있다. 제의는 원래 생산기능이었다. 그런 경우 일(work이거나 labor이거나 간에)그것은 굿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굿의 제의는 일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굿은 곧 놀이였음은 일이 놀이와 상통했기 때문이다.
그런 놀이가 대동놀이이며 그런 일이 집단작업이며 그런 일의 제의가 마을굿이나 별신(別神)굿 같은 의식인 것이다. 거기에서 점풍(占風)의식으로서 흉내내기와 같은 경축희(競逐戱)
나 모의극(模擬劇)이 연행(演行)된 것이다.
그러므로 대체로 전승된 민속연희 혹은 세시행사는 제의에서 탄생된 것이며 집단작업의 일환이며 대동놀이였다. 놀이는 공동체의 생활환경이나 문화의식의 잔존형식인 것이다. 비록 오늘날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형식으로 남아 있는 놀이형식(民俗演戱)이라 하더라도 그리하여 그런 것이 마상재(馬上才)이거나 수박희(手搏戱), 농주(弄珠)·축국(蹴踘)·격구(擊毬) 같은 구기가 체능과 예능의 기예(技藝)로서 악부(樂府)에 이름이 남는 경우 그 유래는 보다 근원적으로 소급해야 할 것이다.
태초에 굿이 있었고 일이 있었고 놀이가 있었다.
농경의례(農耕儀禮)는 계절에 따라 풍요를 비는 고천제의(告天祭儀)이다. 그것은 일종의 일력(日曆)제의, 곧 캘린더·리추얼로서 일 년을 계절적으로 나누어 계절의 고비마다 쇠퇴하고 약화된 우주의 활력을 촉진시키고 대지와 인간의 생명력을 부활시키는 의식이다.
일찍이 인류는 비를 내리게 하고 햇빛을 밝게 하고, 가축을 증식시키며 수확을 늘리기 위해 양식을 집행했으며 주문을 외웠다. 이런 주술은 역사의 발전과 함께 종교적 이론으로 대치된다. 말하자면 여름과 겨울, 봄과 가을의 교체는 주술적 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깊은 원인, 보다 위대한 힘에 의해 순환되는 것으로 과학화되는 것이다.
식물의 성장과 조락, 동물의 태어남과 죽음도 인간의 탄생과 죽음의 패턴과 마찬가지로 신들의 힘의 성쇠에 달린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고대심성(心性)이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Osiris와 희랍의 Dionysos의 신들은 차츰 자연현상의 추상화(抽象化)에서 의인화(擬人化)되어 풍요의 신, 곡물의 신, 나무의 신 그리고 재생의 신으로 구체화된다.
이렇게 해서 종교적으로 보완된 고대 주술심성은 대적하는 죽음의 원리와의 싸움에 있어서 생명의 원리였던 신을 도울 수 있다고 믿게 되어 쇠약해 가는 신들의 생명력을 보충하고 신을 죽음에서조차 소생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제의는 자연현상의 연극적 재현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남아서 전승된 캘린더·리추얼은 역서(曆書)에 따라 치러지는 민속으로서 이런 제의를 세시풍속이라고 불러 오는 우리는 새로운 계절적인 변화가 오는 고비마다 이 월력제의를 통해 재앙을 물리치고 풍요와 행운을 빌었던 고대심성을 추체험(追體驗)한다. 정월의 설, 2월의 연등, 5월의 단옷날, 6월의 유두, 7월의 백중, 8월의 가위, 9월의 중양절(重陽節)만이 아니라 입춘, 한식, 칠석, 동지, 제석행사 등도 월령체(月令體) 또는 달거리체의 작품이 되어 전승되어 온다.
고유의 민속행사가 외래의 요소와 겹쳐지면서 재래(在來)와 다른 차원의 민간전승으로 변형되는 것은 긴 역사 속에서 있을 수가 있다. 한가위, 유두 등에 한식, 백중, 칠석 등이 끼고 춘연등(春燃燈), 동팔관(冬八關)으로 일컬어지던 고려의 월령행사는 불사(佛事)인 관등(4월 8일) 행사로 탈바꿈되면서 한편에 영동 영등 등으로 알려진 영남지방 특유한 민간행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한 변형은 동지행사가 가졌던 축제적 성격이 해방 이후의 성탄절 행사로 탈바꿈되거나 양력설, 구정 등으로 분화된 ‘설’ 행사의 이중화(二重化) 등으로 부침되면서 이어져 간다.
월령행사의 다기적(多岐的)인 분철(分綴)에 앞서 우리는 일 년 열두 달의 세시풍습에 앞서는 행사로서 당연히 4계절의 계절제의를 예측할 수 있고 춘하추동의 네 계절 이전에 삶과 죽음의 자연 순환에 따른 부활과 죽음, 빛과 어둠의 이원론적 고대사유(思惟)를 바탕으로 한 봄(여름)의 삶과 풍요와 번성, 그리고 가을(겨울)의 조락과 죽음, 그리고 죽음(어둠)에의 대비라든가 빛(再生)에 대한 희망을 상정(想定)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세시풍습의 행사는 결국 12월령행사, 그리고 좁게는 4계절제의로 귀착되고 그것도 마침내 탄생과 죽음의 행사로, 죽음에서의 부활을, 결국은 활성(活性), 생명력, 풍요를 지향하는 고대심성의 다양한 발전양상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압축하면 세시풍습은 삶의 행사이다. 그것은 탄생을 지향하고 활력의 획득을 위한 인간의 극적 표현이다.
종교학적으로나 민속인류학에서 풍요의 환대(環帶)로 알려진 이 연상은 물 – 달 – 여성 – 대지의 관념으로 순환된다. 줄어졌다가 충만하는 가감(加減)의 법칙에 따라 줄어든 활력이 다시 새로운 생성력으로 충만되기 위하여 제의는 필수적인 것이다.
만월(滿月)과 만조(滿潮)와 잉태와 이어지는 풍요한 대지의 힘이 일상의 반복으로 쇠퇴하고 약화된 활성을 되찾고 생명력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계절 절기마다 베풀어지는 세시행사도 그 원류(源流)는 신화적 사건과 관련된 재현행사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신화가 제의의 구술상관물(口述相關物)이라면 그 제의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dromenon이 ‘행해진 것(thing done)’, 곧 행위였고 신화적 사건으로서의 천지개벽이라거나 시조전승(始祖傳承)을 극적인 행동으로 재현했다는 뜻이다. 행동으로 나타낸 드라마로서의 신화적 사건은 일 년의 시작인 원단(元旦), 그리고 겨울이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신화화와 그 의인화(擬人化)로 가장 극적인 표현을 얻는다.
일 년 열두 달의 운수를 선행해서 점치는 월운(月運)제의의 한국적 실례는 다리밟기이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가 전하는 바,

上元夜 踏過十二橋 謂之度盡十二月厄(上元條)

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결과를 선행적으로 모방하여 기대하는 결과를 재래케 하자는 주술로서의 열 둘이라는, 새로운 해의 운행(運行)을 나타내며 그 12달을 상징적으로 무사히 건너 앞으로 열두 달을 실지로 탈없이 지내 주기를 비는 행사인 것이다.
그런 형식이 겨루기놀이로 베풀어진 예로서 우리는 이미 사라져 버린 제의적 경축·대동놀이의 여러 형태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놀이형태를 김열규(金烈圭) 교수는 생생력(숫자를 生生力)의 상징표상으로 간주해서 집단적인 보강(補强)의 제의로 주목한다. 이런 제의에는 신성쟁투(神聖爭鬪)가 벌어지고 그것이 모의극(模擬劇)형식 혹은 경축희(競逐戱)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신성쟁투 속의 흉내와 겨루기는 놀이의 대립성을 극한적으로 표현한다. 편전(便戰)놀이형식을 통해 마을 공동체의 시련이 극화되어 나타난다.
그런 예가 줄다리기이며 불놀이이다. 석전희(石戰戱) 혹은 편전(便戰)도 여기에 속한다. 각종 향전(鄕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석전놀이는 서울·안동·김해·경주 등이 유명했고 참가인원의 사회적 성분도 다양해서 전문적인 투석꾼·일반서민·어린이 그리고 대군(大君)·양반·관원들도 참가했다. 돌을 던지며 공격하는 투석꾼과 방패로 막으며 수비하는 양군이 막대기로 치거나 탈기(奪旗)로 승패를 내는 경우도 있었던 석전이 궁중에 들어가 군사희(軍事戱)가 되고 중국 사신의 관광 대상이 되어 제의적 측면이 사라지고 오락화된다.
그러나 향전으로서의 석전놀이가 베풀어지던 장소 그리고 시기 등으로 보아 그것이 점풍(占豐)제의적 놀이라는 점은 확실한 것이다. 매년 초에 평양 백성들이 이부(二部)로 나뉘어 대동강에서 수석으로 서로 던져 훤호치축(喧呼馳逐)하였다. 왕이 포열(布列)하고 관전했다는 수석희전이나 고려의 우왕(禑王)이 관전했다는 석전희와 맥락을 같이하면서 그 가운데 제의적 의의를 간직했으리라는 짐작은 확실하다.
이러한 세시행사나 연희(演戱)전승 행위의 반복은 모든 제의적 행위에는 거룩한 모델(原型)이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신이나 영웅이나 조상이 태초에 이룩한 행위를 어느 정도까지 정확히 반복함으로써 그 위력을 얻게 된다는 믿음은 사제에 의한 의례와 주문 혹은 말로써 세계를 처음 만든 창조신을 모방하여 그의 힘을 얻어 낼 수 있다는 주술적 신앙에서 나온다.
종교적 연중행사는 일 년 동안 태초에 이룩한 우주창생의 위업들을 기념함으로써 인류를 천지창조와 함께 있게 하고 인류의 기원과 만물의 근원을 함께 있게 한다.
바쿠스의 사제(Bacchant)는 난장판의 제의를 통해 고난의 디오니소스 드라마를 모방하고 오르페의 신도들(Orphiker)은 이니시에이션 의식을 통해 오르페우스의 근원적 짓거리를 반복한다.
생식(生殖) 탄생 농경활동과 관련해서 우주창생의 신화가 규범적 모델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성행위가 농사와 연관되어 있고 생성력(生成力) 의식이 풍요와 관련되어 신혼(神婚)모델을 갖는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잊혀진 상태에 있다. 그러나 밭에서의 부부교섭이나 상징적 결합에 대한 관습은 이미 고대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신혼의식이나 축제의 난장판이 태초의 카오스를 극복하는 신성의 코스모스 이행(移行)을 흉내내고 그래서 우주창생이나 시조전승의 신성한 드라마의 어느 에피소드를 모방하는 의식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원시존재론적(原始存在論的) 관념(primitive ontologische Vorstellung)을 사고의 고대형식으로 바꾸어 놓을 때 오늘날 남아 있는 세시행사가 그들의 주기적 우주창생의 모방과 반복을 통한 새 계절의 시작과 관련되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정월행사 같은 것은 세계의 창조를 해마다 새롭게 갱신하는 계기가 되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무렵의 주기적 행사들은 그로써 시간의 무효가 이 신화적 순간에 가능해져서 낡은 세계가 무너지고 그것이 재창조된다는 희망과 결부된다.
주기적 재생의 심벌리즘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풍요의식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크리스마스와 규현제(圭顯祭) 사이에 12월이 유럽의 농민들에게 1년 12달의 예조(豫兆)로 간주되어 그달 그달의 날씨와 비를 이 열이틀 사이의 기상과 맞추어 예상하는 행사도 그 연원을 따지고 보면 연말연초의 여러 제의의 시나리오가 이니시에이션·세레머니에서 생겨났으면서도 다소 변형된 형태로 신화나 민간전승 속에 보존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우리의 입춘굿이나 양주 소놀이굿이 보여주는 풍요제의 점복(占卜)형식과 그 연원을 함께 한다. 이미 그 형태가 사라져 버린 입춘굿의 세시행사나, 단순히 민속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재현되는 양주 소놀이굿은 한낱 민속연희의 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민속은 계절이 바뀔 무렵의 이니시에이션·세레머니로서의 푸짐한 활력과 생명력을 얻어 그것을 농사에 연결시킬려고 했던 신화적 고대심성의 반영이자 계승임은 분명한 것이다.
입춘굿이나 소놀이굿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모든 굿형식에서와 마찬가지로 드러나는 카오스의 재현 – 그 난장판의 놀이이다. 그러나 이 난장판은 신성혼례(hierogamy)의 모방인 것이고 그에 상응한다. 이 카오스는 일반적으로 성의 해방, 가치의 뒤집힘 때문에 더욱 난장판이 된다. 그러나 난장판이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고 질서를 향한 인위적인 장치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신성의 범례(範例)를 흉내내지 않고서는 인간은 어떤 보다 나은 것을 행할 수 없다. 세계의 번성, 특히 식물과 동물의 삶의 운영이 이 모방에 관련되어 있다. 방종이나 일탈(逸脫)이 종교양식의 경제학(Ökonomie)에서 치유적 역할로 가득해진다. 그것이 인간과 사회와 자연과 신들 사이의 벽을 허는 것이다. 권능(權能)과 생명과 씨앗의 순환을 한 지평에서 다른 지평으로 환치(換置)시키고 모든 현실영역 사이의 본성이 비어 버린 것들은 다시 채워진다. 분열되었던 것은 다시 하나로 보완되고 소외(abgesandert)되었던 것이 다시 위대한 보편적인 어머니 품에서 하나로 녹는다. 난장판은 활성적이고 거룩한 힘을 순환시킨다.”(Eliade, Die Religionen und das Heilige, Salzburg 1957, p408)

사라져 가는 일 년의 마지막 며칠간은 천지창조 이전의 카오스 – 사자(死者)의 방문, 조령(祖靈)에의 치성, 소등(消燈)과 점화(點火), 성적(性的) 방종(放縱), 상하관계의 뒤집힘 등등으로 해서 가치의 역전(逆轉) 등과 함께 카오스(난장판)의 재현으로 간주된다. 이런 난장판이 근원적 태초의 신화세계와 맞닿아 그 시간과 시점에서 새로운 창조의 힘을 얻는, 곧 해체를 통한 질서 및 활성의 획득과 관련된다고 보면 농경사회에서는 수확에 따르는 위기, 곧 씨를 뿌릴 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위기는 땅에서의 형태(Form)의 해체와 난장판 카오스 속의 ‘사회적 형태’의 해체 사이의 대칭(對稱)을 강조하는 것이다.
계속된 역법(曆法)개정의 결과로 고대 로마시대의 농신(農神·die Saturnalien) 제사는 마침내 일 년의 끝과 시작이 이가 맞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게 했지만 그 연원은 결국 원초적 제의, 곧 신화적 우주창생의 주기적 회귀형태이자 그 잔존형태로 남은 것이다.
우리는 우주창생의 주기적 회귀형태를, 제의의 모의적 재연의 난장판을 통한 근원적 생명활력의 획득과 관련시키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비교적 짧은 주기적 회귀를 비탄과 환희의 극적 양식을 통해 부활과 풍요를 가능케 하는 주술적 형식으로 보아 왔다,
이러한 관념과 양식은 송년의 카오스와 신년의 코스모스 이행(移行)이라는 절차로 문헌에 정착된다. 이러한 패턴은 원래 ‘물 – 달 – 여성 – 땅’으로 상호연상되어 생성의 띠를 이룬다. 그러니까 우주창생의 신화나 풍요제의의 관념 속에는 근원적 활력에 대한 의식이 스며 있는 것이다.
세모(歲暮)·제야(除夜)제의에 해당되는 나례(儺禮)나 경신수야(庚申守夜) 등에서 종교적 의식을 떠난 난장판(orgy)은 새로운 질서의 재래(齎來)를 맞는 인공의 카오스이다. 겨루기형식과 난장벌림을 지닌 이러한 사례들의 한국적 형태들은 새해의 정화(淨化)를 기약하고 묵은 부정(不淨)을 쫓는 형식으로 소란과 방종과 불양(祓禳)을 수반함으로써 이것을 우리는 ‘모순의 제의’라고 부를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12월조(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闕內 自除夕前日 發大砲 故火葥 鳴鑼鼓 郞大儺驅疫之遺制(12월 除夕條)

이 난장판의 의식에는 놀이다운 측면이 강해서 그것이 제의인지 놀이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几倡優雜伎至外官遊妓無不被徵遠近坌集旌旗亘路充斥禁中 (大東韻付群玉)

世宗朝於庚申年 聚宗親 或 棒以過庭 古詩亦有守庚申而作 此等事 固非經傳所所載 然逐疫觀儺 亦是世俗所爲(成宗實錄 10年 12月 卷 112)

불양과 정화, 난장과 오예(汚穢)가 병립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질서가 퇴행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며 그 병립은 대립의 양태를 취하면서 카오스를 통해 새 활력을 얻어 묵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는 프로세스를 갖는다.
이 프로세스는 일종의 극화(劇化)이다. 말하자면 혼돈을 의식적으로 꾸며 내는 이 제의절차는 그것이 비록 무의식적이라 하더라도 절차를 꾸미는 의식 속에 드라마의 구성 같은 의식적 작용이 있고 그 제의절차 가운데 연희적인 것의 강조가 인간적 놀이性의 강조이고 보면 연극적인 것의 발전형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영국 엘리자베스조의 축제행사가 셰익스피어 희극으로 옮겨지기 전에는 섹스의 드러남과 역할의 뒤집힘(상하 관계의 역전)으로써 ‘허용된 난장판’이라는 질서의 형식을 빌렸던 것이다. 방종을 조장하고 주인의 권위를 우습게 만드는 무질서의 왕(The King of Misrule)이 모의적으로 떠받들려져 일종의 바보들의 잔치가 베풀어지기도 했던 그런 관습은 곧 사회적 관습을 문란케 하는 반란의 제의(Ritual of Rebellion)이었다.
무질서의 왕이 버티고 있는 집에서의 난장판과 대단한 혼란을 묵인해 주는 이 가짜 주인이나 왕의 실례는 moris dance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는 여름날 일요일의 오락으로 교구(敎區)의 젊은이들이 장난꾸러기의 우두머리를 골라 카오스의 왕(my Load of Misrule)을 뽑고 그를 호위해서 행렬을 벌이는데 마을 처녀들이 준 스카프나 레이스 등으로 장식을 하고 방울이나 여러 악기를 울리며 설교중인 교회로 몰려가 야료를 부리고 밤새 술마시고 춤추며 광란의 안식일을 보낸다.
이와 같은 난장은 제의의 근원성이 망각된 민속적 행사의 잔존형식이다. 따라서 세시행사 가운데 이러한 단편적 형식이 그 자체로 전승이 되면 이 연희전승이 앞뒤의 맥락도 없이 독립된 행사로- 제의적 종교적 의의는 없어지고 오락적인 놀이로 희석되어 버린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제의절차로 구성된 난장의 잔존형식으로 그 역사적 과정에 있어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이원적인 견해가 나타난다.
제의가 지닌 ‘놀이적 요소’를 두고 그것을 ‘희완’으로 보느냐 신성으로 보느냐는 일찍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조선조 실록에서 방파(放파), 내농작(내농작), 경신수야, 나례 등 관중의식이 호사롭거나 작폐가 되어 말썽이 될 때는 그것이 기년(기년)이나 축역(축역)의 종교적 행사로 보느냐 않느냐의 문제가 된다. (……)

5. 겨루기 – 신성모방의 놀이화

이러한 견해의 차이를 오늘날 우리는 근원에의 회귀라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신화의 모의적 재연을 통한 삶의 행사는 활력의 충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시행사는 삶을 지향하고 활력의 획득을 기약한다는 뜻에서 일정한 패턴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겨울을 나고 봄을 기약하는 계절,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일 년의 시작에다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설이나 입춘, 연등 그리고 수릿날(端午) 같은 새로운 계절의 시작, 봄의 시작과 일 년의 고비 등이 가장 제의적으로 뜻이 있고 추수를 전후한 겨울과 어둠의 시작 속에서 목숨의 유지와 부활을 기원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의행사의 핵심이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시행사의 핵심은 정초행사에 있고 부수적으로 가을의 상달행사 같은 삶과 죽음의 상징으로 압축된다 할 것이다.
삶과 죽음으로 상징되는 봄과 겨울의 제의행사는, 거듭 근원적으로 놀이일 수밖에 없다. 믿음과 제의절차를 통해 통제된 신화적 현장에 태초의 사건을 재연하고 있는 인간의 유희본능은 난장판을 통해 세속을 신성과 연결시킨다.
따라서 난장판을 형성하는 축제화는 세시행사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장치이다. 난장판이 없는 신성의 제장(祭場)에서는 인간의 유희본능이 그 자족성(自足性)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불발로 끝난 유희본능은 근원으로 이르는 활력의 획득을 기약하는 길을 차단함으로써 복수한다. 난장판이 없는 신성은 결국 인간을 근원으로 데려갈 수 없고 태초의 시공으로 옮겨 앉지 못한 심령은 해방되지 않는다. 풀어지지 않은 마음은 시원의 생명력을 얻어 내지 못한다. 축제의 난장판은 제의를 제의답지 않게 만드는 장본인이면서 제의의 오의(奧義)를 가장 극명하게 찌른다.
따라서 제의가 없는 축제의 난장판은 있을 수 있어도 축제의 난장판이 없는 제의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스러운 행위는 축하되어진다. 그것은 축제의 프레임 속에 든다. 성역에 모여드는 민중은 함께 공동의 기쁨을 나눈다. 불양, 제물, 춤, 경축놀이, 연극, 비의(秘儀) 등 이런 모든 것은 축제라는 프레임 속에 들어가 버린다.” (Huizinga, Homo Ludens, Hamburg 1956, p.202)

