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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05 KBS 문화의 질주 제 1편 제작기
 



  일반적으로 제작기를 따로 작성하는 경우는 최소 1년 정도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장기기획 프로그램들이다. 그렇게 보면, 문화의 질주 1편으로 방송된 '도시, 문화를 꿈꾸다'는 일단 제작기간(4개월) 만 본다면 자격요건에 미달인 셈이다. 하지만 후기를 남기는 가장 큰 이유가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다양한 경험들과 깨달음을 여럿과 공유한다는 점에 있다고 할 때 굳이 마다 할 이유도 없다.


세 대륙의 세 도시,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삼 개 대륙의 세 도시. 그 문화현장에서 뛰고 있는 예술가, 문화 행정가, 문화 산업 관계자를 만나 그들의 꿈과 고민을 듣는다. <도시, 문화를 꿈꾸다>는 이런 기획 의도에서 출발했다. 문화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전망하는 10부작 전체의 프롤로그적 성격을 살려서 각론보다는 총론, 예를 들어, 문화란 우리 삶에서 무엇이고, 문화 창조와 향유의 중심으로서 도시는 왜 중요한지? 와 같은 근본적이지만 일면 추상적인 화두들을 던져보고자 했다. 이런 화두들을 통해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문화는 국가경쟁력이다' 한마디로 '문화는 돈이 된다' 라는 물론, 중요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문화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붙잡아 둘 수 있는 기존의 지배적인 시각과 조금은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별성을 꾀했다. 문화 산업의 전문가, 최고경영자, 유명 예술인들이 나오는 대신에 문화 현장의 실무자, 무명의 젊은 예술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의 프로젝트, 자신들의 개인적인 체험과 야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고자 했다. 각 도시 마다 주인공 격으로 문화적 에너지를 상징할 수 있는 20대 예술인들을 한 명씩 두고 다른 문화계 인물들이 3-4명 정도 추가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찾은 주인공들이 중국 상해 경극원의 경극 배우 후시루, 쿠바 아바나의 뷔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여가수 이다니아, 이탈리아 볼로냐 어린이 극단의 연극 배우 다니엘라였다.

우선, 상해에서 경극 배우를 택한 이유는 급속히 서구화하는 아시아의 거대도시 속에서 전통문화의 의미를 되짚어본다는 뜻이었다. 아바나의 경우는 낙후된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콘텐츠를 창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힘을 찾아본다는 취지에서 쿠바 출신의 세계적인 밴드 뷔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신인 멤버 이다니아 발레스를 섭외했다. 마침 그녀는 이 밴드의 전설적인 타악기 주자 아마디또 발데스의 딸이어서 두 세대가 생각하는 문화적 인식의 차이를 들여다본다는 의미에서도 장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2000년 이후 대대적인 문화도시 건설사업으로 도시학자들 사이에서 성공 모델로 손꼽히는 도시였다는 점이 일차 선정 이유였다. 특히 볼로냐는 협동조합 형태의 극단의 활동이 활발한 '연극의 도시'여서 이 곳의 대표 아동 극단인 테스토니의 배우를 주인공 인터뷰이로 정했다.



