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14 <조선명탐정>노론벽파의 정수리를 후려치다.
  2. 2008.07.07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정조시대 천주교가 탄압받은 이유

각시투구꽃. 수줍은 여인이 망토를 두른 것처럼 단아하지만 강한 독을 지니고 있는 이 꽃은 악의꽃이지만 약재로 유용하게 쓰인다. 또 각시투구꽃의 투구 모양의 꽃은 천주교에서 미사포를 쓴 여신도를 떠올리듯 이 영화는 천주교 탄압이 급심했던 정조시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제주도 대정읍 동일리 9번지에 있는 ‘정난주(명련) 마리아 묘. 영화속 임씨부인(한지민)은 다산 정약용의 이복 맏형이자 그의 딸인 정명련이 연상된다. ‘백서사건’으로 남편은 능지처참 당하고 그녀는 관노신세로 전락하여 제주도로 머나먼 유배길에 오른다.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그녀는 추자도에서 두살난 두 아이와도 이별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보기

정조시대 지식인들은 천주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남인의 스승이자 실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익 등 남인들은 천주교 서적을 서양학을 뜻하는 서학으로 부르면서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이익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보고 서학에 대해서 천문, 지리, 수학, 역법 등 과학이론은 적극 받아들이면서 종교이론은 불교와 같다고 배격하는 자세를 취했다. 서학에 대한 이익의 이런 자세는 남인들의 기본 자세가 되었다. 그러나 일부 남인들이 이를 종굘 받아들이면서 노론 벽파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는데 그가 이승훈(베드로, Peter)이다. … 정조시대에 선교사 마테오리치와 아마샬이 지은 서학서는 비밀서적도 아니었고 선진국의 학문서에 불과했다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이덕일, 김영사

이덕일은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이 민감한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한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보았다. 하나는 조선 성리학의 교조화였다. 노론은 일당독재를 계속하면서 성리학 이외의 모든 사상체계를 사문난적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천주교를 신봉한 양반 대다수가 남인이라는 데 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남인들을 중용하려 하자 노론은 천주교를 빌미로 남인들을 실각시키려 했다. 마지막으로 당시 교황청의 경직된 교리 해석과 기계적 강요에 있었다. 지역 풍습과 종교에 유연했던 예수회와 달리 당시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제사와 장례문제는 노론 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에게 거부감을 주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을 이끈 노론에 맞서고자 남인들을 등용하려 했다. 자신이 아끼던 백성을 죽음으로까지 몰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주교 박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지만,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고 자신에게 수없이 칼을 겨누는 노론벽파에게 대항할 힘이 없었다. 25세 나이에 왕위에 오른 정조를 세 번이나 암살하려고 했던 ‘삼대모역 사건’의 중심에 노론벽파가 있었다. 

정조는 국청을 열어 노론 관련자들을 처벌했지만 노론 벽파를 뿌리 뽑을 수는 없었다. 정조 때에도 이들은 계속 집권당이었다. 그만큼 노론 벽파의 뿌리는 깊었다. 그의 나이 열한 살 때 부친 사도세자가 노론 벽파에 의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본 정조는 서두르지 않았다. 부친을 죽인 세력에 둘러싸인 외로운 국왕이지만 미래는 그들의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당색에 물들지 않는 청년들의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그를 인내하게 했지만 이는 부친의 원수와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맞대고 웃어야 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이었다. 그런 인내 속에서 ‘정약용’이 있었다. <위의 책, p44>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철인군주였던 정조는 천주교를 믿었던 남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리학이 바로 서면 천주교가 저절로 소멸한다’는 정조는 철인 군주를 지향하면서 남인 천주교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리학이 바로 서면 천주교는 저절로 소멸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211년만에 노론벽파 뒤통수를 날리다.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마지막 장면은 노론벽파 임판서가 정약용이 천주교를 믿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자 정조가 임판서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정조가 노론의 암살로 서거한 지 211년만에 이뤄진 통쾌한 하이킥이다.  