지역 공동체가 그들의 신성한 종교의식을 체험하고 수용할 때의 정신 자세는 엄숙과 진지함인데 진정 자발적인 유희심성은 가장 엄숙하고 진지한 것이다.
월령제의, 계절제의로서의 세시풍습 가운데 제의형식으로서의 행사에 곁들여 놀이되는 난장판의 모의적 재연에도 호이징가의 통찰은 적용된다. 대체로 경축놀이, 겨루기 형식을 취하는 놀이는 그 자체가 표면적으로 제의적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난장판의 축제형식임은 그 연원에서부터의 불가피한 속성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동국세시기에 나타난 줄다리기가 양파경축희라는 사실은 그 결과로 농년을 점친다는 사실에서 분명하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제의이기도 했던 줄다리기는 제주도에서는 8월 15일, 영호남에서는 상원(上元)에 행해졌는데 오늘날 세시풍습으로 남은 광산(光山) 고풀이나 부안(扶安) 줄다리기, 순천(順天)시 大垈동 줄다리기 등도 봄의 계절제의이자 경축희임이 분명하다.
세시행사로서 오늘날 향토색 짙은 민속놀이로 간주되는 것으로는 농악과 민요 민속극 민속무용을 빼고 나면 호남의 강강술래, 고싸움놀이, 장흥 보름 줄다리기, 벽골제 쌍용놀이가 두드러진다. 영남에는 동래 지신밟기, 좌수영 어방놀이, 기와밟기, 차전놀이, 한장군놀이가 있고 충청도지방의 은산별신굿, 속리산 탑돌이, 아산 줄다리기 그리고 중부지방의 관등놀이, 대감놀이, 답교놀이, 거리제가 유명하고 제주도의 세경놀이, 해녀놀이, 영등굿놀이와 평안도의 다리굿 등이 손꼽힌다.
이러한 집단적인 민속놀이가 정월의 상원이나 추석명절날에 독립적으로 거행되는 세시풍습적인 모습을 띄거나 향토제사의 한 오신(娛神)과정으로 놀이된다는 사실 자체에서 우리는 그 연원을 신화적 난장판으로 소급시키면서 역사적 사실의 변모까지 추적해야 할 것이다.
이 ‘난장’들은 이미 신화성이 소멸되어 난장판의 흔적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 나타나는 도착현상이라거나 오예관념, 성의 남발 등으로 해서 그런 대로 제의의 신화적 연원과 맞닿으면서 계절제의의 세시 행사적 편린을 그 축제형태 속에 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축제적 난장형태는 대체로 겨루기 형태를 취한다. 줄다리기 풍습은 이미 그 자체가 남녀형태나 안팎 마을의 대결형태를 취하고 있거니와 안동이나 의성지방의 기와밟기(놋다리 놀이)와 같은 여성취향의 놀이조차 남북마을의 대상관계가 놀이의 절정에 끼어든다. 안동에서는 두 패가 서로 부딪쳐도 싸우는 일이 없지만 의성 놋다리 행렬은 전진후퇴를 되풀이하던 공주행렬을 건장한 아낙네의 행렬로 바꾸어 두 팀의 주장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대결과 안전을 벌여 맹렬하고 과격한 싸움의 놀이를 진행한다.
역사적으로 위장된 민속놀이 가운데 한장군놀이 형태가 있고, 동제나 별신제 형태로 위장된 민속놀이가 사실은 연원적으로 <조선전>의 고천제의와 맥락을 같이하며 결국 카오스의 회귀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굿은 경수희형식을 빌려 대립과 겨루기를 통한 생명력의 획득, 곧 일러 생명력이라고 불려지는 예조의 풍요의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로써 남녀 어울림 같은 소박한 성의 놀이가 제의형식으로 거행되고 있음으로 봐서 굿의 제의절차 가운데 부정·오신·공수·뒷전의 도식이 수행되고 가무오신의 절차가 작은 난장판의 도인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판별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굿거리 과정에 끼여드는 ‘신을 놀리는 장면’과 대규모 제의절차에 필연적으로 마련되는 난장판은 ‘카오스의 코스모스 이행’의 모형이고 우주창생의 신화에 의한 생명력 획득을 위한 카오스에의 회귀와 귀환이다. 따라서 그런 절차 가운데 끼여 있던 줄다리기 같은 예조를 점치는 경축놀이가 오늘날 하나의 세시행사로, 앞뒤의 단락이 잊혀진 채 전승되었다고 해서 단순히 그것을 한갓 민속놀이로 간주해 버리는 것은 근원을 잊어버린 관찰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세시행사는 단순히 독립적인 민속놀이가 아니라 커다란 제의형식 속의 그 일환으로서의 놀이이며 그 놀이도 예조 점복의 성격을 지닌 경축놀이로서 그 놀이는 제차에 속하기보다 가무오신의 순서 속에 끼여드는 난장판의 상승무드를 부채질하는 기능인 것이다.
난장판에 신혼(神婚)을 가장하거나 빙자한 매춘이 있고 점복을 빙자한 놀음판이 벌어지고 씨름판이나 그네뛰기 같은 겨루기가 있으며 떡장수 엿장수 등 상거래 장바닥이 이루어지는 것은 세속의 적나라한 표현인 동시에 그것이 적나라하면 할수록 더욱 바닥에 이르는 카오스의 혼란이 극명해지고 따라서 그 극치에 이르러 신성의 회귀가 그만큼 빨라지고 가까이 다가서는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놀이의 고조는 바로 카오스의 고조이며 그것은 코스모스의 활성적인 힘의 부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는 권장되고 치열한 놀이는 난장판의 작력을 가까이 부른다. 뒤집어 말하면 난장판이 극도에 이르는 만큼 신성의 회복과 코스모스의 질서는 다가오고 그만큼 종교적인 의미에서 구원과 해방은 가깝다. 놀이의 겨루기가 그 대립과 갈등, 곧 아곤(agon)의 겨루기와 알레아(alea)의 내기가 극명해지면 해질수록 난장판의 미미크리(mimicry)적 의태(擬態)와 일링크스(ilinx)적 소용돌이는 더욱 고조된다. 그렇게 해서 제의가 끝난 다음에도 그 놀이는 선명한 인상으로 살아 남을 수 있고 그 신성한 놀이는 일상 속에서 단순한 놀이, 그 신성유희의 모형으로서 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제장의 놀이가 세시행사의 민속놀이 형식으로 남고, 그것이 전승민간놀이로서 계절과 제의에 상관없이 오늘날 현대적인 놀이로 변모되어 지역공동체나 학원 등지에서 체육경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근원적인 것의 일부가 그 놀이 가운데 감추어진 모습을 드러낸 까닭에 우리는 잊어 버린 전부 대신에 그 일부에서 잠재되어 있는 원초에의 꿈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세시행사로서 향토색 짙은 민속놀이로 간주되고 있는 영산의 쇠모리대기, 안동의 차전놀이, 광산의 고싸움놀이(고풀이) 등이 절차와 형식을 갖춘 줄다리기의 변형이라는 사실은 부인될 수가 없고 그것들이 오늘날 산발적으로 일실되어 버린 경축제의의 고형을 일부 전승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경축제의에 부수적이었던 계절제의 굿절차의 일부였을 가능성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남아 있는 세시행사라는 일부 민속놀이를 통해 고대제의 – 굿의 ‘난장판’을 쉽사리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안동지역 문화권 조사에서도 소개되었으며 기원으로 소급된 영양군 일월면 주곡동 남녀 서낭놀이의 의태(擬態)는 원칙적으로 고대제의의 풍농의식과 벽사의식의 변형임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런 전승이 역사화하는 경우 경산의 한장군놀이의 여원무(女圓舞)처럼 왜구를 무찔렀다는 구전(口傳)이 된다.
그 여원무는 여장한 남자 ‘화랭이’ 등 화랑도 유풍에다 춤을 곁들인 고대부족국가시대의 오월제 발상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오월제는 반드시 유럽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류문화의 봄제전에 관한 보편적 형태이다. 봄의 양기를 받아들임은 죽음에서의 부활이자 바로 풍요의식의 핵심인 것이다.
정초의 새 질서의 재구성과 마찬가지로 봄의 풍요는 프레이저나 해리슨에 의하면 신화적 죽음과 부활, 곧 계절의 의인화(擬人化)가 된다. 그리하여 봄이 오면 아드니스의 신화, 디오니소스의 신화가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의식절차를 달리하고 그 의식절차 가운데 놀이적인 것이 독립되어 한장군놀이 같은 특수형태가 되는 것이다.
5월제의 지역화 및 다양화는 ‘수목의 신’, ‘5월의 여왕’, ‘May pole’의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공동적 정서를 의식으로 정리하고 공동체 전체에 의해 공식적으로 느끼고 표현한 정서를 제의절차로 구성했다가 놀이로 발산시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 놀이된다. 살아 있는 현실에서 공동체적 정서는 많은 인격화와 의인화를 수반한다. 공동체적 놀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대동놀이’의 배후에는 정서가 집중된다. 제전이 베풀어질 때면 그 리더가 의인화시킨 상징적인 나무나 인형에 전체집단의 정서가 모인다. 드라마행위는 그 리더에 초점이 맞추어져 그 초점이 기억되고 규명되고 이미지화된다. 줄다리기를 원형으로 한 놀이형식이 지역에 따라 변형을 일으킬 가능성은 많다. 줄다리기의 양편 대결이 줄다리기형식을 빼고 그 핵심만 남은 것으로 보아 나무쇠(木偶) 싸움이나 동채(軍戰)놀이는 중요 무형문화재 33호로 지정된 관산의 고싸움 놀이와 마찬가지로 줄다리기 형식의 중요부분의 변형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거기에 집중된 공동체 정서가 문제되어야 한다.
이 대결의 양상은 비록 매체는 다르다 하더라도 줄다리기 원형에서 출발한 가능성이 많고 보면 그 대결의 원천도 겨루기를 통한 난장판의 신성감정 고양으로 풍년의 점복이나 예조와 같은 풍요제의, 곧 계절제의의 잔형임을 알 수 있다. 정월 보름과 같은,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는 계절적 전환기, 그리고 달이 차는 생성력의 절정기를 맞아 대결의 형식 속에 곁들여 벌어진 난장판의 흔적도 그와 다른바 없다. 영산의 나무쇠 놀이는 관줄다리기와 함께 구경꾼 응원대 등으로 해서 인해를 이루고 씨름대회 그네대회 닭싸움 시조창대회의 겨루기와 이를 계기로 벌어지는 장바닥의 서커스단, 약장수, 밥·술장수, 엿장수 등등 모든 세속적 난장이 벌어짐으로써 이제 그 원형과 원류는 잊혀져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줄다리기의 편린들 – 전남지역 몇 군데의 모습은 아직도 원초적인 양태를 띄고 있다.

6. 놀이의 축제성 – 대동놀이

굿의 제의절차에 걸립형식, 지신·마당밟기는 앞놀이에 해당한다. 앞놀이에서 돋우어진 흥과 신명이 영신과 접신을 쉽사리 가능케 하고 그렇게 받아들여진 신성을 다시 가무오신으로 즐겁게 해서 난장판을 이루어 신성한 태초의 카오스를 연출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강조해왔다. 생명과 활성의 원천에서 쇠잔한 힘이 수맥과 만나도록 꾸며진 신화적 재연의 모의적인 굿이 난장판을 통해 놀이화될 때 겨루기의 요소가 큰 역할을 감당한다는 점을 우리는 익혀 왔다.
고대제의의 제차의 형식화는 특정한 제의절차, 곧 단락거리의 확대나 심화를 수반할 것이 분명하다. 그 가운데서도 제의로 들어 가기 전의 준비과정에 해당되는 걸립이라거나 부정거리는 어쩌면 일종의 행차요, 퍼레이드로서 그것은 끝판의 난장판을 결정짓는 대위법적 관계를 맺는다.
원효로 남이(南伊)장군당에서 베풀어졌던 굿절차의 걸립형식은 완전히 행차, 행렬의 대표적 케이스로서 이러한 행렬화는 대체로 모든 동제에 부수되는 보편적 행사로 보인다. 걸립 행렬의 제도화는 특히 수영·동래 야유의 대동놀이 등에서 보이는 ‘길놀이’가 대종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길놀이 類에 지신밟기, 탈놀음 등이 끼여들었다고 보면 그런 가설을 적극적으로 펴는 경우 줄다리기 같은 경축희마저 극단적으로 말해 이입·전파돼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연원을 망각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동놀이는 대체로 1, 2부(部)로 나누어진다. 제1부가 길놀이 형식의 행렬인 추념대열이고 제2부가 판놀이로서 굿놀이의 핵심이 여기에서 펼쳐지는 것이라면 종교적 신앙심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굿놀이에의 절차가 사라져 오직 제1부격인 길놀이 행렬이 우위에 올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길놀이 행렬과 판놀음 굿 행사는 각기 독립되어 분리되기가 쉽다고 보아야 한다. 독립 분리된 길놀이 행렬도 그 길놀이를 유도하는 농악대의 지신밟기 걸립형식은 말하자면 축제행렬의 소규모 선행행렬이라 할 수 있다. 그로써 앞으로 일어날 난장판의 예비적 흥취로서의 즉흥적인 놀이가 베풀어지고 그 다음 판놀음으로써 달놀이의 놀이적 봉납과 줄다리기의 경축희 형식이 굿의 예축행사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제의의 난장판이 소멸되고 형식만이 남은 행렬은 축제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유럽적인 형태의 축제는 대부분이 이러한 연원을 갖고 있는데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오월제인 봄의 제전은 바로 이러한 행렬의 축제인 것이다.
이러한 행렬형식은 한국적인 축제에서도 강릉 단오굿, 은산 별신굿 등 지역공동체적 향토신앙이 짙은 곳에 남아 있다. 대체로 지신밟기 형식으로서, 혹은 민속연희가 전승되는 곳, 예컨대 동래·수영야유 등에 탈놀이 선행연희로서 행렬의 축제성이 강조된다.
그것은 경산의 한장군놀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5종에 달하는 행렬을 지닌 이 놀이는 ① 무부 화랭이가 춤추는 여원화(관)무 ② 행렬 ③ 유랑 연예인들의 협률(協律) ④ 난장 그리고 씨름 그네뛰기 백일장 등이 벌어지고 제의기간 중 묵인되는 도박판의 난장과 그 난장 및 협률에는 무당굿(난장굿)이 끼었을 가능성이 유보된다.
따로 행렬이라 했지만 여원화무(女圓花舞) 자체도 행렬의 일부이고 장대로 받드는 ‘감사(監司)뚝’도 원시적 민간신앙의 한 표상이자 행렬을 꾸미는 일부일 것이다. 監司뚝의 장대는 ‘May pole’ – 봄을 상징하는 식목신앙의 잔형으로 보이며 따라서 이 장대에는 겨울과 봄의 대립이 결과적으로 봄의 승리로 상징되는 까닭에 행렬에 동원된 감사뚝의 장대는 강릉 단오굿의 ‘팻대’와 유사하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동제에서 모셔지는 신간과 함께 그 유래를 고대의 제의로 연관지을 수가 있을 것이다.
‘오월의 장대’에서 상징되는 봄의 구현은 물오른 나무나 급기야 꽃의 행렬로 꾸며지며 봄의 제전에 따르는 행렬은 줄다리기와 같은 겨루기의 경축희를 고비로 하는 난장판에서 행열화한다. 따라서 실제로 행렬은 난장판으로 들어 가는 축제의 서두이며 이 서두의 전율은 봄의 승리로 예감되는 난장판의 열기로 이미 확정된 것이어서 행렬 그 자체가 바로 축제로 승화되는 것이 예사이다. 마침내 그 난장판의 무질서가 무질서 자체로 규탄되어 소멸되는 과정에서는 제의의 시작이었던 행렬이 바로 축제행사로 이행될 수밖에 없다.
행렬 자체가 축제행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유럽적 행렬에서 목격하게 되거니와 우리의 재래적 향토제전들도 점차 이러한 경향을 띠고 있다.
각종 향토문화제가 그런 식으로 형식화되어 감으로써 제의적 난장성을 상실해 가고 의식화됨으로써 난장을 부르는 겨루기는 망각의 저편에 버림받는다. 그래서 의식화나 형식화가 강조될수록 겨루기는 행렬의 축제 속에 함몰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후술하는 은산별신굿 등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다른 말로 바꾸면 세시행사가 고형일수록 행렬보다 겨루기와 난장에 치중된다는 논리와 맞닿으며 걸립이나 지신밟기 같은 축제의 예비적 선행형식은 시간과 더불어 그 연원이 잊혀져 축소되거나 빈약해진 상태로 전승된다. 그것은 큰 제차에 딸린 작은 형식으로 연명되거나 아예 사라졌거나 각종 농악의 잔존양식으로 독립되었을 가능성도 많다.
전북 임실군 강진면의 필봉마을 농악굿은 정월달의 매구굿으로 잡귀를 몰아 내고 한 해의 무사와 번영을 빌며 마을의 친목을 도모하는 ‘합(合)굿’으로서의 농경생활과 결부된 고대제의의 잔존형식이다. 생활현장에서 일과 장단의 기능을 다하고 풍요의식의 일환으로 소급되는 필봉마을의 농악은 ‘매구’, ‘굿’, ‘두레’로 불리는 풍물굿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절차를 지닌 a) 당산제굿, b) 샘굿, c) 마당밟이굿 그리고 d) 판굿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농악은 제의성(당산굿, 샘굿)과 행렬(마당밟이굿) 그리고 예능 놀이성(판굿)을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 어쩌면 원래 지니고 있었을 길놀이다움이 사라지고 앞놀이가 분화된 필봉마을 농악에서는 길놀이(지신밟기·걸립)의 분화 및 분화의 분철적 예능화가 현재화되어 있고 판놀이나 겨루기의 경축성은 망각되었거나 길놀이적인 농악 자체의 굿절차 속에 함몰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길놀이적인 행렬축제와 판놀이, 겨루기의 본격적인 굿의 제의성 사이의 절차적 망각과 탈락 혹은 부분의 확대와 첨가는 비교적 고풍스러운 세시행사일수록 주술적 겨루기의 놀이형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앞에서 논급해 왔다.
행렬의 축제화는 은산별신제의 앞놀이 형식인 ‘진(陣)대베기’에서 두드러지거니와 그에 앞서 동제의 제의절차에서 우리는 걸립이나 부정거리의 이름으로 그 선행형식을 보게 된다.
동제의 일반적 절차는 ① 걸립 및 당주선정 ② 금기·불양·정화(부정거리) ③ 영신 ④ 치제 ⑤ 도신오유(禱神娛遊·兩派競逐戱·난장판) ⑥ 공수(神託) ⑦ 송신(뒷전거리)이다.
금기와 불양이 표리관계에 있다 함은 세속적인 것과 신성한 것과의 격리의 원칙에서 이루어진다. 마을굿이 묵은 살(煞)을 푸는 것이고 새로운 복덕을 비는 형식인 한에서 신성의 완전타자, 바로 외경의 신비로서의 완전타자인 신성이 내리는 시간과 공간에 세속적 오염을 방지하는 금기는 세속적 세계를 차단함으로써 동제는 완전타자로서의 그 존재양식을 분명히 한다. 동제에 걸립 새신 등이 수반되지 않고 당제사뿐인 경우 마을 굿이 신성일변도여서 이런 경우 세속이 일방적으로 폐쇄당하는데 비해 도신(禱神)걸립 유가(遊街) 등이 수반되는 경우 신성과 세속은 대립되면서 동시에 이 양자는 등가성(等價性)을 지닌다.
특히 별신제의 경우 열두거리의 제차는 무당을 통해 신성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다. 만신의 이름이 불려지고 본향이 풀이되고 신의 신성이 내리는 순간에 가장 세속적인 것, 가장 인간적인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에로티시즘의 노정, 상하관계의 뒤집힘 같은 반란, 주지(양반이나 승려)에 대한 윌슨(M. Wilson)이 이르는 바 소위 제전의 반란(모티브)은 일상적 생활규범에서의 제도화된 일탈이며 이것은 신성의 완전타자에 대해서 ‘세속적 완전타자’로 잠재해 있던 집단의 꿈이 제의적 연희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제의적 연희가 세속적 걸립이나 가무오신이나 난장판의 놀이적 축제적 흥취와 도취를 배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세속적 완전타자로서의 유흥은 단순한 가무로서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겨루기의 양파경축희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광대놀이가 수반되기도 하는 제의적 광란은 난장판의 핵심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금기와 불양의 절차가 ‘절리(絶離)의 제의’인 반면 흥겨운 신명의 부분은 ‘과도(過渡)의 제의’로서 무질서와 혼돈을 거쳐 새 질서를 준비하는 절차이다. 따라서 치제(致祭)가 끝나고 놀이로서의 겨루기가 추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엄연한 제의의 한 형태 내지는 절차의 하나인 것이다. 그 앞뒤 맥락이 잊혀지고 놀이형태만이 남아 전승된 민속놀이가 희완지사(戱玩之事)로만 여겨지는 것은 연원이 망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의적 앞놀이 형식과 제차 속의 가무오신 장면 같은 난장벌림의 놀이 그리고 제의절차 자체인 겨루기의 경축희가 그대로 그 연원을 잊고 세시행사로 남았을 때 그것을 단순히 민속연희 혹은 향토 오락으로 간주하는 단순논리에서 벗어나 고대제의의 놀이적 정착에 대한 변이과정을 유의하고 그 변이 가운데 현대적 양태가 바로 앞놀이의 축제적 행렬화에 큰 여울목이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축제적 행렬 혹은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걸립이나 지신밟기, 풍악놀이 혹은 농악은 말하자면 예비적 축제이며 그 예비적 축제가 그대로 행렬형태 등으로 굳어져 축제화되어 가는 프로세스가 우리의 민속 세시행사에 두드러진다는 사실은 지적되어 넘어가야 한다.
굿의 제의절차가 제차의 정도에 따라 커지고 확대 심화되어 그것이 제1부 제2부식으로 앞놀이 뒷놀이로 크게 구분되다가 차츰 앞놀이 형식이 축제행렬로 독립되어 간다는 가설은 제차 자체의 단락이 그 자체로 공동체집단의 정서와 공명하여 확대되거나 탈락하는 경우 그 중단단계로 제차의 거리가 세시행사거리와 중복되면서 그 거리의 단락이 다시 확대되거나 탈락하는 과정과 함께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유보된다. 우리의 세시행사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겠지만 행사거리들이 들쭉날쭉한 가운데 망각된 것, 내용없는 형식의 전승,무의식적인 보존 등으로 장식된 외피 속에 축제의 핵심을 간직한 행사 중의 하나가 은산별신제이다.
무속적 민간신앙에다 유교적인 제례의식을 갖춘 은산별신굿에는 백제의 광복군들을 위한 위령제를 겸한 진법의 행군이 있다. 동제의 정성과 엄숙한 금기에다 신나는 농악의 굿거리 장단을 갖춘 이 별신제 때는 산신당과 가정마다 원새끼에 백지를 오려 끼워 늘인 금줄이 쳐진다.
진법에 따른 진대 베기 행렬은 출진령을 받아 은산장터를 떠나 20리 내외 동북방으로 향하여 진대 선정지에서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네 그루의 참나무를 베고 이 진대 운반 행렬은 왕복 10km의 길을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간다.
이 행렬의 축제적 분위기 조성은 다음 날의 꽃받기(花燈운반)에서 절정에 오른다. 꽃받기는 별신당 신립에 바치는 꽃다발과 꽃등을 받아오는 행사이다. 꽃은 조화이며 꽃을 만드는 절(부여의 고란사, 적곡의 정혜사 등)에 미리 주문해 두었다가 받아온다.
항아리에 담은 꽃다발(華柱)이 여섯, 깃대에 매단 꽃등이 여섯이다. 꽃등에는 오색 종이의 술(발)을 달아 가느다란 깃발처럼 바람에 날린다.
이 축제 행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나발, 2) 영기, 3) 대기(별신대제라고 쓴 농기), 4) 24방기와 음양기 네 개, 5) 농악대(농악수 6명 – 쟁수 2명, 징, 장고, 북, 나팔수 각 1명) 6) 꽃등과 꽃다발, 7) 사령집사 및 ·기수, 8) 선배비장, 9) 삼현육각, 10) 통인, 11) 대장, 12) 통인, 13) 중군, 14) 후배비장(선후배비장과 통인 대장 등은 구군복 무관차림의 승마, 대장은 원래 백마), 15) 좌수, 16) 축관 2명, 17) 별자 2명, 18) 무당 약간 명, 19) 군졸 30명, 20) 임원 등 1백 명이 넘는 인적 구성으로 그 행렬의 길이는 100미터를 넘는다. 별신제의 행렬은 거기에 제물과 화주 및 육화주가 7), 8) 사이에 끼게 된다.
은산별신굿은 13일에 걸쳐 첫날과 사흗날에 진대 베기와 꽃받기 행렬을 동원하고 이틀, 나흗날은 쉬었다가 제5일째에 상당(별신 올림) 별신제사 그 다음 이어 상당굿 그리고 6일~9일에 걸쳐 행원과 축원이 있고 열흘째 하당굿(별신 내림), 열이튿날에 독산제 그리고 마지막날에 장성제를 올린다. 이 축제는 사이사이에 쉬는 날을 두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며 1930년대만 해도 별신제 기간 중에 줄타기, 땅재주 넘기, 사발돌리기 등 남사당패가 운집하고 갖가지 잡희와 잡기가 은산 바닥에서 벌어져 본격적인 난장벌림이 벌어졌었다고 한다.
이런 놀이의 축제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런 대동놀이는 개인 레벨의 놀이를 철저히 넘어선다. 말하자면 대동놀이로서의 민속연희는 세시행사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원류는 풍요제의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동놀이는 풍요제의·계절제의를 받쳐 주던 농경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개인의 놀이 차원을 넘어서는 집단화의 노동협력이 풍요와 다산을 기약한다는 무의식적인 발상에서 가능했고 따라서 산업사회로 지향하는 현대에 있어서는 그런 믿음의 상실과 함께 대동놀이의 성격도 농경사회체제에서 산업사회 구조로 바뀌어 나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받들어 주던 향토성이 경작지와 관련된 한에서 대동놀이가 농경의식의 잔존형식이라면 이제 대동놀이는 산업장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을 바닥에 깔고 그만큼 다양화될 추세에 있는 것이다.
산업체에 따른 공동체 의식의 배양에 놀이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현대화된 믿음이라 할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얻어진 믿음을 바탕으로 계절적으로 활성과 생명력을 얻어 내던 방법으로서의 제의적 놀이가 이제는 산업사회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연고성과 생산에 대한 신뢰가 그 산업체의 명절에 놀이의 축제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한 대동놀이의 놀이종류 형태 현상은 이제 분명히 달라진 것이며 그것이 곧 현대적인 발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산업현장에서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대동놀이는 일찍이 우리의 전승적인 농경사회의 놀이 형태를 발전시킨 것이고 그 놀이를 유지시켜 주었던 지역 공통체의 구성원 – 곧 우리의 민중들이 지녀온 의식을 그 깊은 바탕에 깔고 있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7. 결론 : 민중의식의 향방

