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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2 대안학교 악동들과 함께한 남도기행 (2)

합천자연학교와 대안학교 우다다 아이들 18명과 함께 전라도 소리기행을 떠났다. 모처럼 휴가를 가는 곳이 전라도라  즐겁고도 안타깝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이 거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랜트카 뒷면에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붙였더니 죄송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해남-강진-보성-벌교'의 소리꾼을 만나 소리를 체험하고 대흥사, 다산초당, 명사십리해수욕장, 보성차밭, 태백산맥 문학관 등을 둘러보는 '전라도 소리기행'이었다.

대흥사 맑은 계곡에서 해남의 소리를 배우다.

해남 대흥사(大興寺,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도착했다. 휴가 끝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한 전라도 첫 여행지로서는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얼마전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유선관은 예약이 모두 찬 상태라서 근처 민박집(개울민박)을 잡았다.
 
시골 민박집이지만 내부에 화장실과 싱크대가 있고 정원은 주인을 닮아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성수기에 집 한 채(방2칸)를 빌리는 데 15만원정도 지불했으니, 인심이 좋다. 아이들은 옷을 갈아 입자마자 계곡으로 뛰어들더니 '가재다' 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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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물이 맑다고 하지만 계곡에서 가재를 잡아보기는 처음이다. 바위를 뒤졌더나 정말 그 가재였다. 아이들은 가재를 가지고 놀다가 방생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초승달이 대흥사 계곡에 안길 때, 해남에서 소리꾼 두 분이 찾아왔다. 이병채(소리) 선생님과 박필수(고수) 선생님은 경상도에서 온 악동들을 위해 짬을 내주었다. 풀벌레 소리와 계곡물 소리가 적절하게 어둠을 적실 때, 이병채 선생님의 소리가 대흥사 계곡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소리에 별 반응이 없다가,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가 싶더니 보슬비가 내리고, 소나기가 내리는가 싶더니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처럼 변화무쌍한 선생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큰 아이들은 얼쑤 하면서 장단을 넣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병채 선생님의 단가,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을 들고서 진도아리랑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산과 초의선사 그리고 민주주의 나무

다음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그늘을 따라서 대흥사 길을 산책했다. 새벽 운동이 익숙한 악동들은 대흥사를 지나서 일지암(一枝庵을)까지 축지법을 쓰듯 한달음에 올랐다. 일지암은 정약용과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가 유학과 불교를 교류했던 곳이다.
 

일지암에 앞 뜰에 앉아서 일출을 보는 악동. 제법 폼이 그럴 듯 하다.

 
초의선사는 다산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초의선사는 다산을 따라서 주역을 배웠는데 제자들은 그런 초의선사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초의선사는 차 속에 부처의 진리가 있다고 했을 정도로 차는 물론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면서 시와 그림을 좋아하는 열려있는 승려였다.  

다산 역시 조선의 닫힌 주자학을 비판하고 실학의 세계로 나아갔다. 다신의 진보적인 실천학문의 바탕에는 중국을 천하로 받드는 화이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각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신이 깔려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어쩜 자연스러운 지도 모른다. 

다산과 초의선사가 교류했던 일지암


대흥사에서 일지암까지, 아침부터 조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성가실 법한데 지나가는 스님들이 나무라지 않는다. 아이들이 인사에 합장도 해주고 어디서 왔냐고 물으며 길을 일러주신다. 

전라도에 있는 절 치고는 대흥사는 제법 규모도 있지만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와 있듯 포근하다. 마치 맏며느리감 같다. 아침햇살은 그 며느리의 미소처럼 따사롭고 만난 스님들도 그렇다. 백성에 의한 군주, 군주를 통한 정치. 그 중에서도 백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정약용의 이미지가 교차된다. 그를 맞이했을 초의선사의 미소가 컷 인 한다.

