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Hermes)적 찬사, “신은 승리한다

인구 3천만명, 인도와 티벳 사이의 고원지대에 60여 종족과 100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무역과 여행, 그리고 순례자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네팔. 영화 <히말라야 지도자의 어린 시절>(원제 : Himalaya - l'enfance d'un chef)는 에베레스트 서부지역 보티아(Bhotias)족의 한 지류인 돌뽀(Dolpo)족의 이야기다.

사진가이자 작가인 에릭(Eric Valli) 1980년대 돌뽀지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두 티벳 친구에게서 영감을 받아 영화로 만들었다. 야크몰이꾼이자 전투지휘관 출신이었던 틴레(Tinles)와 티벳불교 탱화를 그리던 화가인 노부(Norbou)가 바로 그들이다. 격정과 고요, 이동과 정착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친구의 삶은 영화에서도 실현된다.

돌뽀는 네팔이지만 정치, 종교, 지리적으로 테벳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돌뽀족은 보티아족에서 갈린 종족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셰르파 역시 보티아족의 한 갈래이다.

보티아족 사람을 지칭할 때는 지역과 접두사 'pa'를 결합시키는데 에베레스트 지역 출신은 셰르파(동부인), 서부지역 출신은 돌뽀빠(Dolpopa), 무스땅(Mustang) 출신은 로빠(Lopa) 라고 부른다. 대부분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Nepal>, 론리플래닛 트래블가이드, 안그라픽스


Tenzin Norbu / Tinkyu Village, Panzang Valley Dolpa District, Nepal



이 영화는 영화에 출연한 경험이 거의 없는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히말라야의 장대한 풍광 속에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엄격한 카스트제도 속에서도 신에 대해서 경배하고 카라반(Caraban, 大商)으로서의 자부심과 용기가 묻어 나온다. 특히 늙은 배우들의 톡톡튀는 유머는 별사탕처럼 달콤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돌뽀인의 농업과 유목이라는 이중적 삶이다. 돌포인들은 네팔의 여러 종족들과 마찬가지로 척박한 환경에서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정착민이면서, 히말라야를 가로지르며 교역을 하는 카라반, 즉 유목적 삶을 살아 간다.

돌뽀인들도 농민들처럼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씨를 뿌리며 산다. 하지만 그들 부족이 1년을 버티기에는 척박하고 작은 땅이기 때문에 돌뽀인은 카라반을 꾸려 먼 길을 떠나 유랑할 수 밖에 없는 유목민의 운명을 타고 났다.


이중적인 운명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데 돌뽀족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부족장인 틴레는 자연을 종교적으로 맹신하지만, 젊은 리더 칼마는 자연과 종교보다는 현실적인 판단한다. 두 인물의 갈등은 틴레의 아들이자 칼마의 친구였던 락파의 죽음이 원인이지만, 정착과 유목적 개념의 충돌로 비춰진다.  


틴레와 칼마는 부족을 이끌어야 하는 공통의 의무 안고 있는 정착민의 전형이라면, 젊은 칼마는 종교와 자연, 부족공동체의 의무에게서 비교적 자유로운 유목민에 가깝다. 두 세대의 갈등은 틴레가 정착민적 정체성을 희생하고 유목적 사고로 돌아섬으로써 해소된다.

미래학자 아탈리(Jacques Attali)는 이러한 이중적 삶을 트랜스휴먼 transhumain’ 이라 표현한다. 트랜스휴먼은 유목민의 장점과 정착민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이다. 특히 유목민들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방랑이 정착민들에게 잃어버린 자유를 선사한다.

2007, 네팔정치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마오이스트 게릴라들과 연합한 민주화운동(록탄트라 앤도란) 결과 240년 간의 왕정이 막을 내리고 민주공화정이 선포된다. 히말라야 산맥을 떠돌던 게릴라 지도자 뿌쉬빠 까말 다할(pushpa Kamal Dahal)은 총리가 되고 네팔공산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봉건 왕조가 무너지고 정치적 불안은 계속되고 있지만 네팔의 유목적 지도자들은 하층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틴레에서 칼마, 그리고 빠상(Pasang)으로 이어지는 세대간 융합은 네팔의 정신으로 비춰진다.

