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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발견한 타자의 욕망

영상학 석사과정 6기 윤정일

유리벽 속에 갇힌 무의식에 린치를 가하다.

<르미에르의 형제들 Lumiere and Company>(1996) 프로젝트 다큐멘터리에서 데이빗 린치 (David Lynch) 감독이 보여준 1분도 채 안된 영상은 충격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한지 100년을 기념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세계 각국의 유명감독들이 만든 50초짜리 단편영화와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린치는 투명하게 제작된 유리벽 안에 나체의 여성이 넣고 물을 붓고 50초쯤에 이르러서 유리벽에 린치(lynch)를 가한다. 영화라는 형식 자체가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왜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한 감독의 일격인 것이다. 형식의 파괴 혹은 포스터모던 감독의 대표주자인 그에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대해서 다시금 묻게 만드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2001). 관객은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느낄 때 린치는 과감하게 무의식의 환상을 우리 앞에 현실처럼 드러낸다. 라캉의 입을 빌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욕망(desire)에 관한 오이디푸스 드라이브(drive)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환유와 은유의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주인공인 ‘다이안’은 스타가 되려는 욕망을 안고 할리우드로 가는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전개되면 될수록 복잡하게 꼬여있는 사건들과 조각처럼 나열된 인물들 앞에서 관객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주체와 주체의 욕망에 관한 텍스트를 분석하여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캉의 몇 가지 이론을 빌어야 쉽게 설명될 수 있다.

프로이드의 꿈에 대한 해석을 빌리자면 다이안의 꿈은 왜곡으로 만들어진 환상이며 주인공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무의식이 투영된 공간이다. 프로이드가 꿈을 주체가 이성에 의해 억눌려있던 욕망의 충동으로 표출된 것이라면, 라캉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나아가는데 있어 주체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의 봉합으로 해석한다. ‘아버지의 법’으로 일컬어지는 기표에 의해 억압되는 주체의 욕망은 결국 상실의 기표이며, 따라서 욕망은 결여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나 무의식이 말을 통해 나타나고 또한 말이라는 구조 속에는 인간의 억눌린 내면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욕망과 좌절을 꿈의 형식을 빌려 영화는 재현한다. 주체의 욕망은 현실세계에 등장하는 듯 하지만 환상이며 결국 주인공의 욕망은 충족될 수 없고 잉여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영화적 환상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주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체는 추상적이고 복합적이며 분열되어 있다. 더욱이 린치의 영화에서 주체는 분열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폭발하여 조각난다. 카메라에 의한 조작과 편집을 통한 구성의 파괴가 드러난다. 카메라에 의해 조작되는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시공간을 봉합이 아닌 해체에 가깝다. 다이안이 맞는 자동차 사고는 다이안이 베티로 카밀라가 리타가 되어버리는 환상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사건, 두 여주인공이 찾은 실렌시오 극장이나 집에서 발견한 파란상자를 열었을 때 등 관객은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린치는 영화 속 현실세계를 재현하면서 느린 속도의 스태디캠 컷, 클로즈업, 롱쇼트 등의 촬영 기법을 쓰면서 주체의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와 더불어 환상 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착각하게 만든다. 역으로 꿈과 같은 환상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사실적이고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관객은 주체가 명확하게 드러나겠거니 생각하는 현실 공간에서는 빠른 속도의 편집과 점프 컷을 통한 생략으로 전개하고 있어 주체를 잡아내기 힘들다. 주인공 다이안이 꿈에서 깨어났을 때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 이동했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등 영화 속에서 주체는 결핍을 봉합하지 못하고 부유한다.

멀홀랜드, 주체가 대타자를 만났을 때

라캉은 주체를 언어적 주체라고 했다. 이것은 상징체계 안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주체이다. 모든 질서는 대타자(Other)의 준거와 틀에 맞춰 행하고 질서 또한 대타자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영화에서 대타자는 주체의 욕망을 폭로하고 죽음을 명령한다. 린치는 대타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히지는 않는다. 공항에서 만난 노부부가 다이안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이끈다든지, 절대자의 존재처럼 보이는 거지와 클로즈업에서 잠깐 보이는 권력자의 모습이나 의문의 세력 등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체가 찾아낸 기억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죽음으로 욕동할 수밖에 없는 주체의 욕망이자 대타자의 욕망이다. 포스트모던 영화감독의 표본인 린치는 어쩌면 다이안을 통해 실재계를 탐색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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