다산은 '아래부터 위로', 백성은 하늘의 아들이고 주군이라는 당대에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사상은 주자학에 바탕을 두고 엄격한 신분질서를 강조하던 노론 세력과는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다산의 정치철학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정치사상의 씨앗이다. 씨앗은 200년이 지나서야 두 그루의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고 또 다른 씨앗을 땅에 뿌리고 자연으로 갔다. 나무를 가꾸는 일은 자연의 몫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약용은 천자를 하늘이 선택하기도 하지만, 백성이 천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 논리를 반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침운동에 지친 아이들을 내려보내고 절간을 이리 저리 구경하다가 대웅전에 마련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나무에 분향을 했다.


대웅전 섬돌을 내려오다가 오른쪽에 심어진 청아하게 생긴 단풍나무를 보았다. 문득 민주주의 나무라고 부르고 싶다. 여름 내내 하늘(백성)의 기운을 잔뜩 받아 푸르게 무럭무럭 자라다가, 가을에는 제 몸을 사르며 붉은 빛으로 땅으로 돌아가는 이 나무는 내가 아는 두 나무와 닮았다. 

민주주의가 붉든 푸르든 그 무슨 상관이람. 여름이면 푸르고 가을이면 붉다. 그게 이치다. 운명인것처럼. 붉은 가을에 대흥사에 다시 올 수 있다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싶다. 대흥사의 깊어가는 하늘처럼 다산 정약용과 두 나무의 사상을 배워서 내 자람의 깊이를 가늠하고 싶다. 

대흥사 대웅보전 앞 단풍나무. 나무이름이 참 예뻤는데 기억이 안난다.



씁쓸한 다산초당에서 

일지암을 갔다 왔으니 다산초당(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들렀다. 아이들과 어렵게 산을 올랐는데 초당이 와당으로 변해있는 게 영 실망스럽고 씁쓸하다. 다산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보면 '유배 온 줄 알았는데 호강하며 글이나 썼겠네' 하고 말할 것 같다.

깔끔한 현대식 기와집으로 복원된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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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왼쪽 초가집이 다산초당이고 오른쪽이 동암이다.


더욱 웃긴 건 다산초당에 다산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그 안에서 차 체험을 하고 있다. 한 잔 마시면서 한복을 입은 안내요원과 이야기 하는 데 아깝지 않은 돈(천원)이지만, 다산이 기와집에서 풍류를 즐길 여유가 있었을까?

퀴즈 : 다산의 목민심서는 기와집에서 완성되었을까요? 아니면 초가집에서 완성되었을까요? 초당의 초는 한자로 超일까요? 아니면 草일까요? 

초호화판으로 바뀐 다산초당에서 풀을 뜯어 먹고 난 기분이랄까? 다산이 상품이 될 것 같으니까 여기저기서 우려먹는데 아무리 좋은 차도 계속 우려먹으면 쓰다는 사실을 모를까? 더 씁쓸한 건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최고 관료가 이곳을 왔다 갔다고 한다. 
  
그래도 그곳에 가면 다산이 초당을 떠나기 전에 썼던 글은 바위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글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당히 획이 곧고 날카롭다. 썩어 빠진 관료들을 향해 거침없이 일침을 놓았던 그 나무의 가지와 닮았다. 

다산초당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동암(송풍루) 역시 기와집으로 복원되어 있다. 퀴즈를 갈무리 하자면 다산은 지인이 마련해준 작은 초가집 동암에서 2천여권의 책을 읽으면서 목민심서를 완성했다.  

다산은 글을 쓰다가 울쩍한 날에는 백련사에 올랐다. 내가 아는 이는 봉화산 정토원이라는 곳을 자주 갔지 아마. 백련사를 오르는 길에서 멀리 강진 바다가 보인다. 다산이 그의 형(정약전)이 유배된 흑산도를 보며 그리움에 사무쳤던 곳이다. 물론 정자는 실제 존재 하지 않았던 곳이다. 
 

동암 옆 정자. 형제의 정이란 건 피를 나누지 않아도 버금간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분신을 잃은 것 같다며 전생에 형제가 아니었을까 했을 정도로 슬퍼했다. 지역감정을 넘어서려고 했던 두 형제의 이야기가 서둘러 갈무리 된 것이 아쉽다



 


서편제와 동편제, 우리소리 경연대회


여행 마지막 숙박지는 보성군에 있는 제암산자연휴양림. 나루호가 발사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보성군서편제보존회 회장님으로부터 판소리에 대한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웠다.

