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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미디어 센터 'ZKM'
공간의 재발견 - 전쟁의 상흔, 예술 소통의 공간으로 거듭나다

작성 : 2008-01-31 전북일보 김은정(kimej@jjan.kr)

새로운 형태의 최첨단 미디어, 보존되고 있는 과거의 음향기기들, 미디어 예술센터 ZKM 건물, ZKM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네 리델 총괄매니저(번호순대로)

전쟁의 역사, 그 아픈 기억을 도시의 발전 동력으로 바꾸어낸 도시. 독일 서남부에 자리잡은 칼스루에시가 그렇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2시간(자동차) 남짓한 거리. 인구 30만명이 안되는 중소도시 칼스루에에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규모의 미디어아트센터가 있다.

ZKM(Zentrum fuer Kunst und Medientechnologie). 현대미술관과 미디엄뮤지엄, 미디어 도서관과 미디어극장, 음악스튜디오 등 다양한 기능의 시설을 갖춘 복합적인 공간이다.

지상 5층에, 길이 500m 폭 100m에 이르는 이 공간은 일단 외형상의 규모만으로도 주목을 끈다. 게다가 규모에 걸맞지 않게 단순한 외형을 보면 이 공간의 실체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이 공간의 전신은 탄약공장.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안고 있는 아픈 기억의 공간이다.



전쟁의 기억, 예술로 치유받다

ZKM은 2차세계대전까지 탄약과 화약을 생산하는 탄약공장이었다. 종전후 70년대까지는 제철소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유럽 전역에서 중공업 제조업체들이 서비스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시기에 이 공장 역시 폐업의 상황을 맞았다. 아우츠부르그에 있는 중공업 업체과 협력관계를 맺고 공장을 가동했으나 생산시설이 아예 아우츠부르그로 옮겨가면서 빈 건물이 된 것. 이후 20년동안 이 공장은 방치되어 있었다.

이 공간이 미디어아트센터로 변신한 배경은 흥미롭다. 칼스루에는 정보과학에 일찌감치 눈을 뜬 도시다. '헤르츠'라는 단위를 만들어낸 하인리 헤르츠 박사가 칼스루에 대학 출신. 전세계적인 정보과학에 대한 개념 역시 50년대 칼스루에를 중심으로 정리됐던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정도다. 칼스루에시는 그런 도시의 전통을 기반으로 이 분야의 많은 아이디어를 과학자 뿐 아니라 예술가, 주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칼스루에 모든 영역에서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전략을 모색했다. 새로운 미디어를 주목했던 칼스루에시는 정보 통신, 방송시설, 문화예술 등 3가지 영역을 통합해 발전시키는 정책에 눈을 떴다. 새로운 미디어아트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

1985년 시의 치밀한 기획과 칼스루에 미술대학의 공동연구로 시작된 미디어아트센터는 미래지향적인 기능과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예술적 건축에 환경친화적인 건물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초 건설 후보지는 중앙역 옆의 빈터. 파리와 프라하를 잇는 철도와 함부르크와 이탈리아를 잇는 철도가 동서남북으로 관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칼스루에의 지리적 장점까지 고려한 선택이었다.

국제 공모를 통해 네덜란드 건축가 램 콜하우스의 설계안이 당선됐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문제에 부딪혔다. 이때 제안 된 곳이 탄약공장이다. 탄약공장은 이미 비어있던 동안 음악가와 미술가들이 점거해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던터였다.

예술적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던 탄약공장을 미디어아트센터로 바꾸는 작업은 시민들에게도 큰 환영을 받았다. 전쟁의 기억과 상처가 남아있는 탄약공장이 예술적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시민들에게 큰 정서적 위안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취재진을 안내한 총괄 매니저 크리스티아네 리델씨(Christiane Riedel)는 "새로운 시대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전쟁의 기억과 흔적을 지우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대해 주민들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뿐 아니었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예산도 절감했지만 그외에 리모델링되면서 원래 예상했던 건물 외에도 아카데미와 중소기업이 입주하면서 수익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게 됐다.