네팔의 정치는 먼 길을 돌아 왔다. 마페졸리(Michel Maffesoli)는 길위의 인간을 호모 비아토로( Homo viator)로 명명했다. 방랑(여행)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떠나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유일한 정체성을 뛰어 넘어 스스로를 거리화, 객관화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방랑 자체와 불안이 초래하는 다양한 정체성들은 생명력의 징표이자 기쁨과 고통을 통해 강렬하게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의 진정한 지혜의 표현이다. -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상상력>, 조윤경, 이화여대 출판부


 

틴레, 칼마, 빠상에 이르는 네팔 유목주의의 탈근대성은 모진 고통이 따르는 방랑 뒤에 얻어진 결과이다. 인물과 자연 그리고 타인과의 공동체의식을 회복시켜주는 이 장대한 여정은 노부의 탱화로 갈무리된다.

 

바람이 부는 곳에 정신이 숨을 쉰다 마페졸리고 했던가. 안락한 길을 버리고 도전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은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영화정보 : http://www.imdb.com/title/tt0210727/ 

Himalaya : L'Enfance d'un chef (1999)

감독

Éric Valli

주요배우

Dorjeeg Tsering , Tsering Dorjee ,
Thilen Lhondup ,
Thilen Lhondup ,
Gurgon Kyap
Gurgon Kyap
Lhakpa Tsamchoe
Lhakpa Tsamchoe

시나리오

Guillebaud , Jean-Claude Guillebaud ,
Éric Valli

음악

Bruno Coulais

제작

Christophe Barratier ,
Jacques Perrin

원정을 떠난 카라반이 야크를 몰고 돌뽀에 도착한다.

 

영화의 시작은 대상(Caravan)이 수많은 야크 무리가 거친 히말라야 산맥을 내려오는 내려오는 장면과 비옥한 돌뽀지역 보리밭 아이와 노인이 등장시킨다. 소금교역을 떠났던 야크의 등에는 소금교역으로 얻은 식량과 함께 노인(Tinle)의 아들 락파(Lhakpa) 주검이 실려있다.

 

노인과 죽은 아들의 친구 칼마(Kalma)의 갈등은 시작되고, 노인은 대상의 리더로서 칼마를 부정하고 어린 손자를 리더의 자리로 앉히려고 한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자 4살 때 사원으로 보낸 둘째아들을 찾아가 리더가 될 것을 청한다.

 

칼마는 샤먼의 결정을 거부하고 마을 청년들을 규합하여 또 다시 소금무역을 떠난다. 노인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마을은 어린 손자와 며느리, 그리고 그와 함께 카라반 활동을 했던 늙은 노인들 밖에 남지 않았다.

 

틴레는 샤먼의식의 결정에 따라 산을 가로질러 카라반을 따라잡기로 결정한다. 4일이나 늦게 떠났지만 그는 아들, 손자, 며느리, 늙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야크를 몰고 죽음의 계곡 셰이폭순도호(Shey Phoksundo, 고도 3613m,  수심 650m)을 관통는 길을 선택한다.

락파의 주검을 조장(鳥葬)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 네팔에서는 종교나 민족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네팔인들은 유머가 풍부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잘 웃고 화를 내지 않는다.


산 정상에서 부족장 틴레는 치료를 거부하고 승려인 아들의 손을 잡고 연화천국으로 떠난다. 네팔인들의 세계관은 기도와 종교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에게 신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당신 속에 깃든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뜻을 가진나마스테Namaste’ 인사부터 나무와 길, 강과 산은 네팔인들의 의식에 깃든 정령과 신 그자체이다. – 론리플래닛 트래블가이드

히말라야의 전설이 되는 틴레의 손자 빠상(Pasang). 네팔인의 이름은 카스트, 직업, 종족, 사는 곳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부를 수 있는데, 세르빠는 성이면서 종족이다. 심지어 해당 인물이 태어난 요일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락빠(Lhakpa ; 수요일), 빠상(Pasang ; 금요일 ), 니마(Nyima : 일요일) 등이다. – 론리플래닛 트래블가이드

틴레를 따라 나선 늙은 친구들. 현지인을 배우로 기용한 감독의 시도는 성공한 것 같다. 힘든 여정에서 이들의 능청스러운 유머는 네팔인의 기질과 유사하다. 네팔에서는 종교아 민족문제로 갈등을 겪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네팔인들은 유머가 풍부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잘 웃고 화를 내지 않는다. 또한 구르카 Gurkha 용병처럼 용맹스러운 전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진다. – 론리플래닛 트래블가이드


어머니와 몇십년 만에 만나 인사를 나누는 노부. 네팔 힌두교 사회에서는 중매결혼이 일반적이다. 여성의 지위는 좋지 못하다. 평화로운 환생을 기원하는 장례식에서 화장용 장작에 불을 붙이는 일 등 일부 종교의식은 장남만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는 대개 경제 부담으로 여겨지고 결혼해서 집을 떠날 때까지 순결을 유지하고 좋은 평판을 얻도록 신경 써야 한다.