놀이문화, 특히 집단연희의 대동놀이를 전승시킨 민중은 놀이 속에 원천적으로 생산의 창조성을 인정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표현을 바꾸면 생산이라는 ‘일’이 단순히 노역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직업이었기 때문에 그 창조적인 생산을 위하여 놀이는 시적 기능을 다한 것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일’이 창조적 생산이 아니라 한낱 고달픈 노역으로 떨어졌을 경우 놀이문화는 고달픈 일에서 헤어나는 사회적 매커니즘이 되거나 창조적 생산을 그리는 민중의 거칠은 향수가 되거나 할 수밖에 없다.
민중의식은 놀이를 통해 그들의 잃어버린 근원을 회고한다. 아니면 그것은 놀이의 형상화라는 예술형식을 통해 그들의 소박하나 끈질긴 생명력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일 그 자체가 노역이 아니라 창조적 작업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민중의식은 바로 그러한 공동작업을 위한 우리 의식이 될 것이다.
우리 의식이 공동체 의식이다. 그리고 이 공동체 의식은 연희·축제형식을 통해 그 의식이 드높여진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공동체 의식이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사라져 간다. 놀이문화의 근원적 해석도 망각되었다. 남은 것은 민속 연희의 잔해뿐이며 그것을 전승해 나가던 민중도 개별화된다.
신화를 잃은 시대는 놀이도 잊고 민중, 곧 공동체의 기반도 상실된다. 신화가 신화로 놀아지고 놀이가 놀이로 놀아지고 민중이 민중으로 놀던 시대가 사라져 간다.
놀이를 철학으로, 그리하여 신화의 놀이해석을 시도했던 핑크는 신들은 지속적인 영속성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나 일이나 싸움에는 인간적인 진지함이 결여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신화에서 그려지는 사랑·일·싸움은 일종의 기분풀이이며 말하자면 놀이인 것이다. 신들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놀이한다.

“그들(神들)의 싸움은 놀이 – 장난감을 사용한 놀이였다. 그 장난감이 인간이었으며 인간은 유한한 생을 걸어 실제로 싸우고 다치고 비통한 고뇌를 경험했던 것이다. 무서운 생각이지만 모든 인간적 고통이나 근심도 신들의 눈으로 보면 드라마인 것이며 끝내 부동하는 경쾌함으로까지 드높여진다. 이와 같이 일체의 인간 척도를 넘어서 초인간적인 것으로 드높여진 것이 놀이이다.
우리는 신들의 신성을 예감하면서 까마득한 결핍에서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가 놀이를 알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또한 인간이 놀이를 알고 놀이를 통해 생존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해방과 구원을 경험하고 이 경험을 불변의 상태로 몽상적인 본질에 귀결시키는 까닭에 인간이 신성한 초인간적 불사의 편안한 본질의 표상에 이르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Fink, Spiel als Weltsymbol, Stuttgart 1963, pp150~151)

놀이문화와 민중의식은 놀이의 제의적 발생과 연관된 근원성에 대한 성찰과 함께 공동작업을 위한 노역의 분담과 사전·후의 위락 그리고 위락에 의한 공동체 의식 내지는 정체성의 공감에서 두드러진다.
그런 의미에서 놀이의 민중론 내지 놀이문화와 민중의식은 지역·향토성과 놀이형태 및 전승 그리고 그것을 노는 민중이라는 놀이 전승 담당자의 인식에 의해 다루어질 것이다.
그런 삼자합일의 안목에서 비로소 놀이는 문화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런 안목에서 호이징가의 놀이문화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카유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막연히 전개했던 겨루기(경기·쟁투)의 놀이와 창조(허구·예술)의 놀이를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여 놀이를 경쟁(agôn·겨루기), 우연(alea·내기), 모방(mimicry·흉내), 도취(ilinx·소용돌이)의 네 가지로 대별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고 서로 조합된 경우의 매력이 더 크다. 카유아는 여기에다 해방·기분풀이·자의(恣意)와 같은 자족의 욕구를 동인으로 삼는 파이디아(paidia)와 그와 반대되는 어려운 상태에서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 예를 들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구하고, 그 고통을 극복하는 통제적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는 루두스(Ludus)를 첨가하였다.
그렇게 되면 놀이를 구성하는 심리적 요인은 한쪽에 편안함, 또 다른 한쪽에 긴장감이 있고 그 사회에 도취와 창의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인 삶에서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는 긴장 -> 편안함에의 욕구와, 무위의 심심함에서 풀려나기 위해 어떤 자극을 얻을려는 권태(편안함) -> 자극(긴장)에의 욕구라는 또 다른 일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형식에 우리가 관여하게 되는 경우는 개인적 차원과 집단적 차원을 설정해 볼 수 있으며 그 집단적 놀이가 경쟁과 협동, 긴장과 편안함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함수를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개인 중심의 놀이보다 집단적 협동과 경쟁이 고대제의의 연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이의 민중의식은 집단형식을 통해 공동체의 심상을 그려 내는 시적 상상력과 맺어지게 되는 것이다.
놀이가 개인적 차원의 자유, 자족감, 완결성, 무상성 등으로 해서 비일상성을 강조할 때 그 개인적 레벨은 개인의 유희적 시적 상상력과 함께 집단적인 공동체 의식의 꿈의 반영이 되어 민중적 예술충동이 의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에 있어서의 민중의식은 축제형식과 예술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 상관관계에 유의한 뷜러(A. Bühler)의 말로써 결구를 삼는다.

“예술과 인간사회의 상관관계에 따라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끼여드는 것이 가능하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그의 작품은 독자적인 감정의 개인적 언표(言表·Aussage)이자 동시에 그것은 자기 사회와 문화에 대한 태도 표명인 것이다. ··· 예술은 유희활동의 발현이라고들 한다. 놀이가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직접적 관련을 가질 때는 그 말이 타당하다. 거기다가 놀이와 마찬가지로 예술이 일상적 활동의 테두리 밖에 나와 있는 그들 고유의 규칙을 가졌으며 – 다시금 놀이와 마찬가지로 – 즉각적으로 파악되는 실제적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유희 이상의 것이다. 예술은 보다 깊은 근원을 갖고 있으며 무익한 것이 아니다. 정신과 정서를 위해 예술은 다른 방법으로서는 불가능한, 가능한 표현(eine Ausdrucksö glichkeit)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예술은 문화 속에 있어야 하고 그런 까닭에 문화기능으로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참고 : 웹페이지 게재의 제한으로 인해 어원 표기와 각주를 삭제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학술적 내용의 전달에 미비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점은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함께 수업하며 장애편견 깨"
장애․비장애학생 통합교육
시청자미디어센터 연중활동

포커스 2007.4.21(월) 5면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방송통신위원회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한 작은 도전이 시작됐다.
시청자미디어센터가 비장애 학생들의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부산지역 특수학급과 경남지역 단체와 연계해 마련한 장애․비장애 통합 미디어교육이 그것.

 장애인․비장애인 통합교육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한 교실에서 같이 수업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날은 첫 수업으로 부산디자인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 6명과 비장애학생 6명이 3시간 동안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박지원 사무국장의 강의로 함께 미디어교육에 참여했다.
이번 교육은 부산디자인고, 원예고, 사직초등학교 등 5개 기관의 장애․비장애 통합학급에서 2시간 12차시 기준으로 1년가량 지속될 예정이다. 또 올 연말에는 교육과정과 결과물을 평가하는 사례발표회도 가질 계획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국어나 영어 등의 교과과정 수업은 장애 정도나 학습능력을 고려하여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수업시간 말고는 장애 학생이 비장애 학생과 어울려 생활할 기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동아리, 재량활동 등 교과과정 외 생활은 장애학생이 비장애학생과 분리된 채 특수 학급에서 장애학생끼리 이뤄진다.

 시청자미디어센터는 이번 장애․비장애 통합 미디어교육을 위해 지난 5일 교사 10명이 모인 가운데  각 학교 내 통합교육 사례 공유하고, 통합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영상만들기 미디어교육의 효과와 다양한 접근 방법에 대해 모색하는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전체적인 교육 방향과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모아 1년간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고, 그 첫 수업이 이날 열린 것이다.
 앞으로 원예고등학교 장애학생 10명, 비장애학생 4명이 다음달부터 11월까지 미디어교육을 함께 받고, 사직초등학교 장애학생 9명, 비장애학생 8명은 다음달부터 8월까지 함께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시청자미디어센터 관계자는 "장애․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을 통해 분리교육으로 인해 갖게 된 장애에 대한 생소함과 편견을 없애고, 사회적 관계를 익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태현기자
hyun@fnn.co.kr

 

 

장애인의날 특집다큐멘터리  "제8요일" (kbs)

 

방송 : 2008년 4월 18일 금요일 11:40- (50분) 1TV

담당 : 외주제작팀 박도환PD

 

제8요일은 수업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 학생들의 교육 현실을 은유한 말이다. 장애아동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제일 먼저 만나는 사회, 그곳이 바로 학교다. 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며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주체적인 삶, 사회와 통합된 삶을 살 수 있는지, 아닌지 결정되는 것이다. 캐나다와 독일은 이미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통합교육이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교실에서 수업 받는 것을 말한다. 1950년대 덴마크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인권운동 개념으로 시작된 것이 이후, 교육의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통합교육 선진국에서는 장애아동들의 개별적 특성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들에게 맞는 학교와 교과내용, 수업방식, 보조기구, 보조교사 등이 제공되고 일반교사와 특수교사, 특수교육보조원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독립된 교육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장애아동을 체계적, 전문적으로 돕기 위한 시스템은 학교를 넘어 사회전반에 형성되어 있다. 한국의 장애아 부모 중에는 이러한 교육 환경을 찾아 어렵게 이민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직업교육에 중점을 두어 장애아동의 흥미와 적성을 분석해 사회로 나가기 2년 전부터 직업교육을 시작한다.
통합교육은 장애아동뿐만이 아닌 비장애아동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괄된 의견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 편견 없는 시선을 어려서부터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장애란 판정을 받으면서 이미 포기한 아이들이 되어 버렸던 우리의 장애아동들. 그러나 장애란 이름표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사회가, 국가가 앞장서 새로운 길, 다양한 길들을 제시하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 길은 바로 교육의 길이고 교육은 장애아동뿐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꿀 힘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의날 특집다큐멘터리 <제8요일>을 통해 통합교육의 선진사례들을 확인해 보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통합교육의 길을 제시해 보도록 한다.

 

부산MBC뉴스
제목 *장애-비장애 학생 통합 미디어 교육
작성자 탁은수 작성일 2008-04-19  
 
 
 
시청자 미디어센터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하는 통합 미디어교육을 실시합니다

오늘 부산 디자인 고등학교에서 시작된
통합미디어 교육은 앞으로 원예고와
사직초등학교 등 5개 기관에서도 실시됩니다

1년간의 교육을 거친뒤 연말에는 학생들이 만든 영상물 발표회도 가질 예정입니다

미디어센터는 일선학교에서 교과과정에는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통합교육을 받고
있지만 동아리 활동이나 재량활동에서는
대부분 분리교육을 받고 있다며
통합 미디어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수 있을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ND▶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Books for dream

Pedagogy 2008.04.11 18:45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일반교육 교실에서의 장애학생교육: 연구요약

출처 : http://my.dreamwiz.com/kimyp/frame1.htm

 

우리는 학교 개선, 학교 개혁 그리고 재구조화에 대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자들은 아직도 학교안의 장애학생에게 질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일반 학교 교실에 통합된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데에 관한 현재까지 성취된 연구와 성공적 실천이 보고된 것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통합(inclusion)이란 무엇인가?

  통합(inclusion)이란 일반교육환경의 맥락에서 특수교육요구아동에게 특별히 고안된 수업과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이것은 한 학교의 통학권 안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그 학교 지역사회의 충분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가지며 각각의 학생은 일반 교육 환경의 기회와 책무성에서 동등하게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합에 관한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실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으며 교사의 임무는 "모든 학생들(다양한 학생들이 다양한 이익을 추구할 지라도)에게 혜택을 주는 수업을 준비하는 것"임을 이해한다(Rogers, 1993. p.4). 과거 특수교육과 일반 교육이 분리된 체계라는 가정은 무너지고 있다.(Moore. 1996).


Mainstreaming, Integration, 또는 Inclusion?

 Inclusion은 integration 또는 mainstreaming과는 다르다. mainstreaming은 장애 학생이 특별히 계획된 수업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주류(mainstream)"와 보조를 맞출 수 있을 때만 일반 학급에 들어가는 것이다. integration은 분리를 여전히 시키면서 파트타임으로 비장애 학생과 함께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파트타임으로 integrated된 학생들은 진정한 학급의 일원이 아니며 학급에 있는 다른 학생들과 매우 다른 활동에 빈번히 참여하게 된다. 수용, 일체, 소속의 철학인 inclusion은 일반학급이 학급에 있는 모든 아동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구조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교육전략들이 다양한 학생인구를 위해서 계획되고 교사들의 협력으로 특별히 계획된 수업과 보충적인 서비스가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필요한만큼 모든 학생들에게 제공되어질 때 성취되는 것이다.


몇몇 최신의 연구들이 inclusion이 integration이나 mainstreaming보다 효과적임을 발견하였다. Ferguson(1992)의 일반교실에서 학생들이 사회적 및 학습적인 면의 성과 모두를 성취하기 위한 프로젝트에서는 "intregration은 효과가 없지만, inclusion은 효과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Schnorr(1990)의 1학년 학급에 단지 파트타임으로 mainstreamed된 중등도 장애학생의 상호작용 방식을 7개월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파트타임 참여는 학급의 다른 학생들에 의해 "외부인"으로 생각되었음을 밝혔다. 9개의 오레곤주 고등학교에 배치된 16명의 학생에 관한 연구(Hilton & Liberty, 1992)는 중도 장애 학생을 integrated된 환경에 배치하는 것이 integration이나 inclusion이 발생한다고 보증하지 못함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경우에는,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 사이에 거의 상호작용이 없으며, 교사들은 통합을 일으키지 못한다. 이러한 연구는 성공적인 통합이 발생하려면, 일반교실이 학생의 다양한 능력 범위가 지원되고 수용되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법적인 필요조건

장애 학생이 학교에 대한 접근권과 무상의 적절한 공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증하는 연방법이 최근에 재확인되었다. 새로운 장애인교육법(IDEA)은 통합적 실천을 향한 진보를 강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구법과 마찬가지로, 새 IDEA도 inclu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학군에서 학생들을 최소제한환경(LRE)에 배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수교육 및 재활 서비스부의 차관인 Judy Heumann은 일반교실이 첫 번째 선택사항으로 고려되는 과정을 기술한다.: "IDEA의 LRE 규정을 실시할 때, 각각의 장애 학생에게 보다 제한적인 배치를 하기 이전에 학교의 일반교실에 출석하는 것을 첫 번째 선택사항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장애 학생의 IEP가 일반 교실에서 보충적인 보조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만족스럽게 시행될 수 있다면.. 그러한 배치가 그 학생에 대한 LRE 배치인 것이다"(1995).