영상 표현 상의 몇 가지 시도
영상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각 도시 마다 독특한 색채를 가미하고자 했다. 상해의 경우는 스피드, 첨단, 화려함, 거대함이 표현되도록 미속촬영을 시도했고 와이드 렌즈를 여러 씬에서 사용했다. 아바나는 대조적으로 롱테이크를 많이 썼고 인물의 경우는 클로즈업 샷을 평소보다 과감하게 활용했다. 이탈리아의 볼로냐는 '포로티코'라고 불리는 수천 개의 기둥들로 이루어진 회랑이 발달한 도시여서 국내에서 스테디 캠을 공수해가서 다양한 씬에서 활용했다. 스테디 캠은 좁은 공간에서 이동할 때 일반적인 핸드헬드가 내지 못하는 유연한 움직임이 장점이다. 볼로냐는 그 장점이 백분 발휘될 수 있는 좋은 환경이어서 실외의 회랑은 물론이고 비좁은 실내 곳곳에서도 시청자들이 직접 그 장소에 들어가보는 느낌의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런 영상 표현의 새로움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촬영 시간이 다른 때보다 배 이상 걸렸다. 예를 들어, 상해에서 30초의 미속 장면을 얻기 위해서 이른 새벽, 늦은 밤 가리지 않고 바닷가와 시내 곳곳(겨울 바람이 꽤 매서웠다)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3-4 시간 씩 기다려야 했다. 볼로냐에서의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쉽게 스케치성 촬영을 한다면 30분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장소도 스테디 캠 촬영의 경우 장비를 한번 세팅하고 한 두 차례의 시험촬영 후 본 촬영을 마무리하는데 2시간 이상이 소요됐다. 이와 같이 특색 있는 영상 한 컷 한 컷 뒤에는 카메라맨들(우성주, 박용환 감독)의 숨은 노고가 있었다.


디지털 제작기술의 활용

이번 제작 과정은 디지털 방송 기술의 여러 선진 장비들이 동원됐다. 우선 모든 촬영은 HD카메라로 촬영되었다. 16:9의 시원스런 대화면 속에 담겨진 세 도시의 컬러풀한 풍광은 HD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후에 HD 대형 모니터로 시청한 느낌과 일반의 브라운관 TV로 시청한 느낌 사이의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다. 후반 작업에서는 SONY사의 X-PRI HD NLE 편집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일대일 편집기로 80% 정도의 작업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만 NLE 편집시스템을 이용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 전체 편집 시간의 50%를 NLE로 처리했다는 점이 달랐다. 편집 과정에서 색다르게 시도해본 것은 인터뷰 비디오의 화면분할 효과였다. 인터뷰에 관련된 내용을 화면 4분할, 또는 5분할하여 말하고 있는 인터뷰이와 함께 삽입하는 방식이었는데 딱딱하기 쉬운 인터뷰 내용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좋은 평도 있었고, 일부에서는 어떤 그림을 봐야 할지 집중이 안됐다는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도시, 문화를 꿈꾸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KBS 특수영상 팀(이수정, 전혜정)이 국내 HD 다큐에서 최초로 시도해본 HD CELL 애니메이션이었다. 셀 애니메이션이란 움직임에 따라 한장 한장씩 그려나가는 방식의 애니메이션을 말하는데 HD로 제작할 경우 일반 SD보다 물리적으로 4배 크게 제작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제작기간과 장비상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밤샘 작업을 통해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도시의 역사, 문화 산업의 현재와 미래라는 다소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시청자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아쉬움과 반성
무언가 새로운 그릇에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처음의 욕심이 컸던 만큼 남은 아쉬움도 많이 남았다. 역시 가장 큰 장애물은 길지 않은 제작기간 동안 바다 건너 세 대륙에서 문화 현장과 인물이라는 여러 토끼를 한꺼번에 쫓아야 했다는 것이었다. 국내처럼 장기간 밀착취재가 불가능한 해외에서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속 깊은 내면과 생활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역시 어려웠다. 각 도시의 문화현장에 대한 일반적인 상황 취재도 제대로 하기 빠듯한 일정에서 인물까지 다면적으로 조명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원래 의도했던 형식이나 구성 상의 실험성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내놓고 보니 아예 한 쪽을 포기하고 내용과 형식에서 철저히 주관성과 실험성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나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이런 미련도 남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혼란은 근본적으로 문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혼란에 기인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 마디로, ‘문화는 자본이고 산업이다.’ vs ‘문화는 삶의 방식이고 저항이다.’ 이 두 가지 해석은 서로 배타적인 것인가? 따라서 어정쩡한 타협만이 가능한가? 아니면 창조적인 제 3의 해결책이 있는가? 이것은 앞으로 남은 문화의 질주 10부작 제작과정에서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진짜 화두였다. 



글 ● 이욱정 PD/KBS 문화예술팀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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