섬진강 동쪽 지방(곡석, 구례, 남원)은 동편제, 서쪽은 서편제(보성, 진도, 순천)로 나눈다고 한다. 동편제는 꾸밈이 적고 맺음이 분명하고 힘이 있다고 보면, 서편제는 애절한 가락이 많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직접 서편제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여행 기간동안 동행한 홍순연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소리를 배웠기 때문에 이제 아이들의 소리를 들어볼 차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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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이들은 제암산자연휴양림에서 혹독한(?) 판소리 수련을 했다.


우리소리 경연대회는 3명이 1조가 되어서 판소리 춘향가의 한대목인 '사랑가'를 부르는 것. 총 6개 팀이 출전하였고 합천자연학교의 막내둥이 바우가 낀 모둠이 일등을 차지했다. 바우조는 그 상으로 설겆이를 면할 수 있었다.

                 

3박4일, 마지막날 벌교에 들러서 꼬막정식을 먹고 태백산맥 문학관에 들렀다. 기행 기간 동안 기념관의 작태를 보아온 지라 그곳도 그럴까 싶어서 손사래를 쳤는데 다행히 작가의 정신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었다.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아이들에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추상적인 문구가 시각적으로 실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학이 어떻게 삶과 소통할 수 있는지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층 전시물을 둘러보다가 아이들이 몰려간 곳은 2층 도서관이었다. 그곳에 태백산맥(만화)을 판타지처럼 읽고 있는 아이들을 눈망울을 보면서, 문학이 재현이 아닌 실현이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짧지만 행복했던 기억을 이제사 블로그에 올릴 수 있어서 무거운 짐 하나는 든 것 같다.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을 가득 안고서 블로그에 재현해 놓은 듯한 이 야릇한 기분을 접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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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 있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작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원고지에 한 문장이라도 써 보는 체험을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옳고 그르든, 서툴든 세련되든 그게 자신이 원하는 바람 혹은 타인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는 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오며 가며 다녔던 곳과 맛집

해남의 별미 <토종닭 코스 요리>

아이들과 단체로 저녁을 먹으러 간 곳은 대흥사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한적한 들판에 있는 고수골가든이라는 곳이었다. 간판이 없어서 네비게이션이 아니었다면 찾기 힘들다. 해남 갈비찜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소문난 곳에 먹을 것 없다고 해남에 사는 지인이 소개를 해준 곳이다.
닭을 회로 먹어보기는 처음이다. 비릿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기보다 고소하다. 토종닭 1마리를 4가지 코스요리로 맛볼 수 있다. 처음에는 닭똥집 비슷한 부위가 육회로 나온다. 다음으로 닭육회, 무엇보다 닭불고기는 닭갈비보다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백숙과 죽이 나오는데, 백숙은 앞 코스에서 살점을 다 내어준 지라 뼈만 있지만 쫀득했다.
이름 : 고수골 가든
위치 :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골프장, 윤선도 유적지 방향)
전화 : 061-536-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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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 케이블카

대흥사에서 10여분 떨어진 곳에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두륜산(703m)을 오를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진도는 물론 제도도까지 볼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무들이 온통 참나무과 활엽수들이다. 지구 온난화의 이유도 있겠지만 200년 전 정약용과 정약전이 예견한 조정의 송림정책을 비판한 대목을 참고해도 좋을 듯 하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책에서 몇 구절 인용한다.   

백성들이 나무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편안한 길이 나무가 없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인 소유의 산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없게 되었다. - 정약전 <송정사의>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재발췌

생각건대 살림을 사사로이 기르는 까닭은 그것을 사사로이 사용하고자 함이다. 그 벌채를 금하기를 봉산(나라에서 사용하기 위해 벌채를 금한 산)과 같이 한다면 어느 누가 산림을 가꾸겠는가. 날마다 매질하면서 산을 가꾸라고 요구해도 오히려 가꾸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닷가의 모든 산이 벌거숭이 아닌 게 없고 오직 귀족들의 분묘에만 어느 정도 나무가 자랄 분이다. <목민심서> 공전 산림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재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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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