연구 조사

 Inclusion에 대한 연구 기반은 비교적 적은 편이며 방법상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inclusion의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면서도, 특수교육의 계속적인 필요성에 대한 지지와 개별화 수업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수년간, 많은 학교에서 보다 통합적인 실천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교사들, 행정가들, 부모들 등은 이러한 실천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두 가지 주된 유목으로 나누어 설명을 한다: (1) 장애 및 비장애 학생의 성취에 대한 inclusion의 효과; (2) inclusion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1. 성취에 미치는 효과


경도 장애 학생에게는?


일반 교실에 통합된 경도 장애 학생이 풀아웃 프로그램(특수학급 같은 것)이나 특수학교의 학생보다 좋은 성취를 얻는다는 것을 몇몇 연구에서 발견하였다. (fishbaugh & Gum, 1994; Deno, Maruyama, Espin, and Cohen, 1990; Jenkins, Jewell, Leicester, O'Conner, Jenkins, and Troutner, 1994) Robert Salvin(1996)은 경도장애 학생에게 있어서, 이미 동료들보다 뒤떨어져 있는 학생들에 대한 강력한 예방과 조기 개입 프로그램이 훗날의 주류화를 위해 사용될 가치기 있다고 결론지었다. 좋은, 집중적인, 개별화된 수업이 그 열쇠이다.


보다 중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는?


중등도 또는 중도 장애학생에게 있어서는 일반교육환경에의 참여가 약간의 학문적 증가와 행동적 및 사회적 진전을 가져왔다고 연구들은 보고하였다.(Cole and Meyer, 1991; Saint-Laurent and Lessard, 1991; Hunt, Farron-Davis, Beckstead, Crutis, and Goetz, 1994; Hunt and Farron-Davis, 1992; Baker, Wang, & Walberg, 1994/95). Lipsky와 Gartner(1995)는 inclusion에 관한 연간 국책연구에서, 수많은 학교와 교육구에서 장애학생에 대한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학문적, 행동적, 그리고 사회적 성과를 보고하였으며, 학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보고한 사례는 없었다고 하였다.


비장애학생에게는?


inclusion이 비장애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염려, 또는 학습에 투자되는 시간을 줄일 것이라는 염려는 조사 연구에 의하면 사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비장애 학생들에 대한 결과를 조사한 어떠한 연구도 장애를 가지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발견하지는 못했다(Fishbaugh와 Gum, 1994; Hollowood, Salisbury, Rainforth, 그리고 Palombaro, 1995; Hunt, Staub, Alwell, & Goetz, 1994; Sharpe, York, & Knight, 1994).


2. 태도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inclusion으로부터 초래되는 다양한 태도와 관계의 측면들을 조사한 많은 연구들이 있다. 대부분, 이들 연구들은 장애 및 비장애 학생 그리고 교사들의 긍정적 경험과 향상된 태도를 보고한다(Helmstetter, Peck, 그리고 Giangreco, 1994; Stainback, Stainback, Moravcek, 그리고 Jackson, 1992; Helmstetter 등, 1994; Staub, Schwartz, Gallucci 그리고 Peck, 1995; Fryxell과 Kennedy, 1995; Both Hall, 1994; Evans, Salisbury, Palombaro, 그리고 Goldberg, 1994; Hall, 1994; Evans 등, 1994).

학생 보조 프로그램에 참여한 장애학생들은 증가된 독립, 보다 많은 사회화의 기호, 학문 기술의 성장, 그리고 개선된 행동을 가져왔다. 장애가 없는 보조자들은 장애인에 대한 향상된 인식수준과 평가, 더 나은 자기존중감, 책임있는 행동의 증가를 보였다(Staub, Spaulding, Peck, Gallucci, & Schwartz, 1996).


교사들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를 발달시켰다. 이는 특히 inclusion이 훈련, 행정적 및 기타의 지원, 학급에서의 보조, 그리고 몇몇의 경우에는 작아진 학급 규모, 특수한 서비스를 획득하기 위한 라벨링의 사용이 수반되어질 때 그러하였다(Phillips, Alfred, Brulli, & Shank, 1990). 기타 연구(Giangreco, Dennis, cloninger, Edelman, 그리고 Schattman, 1993; Rain-forth, 1992).


중간 생략.


inclusion이 효과가 없다는 말하는 연구들의 진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연구의 대다수가 통합교육을 지지하지만, 대안적인 입장을 취하는 몇 가지 연구들이 있다. 대체로, 이들 연구들은 학생들이 적절한 지원없이 일반학급에 배치되는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다(Baines & Masterson, 1994). 또는 그들이 일반 학급에 있지만 법률에 명시된 특수교육을 받고 있지 않은 경우이다(Zigmond & Baker, 1995). 그런 연구들은 확실히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교사들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고 일반학급에서 특수교육적인 요구를 지원할 자원이 결여된 상태에서 일반교실에 장애학생들을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이 가장 부당한 것이다.


통합적 실천의 특징


이 글에서는 장애아동의 통합에 초점을 두어 왔지만, 우리의 의도는 모든 학생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좋은, 건전한 교육적 실천에 주의를 이끄는 것이다.


○ 새로운 규준으로서의 다양성- 명확히 말해서, 학생 인구의 특성이 변화하고 있으며 점점 덜 동질적으로 되어가고 있다.


○ 협력적 교수 배열-교사들은 함께 가르침으로써 문제 해결과 효과적 전략들에 보다 많은 에너지를 창조할 뿐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교수기술을  모델링할 수 있다.


○ 융통성있는 학교 구조-학교는 다양한 학생들의 요구와 교수적 접근에 적용될 수 있는 물리적 배치를 필요로 한다. 교육계획 수립도 비슷한 융통성을 반영해야 한다.


○ 수행기준 및 대안적 평가-학습을 입증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으며 학생의 수행에 대한 기대도 수업 만큼 개별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통합교육에 더욱 많은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웹사이트를 방문해보시기 바랍니다.


Consortium on inclusive education-http://www.pgh.auhs.edu/cfsp

Inclusion Press International Home Page-http://www.inclusion.com

National Center to improve practice-http://www.edc.org/FSC/NCIP/

Special Education Service Agency(SESA)-http://www.sesa.org


통합교육 관련 국내 논문 요약

 통합교육 관련 해외 논문 Abstract downroad

<<<통합교육 관련 미국 웹사이트>>>

미국 통합교육 네트워크(http://inclusion.org/)

조기통합교육을 안내하는 통합 써클(http://circleofinclusion.org/)

특수교육의 통합(http://www.weac.org/resource/june96/speced.htm)

지역사회 통합 연구소(http://web1.tch.harvard.edu/ici/)

완전통합을 위한 미술과 장애 센터(http://nadc.ucla.edu/)

통합교육인가 분리교육인가(http://pedcurmac13.unifr.ch/Integration/INTSEPe.html)

르네상스 그룹의 통합교육정보(http://www.uni.edu/coe/inclusion/index.html)


이하의 내용은 어쩌다 구해진 통합교육 관련 논문들의 주된 내용입니다. 제가 그냥 읽어보기가 섭섭해서 정리하면서 본 내용을 그냥 올려놓는 것이니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봉학(1998). 특수학급 아동의 통합교육에 대한 일반교사의 인식(단국대 교육대학원)

 첫째, 통합교육에 대해서 일반교사들의 인지도는 낮았으며, 특수교육에 대한 정보는 주로 매스컴에 의존하고 있었고, 응답자 전체교사의 35.0%가 정보를 얻지 못한다고 응답.

 둘째, 효율적 통합교육을 위한 교육환경에 대해서 일반교사들은 특수교육에 대한 연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일반학급에 통합되는 특수아동의 적정인원은 1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통합교육을 위해서 90.1%의 응답교사들이 특수아동에 대한 보조교사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짐.

 셋째, 교사의 역할 수행에 대해서 현직연수를 희망하는 교사가 많았으며 특수아동의 수용에는 주저하는 의견이 많았고, 그 이유로는 특수교육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학급운영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또한 통합교육시 일반교사에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으로는 업무경감이 응답교사 전체의 57.1%나 차지하고 있었으며, 특수교사와 일반교사의 협력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응답이 많았음.

 넷째, 아동과 학부모의 통합교육에 관한 인식에 대해서 응답교사들은 일반 학부모의 통합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학부모들이 특수교육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많았고, 학습능력의 불균형 문제와 학교생활의 협력 문제를 그 다음으로 들었음.

 다섯째,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통합을 위해서 현재의 교육과정의 양은 많은 편이며, 교육내용의 재구성은 전문기관이나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함께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학부모에 대한 통합교육의 홍보는 국가차원에서 매스컴을 통해서나 학교에서 학부모 연수회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음.


김명희(1992). 특수학급 아동의 통합교육에 대한 일반교사의 태도(단국대 교육대학원)

1. 특수학급 아동의 통합교육에 대한 일반교사들의 태도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경향을 나타내었음.  그러나, 통합교육 자체에 대하여 반대하는 교사들은 소수로서 조사대상 교사의 94.5%가 그 이념에 찬성하였고, 통합교육 일반에 대한 인식에서도 긍정적인 태도 점수를 나나내었음.

2. 교사 양성기관에서는 '특수교육'과정을 필수로 개설하고 현직교사에게는 특수교육에 대한 연수가 제도적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함.

3. 남자교사, 미혼교사, 교직경력 10년 미만의 교사집단이 통합교육에 대하여 보다 긍정적이었다는 결과를 얻음.


곽미진(1998). 장애유아 통합교육에 대한 유치원 어머니의 태도(단국대 교육대학원)

1. 장애유아 통합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58.2%가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었으며, 20.3%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답하였고, '모르겠다'고 응답한 수도 21.5%나 되었다.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에 통합교육이 이루어진다면 54.7%는 찬성하였으나, 30.5%는 반대하였고, 모르겠다는 의견은 14.8%이었다.

2. 통합교육을 위한 준비로 일반부모의 장애아 이해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과 일반유치원 교사들의 특수교육 연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응답자가 그 필요성을 인정함.

 일반 유치원 교사에게는 장애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가장 먼저 갖추기를 바랐고 효과적인 통합교육을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54.3%가 장애유아에 대한 일반학부모의 인식전환을 선택함.

3. 통합교육의 효과로는 80.1%가 장애유아의 사회성을 향상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81.2%는 일반유아가 통합교육을 통해 인간의 개인차를 인식할 것이라 응답.


도정애(1995). 정신지체아동의 통합교육에 대한 교사와 학부모의 태도 (단국대 교육대학원)

서울 지역 정신지체 특수학교 중등부 교사와 중학교 특수학급 교사 112명, 이들 학교와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의 학부모 158명, 일반 중학교 교사 227명을 조사대상으로 함.

1. 특수교육 교사중 96.4%와 일반교사중 69.6%는 통합교육이 필요하다고 함.

2. 정신지체아동의 바람직한 통합교육 형태로 특수교육 교사들은 경도 정신지체아동의 경우 일반학급을, 중등도 정신지체아동의 경우 특수학급을, 중도와 최중도 정신지체아동의 경우 특수학교를 선택하였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장애 정도가 경도일 경우 특수학급을, 중등도 이상 장애가 심할 경우 특수학교를 선택하였다.

3. 일반교사중 97.4%는 특수학급 학생을 일반학급에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이들의 통합을 원하지 않는 교사는 그 이유로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지도에 어려움이 있거나, 일반학생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조순점(1997). 장애유아의 조기통합교육에 관한 연구.(단국대 행정대학원)

1. 장애유아 통합교육에 관한 일반유아교사와 유아특수교사의 태도에 있어서는 모두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나 통합교육에 대한  수용정도에 있어서는 유아특수교사가 일반유아교사보다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남.

2. 장애유아 통합교육에 관한 일반유아교사와 장애유아부모의 태도는 장애유아부모가 일반유아부모보다 통합의 수용정도에서 휠씬 긍정적이었으며, 일반유아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교육적 혹은 신체적으로 장애유아의 부적절한 행동을 모방하여 불이익을 받지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통합교육을 꺼려하는 것으로 나타남.


한선화(1995). 유아기 특수아동의 통합교육에 관한 연구.(단국대 행정대학원).

1. 유아기 특수아동의 통합교육의 실태

1) 교육기관의 설립목적에 따라 교육사업으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통합교육이 실시되지 못하고 있었음.

2) 통합교사들의 전문성의 결여로 인하여 특수아동을 위한 바람직한 교육이 되지 못함.

3) 통합교육할 적당한 교육과정이 없어서 특수아동들을 위한 학습지도가 이루어지지 않음.

4) 교육기관의 재정구조가 빈약하여 효과적인 통합교육이 실시되지 못함.

2. 유아기 특수아동의 통합교육 발전방향

1) 통합교육기관의 확충을 위하여 현재 설립되어있는 유아교육기관에 특수학급을 설치하거나 새로이 특수아동의 통합을 위한 유아교육기관을 증설하여야 함.

2) 제도의 개선에 있어서 장애아에 대한 국가의 의무, 통합교육 시책, 통합교육기관의 확충, 전문인력 양성, 교육부예산 등에 대한 구체적이고 폭넓은 내용을 포함한 유아기 통합교육을 위한 법적 규정이 마련되어야 함.

3) 통합교사들의 전문화를 위하여 유아교사, 특수교사 모두 관련 과목을 이수시켜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특수교육 요원의 양성 기관이 확충되어야 함.

4) 교육내용의 전문화에 있어 특수아동의 장애정도를 고려하여 개개인의 요구와 적절히 개별화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함.

5) 사회의식의 전환을 위하여 사회매체나 학교에서의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고 우선적으로  장애에 대한 배타적인 의식부터 버려야 함.

 6) 통합교육기관의 재정확보를 위해 정부의 제도적인 대책수립과 지속적인 연구 노력이 뒤받침 되어야 함.


김영경(1997).영국의 교육법에 나타난 장애아 통합교육 발전에 관한 연구(대구대 대학원)

내용 1. 통합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관련 법규를 통하여 영국 특수교육의 발전과정을 규명.

2. 영국 장애아 통합교육의 발전과정에 나타난 문제점 분석과 개선방안의 과정을 규명.

3. 영국 장애아 통합교육의 발전과정을 통하여 한국 통합교육의 방향성 제시.


이하 논문은 내용 생략함.

원치민(1995). 통합교육에 대한 초등학교 관리자의 태도(단국대 교육대학원)

정용우(1996). 특수학급 아동의 자연과 통합 교육 가능성(단국대 교육대학원)

김명미(1996). 청각장애아 통합교육의 문제점과 개선방안(단국대 교육대학원)

김현숙(1996). 특수아동의 통합교육에 대한 교사변인에 따른 일반교사의 태도 연구(이화여대 교육대학원).

남윤석(1996). 통합교육 관련 교사변인에 관한 연구(공주대 교육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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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 비장애 학생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영미 위원)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새학기가 시작되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특수학급의 학생들이 입학을 하게 된다. 학생들은 담임교사와 함께 하루를 보내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학급에서 독립적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학교에 입학할 때 지체부자유가 심한 학생은 특수학교로 지원을 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발달장애(영화에서 소개된 말아톤의 주인공이 가진 장애), 경증의 자폐증, 정신지체, 학습장애(정서장애) 등의 경증의 장애를 가진 학생은 일반학교에 입학을 해서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통합교육이란 장애를 가진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고 배움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편견 없이 상호 협조하여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자 하는 교육환경을 의미한다. 외국의 대부분의 장애 아동들도 이같은 통합교육의 틀 속에서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한 특수교육을 병행하고 있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통합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통합교육의 가장 큰 미덕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장애아동이 장애아동과 함께 어린시절부터 함께 학습하고 생활할 기회가 제공될 경우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 모두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에게 매우 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배형진씨  ⓒ 한겨레신문

 하지만 학교에서의 현실은 이와 다르게 통합교육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중학교에는 학교의 학급수에 따라 한두 개 반 정도의 특수학급(개별학습이라고도 함)과 한두 명의 특수교사들이 교육을 한다. 장애학생들은 일반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국어, 수학, 영어시간에는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장애학생들의 원만한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비장애학생들의 충분한 이해와 배려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입시교육이 강조되는 학교교육에서 일반학생들 또한 성적과 입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이 쫓기듯 생활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좁은 교실에서 40여 명의 학생들이 생활을 하지만 서로에게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조그마한 피해가 오더라도 참지 못한다. 이 경우 신체적인 장애(두통, 복통, 갑작스러운 경련 등)가 나타나고, 심하면 상대방에게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장애학생에 대해서도 이해와 배려보다는 장애학생들도 자신들과 동등하게 대할 것을 교사들에게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장애학생들에게 화풀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장애학생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 전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발달장애와 약간의 자폐증상을 가진 문식과 철수가 일반학생에게 매일 붙들려 가서 돈을 빼앗기고, 하교 길에 앵벌이를 강요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이들은 문식이와 철수의 옷을 벗겨 포르노사이트의 행위를 흉내내도록 하면서 그 장면을 즐기기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철수가 학교 가기를 거부하면서 어렵게 어머니에게 사실을 이야기 했고, 같은 증상의 장애인인 철수어머니는 학교에 와서 이 사실을 알렸다.(종종 장애 학생 부모 또한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문식과 철수를 괴롭힌 가해학생은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일용 노동일을 하는 아버지와 둘이서 살면서 방과 후에는 늘 PC방을 드나들던 학생이었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내용으로 문식이와 철수를 늘 괴롭히면서 교사들과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돌봐 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미처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을 보살피고 올바르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교사들의 역할이지만, 학급학생 스스로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도와주며 생활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장애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색해 한다. 도움을 주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지만, 인터넷매체의 영향으로 혼자만의 놀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이 아름답게 어울리는 모습을 기대하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인가.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장애. 비장애 통합교육을 위한 T.I.E. 교육연극 워크숍 

 

  출처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교육연극연구소 PRAXIS는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위한 T.I.E (Theatre In Education) 교육연극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본 워크숍은 장애․비장애 통합학급 내에서 비장애 학생들의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연극 프로그램을 각 지역으로 확산하기 위해, 지역의 문화기반 시설과 연계하여 지역인력의 양성 및 지역운영을 위한 시범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2006년도에 광주․대전 지역을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진행하면서 이후 타 지역으로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워크숍 개요>

○일시: 2006년 11월 18일(토) 10시 ~ 11월 20일(월) 12시

○장소: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앙상블홀

○내용: 학교 통합교육에서 장애-비장애 아동 및 청소년들 간의 소통(관계)을 돕고 장애인식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TIE 교육연극의 제작 및 활용 방법 연수

○참가대상: 장애.비장애 통합교육과 TIE에 관심 있는 문화예술단체 및 교사 20명 내외

○참가비: 무료

○주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 교육연극연구소 PRAXIS

○후원: 국무총리실 복권위원회,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워크숍 신청>

○신청기간: 11월 7일(화) ~ 11월 13일(월)

○신청방법: 이메일로 신청서 접수 / najeje@hanmail.net

신청서 제출에 따른 서류 심사 후 개별 통지

○선정기준: 대전․광주지역 거주,활동가 우선 / 주제에 대한 관심과 경험도 / 워크숍 전 기간(3일) 참여여부

○문의: 김지연(najeje@hanmail.net/ 019-259-8233)

 

<워크숍 프로그램>

○목적

- 장애․ 비장애 학교 통합교육에서 장애-비장애 초등청소년들 사이에 나타나는 소통(관 계)의 어려운 점을 TIE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공유해 나갈 수 있는지 방법을 익힌다.

- 워크숍 이후 지역별(광주,대전)로 TIE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진행하면서,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에 대한 문제 공유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모색하는 토대로 삼는다.