노부의 틴레, 락파, 파상, 펨마(며느리), 칼마를 기리며 그린 프레스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유랑하는 카라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노부는 신은 승리하신다!”고 말한다 


참고사이트

1. Thebluespace Adventure Trekking

카트만두에 있는 트래킹 전문 여행사. 19일부터 50일까지 긴 트래킹 코스가 있다.


2. Dolpo Artists’ Cooperative

돌뽀지역의 예술가들의 미술, 역사, 장식품 등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3. 위키록에 기록된 루트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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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쿠쿠다스 2011.07.30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어요. 잘 보고 갑니다.

元老에 길을 묻다 <6> 천규석 농민운동가 / 대담 변홍철 녹색평론 주간

1965년 대학 졸업 후 고향인 경남 창녕에 귀농한 '농민'이자, 한살림운동과 공생농두레농장을 통한 농민운동의 선구자이며 저술가이기도 한 천규석(69) 대구한살림 이사. 그는 흙에 바탕을 둔 생명주의 실천가로 도농직거래를 통한 지역자치 공동체의 부활을 위해 애써왔다. 창녕 남지의 공생농두레농장을 10여 년 운영해온 그는 요즘 대구시 남구 대명9동 대구한살림 사무국에서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농장을 다녀온다고 한다. 천규석 선생과 대담에 나선 이는 녹색평론 변홍철 주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주의 잡지로 녹색담론을 이끌어가는 녹색평론의 일꾼이다.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달 29일 녹색평론사 편집실에서 이뤄졌다. 선생은 지난해에만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와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 가 발병난다'라는 2권의 저서를 내놓았다. 이들은 지난 1987년의 민주화운동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1시간 여 동안 농업과 농촌문제를 토론했다.

 
  천규석 대구한살림 이사가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자신의 저서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변홍철 주간=선생님, 지난해는 책을 2권 내셨는데 지난 한해가 어떠셨습니까. 또한 대구한살림의 살림살이는 좀 어떠하신지요.

천규석 이사=대구한살림은 제가 능력이 없어 장사가 잘 안돼요. 대형매장 등과 비교하면 불편하기도 하고 필요한 물건이 제 때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용을 잘 안 해요. 조합원 숫자가 줄지는 않아 실패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변=책에 대해서도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책은 자본과 산업문명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했는데요. 사회적 논쟁이 심화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목주의를 왜 침략주의라고 규정하시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천=책을 내면서 산림자원만 훼손하는 것 아닌가 싶어 미안하고 부끄럽네요. 유목주의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심지어 경전처럼 떠받드는 학자나 지식인도 있고 '무식한 농사꾼이 들뢰즈 같은 학자의 원서도 안 읽고 유목주의를 비난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모든 텍스트는 자기 안목으로 읽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봐요. 아무튼 저 같은 농사꾼이 보기엔 지금 유행하는 유목주의는 세계시장주의나 상업주의와 한 통속이라는 것, 나아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결코 상반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변='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라는 선생님의 비판은 요즘 정부가 하는 이미지 조작을 보면 수긍이 갑니다. 가령 최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정당성을 선전하는 정부 측 광고를 보면, 말을 타고 깃발 휘날리며 대륙을 달리는 침략주의 혹은 팽창주의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거든요.

천=진리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지요. 유목주의에 아무리 정교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그것은 정착 농경민에 대한 침략이거나 교역으로 살 수밖에 없던 비자립적 삶의 방식임에 틀림없죠. 자생·자치적 농촌 공동체를 흔들고 해체해야만 유지가 가능한 오늘날의 시장주의와 수탈이 본질인 국가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유목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죠.

변=한미FTA라는 큰 변수가 있겠습니다만, 지금의 우리나라 농정이 앞으로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천=지금까지 보면 농정이란 게 오히려 농업을 죽여왔어요. 농업을 핑계로 먹고사는 관련 귀족들, 관료와 교수들 배만 불리는 것이지요.농업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각종 예산을 책정해 자기네들끼리 나눠먹는 식이지요. 심지어 농촌을 황폐화하는 수많은 도로 공사들도 그런 농업 관련 예산에서 나오는 거예요. 실제 소농들을 소리 없이 정리하면서 농업 기득권 세력들의 이익만 챙기게 하는 것이 지금 한국 농정의 본질이에요.

