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추모제는 넋맞이굿(남해안별신굿), 헌다례, 헌작(유족대표), 조사(정해룡 예총회장), 추모사(통영시장, 경남도지사), 조시(김혜숙)와 조가, 헌화와 분향 순으로 이어졌다. 추모제가 끝난 후 선생님의 모교를 거쳐 충렬사 앞 광장에서 노제가 열렸다. <김약국의 딸들>에 묘사되는 서문고개가 있는 곳이다. 통영은 언덕이 아름다운 곳이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도 그렇고 그 좁은 골목, 더 작은 문, 손바닥만한 창문 안에 불을 켜고 글을 쓰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 10월 28일 경남 통영시 문화동 328번지에서 태어났다. 1941년 통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여고를 1946년에 졸업했다. 통영군청에서 잠시 적을 두고 있을 때 1946년 김행도씨와 결혼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재봉털을 붙잡고 살림을 꾸리면서 외동딸(김영주)을 키웠고 사위(김지하)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역작을 출산했다.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선생님의 마지막 시, 2008년 4월 <현대문학> 발표 -
노제가 끝난 후 장례행렬은 장지인 산양면 양지농원 언덕으로 이어졌다. 통영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만장은 춤을 추었다. 허경미(부산대 미학 7기) 선생님이 길닥음 춤으로 운구를 이끌었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불 때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들채굿이 이어졌다.
무인의 애절한 목소리와 악단의 화음, 머리 끝의 핏줄이 요동친다. 세찬 바람으로 그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아'로 시작해서 '아'로 끝나는 리듬속에는 선생님의 애절한 삶이 바다 위에 그려진다. 악사와 주고 받는 절제된 재담이 사람들을 한 발짝 당길 쯤 김지하 선생님과 김영주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게 작별의 절을 올린다.
하관식은 원주에서 토지문학관 텃밭에서 가져온 흙과 악양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고, 함평에서 가져온 수백마리의 나비를 날리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박경리 선생님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기념관을 짓는 것을 반대했다. 외롭게 산 사람은 죽어서도 더 외로운 것을 찾는다. 또한 선생님은 외롭고도 고독했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맛있게 태웠고 폐암에 걸렸을 때 수술하기를 거부했다. 하물며 이런 무덤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글 기둥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 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은 커다란 봉분도 아니다. 어쨌든 형식이니까. 형식이 떠나간 자리에 알맹이가 남아서 춤을 춘다. 알맹이라는 말이 좀 거시기 하다면 사위의 측근들이라고 하자. 측근들의 잔치가 시작되면 바람이 더 세차고 온갖 풀들이 휘날린다. 소나무도 울고 소리꾼도 울면 모두들 덩실덩실 춤을 춘다. 김지하, 김영주 선생님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황토 내리 밟을 때 어디선가 트럼펫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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