강사진 소개

- 김병주(PRAXIS 대표, 상명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 이대식(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 교수)

- 오선영(한수초등학교 특수교사)

- 김지연(PRAXIS 기획위원, 전 고양문화재단 장애․비장애 통합문화예술교육 추진)

- 홍서연(PRAXIS 연구원, 경기대,중앙대 출강)

- 이영숙(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 전문사과정 전공, 교육연극강사)

- 정승희(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연구원)

 

일시

주 제

연 수 내 용

진행강사

11/18 (토)

10:00~13:00

T.I.E(Theatre In Education)

란 무엇인가

- 만남의 시간

- T.I.E에 대한 이해 및 역사

김병주

13:00~14:00

점 심 식 사

14:00~16:00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이야기 던지기

- 참가자들의 통합교육 이해 나누기

- 지역에서 장애.비장애 통합 관련 문화예 술교육프로그램 사례

김지연

16:00~19:00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에

대한 이해

- 통합교육의 국내․해외 역사

- 장애 분류 및 국내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의 현황

이대식

19:00~20:00

저 녁 식 사

20:00~23:00

교육연극 기법 익히기 1

- TIE 공연제작 및 후속프로그램에서 사용 되는 교육연극의 기법 익히기

김병주

11/19 (일)

10:00~12:00

교육연극 기법 익히기 2

- 장애․비장애 통합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접근하는 교육연극 기법 익 히기

김병주

12:00~13:00

점 심 식 사

13:00~15:00

TIE 후속프로그램 진행과정에 대한 방법론

- 공연후속과정에서 Joker의 역할과 진행 방법의 이해

- 후속작업에 활용되는 기법 익히기

김병주

15:00~18:00

학교 교육 현장에서의

통합교육현황

- 초등학교의 통합 상황

(여러 입장에서 본 갈등 요소)

- 장애의 사회학 (관계의 질, 다양성 이해)

오선영

18:00~19:00

저 녁 식 사

19:00~23:00

“푸른 고래의 꿈”

후속프로그램 만들기

- 통합학급에서 소통과 이해에 문제를 다 룬 연극 “푸른 고래의 꿈”을 통해 접근 할 수 있는 후속프로그램의 모둠별 논 의 및 모의 발표

김병주

홍서연

이영숙

11/20 (월)

9:00~10:30

“푸른 고래의 꿈”

공연 만들어 보기

- 대본 읽기 후 의견 나누기

- 2006년 고양시에서 공연된 “푸른 고래의 꿈” 후속 핫시팅 ․ 토론 관람

김병주

10:30~12:00

“푸른 고래의 꿈”

을 통해 던져진 질문들

- 고양시 2005~2006년 초등학생 참가자 들의 반응을 통해 보는 장애.비장애 통 합교육 및 TIE공연 후 반응

- 장애․비장애 통합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의 사례 소개

정승희

12:00~13:00

워크숍 평가․정리

- 워크숍에 대한 전체 평가

- 이후 지역 과제에 대한 논의

김병주

김지연

프로그램 일정

 

※ 본 워크숍은 2005~2006년 문화관광부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한 사회취약계층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일환으로 교육연극연구소 PRAXIS와 고양문화재단,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이 고양지역을 대상으로 개발․운영한 T.I.E. “푸른 고래의 꿈”을 기초로 실행됩니다.

 

※T.I.E(Theatre In Education)란 1960년대 영국에서 출발하여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교육연극의 한 장르로서, 공연적 형태의 연극체험 속에 학교 및 사회적 이슈를 접목시킨 예술을 통한 교육프로그램이다. 비교적 짧은 연극속 주제를 시발점으로 하여 참여자들과 다양한 토론 및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며 연극적 체험과 더불어 사회․교육적 이슈의 비판적 문제제기,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나눔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 형식이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www.KOOKJE.co.kr
2006년 02월 08일

부산의 책을 말한다 <11> 일봉 조성국 선생 글모음Ⅰ,Ⅱ

 

경남 창녕군 영산면 들판은 다시 '위~야차' 하는 함성으로 들끓어 오를 것이다.

함성의 주인공은 영산의 주민들, 학생들, 전국의 민속과 문화 연구자들 그리고 관광객과 사진가들…. 대회장 주변에는 국밥솥들이 내걸리고 막걸리는 거저 퍼마실 수 있으며 마을은 큰잔치의 열기로 들썩댄다. 이날 잔치를 위해 이 지역 주민들은 비용을 추렴하고 돼지를 잡고 지름 약 50㎝ 길이 80m의 줄을 손으로 꼰다.

영남에서 3·1만세운동을 최초로 일으킨 영산의 문화단체인 3·1민속문화향상회가 지난 1961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는 3·1민속문화제(매년 2월28일~3월3일)의 절정인 영산줄다리기는 어김없이 신명 나는 마당을 펼칠 것이다.(올해는 다음달 2일)

#고인의 삶 생생하게 담아낸 책

 
영산줄다리기(영산줄당기기)  
경남 창녕군 영산 출신인 고 일봉 조성국 선생(1919~1993)은 일제 때 거의 맥이 끊기고 해방 뒤 개발시대에는 잊혀져갔던 영산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일명 영산줄당기기)를 복원시켜 진정한 의미의 마을굿, 공동체의 잔치로 자리잡게 한 사람이다.

또 그는 80년대 향락과 소비 문화 일변도로 치닫던 전국의 대학축제 현장에 '공동체와 신명의 놀이'인 영산줄을 몸소 지고가 노는 법을 자세하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의 노력으로 1982년 고려대에 처음 등장한 영산줄다리기는 이화여대 서울대 영남대 부산대 전남대 등 전국 대학축제에 '화왕산 억새불'처럼 번지면서 그 현장을 우리 대동놀이의 마당으로 바꾸었다.

 

 



 
생전 조성국 선생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는 양파알을 다듬고 있다.  
부산의 도서출판 전망이 2004년 펴낸 일봉 조성국 선생 글모음 '1권 원다리 만년교는 님의 기개요'와 '2권 연지못 항미정은 그대의 향기'는 선생의 삶을 본인의 글과 후진의 추모글로 생생하게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그의 10주기를 앞두고 결성된 추모문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천규석)가 전체적인 진행을 맡았지만 최초 발의와 실무 작업, 출판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간행사업은 부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생전의 조성국을 문화계의 큰 어른으로 대하며 깊이 교류했던 채희완(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를 비롯해 화가 송문익 등은 책의 발간을 주도적으로 발의했다. 채 교수가 소장인 부산의 민족미학연구소는 실무를 맡았다.

이 책을 통해 일봉 조성국의 일생을 만나게 되는 독자들은 그를 단순히 무형문화재 영산줄다리기의 최초 예능보유자이자 복원자로만 자리매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일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영산에서 10여년 동안 교편을 잡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향토교육자였고, 4·19혁명과 5·16 쿠데타를 거치면서 교원노조에 연루돼 박해를 당한 해직교사였다. 그 뒤 그는 농사꾼으로 변신해 이 지역 최초로 양파재배에 눈을 돌려 창녕이 양파의 주산지로 떠오르는데 주춧돌을 놓았다. 이 때 쓴 책이 이 글모음에도 실린 '양파재배법'(1972). 그 사이 창녕과 영산의 민속과 설화, 전래노래를 정리한 '영축설화'(1974)와 '영산의 노래'(1975)를 펴내 지역문화운동 부문에서 '없는 길을 만들며 걷는' 모습을 보여줬다.

민속학자 심우성의 도움으로 1978년 펴낸 '영산줄다리기·쇠머리대기'는 가치가 바래지 않은 민속학 자료로 남아있다. 1970년대 인간문화재들의 권익과 올바른 전통 계승을 위해 '한국인간문화재연합회' 결성을 주도했고, 고은·김윤수와 함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의 초대 공동의장을 떠맡았던 그의 행보는 또 어떤가. 이 책에는 여러 이유로 고향에서는 '욕하는 후배들이 더 많았던'(천규석의 간행사 중) 보기 드문 어른으로서 생을 살다간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책을 통해 본 지역문화의 현주소

이 책을 읽으면서 겹쳐져 떠오르는 책이 있다. 고(故) 무위당 장일순의 삶을 되돌아본 '좁쌀 한알'이다(아래기사 참조). 당대에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결코 부각시키지 않았고,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운동 지역운동 사회운동을 펼쳤으며, 후진들을 돕고, 고향에서는 곡해되기도 하며 지역을 초월해서는 큰 어른으로 존경받는다는 점에서 장일순과 조성국의 닮은 데가 분명 있어 보인다. 둘은 1993년 만나 인사도 나눴다.

그들을 따랐던 사람들이 그들이 타계한 뒤 뜻을 모아 같은 해인 2004년 한 달 사이로 추모의 책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우연치고는 묘하다. 그런데 무위당 장일순 선생에 관한 책은 한 언론사의 '2004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판을 거듭하면서 대중과 잘 만나고 있다.

반면 조성국 선생의 책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결과를 얻기 힘들 정도이고 서점에도 없어 전망출판사(051-466-2006)에 직접 문의해야만 한다. 조 선생의 책은 세련되게 구성된 저서라기보다 '양파재배법' 등 그가 남긴 모든 글을 담은 자료모음 형태여서 대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거인의 삶을 다룬 책과 대중 사이에 놓인 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은 지역문화계의 현실과 지역문화계의 분발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듯하다. 조봉권기자 bgjoe@kookje.co.kr


 
일봉 조성국선생 글모음 Ⅰ,Ⅱ/조성국 외 지음 / 도서출판 전망/각권 1만5000원  
# 이 책은…

1919년 태어난 일봉 조성국 선생은 1993년 12월 타계했다. '원다리 만년교는 님의 기개요'(1권), '연지못 항미정은 그대의 향기'라는 아취 있는 제목의 책 2권이 일봉 조성국 선생 글모음이라는 이름으로 부산의 도서출판 전망에서 출간된 것은 2004년 4월이었다.

추모문집 간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천규석(농사꾼·대구 한살림 및 공생농두레 이사)씨는 간행사를 통해 "10주기를 앞두고 선생님이 농민운동 민주화운동 등 사회운동 과정에서 만난 채희완(부산대), 정지창(영남대), 오상훈(부산대), 한양명(안동대) 등 학자들에 의해 발의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강철오 김종곤 남기령 송문익 신수식 심우성 이기봉 정영해 차재현 최정완 등 창녕군 영산지역 인사들과 전국의 문화계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참여 인사들의 숫자가 많고 면면도 다양했으며, 이미 간행된 저서와 이곳 저곳에 실린 원고, 인터뷰 기사와 좌담 등 챙겨야 할 자료도 많았다. 또 많은 필자들에게서 추모글과 생전의 일화에 대한 글도 따로 청탁해 실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간행 작업은 까다로웠다. 도서출판 전망의 서정원 대표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부산 지역 문화계가 주축이 돼 태어난 이 책은 귀중한 자료로 남게 됐다.

※'좁쌀 한알'(글 최성현·도솔·2004)=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이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으며 지난 2004년 '시사저널' 선정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좁쌀 한알' 속에 실린 설명을 옮기자면, 장일순은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이 단 한번 보고 홀딱 반했다는 사람, 목사 이현주가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사람이라 했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소설가 김성동과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고, 판화가 이철수가 이 시대 단 한분의 선생님이라고 꼽은…' 사람이다. 이 책에는 독재 치하에서 '원주캠프'를 이끌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생활운동을 통해 사회운동을 일으켰으며, 한살림 운동을 제창하며 생명운동으로 나아가는 터를 닦은 그의 생애가 일화 형식으로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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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미디어센터와 ‘미디어 세상보기’를 활용한

복지관 영상제작 동아리 교육안

 

미디어교육팀

 

1. 교육 배경 및 목적

. 개인화된 청소년의 놀이를 미디어활동으로 묶어 동아리 구성에 유기적인 관계 형성

. 체험과 놀이 형태로 진행되는 미디어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의 관심 유도

. 다양한 미디어 장르 실습을 통해서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2. 개요

. 교 육 명 :

. 대 상 :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중학생 15

. 교육시간 : 223~29, 4시간 6차시(13~18)

. 담 당 자 : 철우 (부산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 강 사 : 윤정일(시청자미디어센터)

. 보조강사 : 김유나(인제대학교 졸업) 외 대학생 3(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

3. 교육 교구

. 촬영장비 : 3CCD 캠코더 A1 3set, 붐마이크 3set, 디지털카메라 3set,

. 편집장비 : 가편집 노트북 및 외장하드 3set, 시청자미디어센터 편집실(프리미어)

. 교 재 : 미디어 세상보기(방송위원회 ※ 비고에 페이지 표기), 워크시트

 

4. 교육내용

. 1차시 (패러디 놀이를 통해 드라마의 구성요소 발견)

○ 미디어가 어떻게 메시지를 만드는 지 이해할 수 있다.

○ 미디어체험을 통해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 드라마의 구성요소를 찾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항목

차시

패러디 - 삶보다 진지한 재현 드라마

교육명

태그

목표

비고

시간

1차시

(2/23)

미디어의 이해

모바일 놀이

media is message,

image,

모바일

❛ 유형별 미디어 속 나와 우리 찾기.

❛ 모바일 놀이를 통해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친구들에게 알리기.

※ 놀이 1 : 모바일 놀이

워크시트,

휴대폰 4

30

김재형 PD도 울고 갈 중딩들의 상상력

패러디,

사극,

주몽

❛ 드라마에 대해서 이해하고 협동하여 짧은 사극을 만들어 본 수업의 핵심 아이콘 ‘패러디’에 대해서 이해한다. (54~61)

※ 놀이 2 : 5컷 드라마 만들기

꿈스꿈스 활용

120

재현 드라마의

상상력

감상,

mimesis

❛ 체험을 통해서 자신에 맞는 역할 찾기. (60~61, 112)

❛ 청소년이 만든 드라마 감상하고 재현 드라마의 패러디 방법 이해하기.

영상물 2

30

드라마의 구성요소 찾기

인물,

사건,

배경,

내래이션

❛ 놀이를 통해 완성된 드라마를 분석하여 드라마 구성요소를 찾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60~63)

필기구, 기획서

60

과제

-복지관 어르신들의 옛 추억을 어덯게 담아낼 것인지 각자의 생각을 덧붙여 독창적인 방식의 스타일을 가진 재현드라마 기획서 써오기 (50~51)

 

 

 

 

 

 

 

 

 

 

 

 

 

 

 

 

 

 

 

 

 

 

 

 

 

. 2차시 (공익광고를 통해서 이야기의 시각화 이해)

○ 공익광고 스토리보드를 만들면서 텍스트 시각화를 꿸 수 있다.

○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효과적인 전달법에 대해 생각한다.

항목

차시

미메시스 1 -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 공익광고

교육명

태그

목표

비고

시간

2차시

(2/25)

공익광고와

상상력

공익광고,

상상력

❛ 이야기가 있는 공익광고를 보고 이미지 속에서 서사를 찾고 광고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35, 50~51)

공익광고

동영상자료

60

스토리보드

만들기

스토리보드

❛ 광고 스토리보드를 이해하고 개인별로 8컷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텍스트의 1차적 시각화를 꿸 수 있다. (10~11, 106~111)

스토리보드

60

카메라 주무르기

size,

angle

❛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2차적 시각화를 꿸 수 있다. (113~116)

❛ 이미지의 크기와 앵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 놀이 3 : 완성된 8컷 스토리보드를 보고 촬영하기

디지털카메라

60

메시지 전달하기

메시지,

편집

❛ 메시지 발표하여 또래들과 소통할 수 있다. (119)

❛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법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다.

디지털교육실

60

과제

-모둠별로 1차시 기획서를 완성하여 스토리보드 만들어오기

-다큐멘터리 소재 찾아오기

 

. 3차시 (편집을 통해서 선택되어지는 현실)

○ 인터뷰를 통해 인물의 핵심 아이콘을 발견하고 편집을 통해 선택되는 현실을 발견한다.

○ 음향효과 자막으로 가공되어지는 이미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항목

차시

미메시스 2 - 선택되는 현실 다큐멘터리와 편집

교육명

태그

목표

비고

시간

3차시

(2/26)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

❛ 신문기사를 분석하고, 청소년이 만든 동영상을 보면서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 놀이 4 : 인터뷰 몽타주 게임

신문기사,

동영상자료

60

가위손

몽타주

Cut, Scene, Sequence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60)

연역적, 귀납적 편집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워크시트,디지털교육실

120

이야기 전달하기

message

※ 놀이 5 : 30초 이내로 영상물을 편집하여 내용 전달하기

교육실

60

과제

모둠별로 1차시 시놉시스 수준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63, 워크시트)

 

. 4차시 ~ 6차시 (작품을 완성하여 소통하기)

○ 촬영, 편집하여 UCC를 완성할 수 있다.

항목

차시

미메시스 2 - 선택되는 현실 다큐멘터리와 편집

교육명

태그

목표

비고

시간

4차시

(2/27)

시나리오 및

촬영

scenario,

촬영

❛ 모둠별로 장르에 따라 구성안,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 협동하여 촬영한 뒤 가편집 할 수 있다.

복지관,

노트북(외장하드)

4시간

5차시

(2/28)

촬영하기

가편집

촬영,

편집

❛ 보충촬영, 후반작업으로 UCC 완성하기.

복지관,

디지털교육실

4시간

6차시

(2/29)

시사회

편집

❛ 협동하여 멋진 상영발표회를 연다. (62)

❛ 단편영화, 다큐멘터리 등 동아리 운영에 대해서 토론하기.

❛ 시청자미디어센터 연계방안 모색하기.

복지관

4시간

○ 공동체에서 상영회를 향후 동아리 활동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토론하기.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교육 선언 >

 - 제 2차 EI(Education International) 회의 (1998.7.25~29, 미국 워싱톤 )


(전문)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미래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의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고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개발로 정의한다. 공교육과 노동조합의 새로운 역할을 강화시키기 위해 환경쟁점을 전략적인 프로젝트로 다루려고 한다.


1. EI는 모든 국가의 상호의존성을 이해하고, 어떤 나라도 경제력과 발달수준에 관계없이 미래에 혼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에,

2. 국가간 전 세계적인 협력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3. 리오데자네이로의 세계정상 뿐 아니라 교토회의에서 지구적인 규모의 환경파괴를 막고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이산화탄소 방출을 억제하려는 본질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지구환경에 대한 보호는 많은 국가의 ‘경제 제일주의’때문에 벽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4. 특히 개도국에서 무제한의 시장경제도입결과로 기후변화, 사막화, 산림파괴, 무분별한 공업화, 지속적인 에너지 정책, 오염의 지구적인 영향, 인구성장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효과적인 행동이 부족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5. 선진국에서 제조된 해로운 쓰레기를 개도국에 버리는 것을 비난한다.

6. 지구온난화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해서 저위도에 있는 섬나라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 안타깝다.

7. 인간과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위해를 가져오는 원자력발전소가 초래하는 사고를 비난한다.

8.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은 모든 사람이 음식에 대한 욕구, 거주지, 깨끗한 물의 이용, 건강관리, 교육, 고용, 수송과 위생을 충족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같이 인식한다.

9.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지구적인 규모의 지구파괴가 인간이 지구에서 생존하는 한계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10. 환경과 관련된 지속적인 활동은 경제․사회개발, 빈곤완화, 자원소비, 고용과 삶의 질의 폭넓은 쟁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주목한다.

11. 환경보호는 진정한 지속 가능한 개발의 기능이며 생태학적인 삶의 기초를 파괴하는 경제정책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한다.

12. 어린이가 성장할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과 어른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일터에는 청정한 공기와 물이 포함된 건강한 자연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13. 국제교육의 구성원으로서 교육계 인사, 교사, 노동자와 행정가, 국제노동조합회의(ICFTU)와 관련 있는 국제노동조합사무국은 사회변화를 진보의 추진력으로 촉진하고 교육을 통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옹호함을 인식한다.

14. 모든 변화는 인간의 인지 변화를 필요로 하며, 교육은 그러한 변화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주목한다.

15. 교육자가 공동의 역할과 책임을 달성할 수 있기 위해 조합의 권리를 충분히 제공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조직하고 총괄적으로 교섭하고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16. 모든 수준에서 교육은 조합구성원의 교육을 포함하며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건전한 정책의 핵심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17. 교육과정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쟁점이 모든 학문 분야에 적절하게 통합되도록 개발되어야 하며, 이러한 교육과정은 지속 가능한 개발의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환경적 그리고 경제적 영향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결정한다.

18. 검사와 시행 메커니즘을 포함하는 강력한 법 제정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다같이 인식한다.

19. 특히 개도국에서의 여성의 중요한 역할과 모든 수준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정책 개발에 여성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20. 회의에서 결정한 EI가 해야 할 것들 :

     *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한 쟁점에 대해 구성원간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ICFTU와 다른 ITS와 함께 일하기

     * 이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교수법에 관한 평가도구를 준비하고 모든 회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 가장 광범위하게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쟁점을 다루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촉진하는 법을 채택할 수 있는 

        정부 로비하기

    * 신뢰할 수 있고 비교 가능한 자료, 통계와 지표, 평가 방법, 행동비용과 행동결핍비용을 포함한 비용이익분석을 할 수 있

       는 정부 로비하기

    * 국제핵심노동기준, 직업 건강과 안전 그리고 교육기관과 관련있는 작업환경에 관한 ILO기준을 촉진하기 위해 ILO와 함

       께 일하기

    * 무역협정에 노동권과 환경권을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 UNESCO, UNICEF, WHO와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함께 일하기

    * 지구 환경보호를 위한 활동에 종사하는 시민조직을 지원하고 그러한 국내 시민조직을 지원하기 위한 구성조직 요청하기

    * 세계 은행, UNESCO, UNDP, IMF 같은 국제조직의 대표를 통해, 평화와 정의 의미 뿐 아니라 교육자와 노동조합의 전통 

      적인 역할의 재평가가 필요한 새로운 과학적,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이유가 고려된 지속 가능한 개발과 교육모형에 관한 

      이러한 관점을 촉진하기

   * 사회적 배제를 초래하고 현재 진행 중인 지구화 프로젝트의 기초가 되고 생물학적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파괴

      하는 단일 방향의 모형에 관한 논의를 자극할 교육과 연구 프로젝트 개발하기

21. 회의에서 EI 구성원 조직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요구했다.