미디어계 '지상의 공룡', 미디어도서관

ZKM에 대한 칼스루에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도 그럴것이 칼스루에의 미디어 아트센터는 미디어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통합하는 시설을 갖추어놓고 있다. 미술가 조각가 음악가가 실제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공간 뿐 아니라 후진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시스켐까지 완벽하게 갖추어 놓은 종합적인 공간.

시설의 컨셉 역시 소통과 교류다. 시간적으로 소통하고 공간적으로 교류하는 기능을 추구하는 ZKM은 시설도 놀랍지만 진보적인 컨셉을 지향하는 방식의 체계에 이르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름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뿐 아니라 인간은 어디로 가고 예술은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연구하는 통합적인 연구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소개한 리델씨는 이를테면 새로운 미디어기술과 제품의 생산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기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까지를 연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ZKM은 미디어아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첨단시설과 과거를 기록하는 시설을 거의 완벽한 시스템으로 갖추고 있다. 리델씨의 안내를 받아 돌아본 연구실과 미디어도서관은 그 방대한 분량의 자료들이 놀라울 정도였다.

연구실에는 현대생활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쓸모가 없어진 낡은 TV와 녹음기 전축 등 매체기기들이 즐비하고 역시 원형을 훼손당한 음반과 비디오테이프들이 빼곡이 들어차있다. 복원된 1만5천장의 음향영상물을 보관하고 있는 미디어도서관도 놀라움의 대상이다.

이 미디어도서관은 미디어계의 '지상의 공룡'이라고 불리운다. 입장료만 내면 지하의 영상실에서 자동선별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자료를 이용할 수도 있다.

"미디어센터안에서 작업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활동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공간을 제안한 하인리히 콜츠교수의 생각이었다"고 말한 리델씨는 "피아노가 과거의 것이 됐듯이 신디사이저도 멀지 않은 미래에는 과거가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역시 다시 과거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과거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주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관객, 당신이 주인이다

ZKM의 정체성은 첨단을 달리는 미디어아트의 모든 시설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결정체가 바로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1층 미디어박물관에서 열고 있는 'YOU-ser'라는 이름을 단 전시다. 'YOU-ser'는 인터넷 유저(USER)라는 개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해 만든 조어다. 전시실 앞에는 'You are the content of the exhibition-당신이 전시의 컨텐츠'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관객들이 곧 주인이자, 생산자라는 의미.

전시장안은 그야말로 첨단 미디어아트의 모든것이 모여있다. 화분의 잎을 만지면 화초가 쑥쑥자라 밀림이 되고, 알록달록한 빈병을 테이블위에 놓으면 팝과 재즈,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는가하면 테이프를 떼어붙이면 새로운 게임이 만들어져 즐길 수 있고, 소리만으로 화산이 분출한다.

취재진이 방문했을때 이 전시실에서 한국출신 젊은 작가 양매희씨를 만났다. 게스트아티스트로 초청받아 '마이크로갤러리'란 작품을 공동 제작한 그는 "한국에서는 빨리빨리라는 시간적 제약에 늘 ?겨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작업 과정을 천천히 진지하게 이어갈 수있는 것이 편했다"고 말했다. 제작비 일체를 지원받은 그의 작품은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으로 연결해 한 갤러리에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컨셉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ZKM은 좀 더 큰 틀에서 보자면 독일 남부도시의 부흥계획이 반영된 것이다. 문을 연지 10년, ZKM은 세계가 주목하는 미디어 아트센터로 서있다. 그만큼 작은 도시 칼스루에에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세계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는 말이다.

낡은 건물의 변신이 가져온 또하나의 놀라운 성과. 탄약공장에서 제철소로, 그리고 다시 세계에서 하나뿐인 첨단미디어센터로 변신한 이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좀더 특별하다.

새로운 문화발전을 주목하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일에 더욱 진지한 태도를 지켜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