정조가 그토록 보호하려 했던 명탐정은 과연 누굴까? ‘명탐정(김명민)’은 정조시대 당쟁과 천주교 배교문제 등 진흙탕에서 피어난 정약용이라는 인물과 거의 일치한다. 정약용 역시 천주교를 학문으로서 받아들였지만, 노론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정약용 집안은 노론벽파(홍인환 :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의 탄압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 첫번째는 그가 노론의 탄압대상 1호였던 남인집안 출신이라는 것이다.
 

 
다산정약용의 가계도. 다른 인물들과 달리 정약용은 정조 15년(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자신의 이종 육촌이기도 한 윤치중과 권상연이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에 충격받아 천주교를 버리게 된다. 노론에게 천주교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남인들을 정계에서 몰아내고 재기하지 못하도록 그 싹을 끊어 버리는 것이었다.   참고 :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 신앙

정약용과 정약전은 천주교를 버렸지만 그의 작은 형인 정약종은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체포되었고 그는 국청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정약종의 고백으로 정약용과 정약전은 천주교를 버린 증거가 나타나 정약용은 장기현에 정약전은 신지도에 유배된다. 세계 천주교 선교사상 최초로 자청해서 영세를 받은 매형 이승훈과 같은 날 정약종은 사형당한다.

"저는(정약종) 그것(천주교)을 대공이고 지극히 바른 것이며 진실한 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 년 전에 나라에서 금한 이후에도 바꾸려는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비록 만 번 형벌을 받아 죽더라도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 <위의 책> p.23



정약용의 배교 사실이 밝혀졌지만 노론의 집요한 공격한다. 정조는 남인 출신이었던 정약용에게 ‘수원화성’ 설계를 맡긴다. 영화 속에서 농민들이 임판서의 사병들을 명탐정이 제공한 기기로 물리치는 데 이것은 정약용이 설계한 거중기와 유사하다.

 

화성성역의궤에 나오는 화성 건설에 쓰인 각종 기구들. 정조는 사도세자의 화성의 설계도를 정약용에게 맡길 정도로 각별했다.


영화속에서 정약용은 탐정으로 나오는 데 과연 그랬을까? 정조18년(1794), 정조는 홍문관 수찬으로 좌천된 정약용을 몰래 침실로 불러 ‘봉서’ ‘사목’ ‘매패’ ‘유척’을 주며 암행어사에 제수한다.


정약용은 영화에서처럼 1794년 10월29일부터 11월15일까지 적성, 마전 등 네 고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다. 정약용이 쓴 ‘적성촌의 한 집에서’라는 시는 농촌의 참상을 잘 말해준다. 암행어사 기간 중에서 종2품 경기감사 서용보라는 자의 비리를 적발하게 되는데 정조 사후 정약용에게 처절한 보복이 가해진다.


 “듣건대 고을이 황폐해져서 마을에 개가 없으며 연못에 기러기가 모여든다고 한다. ... 너희들은 맡은 바 직분을 삼가서 관부와 장시(시장), 촌락을 드나들면서 세세히 조사한 것을 모아서 조정에 들어올 때 일일이 조목별로 나열해 아뢰도록 하라. <위의 책> p169.

뛰어난 인재 정약용을 정조는 곁에 두고 싶었지만 노론벽파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정약용이 노론의 공격을 피해 낙향했다. 정약용에 대한 정조의 사랑은 병중에서도 이어졌는데, 재위 24년(1800) 5월 30일 재상의 후보로 남인출신 이가환과 정약용을 거론 한 것이었다. 그해 6월28일 정조는 의문의 죽음으로 승하했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유머는 김석윤 감독이 정조와 정약용의 관계, 노론과 남인, 조선에서의 자생적 천주교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고 본다. 노론벽파의 우두머리를 후려치던 정조의 모습은 올해 본 영화중 최고로 통쾌하다. 정조가 1775년 24살의 나이로 즉위한 이후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인 정약용과 남인들을 멸문하라고 끊임없이 공격하던 노론의 공격을 한 주먹으로 날려버린 픽션이다. 개인적으로 정조는 노무현대통령과 닮은 구석이 많아서 논픽션처럼 느껴진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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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상세보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펴냄
역사평론가 이덕일의 조선후기 인물사 3부작의 완결편. 시대의 절망을 딛고 민중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간 정약전, 고문 끝에 목이 잘리면서도 신앙을 지켜낸 정약종, 지배 권력의 공격 속에서 좌초된 꿈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정약용은 닫힌 시대에서 열린 사회를 지향했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이 책은 당대 현실에서 우러나온 실학과 선진 과학문물, 그리고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상으로 침몰해가는 조선사회