   * 석면의 노출과 관련지어 발암물질에 의한 직업상의 재해 방지와 통제에 관한 139 ILO정기총회를 비준할 정부 로비할 것

   * 직업상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ILO 정기총회 155와 161과 이것에 수반되는 권고 164와 171을 비준할 정부 로비할 것

   *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촉진할 정부 로비할 것

   * 환경교육에 관한 정책 개발과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교육과정 개발에 교육조합의 참여 기간 협상할 것

   * 지구환경보호와 EI의 도움을 받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교육 정보 교환할 것

   * 교사가 건강한 조건에서 일하고 어린이가 최적의 조건에서 배울 수 있는 최고의 환경기준에 부합하는 학교와 교육기관의

      조건 확보할 것

   * 지속 가능한 개발 쟁점에 관한 구성원의 훈련 포함할 것

   * 교사를 위한 초기연수와 직무연수에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 쟁점에 관한 교육인사에 관한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  

     하는 것을 확보할 것 

   * EI가 조직한 개발협력 프로그램과 그의 구성원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모듈을 포함하는 것을 확보할 것

   * 지구환경보호가 그들의 나라에 제공되는지 그리고 교재와 교육과정의 일부가 되는지를 점검할 것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프레이리
, 페다고지 귀에 익은 언어들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를 비롯한 거대담론 혹은 유행담론에 간과했던 페다고지를 이제 읽는다. 이명박정권 인수위에서 주장하는 '영어 공교육 프로젝트'에 혀를 차면서 교원도 아닌 내가 이 걱정 할 시간이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페다고지를 읽기 시작한다. 어쩜 교조론적인 미디어교육론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지도 혹은 낡은 교육방법론에 식상할지도 모른다. 걱정이 되는 것은 지금에 와서야 이분법적인 교육방법에 대한 고민도 만만치 않다.  

페다고지 상세보기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 그린비 펴냄
<페다고지: 피억압자의 교육학, 의식화 교육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한 책.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 루소 등의 대사상가들의 사고와 실천적 경험을 밀접하게 연결지은 의식화 교육론을 제시했다. 저자 파울루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해방임을 알리고, 평생을 통해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인 교육사상가로 손꼽히고 있다.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97)의 삶과 사상

교육철학에 관한 그의 생각은 1959년 레시페 대학교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그 대학의 역사학, 교육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술한 책들과 레시페의 문맹자들을 가르치는 실험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1964년 군부쿠데타 직후 투옥되고 7년 뒤에 석방된 프레이리는 칠레에 가서 5년동안 UNESCO와 함께 일했으며 칠레농업개혁기구의 성인교육에도 참여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대학원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농촌과 도시 지역에서 새로운 교육 실험을 하는 단체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일했다. 제나바에 본부를 둔 세계교회협회 WCC의 교육부에서 특별자문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의 첫 저서인 <해방 실천으로서의 교육 1976>브라질에서 출간되었고, 그의 최신작이자 가장 완숙한 저작인 <페다고지>는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인간의 존재론적 소명(프레이리의 용어)은 세계 내에서 활동하면서 그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데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더 완전하고 풍요로운 삶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데 있다. 그가 말하는 세계란 정태적이고 닫힌 질서도 아니고, 인간이 그저 수용하고 적응해야만 하는 주어진 현실도 아니다. 그것은 노력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와도 같다. 더불어 프레이리는 모든 인간은 '무지'하든, '침묵의 문화'에 젖어 있든 간에 상관없이 대화를 통해 타인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비판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접촉을 위한 적절한 수단이 갖춰지면 각 개인은 점차 개인적 사회적 현실과 그 안의 모순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며, 그러한 현실 인식의 자각과 함께 비판적 대처 능력이 생기게 된다. "사람들은 세계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를 교육한다" 말은 새로운 힘을 얻는다. 말은 더이상 추상적이거나 마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변의 것들에 이름을 붙이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수단이 된다. 프레이리가 말했듯이 각 개인은 자신의 언어를 말하고 세계를 이름짓는 권리는 되찾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프레이리의 사상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두 가지 상황 사이에 간과할 수 없는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우리의 선진 기술 사회는 우리 대부분을 급속히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우리를 사회 체계의 논리에 섬세하게 짜맞춰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역시 또 다른 '침묵의 문화' 속에 침잠해 있는 것이다. 즉 '자유의 실천'으로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고 세계의 변혁에 참여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우리 사회 내에 긴장과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새로운 인간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교육이란 비지시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프레이리가 일관되게 비판했던 입장이다. "나는 농민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굶주림이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야 하며, 내 견해에 다르면 인간성에 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그 굶주림의 사회적 형성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농민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육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중립을 지킬 것이 아니라 개입해야만 한다. 하지만 개입하기 전에 먼저 교육자는 정치적으로 명료해야 한다. 예컨대 그래프 Gerald Graff는 이렇게 말한다. "프레이리, 헨리 지루, 스탠리 아로노비츠 같은 급진적인 교육 이론가들은... 편협한 저술양식을 고수하곡 있으므로... 기존 전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조차 걸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의 지배적인 표준담론은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파괴하면서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려는 담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현실을 명시적으로 밝히는 담론은 부정확하고 불명확한 것이 된다. 의미형성 과정에서 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입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언어의 명료함에 대한 요구는 언어적 문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문제다. 그래서 열여섯 살짜리 소년과 가난하고 무식한 여석은 프레이리의 이데올로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유식학자들은 바로 그 이데올로기적 특성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저가가 보기엔 '단순 명료한' 언어를 바라는 통속적인 요구는 복잡한 이론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또 다른 기계론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 이론적 구성물이 기존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표시할 때는 더욱 그렇다.

데이비드 골드먼 David Theo Goldberg는 교육자들이 관점없는 중립성을 취하면 사실상 아무런 견해가 없는 것이므로 갈등, 또는 그와 연관된 어는 것이든, 가르칠 수 없다. 바꿔 말해서 무관점의 전제는 중립성을 가장해서 지엽적 가치관을 보편적 가치관으로 투사하는 것이며, 스탬과 쇼해트가 말하는 것처럼 자민족중심주의적 가치관을 세계회하는 것에 해당한다.

갈등을 가르치는 데 따르는 문제점은 권위를 보증하기 위한 유일한 준거가 방법론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그 결과로서 그래프는 피억압 민중에게 억압의 정체를 알게하는 것을 교육적 필요 사항으로 여기지 않게 된 것이며, 그와 동시에 '소수'에게 힘을 부여하고 특권층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타자화'경험을 쌓게 함으로써 다른 주체적 입장과 다양한 사회적 계획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학의 정책을 방기하게 된 것이다.

페다고지pedagogy

프레이리가의 교육방식을 요약하기 위해 쓰인  '페다고지 pedagogy'는  그리스어에서 pais '아이'와, ago '지도한다'뜻을 조합한 즉 '아이를 지도한다'는 뜻이다. 보통 사회학과 철학이라기보다는 교육방법, 교수법으로 해석된다. 물론 그의 사상은 헤겔, 마르크스, 그람시, 사르트르의 철학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민주적 문제제기식 교육

파울러 프레이리는 현행 교육의 '은행 저금식 모델'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민주적인 문제지기식 교육을 제안한다. "모든 사람은 가가자 자신이 처한 세계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계발해야 한다. 즉 세계를 정태적 현실로서가 아니라 변화과정의 현실로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내게-그리고 강요된 동화 정책에 따른 복종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문화적 발언권을 되찾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는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과 희망을 수반하는 과정이지만, 강요된 문화적 이중인격자인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소외시키는 사회 내에서 우리의 객관적 위치를 초월해 주체적 위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기계적인 철학과 정치사상에 반대

억압의 구조를 고발하는 그의 지적 명석함과 용기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자신이 초기에 했던 계급 분석을 꾸준히 수정하면서도 억압의 상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연구에서 중요한 이론적 범주인 계급을 포기하지도, 저평가하지도 않았다.  비록 모든 것을 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지만 계급은 여전히 억압의 여러 형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점은 계급을 주체의 위치라는 추론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는 후기구조주의자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그는 모든 분석을 인종이라는 단일한 실체로만 환원하는 본질론적 입장을 거부했다.

<이데올로기 문제 Ideology Matters>라는 책에서 "인종주의의 분석을 사회 계급만으로만 환원할 수 없지만, 계급 분석이 없으면 인종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양자 가운데 어는 하나만을 주장하면 우리가 거부하는 인종주의 못지 않게 경멸스러운 분파주의의 덫에 빠지게 된다." 그의 명성은 높아졌지만 교육학교의 교과과정에 주요하게 포함되지 못하는데, 그의 저작이 프레이리가 평생을 통해 반대했던 이데올로기와 관습을 대변하는 실증주의적이고 매니지먼트한 모델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이리의 선도적인 철학과 정치사상을 기계화시키는 데 따르는 문제점은, 많은 사이비 비판적 교육자들이 해방 교육학이라는 미명하에 프레이리를 구호로 삼아 그의 혁명적 정치학을 대화적 방법이라는 공허한 내용으로 제한해버린다는 데 있다. 프레이리를 내세우는 사이비 교육자들은 교실의 경계를 넘어 사회에서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자는 프레이리의 근본적인 교육학적 제안들의 정수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대화의 인식론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를 통한 교육

"대화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단순하게 기법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대화란 내가 상대방의 말솜씨를 감안하여 다듬고 깨우치고자 하는 허구적인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대화란 인식론적 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대화는 앎의 방법이므로 단순히 학생들을 특정한 작업에 열중하게 만드는 술책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점을 매우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대화에 참여하는 이유는, 앎의 과정에는 개인적 성격만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대화는 자연히 배움과 앎의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대화는 반드시 앎의 대상에 관한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대화는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이 아니라 앎의 대상을 더 잘 알기 위한 수단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화는 각자의 체험을 우선시하는 좌담처럼 변질될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위치와 경력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앎의 대상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사라지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이런 경우에는, 비록 특별한 이론을 담고 있지는 않더라도 앎의 대상을 포함하고 있는 책들을 직접 애써가며 읽는 과정이 생략된다.

학생이 인식론적 호기심과 더불어 앎의 대상에 관해서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인식론적 호기심을 증대시켜 앎의 대상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지적 도구를 개발하는 작업이 어려워진다. 학생이 자신의 체험을 지식으로 전환시키지 못하고 이미 획득한 지식을 이용해서 새 지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학생은 엄밀히 말해서 배움과 앎의 과정으로서의 대화에 참여할 수 없게 된느 것이다. 사실 앎의 대상을 미리 접해본 적도 없고 인식론적 호기심도 없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교사가 학생에게 언어학을 훈련시킬 교육적 조건을 만들어내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새로운 지식 내용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훈련 과정을, 학생의 개입과 토론이 없는 권위주의적 강의로만 환원시켜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대화 과정을 관료제화하면 또 다른 기계론을 낳게 된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숄의 발문과 서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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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뿌리기 귀농] (3) 웰빙 시대의 귀농


[서울신문] 


“반드시 자기 땅과 집이 있어야만 귀농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와서 보면 일거리는 많은데 도시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죠.”
 

▲ 폐교를 활용한 캠프장 운영으로 귀농에 성공한 고경백·진영아씨 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손수 땔감을 준비하며 활짝 웃고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금당계곡으로 거슬러 오르면 폐교된 지 8년된 대화초등학교 개수분교가 나온다.

그러나 전혀 허름해 보이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문구의 ‘어름치캠프학교’라는 예쁜 간판과 함께 전체가 캠프장과 체험학습장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고경백(43)·진영아(36) 부부는 5년전 귀농했다. 도시의 팍팍한 삶과 자녀 교육 세태에 염증을 느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부부는 웰빙 트렌드에 맞는 농촌관광·체험 사업을 통해 심적 여유와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얻으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 돈 한푼, 땅 한평 없이 귀농

부부는 귀농하기 전까지 서울과 경기 일산에서 맞벌이를 했다. 제주도가 고향인 고는 고교 졸업 후 1983년 상경한 뒤 무역회사 등의 직장에서 일했다. 최근엔 일산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했다. 아내 진는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전원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각박한 도시생활이 싫어졌고 학원을 경영하면서 사교육에 매달리는 세태에 염증을 느꼈다. 고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드세 우리 애들이 학원 공부에 치여 커 가는 게 옳은 일인가 하는 자괴감이 귀농을 결심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부부는 2003년 당시 7살 아들,4살 딸과 함께 귀농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수중엔 돈 한푼 없는 상태였다. 일산 아파트 전세금 1억원은 그동안 학원 운영으로 빌린 돈을 갚는 데 모두 썼다.

그러나 고는 농촌에 가면 큰 밑천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평창에 있는 펜션을 연봉 3000만원 조건에 1년만 운영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그곳으로 갔다.

“집 지을 필요 없고, 돈 들 일도 없었죠. 특히 펜션 운영이 평소 관심인 농촌관광사업에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 폐교 이용한 체험마을 운영, 빚 1원 없어

이후 고는 인근에 99년 폐교된 개수분교가 있는 것을 알고 무릎을 쳤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폐교를 체험학교로 운영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허락을 얻어냈다. 주민들은 평소 고가 이방인답지 않게 마을 일에 앞장서는 등 주민들 속으로 녹아드는 모습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는 교육청에 임대료로 연 250만원, 마을 발전기금으로 200만원을 내고 운영을 시작했다. 금당계곡에 많이 사는 물고기 이름을 따 ‘어름치캠프학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손수 교실 4개 중 3개를 숙소로 꾸몄다. 영업 첫 해인 2005년 매출은 1000만원 정도로 신통치 않았다.

부부는 홈페이지(www.campschool.co.kr)를 만들어 전국 동호회, 학교, 기업에 캠프 알리기에 나섰다.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만들어 토종민물고기 탐사, 계곡탐방 등 캠프 프로그램과 고로쇠물 채취, 토종꿀 따기 등 농촌체험학습을 진행한다.

이같은 노력으로 지난해에는 여름 성수기 예약이 4월에 마감됐다. 연 매출 3500만원 정도는 거뜬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내린 폭우가 금당계곡을 휩쓰는 바람에 꿈의 실현을 미뤄야 했다. 고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올해도 같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고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마을 사무장을, 아내 진는 수해 복구 관리업무를 맡아 월 100만원씩 농외소득을 얻고 있다. 고는 “한 달 생활비가 100만원도 채 안 되며 차량 유지비와 통신비가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 지역주민 소득 돕는 ‘윈-윈 귀농’ 목표

는 농촌체험사업이 자연자원을 활용한 수익 창출과 농촌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강원도내 학교 절반 이상이 폐교될 예정이어서 학교 중심의 농촌 문화가 상당부분 사라질 위기”라면서 “폐교 활용은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도시민의 귀농·귀촌 등 도농교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는 어름치생태학교내에 농촌체험교육장을 조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마을 주민들도 참여하도록 해 ‘윈-윈’하는 것이 목표다. 고는 “5년 가까이 살면서 주민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평창 글 사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돈벌이 치중 금물… 주민과 함께해야”

최근 들어 귀농의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농사를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농업과 관련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귀촌(歸村)이란 개념도 새롭게 등장했다.

특히 요즘 한창인 ‘웰빙 바람’을 타고 도시사람들이 시골로 내려가 농촌체험마을, 관광농원 등 농촌관광사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강원 평창에서 폐교를 활용한 캠프장을 운영하는 고경백도 그렇게 해 정착한 케이스다.

그러나 고는 현장에서 느낀 몇가지 문제점을 꼬집었다. 먼저 도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펜션사업의 경우 도시 사람이 직접 운영하지 않아 농촌관광사업의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는 “운영 대리인을 둔 도시 거주 펜션 주인은 농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을 리 없다.”면서 “농촌의 인심과 고유 문화를 소개하기보다는 단순히 객실 홍보에만 열을 올린다.”고 지적했다.

폐교를 활용한 캠프장,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돈벌이 사업에 물드는 경우가 있다며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어떤 도시 사람들은 시골 폐교를 임대한 뒤 담장을 치고 지역 주민의 출입을 통제하고 술을 파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많은 귀농 준비자들이 자신에게 성공 노하우를 문의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폐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 성공할 생각을 아예 거둘 것”을 조언한다고 했다. 폐교 등 농촌자원은 지역 주민들의 재산이며, 주민과 동화되는 삶 속에서 귀농·귀촌도 성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본격적인 농촌관광사업 시작에 앞서 농촌 민박, 농촌체험 등을 직접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아내 등 가족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는 것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신문]      평창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정부지원 육아·교육비 꼼꼼히 챙겨라

도시 사람이 귀농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자녀 육아와 교육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면 정부가 시행하고 있거나 계획중인 각종 지원책을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귀농 계획을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농어촌지역에 거주하며 5㏊미만의 농지를 소유한 농업인이 만 5세 이하 자녀를 보육시설이나 유치원에 보내려 한다면 정부가 주는 일정액의 보육비 또는 교육비를 지원받는다.

보육료(월) 지원 규모는 ▲만 0세 25만 3000원 ▲만 1세 22만 2000원 ▲만 2세 18만 3000원 ▲만 3세 12만 6000원 ▲만 4세 11만 3000원 ▲만 5세 16만 2000원 등이다. 교육비는 ▲만3∼4세 2만 8000원(국공립유치원),7만 9000원(사립유치원) ▲만 5세 5만 6000원,15만 8000원 등이 지원된다.

만일 농업인이 영아 자녀 보육시설 등에 보내지 못할 경우 ‘여성농업인 일손돕기’를 통한 가정육아비용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만 5세(취학유예 만 6세아 포함)의 자녀를 뒀을 경우 8만 1000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문의는 농림부 여성정책과(02-500-1605)로 하면 된다. 아울러 고교생 자녀 학자금과 대학생 등록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

자녀 학자금의 경우 농업지역이나 개발제한구역에 거주하는 농업인, 어업인, 축산인 가운데 고등학교에 재학하는 자녀나 직접 부양 손자녀, 동생이 있는 경우라면 가능하다. 수업료는 물론 입학금 전액이 지원된다.

귀농후 3년 이상 영농에 종사했다면 ‘농업인 자녀 농과대학생 학자금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자녀가 농업계열 대학에 입학한 뒤 학기당 농업경영 관련 과목을 1개 이상 수강하거나 학기 평점이 2.0 이상을 받으면 국공립대(2년제 포함)는 등록금 전액 지급, 사립대는 국립대 등록금을 174만원까지 지급받는다.

[서울신문]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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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영상교육 현황과 과제 -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박지원(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 본 원고는 2006년 시청자미디어센터 어린이청소년 미디어교육 사례집에 실린 내용입니다. 

 

들어가며

‘영상문화도시 부산‘. 각 지자체가 스스로의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한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지금, ’문화‘는 가장 유용한 무엇인가로 들린다. 무려 8군데의 지자체가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쇄신을 꽤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는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지만 과반수는 최근에 새롭게 이미지를 만든 곳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문화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라면 환영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 중 부산은 지난 몇 년간 영상을 중심으로 한 문화도시건설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이 기여한 바가 크지만 실제로 영상 인프라가 하나씩 구성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재원들에도 불구하고 문화도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산업적 측면에서 고려되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한 쪽에서는 부산이 장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부산이 ‘영상산업도시‘가 아닌 ’영상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영상을 수용하는 시민들의수준 높은 인식이 담보되어야 한다. 영상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시민, 영상을 비판할 수 있는 시민, 자유롭게 영상을 제공할 수 있는 시민이 있어야 그것이 문화가 된다. 이 문화를 만들어갈 시민 속에 어린이들도 있다. 게다가 현재의 어린이들은 영상의 수용시기가 갈 수록 빨라지고 있다. 하다못해 2세만 되어도 비디오를 보면서 소파 한자리를 차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뒹구는 디지털카메라를 조작한다. 수 많은 채널들 속에, 수 많은 광고들 속에서 어린이들은 노출되어 있으며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정보들로 그들의 머릿 속은 혼란에 빠지고 급기야 그 혼란 마저도 무뎌진다. 이제 어린이도 영상의 수용자로서 영상에 대해서 교육받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Ⅰ. 어린이 영상교육 단체 현황

부산경상지역에서 어린이 영상교육이 터를 다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극소수의 단체와 학교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 교육’으로 명명된 프로그램들이 존재해 있었다. 부산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참교육학부모회 부산지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회, 부산교육연구소 등의 사회단체에서 영상교육을 위한 활동을 진행했지만 이 마저도 초등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고등학생에 맞춰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2004년 영화전문강사풀제가 시작되면서 부산경상지역의 일부 초등학교에서도 재량활동, 특별활동 시간을 이용한 영상수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어 2004년 한국메세나협의회의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영화가 포함되어 지역의 아동복지시설 일부에서 영상수업이 진행되었다. 현재에는 부산경상지역 초등학교 ??개교, 아동복지시설(초등학생 대상) ??개 시설에서 꾸준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프로그램은 서울을 거점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된 것이어서 각 지자체가 공통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2005년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가 준비위원회(위원장 김상화)라는 이름으로 발족하면서 부산지역을 거점으로 어린이 영상교육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존의 영상교육단체들이 힘을 보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는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한 영상수요계층에게 질 높은 영상 수요의 기회를 제공하고 어린이들의 영상소통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어린이 영상교육을 그 목적의 중심에 둠으로써 어린이들이 영상의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적극적 소비자 또는 비판적 생산자로 사회적 인식을 확대시키고자 했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의 첫 행사를 어린이영상캠프로 추진하고 실행했던 것도 어린이 영상교육이 설립목적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5년 10월 프레페스티발을 시작으로 지난 8월 제1회 영화제를 개최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는 일부 보완할 점을 남기고 2006년 제2회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는 영화제를 중심으로 한 교육활동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육과 소통의 공간 확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이루어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영상교육의 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어린이 영상교육 프로그램 현황 - 비판적 입장을 중심으로

① 영화전문강사풀제

영화전문강사풀제의 프로그램은 크게 선택교과, 재량활동, 특기적성으로 구분된다. 이 중 선택교과의 비중은 크지 않으며 대부분 재량활동과 특기적성 수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초 교육은 영화제작이라는 암묵적 목적에 매몰되어 교안과 프로그램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파견되는 강사들도 한 번의 연수를 거쳐 바로 현장에 투입된 상태여서

각각의 수업은 강사들의 개인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대부분 교육적 경험이 아니라 영화제작 경험이어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암묵적 목적에 동의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 후 이러한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다양한 연수를 통해서 그리고 강사들의 경험이 축적되기 시작하면서 아직 미흡하지만 모순들이 수정되고 있으며 강사 개인의 프로그래밍에 앞서 교육의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한 공통된 수업안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을 보면 영상이론, 영상제작, 영상리터러시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학기 초반 영상에 대한 전반적인 기초지식을 습득한 학생들은 이를 토대로 직접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촬영, 편집과정을 거쳐 영상물을 제작하고 이를 학교축제 등의 시간을 활용하여 소통공간을 마련한다. 이어 학기 말에는 수업을 정리하면서 영상물(대부분이 극장용 영화이다)을 감상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총 34차시(1차시 40~50분)동안 이루어지기 때문에 크게 분류된 세 가지 과정을 모두 만족하기에 시간은 다소 부족하다. 특히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은 크게 부족하여 일부 제작수업은 방과 후 또는 휴일을 이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전문강사풀제의 프로그램은 몇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대부분 비판적 의식을 담기 위한 노력보다는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교안이 마련되는 것이 보통이다. 비판적 의식이냐 문화향유냐 하는 구분은 무모하며 그 가치판단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비판적 의식이 거의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의 과정을 따져 본다면 문제삼을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강사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이전에 ‘학교 안’이라는 제약이 존재한다. 이것은 공간적 제약이 아니라 교육계가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문제이다. 청소년의 휴대폰 사용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학교의 입장(일부 교사의 입장일 수도 있겠다.)과 반대된다고 학생들이 만든 영상을 검열당하고 소통공간을 빼앗긴 한 강사의 사례는 안타깝다. 물론 일부 학교의 사례에 지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심심찮게 들려오는 강사들의 하소연은 많은 경우 학교의 인식 평가와 관련된 것이다. 한편 노골적으로 수상을 요구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학생들의 아이디어와 노력, 열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수상하는 것은 누구나도 바라고 싶은 것이지만 문제는 영상교육의 일부분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수상의 도구로 운영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몇 가지 영상교육의 인식에 대한 차이로 부각되는 문제점들은 영화전문강사풀제 뿐만 아니라 전체 영상교육의 틀 안에서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 뿐만 아니라 전체 영상교육의 건강한 자리매김을 위해서 꼭 풀어야할 과제이다.

