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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4 섬진강 자전거 여행

나름 고달픈 도시인 생활 8년차,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부산이다. 오늘은 섬진강이 보고 싶어서 자전거를 꺼내고 지도를 펼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한다. 

부산이라는 곳은 자전거에게는 꽉 막힌 산성과 같은 도시다.  낙동강을 건너서 경상남도 진해, 마산, 진주, 하동 이렇게 가고 싶지만 두바퀴로 갈만한 길은 아주 아주 힘들다. 불법과 목숨을 감수하고 만덕터널, 대티터널, 백양터널을 지나거나 산을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어쩔 도리없이 차에다 자전거, 텐트, 침낭, 코펠... 꾸역꾸역 집어 넣는다. 여기에 자전거 한 대를 더 실어야 하니, 앞이 캄캄하다. 혼자 내뺄까 하다가 그래도 동지가 있으면 즐겁지 아니한가? 진해에 들러 선배 꼬셔서 섬진강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뒷자석을 접으면 자전거 두대와 자질구레한 짐들을 실을 수 있다.


진해를 출발해서 세시간 가까이 달려서 하동 평사리공원에 도착했더니 새벽 2시다. 인근에 평사리야영장, 쌍계야영장 두곳을 고르다가, 아침에 깨끗한 마음으로 토지의 서희를 만나려고 평사리에 터를 잡았다. 

평사리야영장은 넓은 주차장과 깨끗한 잔디로 이루어져있다. 주차비 천원, 야영비 만원을 지불해야 하지만 새벽 2시에 도착한 지라 돈을 받는 악양청년 분들도 없고 해서... 그래서는 안되지만, 섬진강 모래사장에 텐트를 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차에서 자고 일어나면 피곤이 등에 붙어서 하루종일 괴롭힌다. 그래서 캠핑용 텐트를 장만했다.


하동에 귀농하려고 했던 탓인지 평사리는 마음의 고향과 같다. 자전거를 타고 10여분 달려서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의 무대에 섰다. 통영에서 자라서 서울에 사셨던 분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소설을 쓰셨을까? 

문학을 모르는 사람도 이곳에 서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면 나름 파노라마를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의 파노라마는 이런 거다. "김준구는 섬진강을 파서 운하를 만들어서 돈을 벌 생각을 했겠지? 서희와 길상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지 세트장에서 평사리 넓은 들과 섬진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행인

햇살이 자뭇 늘어진 10시경 검두마을 앞 재방길에 들어섰다. 고분고분한 아스팔트가 지겨워서 그런지 선배가 둑방길을 달린다. 하얀 개망초 위로 검은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1km 정도의 비포장 도로지만 정겹고 꼭 살아남았으면 하는 길이다.


아침을 걸러서 그런지 배가 고파서 화개장터를 앞두고 밥집을 찾았다. 화개장터에 가면 자연산 어쩌구 저쩌구 내걸린 현수막이 가득하지만, 섬진강에서 자라는 메기, 재첩은 찾아보기 힘들고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허름한 식당에서 양식 메기탕을 시킨다.

화개장터에서 밥을 먹어야 제맛이지만 바가지를 쓰고 시끄러운 관광객들 틈에 끼느니, 여기가 진수성찬이다. 인심좋은 아주머니가 참게까지 넣어서 끓여준다. 소주 한 병 마셨더니 이만삼천원 나왔다.

화개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진 십리벗꽃길을 달린다. 사람과 자전거를 위한 길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기분이 좋은 선배가 쌍계사를 영어로 '더블치킨템플'이라며 우스개 소릴 한다.

짙은 벗나무 그늘을 따라서 4km를 달려가면 쌍계사가 있다.


이왕 도시 촌놈들이 이곳까지 왔으니, 검두마을에서 우회전해서 농로로 자전거를 이끈다. 아직 휴가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쏟아지는 계곡에 아무도 없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에 몸을 씻고 오동나무 그늘에서 옷을 말리며 낮잠을 잔다. 인기척이 나서 깨어보니 평상을 만든 농민이 와서 다가와서 되레 웃으며 푹 쉬었다 가라고 한다. 넓은 오동나무 잎만틈 주인의 마음씨도 넓다. 하지만 달려드는 벌레 때문에 10분을 못견디고 자리를 뜬다.

혹 계곡에 발을 담그려는 분들은 바닥이 미끄럽기 때문에 샌들을 가져가면 좋다.


12시쯤 쌍계사에 도착했다. 복장이 좀 거시기해서 부처님이 노하실까 일주문을 넘지 못하고 돌아섰다. 바퀴를 돌려서 십리벚꽃길(1023도로) 반대편1024 도로를 따라 화개로 달린다. 이쯤 되면 독이 오를 대로 올랐고, 자전거 여행에 맛이 들어간다. 초보자인 나도 무릎에 괜스레 힘이 들어간다. 내리막길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잠깐이면 화개까지 닿을 수 있다. 

화개에서 평사리 공원까지는 넉넉 잡아서 1시간이면 충분한데, 여행이 이렇게 끝난다면 재미가 없다. 이른바 개고생을 해보기로 한다. 남도대교를 건너서 경상도 하동길을 왼쪽으로 두고 전라도 광양길로 달린다.   

섬진강을 끼고 나란이 바다로 가는 길이지만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하동길은 즐비한 식당과 편의점이 들어서 있지만 광양길은 주위에 매화나무, 배나무가 가득한 길이다.

매실나무가 많기 때문에 도로가에 굴러다니는 노란 매실을 맛볼 수 있다.


평사리와 연결되던 배는 끊어진 지 오래라서 하동까지 내려가서 다시 평사리로 올라가야 한다. 초보자에겐 무척 고된 길이다. 식당과 편의점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늘마저 없다. 다만 차들이 많지 않아 자전거 타기에는 좋은 곳이다.

화개에서부터 다암면까지 가게는 찾아볼 수 없다. 다암면에 도착해서야 작은 구멍가게를 발견하고 물과 빵을 샀다.  

광양시 다암면 다암초등학교에 있는 수양벗나무. 나뭇가지가 위로 자라지 않고 땅으로 향하고 있다.


오후 4시, 섬진강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위에서 아이들과 꼬막을 줍는 여인들, 낚시를 하는 아저씨들 정겨운 풍경이다. 평사리공원까지 다시 올라가려다, 저질체력을 섬진강 앞에서 다 보여준 지라 식당에 들러 녹차냉면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택시를 타고 평사리공원으로 갔다.  

섬진강 다리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강을 따라 가다보면 남해를 만난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섬진강 자전거 여행. 이것으로 일단락.




경상도 길 :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평사리공원)→화개→(1023)쌍계사→(1024)화개
전라도 길 : 화개남도대교→매화마을다암면→섬진강다리→하동

 
총거리: 67.664 km
예상소요시간 : 오전 8시~오후 4시 (8시간)
하동에서 평사리공원까지 택시이용 : 055-884-3835 (하동개인 / 13,000원)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길 보기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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