다른 목적이 있었다. 제주도 여행 후 한국 가톨릭의 아픈 역사를 엿보기 위해서 정약용의 형 정약현, 약현의 딸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준비하던 차에 마땅한 책이 없어 '이덕일'씨가 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책을 골랐다. 이율배반이라고 해야할까, 조선 정치에서 개혁의 격변기를 살았던 정약용과 정조를 사뭇 그리워하며 쓴 그의 책이 가슴팍에 꽂히지 않는 것은 이 글을 쓴 사람의 행동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가가 아닌 학자로서 세상을 살아가야할 몫이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장관 임용을 두고 침묵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산의 정신이 담긴 '목민심서'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일이다. 정치가는 '청백리'를 강조하지만 국민들은 무엇을 본으로 삼아 살아야 할지 가치관의 혼란, 이율배반적인 세상이다. 땅투기꾼에 이중국적을 과감히 내치지는 못할망정 두둔하는 정부에 희망이란 게 있을까. 다산의 재능과 순수함을 이용하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정조와 노론의 지배속에서 피눈물을 흘린 다산 형제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비극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희곡이라 할 수 있다.


시냇가 허물어진 집 뚝배기처럼 누웠는데
겨울바람에 이엉 걷혀 서까래만 드러났다
묵은 재에 눈 덮인 아궁이는 차갑고
체 눈처럼 뚫린 벽에 별빛이 스며든다
집 안의 물건은 쓸쓸하기 짝이 없어
모두 팔아도 7,8전이 안되겠네
개꼬리 같은 조 이삭 세 줄기와
닭 창자 같은 마른 고추 한 꿰미
깨진 항아리는 헝겊으로 발라 막고
무너 앉는 시렁대 새끼줄로 얽어 맸네
놋수저는 이미 이정에게 빼앗기고

무쇠 솥은 이웃 부자가 빼앗아갔네
검푸르고 해진 무명이불 한 채 뿐인데,
부부유별 따지는 것은 마땅치 않구나
어깨 팔뚝 그러난 적삼 입은 어린 것들,
한 번도 바지 버선 못 입었으리
다섯 살 큰아이는 기병으로 올라있고,
세 살 작은애도 군적에 올라있네
두 아이 군포로 500전을 바치고 나니,
죽기나 바랄 뿐 옷이 무슨 소용이랴
강아지 세 마리 아이들과 함께 자는데,
호랑이는 밤마다 울 밖에서 으르렁대네
남편은 산에서 나무하고 아내는 고용살이 가니,
대낮에도 문이 닫혀 분위기 비탄하구나
아침 점심 다 굶다가 밤에 와서 밥을 짓고,
여름에는 갖옷 입고 겨울에는 베옷 입네
들 냉이 깊은 싹은 땅 녹기를 기다리고,
이웃집 술 익어야 지게미라도 얻어먹겠네
지난 봄에 꾸어 먹은 환곡이 닷 말인데,
이 때문에 금년은 정말 못살겠네
나졸들 사립문 밖 닥칠까 겁날 뿐,
현각에서 곤장 맞을 일은 걱정도 안 되네
오호라! 이런 집이 천지에 가득한데
구중궁궐 깊고 깊어 어찌 다 살피랴
직지사는 한나라 때 벼슬,
고을 수령을 마음대로 내쫓거나 죽였지
폐단의 근원 어지러워 바로잡히지 않고,
공수, 황패 나와도 뿌리뽑기 어려우리
먼 옛날 협정의 유민도 본받아,
새로운 시 한편 베껴 임금님께 돌아갈까.
 
- 다산이 암행어사로 임명받아 한 농촌의 실상을 시로 표현한 '적성촌의 한 집에서' -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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