② 한국메세나협의회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영화교육부문은 그 대상자체가 복지시설에 한정되어있다. 때문에 수업은 큰 사회적 목적보다는 문화향유를 통한 마음의 치유, 문화예술을 통한 자유로운 사고, 인간관계형성 등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에 두고 진행된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이 가져야 할 최우선 목적이다.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는 강사진은 대부분 영화전문강사풀제에서 경험을 보유하고 있고 3년여의 과정동안 자체의 경험을 확보하였다. 강사진의 구성이 영화전문강사풀제를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영화전문강사풀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앉고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한국메세나협의회는 시작부터 영화제작이라는 목표 및 암묵적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문화관광부의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③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조직위원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는 어린이들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위의 두 단체와 차별화된다. 모든 프로그램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기획되며 또한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 단체는 어린이들의 영상에 대한 인식 제고, 비판적 사고 함양, 제작교육을 통한 사회 참여, 소통의 공간 제공, 이를 통한 사회적 인식 확대라는 다양한 목적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아직 2년 남짓한 기간이지만 그 동안 어린이 영상교육을 위한 인적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는 강사진으로 하여금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여 그 즉시 교육의 경험 및 재교육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를 거점으로 강사진이 자체 연구모임을 구성하기 위해서 지난 해부터 발판을 다져가고 있다. 그러나 뒤에 밝히겠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 운영이 교육수요자 부담 보다는 각종 공모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당선된 것이므로 프로그램의 운영 지속성 확보에는 그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교육을 위한 자체공간 및 장비 등의 인프라는 대부분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의 협조 아래 진행하고 있어서 이 또한 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의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크게 방학 중 어린이 영화캠프, 방과 후 어린이 영화학교(초등학교 및 자치단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의 공모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프로젝트 프로그램 등이다.

Ⅲ. 부산의 어린이 영상교육 활성화를 위한 과제

① 교육기관 등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의 교육 프로그램은 대부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일부 부산광역시의 매칭 펀드)의 지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도 일부 공모사업에 지원하여 당선된 것이어서 지속적인 운영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하다. 뿐만 아니라 진행 중인 어린이 영화학교도 마찬가지이다. 총 5개 학교 중 3군데는 저소득층 중심 학교이기 때문에 학생에게 참가비를 부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이렇게라도 진행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 이면에는 사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교육강사들의 경제적 희생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명목상은 수익자 부담으로 이루어지는 방과 후 수업이지만 수업료는 교통비 정도에 그치며 일부 학교의 경우 80%의 학생이 무료로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 개설을 요청했던 학교마저 최소한의 강의비용을 지원하는데 난색을 표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머지 2개 학교는 학교자체의 예산과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도 한시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어린이 영상교육의 효과에 대해 이론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결과 도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2~3개월, 5~6개월의 단기 프로그램으로 수요계층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고 리터러시교육과 제작교육이 균형감을 가지기 위해서, 그리고 어린이의 관심을 지속화시키기 위해서는 장기 프로그램이 기획되어야 한다. 현재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의 비키어린이기획단이 활동을 시작한지 이제 2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2년 동안 실제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1년이 채 되지 못하지만 다양한 접근, 관심의 지속화(기획단원 중 70%는 2년 동안 계속참여하고 있는 어린이들이다.)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여러 가지 공모프로그램 중 일부를 기획단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면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어린이 영상교육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서 가장 우선되어야하는 것은 관련 공공기관과 사회단체, 그리고 교육계가 같은 목적을 공유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파상적으로 마련되고 있는 각종 관련 지원금을 하나로 묶어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가 제안하고 있는 펀드 조성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시행단체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교육적 방법의 다양성, 프로그램 지속화 및 내용의 질 향상, 수요계층의 확대, 사회전체의 관심 증대 등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② 교육 인프라 확보와 연구모임의 활성화를 통한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

어린이 영상교육이 시작된 것은 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이후이다. 기존에 문화생산자 중심의 지원정책을 펼쳤던 문화관광부가 지원정책을 문화소비자로 확대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현실화되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타이틀 아래 각종 문화소비자 계층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전국 100여개 학교에서 영화수업(영화전문강사풀제)이 진행되었다. 이를 두고 영상이냐 영화냐 하는 용어의 사용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논란이 존재하기는 했었지만 다른 것을 차치하고 교육의 인적인프라를 구축하고 확대한 것을 따져볼 때 기여한 바가 크다. 현재 부산지역에서 어린이 영상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강사진의 상당수가 이 영화전문강사풀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학교에서의 영화교육 경험을 토대로 학교 밖에서도 다양한 영상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편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중심으로 영상교육 강사진이 일부 꾸려지고 있으며 그 노력의 과정에서 지난 10월 교육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한 워크샵도 진행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사회운동의 차원에서 영상교육에 참여했던 강사진도 부산독립영화협회와 기타 영화단체에 소수 분포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전문강사풀제에서 초등학교에 배정된 일부 강사들을 제외하면 이들 영상교육활동가들은 성인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에 참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한 영상교육은 그 접근방법이나 내용이 성인, 청소년들과는 달라야 한다. 때문에 이 인적 인프라는 최소한 어린이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아직 초기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어린이 영상교육 경험을 공유하고 프로그램 및 교안 개발, 그리고 이를 적정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강사진의 재교육이 필요하다. 재교육은 활동가 개인이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되어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활동가 개인이 연구자인 동시에 교육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연구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각 활동가들이 어느 정도의 경험적 토양을 바탕에 두고 있어 재교육을 통해서 생산되는 프로그램 등이 실천적인 안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교육 관련 전문가 그룹이 참여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실 현재의 상황에서 어린이 영상교육에 대한 데이터는 각 활동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대부분이며 이를 평가하거나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교육연구회를 통한 개인 경험의 공유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Ⅳ. 마치며

어린이 영상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위에 제시한 과제 외에도 소통공간의 다양화, 사회전체의 어린이 영상교육에 대한 인식 제고 등 많은 숙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히 어린이들의 입장과 권리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점은 어떤 가치보다 앞선다. 어린이 영상교육에 대한 논의가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고자하는 단체의 입장, 강사진의 입장 등은 차후의 문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1월 중순에 시작될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어린이 영상교육 프로그램은 교육계의 요청으로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지원하고 이를 중심으로 각 단체와 강사진 개인이 네트워크로 구성될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어린이 영상교육을 이끌어 갈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요청한 교육계의 관심과 지원이 얼마나 뒷받침될지는 모르지만 구성될 네트워크는 교육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여 운영과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일시적인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이후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지속화 시스템의 구축 외에도 협의를 통해 마련할 프로그램 또한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수정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진행될 프로그램에 영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는 시청자미디어센터의 교육 방향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며 성공적인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자연과 만나는 아주 특별한 공간
2006-11-03 오후 3:23:45 게재

숲·하천서 볼 수 있는 물품 가득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정독도서관 쪽으로 오르다 보면 아트선재센터 옆에 체험환경교육용 교재를 판매하는 에코 숍 ‘홀씨’를 만날 수 있다. 숲이나 하천에서 어렵게 수집했을 법한, 친근하면서도 신기한 물건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환경체험용품 판매점 ‘홀씨이야기’에서 배우는 체험 환경교육 잘 하는 법.

알록달록 예쁜 물감으로 칠한 귀여운 모형 새가 주둥이와 꼬리를 아래위로 딱딱거리면서 ‘찌잇~ 치치칫 치치칫’ 새소리를 낸다. 심플한 모양의 부엉이 목각인형은 입술을 대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부엉부엉’ 하고 운다. ‘홀씨이야기’에 가면 이처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물건들이 눈길을 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특별한 소품들로 가득한 이 공간은 올 4월 문을 열어 지금 한창 자연과 소통하는 체험환경교육의 장을 꾸리고 있는 홀씨 이야기. 돋보기, 야외 현미경, 새 탐조용 망원경 등 각종 자연 체험용 교재는 물론 자연 퍼즐, 야생동물 소리를 내는 도구나 장난감처럼 가정에서 실내장식용으로도 좋은 소품뿐 아니라 동물 모양 필기구, 동물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 같은 팬시용품도 진열돼 있다.

◆아빠가 만든 체험환경교육 공간 = “홀씨이야기는 숲이나 강, 계곡 등지에서 발견한 각종 현장 교육용 교재·교구를 제작 유통하는 곳이에요. 교구 판매뿐 아니라 자연물 만들기 환경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이곳의 주인장은 숲 해설가로 활동하며 홀씨이야기의 다양한 체험환경교육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 양경모 씨(48). 지금은 훌쩍 커서 고2, 대학생이 된 자녀들이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적부터 고사리 손을 잡고 산으로 들로 자연탐사활동을 다녔다. 지금은 대안학교의 전설이 된 ‘두밀리자연학교’ 프로그램도 틈만 나면 자주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과 관련된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그런 곳에 아빠랑 같이 온 애는 우리집 아이뿐이었죠.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를 필요로 하는 기간은 아주 짧아요. 그 귀중한 시기만큼은 때 묻지 않은 정서로 자연과 교감하는 기쁨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양씨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자연이라는 선물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에코숍 인터넷 웹사이트(www.wholesee. com)에 쓰인 글귀 ‘자연,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리고 영어 조어 ‘whole+see’가 ‘전체를 본다’는 뜻인 것처럼 아이와 함께 자연을 제대로 체험하면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다 1998년 다니던 금융기관을 퇴직하면서 그동안 관심 있었던 생태교육을 다각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가졌고 오프라인 에코숍을 오픈하기에 이르렀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지의 국·공립 공원에 가보면 수목원 내 안내센터에 이런 환경물품을 판매하는 숍들이 입점해 있어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금 아침고요수목원에도 에코숍 물품이 판매되고 있죠. 차츰 늘려갈 계획입니다.”
양씨는 앞으로 자연학교를 운영하며 자연안내지도 선생님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싶단다. 현재 홀씨이야기 체험교육에 필요한 교구를 개발하고 상품 디자인과 판매 관리를 맡은 인원은 6명. 소규모 회사이지만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또 얼마 전 숲 해설가, 자연체험 안내자, 생태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자연교육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부설연구소도 출범했다.

◆호기심·창의력 자극하는 프로그램 = 홀씨이야기에 오면 다양한 자연 이야기가 펼쳐진다. 둥근 재활용 통을 이용해 천둥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 보거나 찰흙에 나무열매, 나뭇잎, 동물발자국 등 다양한 모양을 찍어 석고로 생물화석 표본을 만드는 재미있는 공작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자연물을 활용하다 보니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자극돼 재료로 활용되는 여러 가지 열매의 이름을 물어보는 아이들의 맑은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이 같은 자연물 만들기 프로그램은 숲에서 가져온 밀짚이나 나뭇가지, 솔방울 그리고 알루미늄캔 등 재활용품을 이용해 매장 내 자연 체험 공간인 ‘부엉이 둥지’에서 진행된다. 현재 요일별로 촉감놀이, 소리듣기 등 특성화된 체험놀이가 준비돼 있다. 참가비는 8000~1만원 선. 올 연말까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3시에 자연의 소리 만들기와 생물화석 표본 만들기 체험학습이 이루어질 예정이고 만든 작품은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실내 공작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홀씨이야기의 봄·여름 프로그램은 주로 민물고기 채집·관찰하기, 나이테 관찰하기, 하늘걷기 놀이 등 맨발로 흙을 밟고 따뜻한 자연의 촉감을 느끼는 야외 자연놀이. 따로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자연은 아이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자연을 호흡하는 가운데 아이의 창의력이 쑥쑥 커가요. 자연을 관찰하는 일은 꽃이 피고 지는 동안 시간의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보는 가슴 뛰는 일입니다. 춥다고 자연탐사활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죠.”
양씨는 도시에서 산다고 자연활동이 번거롭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라며 가을에 북녘에서 번식하고 남하 이동해 한국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들을 관찰해 보라고 권한다. 멀리 강원도 철원평야에 두루미, 독수리, 기러기만 떠올릴 것이 아니라 가까이 지하철 삼성역에 내리면 서울 탄천 하류에서, 한양대역에는 중랑천 하구에서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특히 도시에 있는 오리류와 같은 철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관찰하는 재미도 크다고 귀띔한다.
매장 안쪽에는 아담한 갤러리도 마련돼 있다. 한 달 단위로 테마가 바뀌는데 최근 나무로 만든 아기자기한 조각품이 눈길을 끌었던 ‘나무로 숲속 친구 만들기’ 전시에 이어 11월에는 야생동물을 주제로 발자국, 배설물 등의 포스터가 전시할 예정이다.

/조미나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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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의 현황과 과제

-지역사회 지원 체계 망 필요를 중심으로-

(사) 전지공협 부산지부장 김영민

1. 들어가는 말

“올해 두 살인 케빈은 냉장고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0일 독일 북부 브레멘의 영세민 아파트에서. 경찰은 시신에서 폭행 흔적을 찾아내고 마약 중독자인 그의 아버지를 살인.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했다. 케빈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버지와 살았다. 사회복지사들은 아버지가 아이를 돌볼 능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예산 부족 때문에 케빈을 보호시설에 맡기지 못했다. 일간지 디벨트는 독일 정부의 사회복지 예산 삭감이 사건의 원인이라며 "국가가 돈을 아끼려다 아이를 죽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13일, 독일 동부 츠비카우의 극빈 가정에서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네 살짜리 메메트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숨졌다. 조사 결과 너무 굶주려 몸을 지탱할 힘이 없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3년 전엔 독일 동부 콧부스의 빈민가 냉장고에서 데니스라는 네 살짜리 아이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모가 굶어 죽은 아이를 냉장고에 방치한 것이다. 이같이 엽기적인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극도로 가난한 실업자 가정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견고하다고 믿었던 사회안전망에 대한 독일 국민의 신뢰가 마구 흔들리고 있다.

독일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국가로 알려져 왔다. 전통적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부의 분배와 사회복지를 중시, 복지국가의 모범으로 통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국경 없는 신자유주의 경쟁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두를 위한 무조건적인 복지'는 사라졌다. '사회안전망'은 더 이상 모든 이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게 됐다.

실제로 "독일 인구의 8%인 650만 명이 빈곤층"이라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연방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아동 10명 중 1명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4년 연속 세계 최대 수출국가에 오른 독일의 현실이다. 케빈의 사건을 계기로 빈곤. 소외계층 문제는 독일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안건이 됐다.”

언론의 한 칼럼에서 인용한 글이다. 이 칼럼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빈곤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고 아니고 특정한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빈곤문제를 특정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로 확대하고 있다. 빈곤문제는 특히 제3세계를 비롯한 가난한 나라에서 더욱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으며 국민소득이 16000불이고 무역규모가 세게에서 12위라고 하지만 아직도 빈곤층을 비롯하여 소외된 이웃에 대한 사회적인 보호시스템과 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빈곤문제 특히 빈곤아동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는 오늘보다 더 행복한 내일 만든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동빈곤문제를 가지고 씨름해야 한다. 지금까지 공부방이 그 노력을 전개해 왔고, 지금은 지역아동센터가 바로 그 문제에 가장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가 매우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04년도 법제화 이후 지역아동센터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2006년도 12월 복지부 자료 - 전국에 약 2000여개) 열악한 국가적 지원이나 사회 안전망의 미비로 인하여 보편적 아동복지를 실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임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사회양극화와 아동빈곤문제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2004년 연두 초판에 '사회적 시한폭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새해 첫 내각회의에서 현재의 소득 양극화 상황을 되돌리는데 10년 이상 걸릴 것임을 시인했다며 “세계화의 공통현상이지만 한국의 소득 양극화는 규모나 속도 면에서 놀랄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정부 통계를 인용, 하위계층 10%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국가전체 평균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5년엔 41%였으나 2003년에는 34%로 떨어졌으며,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달 소득이 1천360달러 미만으로 빈곤 속에 살고 있는 인구가 2004년 현재 사상 최고인 700만명(15%)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같은 기간 상위계층 10%가 벌어들이는 소득이 전체 평균소득에서 점유하는 비율은 199%에서 225%로 급증했다고 한다.

뉴스위크는 한국이 1997년 IMF 위기 이후 도입한 신자유주의식 시장개혁으로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간 격차가 더욱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위의 자료는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리고 그 와중에서 아동들의 상황이 어떠한 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양극화 자체가 아니라 그 정도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양극화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문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양극화가 사회문제로 등장한 이유도 없던 양극화가 생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양극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은 물론이고 이를 방치할 경우 그 정도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또 이 양극화는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을 꺾어버리고 자포자기 하게하며, 욕구 불만을 가중시킨다. 그리고 희망을 상실하고 자포자기한 사람들, 욕구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집단화 되면 범죄를 증가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또 사회의 분열과 사회적 불안을 야기한다. 또 빈곤 계층이 두터워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교육에 투자하는 돈은 줄게 되고 이것이 교육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교육의 양극화는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사회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빈곤아동이다.

2.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수행

1) 지역아동센터의 성격

지역아동센터는 민간에서 시작하여 정부가 제도화한 독특한 사회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아동센터는 처음에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공부방은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도시빈곤 지역에서 빈민운동가들이 그 지역 아동들의 보호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1997년 말 IMF 위기를 계기로 가족해체, 위기가족, 결식문제 등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공부방과 공부방 아이들은 사회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후 공부방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증가하면서, 아동의 빈곤문제를 사회 문제화 하고자 하는 일부 공부방을 중심으로 공부방의 명칭과 기능을 지역아동센터로 변경하고 법제화 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노력은 2004년 1월 29일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 지역아동센터가 법정 아동복지시설 중의 하나가 되는 결실로 나타났다.

이러한 개정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교육,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 제공하는 시설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지역아동센터는 빈곤아동만을 위한 정책은 아니지만, 주로 저소득 밀집 빈곤지역을 우선적으로 지원 선정하도록 하고 있어 실제 운영은 빈곤아동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의 교육 및 급식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운영비 지원을 현실화하여 2007년부터 월 2백만 원으로 1800개소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재개정 아동복지법의 지역아동센터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사업실시 주체는 지역사회아동을 대상으로 1년 이상 보호․교육․급식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실적이 있는 사회복지법인, 종교법인 등 비영리법인,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가 운영하는 공부방 및 시장․ 군수․ 구청장이 우수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개인이다. 지역아동센터의 대상은 방과 후 부모에 의한 보호와 학습지도가 적절히 행해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초등 및 중등학교 학령기의 장애․ 비 장애아동(단, 미취학 아동 및 중퇴 아동 포함) 등과 사회속의 모든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이다.