변=올해는 대선도 있고 여러 의미에서 소위 '87년 체제'에 대한 평가와 극복이 우리사회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만.

천=87년 이후 소위 '민주화세력'들도 그전의 박정희 식 성장주의 세력과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라고 봐요. 처음부터 농업에 대한 철학, 진정한 민주주의의 토대로서의 농업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고 봐야지요. 실제로 87년 이후 20년 동안 농업은 엄청나게 퇴보했고 몰락해왔잖아요. 지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부의 독점과 갈등, 차별, 나아가 엄청난 생태계 파괴, 민주주의 위기 등은 결국 이러한 농업의 몰락, 농촌공동체 파괴와 관련이 있어요. 그렇다면 87년 체제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도 농업의 가치를 중요한 화두로 끌어들여야만 의미가 있을텐데, 농업 및 생태환경 문제가 그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가 편 가르기, 파워게임에만 몰두해 있으니, 풀뿌리 민중의 생존이나 운명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변=지난해 녹색평론이 중심이 돼 '지역직거래'를 화두로 농업 관련 좌담을 열기도 했는데요. 그 핵심은 도시의 노조 및 학교와 지역 농민회 간의 직거래를 중심으로 농업 회생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지요. 이 새로운 길을 잘 닦아나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변홍철 주간
천=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크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 좌담 이후 노동자, 농민 단체 관계자들이 대화를 해온 것은 분명합니다. 농민은 원래 자치적 인간이고 농촌마을은 하나의 작은 자치공화국이에요. 그런데 오랫동안 농업이 시장에 너무 깊이 편입되다 보니 농민과 농촌이 가지고 있던 자치 역량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농촌은 생산만 하고 유통이나 가공은 모두 대도시 상인이나 대기업에게 빼앗겼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농산물 유통을 도시에서 하지 말고 사람과 돈을 농촌으로 이전해서, 농촌이 중심이 된 유통을 하자는 것이 직거래운동의 취지 아닙니까.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을 설득해 유통의 역량도 농촌으로 되돌려야 해요. 가공을 비롯해서 대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문들도 농촌마을로 되돌리는 운동이 필요해요.

변=바로 그런 재구조화, 사회적 재편을 위해서도 좀 더 나은 정치권력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전농 같은 농민운동측도 그렇고요.

천=현실적으로 그런 정부를 기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조직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지역에 기반한 풀뿌리 차원에서의 자치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겠지요. 무엇보다 '자기혁명' '자치혁명'이 필요하고 그것이 토대가 돼야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변=지난 95년께 시작한 창녕 공생농두레농장은 요즘 어떻습니까. 두레농장 10여 년을 돌아보시면서 한 말씀해주시지요.

천=사실 두레농장은 땅이 1만 평 정도에 불과해요. 뜻있는 젊은이들이 이를 근거로 해 인근 마을들을 재공동체화 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것인데 처음엔 귀농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주위 마을과 유대를 가져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무료 한방 진료나 심지어 무료 과외까지 해주기도 했지만 당시만 해도 처음에 유기농을 하니 '도시놈들이 들어와 별 미친 짓을 다한다'며 비웃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반 농민들도 유기농을 하지 않으면 팔아먹기도 힘들게 됐는데 문제는 판로예요. 판로 개척이 안 되니 이제는 유기농 하겠다는 농민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형국이 돼 버렸어요. 이런 점에서 마을공동체 실험은 실패에 가깝지요. 유기농 판로는 정말 문제예요. 이런 데서 진정한 의미에서 도농직거래 도농연대가 이뤄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오래 사셔야 합니다.

천=이제 앞으로 내가 할 일이 더 있겠어요. 늘 잔소리나 하고 실수나 거듭하는 것 말고.


# 약력

◇천규석

1938년 경남 창녕 출생. 서라벌예대 및 서울대 미학과 졸업. 65년 귀농. 90년 한살림운동 대구공동체 조직. 창녕 공생농두레농장 운영.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제2대 공동의장 역임. 현재 대구한살림 이사. 저서로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쌀과 민주주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등 다수.

◇변홍철

1969년 경남 마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98년부터 녹색평론 근무. '대구경북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연대' 정책위원. 대구지역청년단체 '땅과 자유' 회원. 현재 녹색평론 주간

 

- 출처 : 국제신문 2007년 2월5일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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