지역아동센터의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아동의 안전한 보호 프로그램, 아동의 학습지도 프로그램, 필요시 아동에 대한 급식, 아동의 일상생활에서의 적응프로그램, 아동 및 그 가정에 대한 상담 프로그램, 아동 및 그 가정에 대한 정서적 및 심리적 지지 프로그램, 학교생활 적응을 위한 대인관계훈련(자아 존중 감 훈련) 프로그램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의 설치는 시설기준과 운영기준이 충족될 시에 신고에 의하여 설치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서비스의 질과 운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과 시설기준을 마련하고, 지역아동센터 표준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수요자들이 처한 다양한 현실과 욕구에 기초하여 좀 더 다채로운 유형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며, 이들의 체계적이며 안정적인 운영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설치 가능한 지역아동센터의 유형을 정리하여 보면, 어린이집에 부설된 형태의 지역아동센터, 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한 지역아동센터, ∙아동복지시설을 통한 지역아동센터, 초등학교시설을 이용한 지역아동센터, ‘공부방’을 통한 지역아동센터, 이외 주민자치센터나 기타 종교사회단체의 시설을 이용한 지역아동센터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고에서 운영비가 지원됨에 따라 수준 미달의 센터들이 난립하고 빈곤아동종합복지시설의 기능을 수행하는 지역아동센터가 단순히 단체급식소로 추진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센터 운영자의 의지에 따라 센터별로 프로그램이 상이하여 표준 프로그램이 부재하고 지역특성이나 지역아동센터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운영비 지원도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농어촌과 같이 지역 혹은 인근 지역에 보건․ 복지․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에는 종합적인 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추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과 인근 수도권에서 문화 활동에 대한 접근은 비교적 용이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문화 활동을 위한 추가 예산(예: 교통비, 숙박비 등)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빈곤아동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통합적인 서비스를 위해 전문 인력의 개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를 위한 예산 지원도 점차 필요해지고 있다.

2)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보호, 문화, 심리 정서적 지원, 학습지원을 통합한 아동종합복지센터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학습지원의 기능만이 부각되었지만, 이제는 지역아동센터가 명실공히 아동을 위한 종합복지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의 학습과 교육을 지도하는 방과 후 아동지도보다, 빈민지역, 공단지역, 농어촌지역, 광산지역을 중심으로 공부방이 없어서 방치된 아동들을 위한 단순히 교육 공간 개념의 공부방 활동보다는 넓은 의미와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지적 기능으로 아동보호의 역할, 가정의 지원 및 보상의 역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기능 및 빈민주민과 아동 청소년을 위한 문화 사업을 하는 곳이며 나아가서 아동을 포함하는 생태체계적인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적극적인 지역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2002년 5월에 개최된 유엔아동특별총회에서 결의된 기본행동 계획은 바로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수행의 준거 틀이 될 수 있다. 즉 만 18세까지의 아동들은 어느 지역에 살든 아동의 고유의 권한인 생존권, 발달권, 참여권, 복지권, 교육권 등을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빈곤지역 아동의 경우 경제성장과 경쟁과 능력 및 자본의 논리만이 최우선시 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수행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빈곤아동에 대한 유엔아동특별총회의 행동계획은 빈곤퇴치에 모아져 있다. 빈곤아동들과 삶을 같이하면서 빈곤 퇴치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내용,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아동들을 훈련시켜야 할 과제 등에 대한 정확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지역아동센터는 이러한 일에 적극 참여하여야 하고, 빈곤아동의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정확한 상황과 실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동들의 참여권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역아동센터로서의 공부방에서는 빈곤아동들의 총회를 이루는 기초단위를 만들어 스스로 활동하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자신들의 권리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수행의 내용을 보면, 일차적으로 빈곤 아동 및 그 가족에게 시급한 기본적 서비스 ―급식 및 도시락 지원 등을 통한 영양 보충, 장학금 및 학습 지도를 통한 교육복지, 질병치료와 예방의 의료지원서비스 등―등을 제공할 뿐 아니라 나아가 가족에 대한 자활과 생계를 지원하고 부모 상담 및 교육 등과 같은 가족복지서비스, 전문 사회복지사 파견과 함께 다양한 기법과 서비스 연계를 통한 아동의 심리․정서적 치유, 바른 생활, 청결, 생존자립, 사회적응 등과 같은 기본생활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며, 공동체 훈련,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특별활동을 통해 문화적, 정신적 빈곤을 치유하는 서비스 역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물서비스나 현금서비스에 의존하지 말고 아동복지 통합적인 접근체계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종래의 공부방 활동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체계적인 지역복지 및 지역운동의 중심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아동센터로서의 공부방사업을 심화 혹은 질적 향상을 이루어야하는 가장 큰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빈곤 지역 사회 안에서의 아동․청소년의 발달권 보호

(2) 가족의 구조와 기능의 변화 및 약화에 따른 생존권의 보장

(3) 방과 후에 혼자 집에 있는 아동이 30%이상이고 빈곤지역은 거의 80%이상이 다. 현재 복지관이나 공부방, 종교시설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보육시설은 530여개 로 아동보육시설에 대한 사회적 기반이 취약함. 아동의 안전성이 문제됨.

(4) 빈곤가족의 생태환경을 자활을 이루고 빈곤을 퇴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적자원, 물적자원 사회간접자본을 스스로 활용하고 조직화하지 못하므로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를 빈곤가족 중심으로 재조직화하기 위한 교두보 즉 지역사회조직 운 동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세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5) 가출 비행 일탈행동을 사후 해결하는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예방차 원에서 예방적인 복지 기능을 담당하고 사적부문에 맡겨졌던 아동보육에 대한 문제 를 공적부분으로 이관하여 민간의 역할과 전문성, 정당성을 강화해야 하는 필요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역아동센터는 빈곤가정 아동의 빈곤으로 인한 불평등, 박탈감, 소외감을 사회적 서비스를 통해 완화하여 아동의 미래에 긍정적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 지역아동센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차세대의 빈곤 탈출은 한 기관이 완성하기엔 많은 한계를 지닌다. 근접한 자원들이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할 때, 빈곤아동들의 빈곤 탈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파편화 되어 있는 지역 자원들의 서비스가 연계되어 중복 지원을 피하고 빈곤가정의 문제 상황이 통합적인 서비스로 지원 관리됨이 바람직하다. 다시 말하여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의 여러 자원을 아동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보육시설, 아동상담소, 아동학대예방센터, 지역사회복지관, 청소년자활지원관 등 관련 전문기관과 지역아동센터 내 아동사례관리자 등과의 상시 업무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서비스 조정과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 자원의 통합적 서비스는 다각적인 서비스 제공과 빈곤아동의 자원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함으로 아동의 건강한 발달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3. 보편적 아동복지 실현을 위한지역사회 지원 체계 망.

지역아동센터는 지역사회 내의 저소득층 아동에게 정서·학습·급식 등 통합적 서비스가 가능한 사회복지시설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 후조치를 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적 비용 면에서도 소외된 아동들에게 예방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지역사회는 아동을 둘러싼 직접적 환경요소로서 아동의 행동, 태도, 가치관 등에 많은 영향을 준다. 즉, 아동이 성장하는 발달 환경으로서 지역사회는 아동의 사회화에 기여하는 교육적 기능과 함께, 아동들이 건전하게 육성되는데 필요한 좋은 사회 환경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문제행동을 사전에 막는 예방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최근에 지역사회에 대한 의식의 감소나 지역사회의 해체 그리고 유해환경의 만연 등으로 교육적 기능을 상실한 채 오히려 아동의 문제행동을 조장하거나 그 원인으로 기능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역사회의 빈곤, 지역사회 친밀도 및 조직화 정도, 지역사회의 규범, 약물이나 마약복용의 가용성 등은 아동의 문제행동과 직접 관련되고 있어 아동문제를 조장하는 특성을 갖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지역사회는 아동의 건전한 성장에 보호요소(protective factor)로서 기능을 할 수도 있고 위험요소(risk factor)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아동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한편으로는 지역사회를 아동의 보호육성의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특히 지역사회 단위에서 아동들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을 갖춤으로써 그들이 위험에 빠뜨려짐을 방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의 아동복지 기능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구축방안을 모색하려면 우선 지역사회의 의미와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개념을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1) 지역사회의 의미

지역사회라는 용어처럼 다양한 상황에 응용되어 다양하게 사용되는 용어가 많지 않다. 따라서 지역사회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갖는 다음과 같은 성격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첫째, 지역사회의 역사, 인구 집단의 특성과 크기, 인구 밀도, 지역사회를 구성하 는 가족들의 구조적 특성 등과 같은 지역사회의 기본적 특징들에 대한 이해 가 필요하다.

둘째,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육체적, 사회경제적, 정서적, 교육 욕구 등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지역사회의 기능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셋째, 지역사회에서 충족되어지지 못하고 있는 욕구가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떠한 구성원들의 욕구가 문제가 될 만한 수준에서 충족되어지지 못하고 있는가 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넷째, 지역사회의 욕구와 관련하여 지역사회가 갖는 다양한 자원 체계에 대한 이 해가 필요하다. 자원은 인적 자원, 물적 자원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지역사 회의 기본적 가치체계, 구성원들 간의 관계, 사회 제도, 기술과 지식 및 정 보 축적 등도 포함된다.

다섯째,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지역사회가 갖는 강점과 제한점을 포함하는 전반적인 지역사회의 역량, 지역사회의 변화에 대한 수용 정도 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지역사회의 의미는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내용들이 강조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지역사회 내외의 자원의 상황에 대한 이해, 그리고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필요한 연결망 구조 등이 빈곤아동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을 구축하는데 효과성과 효율성의 제고 측면에서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본다.

2)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이해

아동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은 지역사회 보호체계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아동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개념은 아동 개개인이 부딪히는 각종 사회적 위험에 대하여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지역사회에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그리고 공사가 협력하여 보호해 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OECD의 보고에 의하면, 지역사회에서 아동복지를 위한 노력이 실패하는 경향성이 높고 그러한 실패의 이유를 다음에서 찾는다.

첫째,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

둘째, 필요한 서비스가 없는 것의 문제,

셋째, 제공되는 서비스의 지속성의 부재,

넷째, 서비스들의 사전 문제해결 지향이 아닌 사후 문제해결 지향,

다섯째, 서비스 노력들의 책임성 부재 등이 강조된다.

즉 과거의 해결방안이 갖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더 이상 간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새로운 접근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지역사회 문제해결 노력의 네트워킹(networking)과 통합(integration)의 개념이다(OECD, 1996).

협조(cooperation), 협력(collaboration), 조정(coordination)이라는 용어로도 말해지는 이러한 대안은 이제 각 지역사회에서 아동의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이러한 대안적 활동이 유기적으로 전개되어지지 않는 한 이들의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즉 변화하는 가족의 구성과 기능, 학교의 기능, 그리고 사회경제적인 구조 속에서 위기에 놓인 아동들의 문제를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민간기관들의 다양한 노력들이 제각기 일부 부분 만에 초점을 맞추는 과거의 방식에 머물지 말고 보다 체계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통합되도록 함이 강조되고 있다. 즉 네트워킹과 통합의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동의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구축방안

일찍이 Gilbert와 그의 동료들이 이상적인 사회복지서비스 전달체계의 요건으로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을 제시(Gilbert, Specht, & Terrell, 1993)한 바, 이를 지역사회 지원 체계망 구축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첫째, 지원 체계망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로 대두되는 서비스의 분산화 또는 파편 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역사회 차원에서 아동복지를 위한 각종 서비 스는 통합(integration)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아동이 지역사회 내의 한 기관에서 서비스를 받고 다른 욕구나 문제의 해 결을 위해서 다른 기관의 서비스를 쉽사리 받을 수 있도록 지원체계망은 서비스의 지속성(continuity)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아동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지역사회 내의 적절한 기관에서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에 대한 접근용이성(accessibility)이 확보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은 서비스 수혜계층인 아동들이 서비스 제공기 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책 임성(accountability)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 4가지 원리에 맞춰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구축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통합의 원리

아동을 위한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을 구성할 때 적용되는 통합의 원리는 무엇보다도 정부기관과 민간기관 간의 상호연계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복지서비스와 관련하여 정부기관과 민간기관의 기능 및 역할 분담 형태를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평행봉모델(parallel bars model)과 사다리모델(extension ladder model)이 있다(Kramer, 1981). 평행봉모델은 정부와 민간기관은 상호 독립적으로 별개의 체재로 운영되고 민간복지기관은 본래의 설립취지와 운영형태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한편 사다리모델은 정부기관이 최저 수준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간기관은 정부기관의 서비스를 보충하고 확대하는 상호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복지서비스가 어느 한 부문의 기관에 의해서 전담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복지국가에서도 정부와 민간의 관계는 동반자(partnership)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행봉모델은 현실 적용력을 잃고 있다. 따라서 사다리모델은 동반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절한 이론적 모델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복지와 민간복지의 서비스 망을 보면 비록 이념적으로는 사다리모델에 의한 동반자관계를 강조하지만 현실적으로 정부와 민간은 별개의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공체계와 민간체계의 구체적인 연계 방안이 모색되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양 체계의 연계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정부기관의 본질적인 기능과 민간기관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부기관은 서비스 대상자에 대해서는 일반적이고 일률적인 적용이 가능하고 서비스 제공방법에서는 전문성보다는 적절성과 형평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민간기관은 특수적 문제를 갖는 대상자에 다양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그 기능이 정립되어야 한다.

적절성

형평성

<정 부>

일반적

(일률적)

(효과성)

특수적

(개별적)

(효율성)

<민 간>

다양성

전문성

<그림> 정부와 민간기관의 역할분담

그리고 통합의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통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아동복지와 보호를 위해 지역사회의 자원을 네트워크화 하는 허브기관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다. 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욕구를 지역아동센터의 자원만으로 대응할 수 없다. 주거보호, 상담, 문화여가, 취업, 직업훈련, 교육, 법률, 의료서비스 등 아동에게 지원될 수 있는 다양한 지역사회 자원을 개발하여 네트워킹 하여야 한다. 이러한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과 비영리부문 뿐 아니라 영리부문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개발하여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즉 지역사회 지원체계망 구축을 위해 대기업 뿐 아니라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 회사 등의 참여를 촉진하여 기업의 물적 자원 뿐 아니라 인적자원을 활용하여 직업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지역아동센터와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한편,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의 통합과 관련하여 유념해야 할 것은 일원적 방식의 성급한 확대를 지양하고 다양한 접근방식과 실험을 통해 성공모델을 창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합지원체계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관련자들이 지역 아동의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지역자원을 개발, 기능적으로 연계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2) 지속성의 원리

아동이 지역아동센터에서 서비스를 받는 동시에 또 다른 욕구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른 기관의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속성의 원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례관리(case management) 접근이 필요하다. 사례관리자는 기관의 서비스 범위를 넘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에 접근하여 아동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도록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고 점검하는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지역아동센터가 개별 아동복지기관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학교, 기업, 언론 등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종합적인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센터 내 전문 사례관리자를 상당수 배치해야 한다.

(3) 접근용이성의 원리

지역사회 지원체계망을 구성할 때 적용되는 접근용이성의 원리가 지켜지려면 아동이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내에 가깝게 위치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공공 이용시설 뿐만 아니라 민간 이용시설들의 경우도 절대수의 부족으로 지역별 균형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 단위별 시설현황 및 아동의 욕구를 파악하여 부족한 지역아동센터 시설부터 확충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지역사회 단위 종합계획이 우선되어야 한다.

신규로 시설을 확충할 경우에도 지역별 시설분포 현황 및 대상자 특성에 따라 일반적․보편적 서비스 제공시설을 세울 것인지, 아니면 전문적, 특화된 서비스 제공시설을 세울 것인지, 또는 지역 특성으로 보아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화된 시설을 세울 것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이들 시설설립에 따른 재원이나 인력확보 문제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4) 책임성의 원리

지역사회 지원 체계망을 구성할 때 적용되는 책임성의 원리는 아동을 수동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주체로 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지원체계는 아동에 대한 정보 부족, 권위자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해 실제 지원이 필요한 아동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었던 점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아동이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유익한 정보를 적극 제공하는 아동 정보 문화 사업에 정부가 보다 역점을 두어야 한다. 위기아동에게는 쉼터, 지원센터, 수련관과 같은 시설이나 아동복지전문가의 정보보다는 ‘맞춤형 정보’가 필요할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아동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보다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아동 정보 문화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

4. 나가는 말

현재 지역아동센터는 몇 가지 포기할 수 없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 하나는 지난 1960, 70년대 이후 도시빈민지역에서 주민운동가와 자원 활동가, 작은 교회공동체들에 의해서 태동한 공부방의 역사성을 이어 받아 그 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사회에서 빈곤아동의 교육과 복지 그리고 인권문제에 대해서 관심하면서 이들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고 이를 확산하는 빈곤아동 교육, 복지, 인권신장을 위한 단체로서 역할하는 것이다.

둘째로 현재 빈곤아동의 교육과 복지, 인권문제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 정책집단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이를 위한 전문적인 정책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빈곤아동의 교육과 복지 그리고 인권신장을 위한 실천적 현장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지역아동센터는 이후 빈곤아동의 교육과 복지, 인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는 정책집단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지금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다소 나아졌다고 하지만 민간과 기업의 지원 또한 부적할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가 안정되고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행, 재정 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문제 또한 지역아동센터가 안고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때문에 이후의 활동은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정부의 행, 재정 적인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자원을 끌어 들이는 일,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과 훈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아동센터들을 지원하고 지역아동센터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체 지역아동센터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해서 스스로 투명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전국적으로 전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리하면 지역아동센터는 빈곤아동의 교육과 복지 그리고 인권 보호하고 신장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지니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빈곤아동의 교육과 복지, 인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는 정책집단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분명하고 확고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정부의 행, 재정적인 지원 확대, 민간자원의 확보,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과 훈련 등 지역아동센터의 권리를 보호, 지역아동센터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보장하여 지역아동센터의 위상을 높여 가야만 한다.

<참 고 문 헌>

박경양(2006) “지역아동센터의 정체성과 방향” 『전국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협 의회 지도자 워크샾 자료집』.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 협의회

강명순(2006). “지역아동센터의 현황과 과제”. 『한국 빈곤아동과 지역복지력 구 축 심포지엄 자료집』.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일본기비국제대학 사회복지대학원‧무꼬가와여자대학사회복지학과.

박인선(2004). “공부방의 현황과 지역아동센터의 과제”. 『지역아동센터 현황 과 과제 자료집』.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정익중(2004). “지역아동센터의 향후 과제”. 『지역아동센터 현황과 과제 자료 집』.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조흥식 외 (2000). 『청소년보호체계 구축을 위한 지역사회조직 전략』. 청소년 보호위원회.

허인영(2002). “지역아동센터로서의 공부방: 왜 지역아동센터인가”. 『사랑나 눔으로 부스러기만나기』(2002년 나눔기관 실무자 교육자료집).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모바일 게임 그리고 도시 찾기


도시를 배경으로 한 GPS 기반의 게임 프로젝트는 그 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암스텔담에 위치한 Waag Society는 오는 2월, 암스텔담이란 도시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모바일 파일롯 게임 frequency 1550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전 작업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이 게임은 11-12살 정도의 어린이들의 타켓으로 하고 있다는 점. 중세시대의 순례자가 되어 과거에 묻힌 신성한 보물을 찾아나서는 이 게임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암스텔담이란 도시를 둘러싼 정보와 이야기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제시하여야 한다. 배움이란 항상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어야 한다는 Waag Society의 신념을 풀어내는 프로젝트이다.


출처 : 아트센터 나비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는 나무

 


도시의 어두운 코너나 골목에 위치한 건물 외벽에 일몰때부터 일출때까지 나타나 빛을 밝혀 주는 나무가 있다.  3x8 미터 크기로 프로젝션 되는 이 나무는 실제 바람이 불면 그 강도에 따라 나무가지와 잎들이 흔들린다. 특히 잎들은 사운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나 자동차 경적 소리에 반응하여 나뭇잎이 떨어지게 된다.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길거리에 프로젝션 된다. 이처럼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어두운 저녁 도시의 거리를 밝게 만들어 준다. "2005 the European Design Show"에 전시되었던 디자이너 Simon Heijdens 의 설치 작품으로, 오는 12월에 있을 "Radiator: Restival for New Technology Art"에도 출품예정이다.

나만의 디지털 영화 만들기 : Capture Wales digital storytelling Workshop

 


BBC Wales에서는 디지털 스토리텔러이자 BBC Capture Wales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Daniel Meadows와 함께 매달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이 워크숍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 사진, 물건 등을 소재 삼아 디지털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참가자들은 전문가들로부터 대본을 세밀하게 다듬고, 목소리를 녹음하고, 배경음악을 집어넣고 스틸이미지와 비디오를 편집하는 작업기술에 대해서 배우면서 영화를 직접 만들게 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영화는 웹에서뿐만 아니라 BBC TV에서 볼 수 있고 BBC Radio Wales와 Radio Cymru에서 들을 수도 있다. 또한 영국 전역에서 디지털 위성 TV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출처 : http://www.bbc.co.uk/wales/capturew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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