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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5 해운대 장산에서 박경리 선생님을 만나다 (1)
  2. 2008.05.12 박경리 흙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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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장산에 올라 구름 아래 수평선을 본다. 오후 다섯시, 외롭다. 온기가 남은 너들바위에 앉아 박경리 선생님의 유고 시를 읽다가 등이 시린줄도 몰랐다.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찬바람이 내치지만 생각해보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어둡고 좁은 동굴을 빠져나온 촛불이 여기서는 흔들린다. 나름 깊다고 생각하는 이 슬픔은 선생님에 비하면 담배 한 대 진하게 피울 거리도 안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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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상세보기
<b>박경리</b> 지음 | 마로니에북스 펴냄
의 작가 박경리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유고시집! 박경리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년 5월에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긴 39편의 시를 모아...


산다는 것
- 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들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았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면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우리문학의 큰별 박경리 선생님이 흙으로 돌아가셨다. 고향인 통영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술잔을 탁, 하고 내려쳤다. 탁자에 뿌려진 드라마. 토지의 서희를 짝사랑했던 사춘기시절부터 토지에 등장하는 민초들을 전형으로 삼으려고 했던 20대 그때까지, 순식간에 지나간다.  얄궂게도 김지하 선생님이 더 보고 싶어진다. 처음으로 쓴 소설 제목이 김지하 선생님의 '오적'을 패러디한 탓인지도...
 
다음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채희완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 미학 파트 대학원 선배들과 그렇게 통영을 찾았다. 진정한 딴따라 무리에 섞여가지 않았다면 관에서 주최하는 선생님 추모제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통영은 윤이상, 김춘수, 김상옥, 유치진, 유치한 등 우리나라 예술가를 배출한 곳이자 국가 무형문화재만 하더라도 14개가 넘는다. 진정으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선생님을 추모하는 지 두 눈으로 기담고 싶었다.
 
선생님 유족 중에 한 분과 동승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홍 신부 이야기가 나왔다. 염치 불구하고 추모미사에 나와서 얼굴을 내밀고 언론에 등장하셨는데 타부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분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추모제 정보조차 찾기 힘든 탓에 통영에 다달았을 때 벌써부터 김이 새기 시작했다.
 
박경리 선생님 추모제는 통영시에서 주최가 되어 민간단체에서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형태였는데, 공무원들이 하는 행사란 항상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지나친 축사를 비롯해서 형식적인 모습들... 하지만 이번 추모제는 관에서 주체한 행사 치고는 고인과 유가족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깃들어 있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방도 잡아주고, 만장(輓章)을 그리는 동안 밤새도록 공무원들이 번갈아가며 빈소를 지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다. 그것은 공무원들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그리고 따라해서도 안되는 딴따라 정신이다.
 
통영 문화마당에서 민중화가 김봉준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글을 쓰고 딴따라 선생님들과 함께 만장을 만드는 일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목이 마르면 술을 마시고 만장을 이응차 들어보면 만장이 바람에 신나서 춤을 춘다. 지칠 때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트럼팻을 연주하는 선생님이 나타나 노동이 맛깔스럽게 변한다. 만장 50개를 만들고 나니 새벽 4시다. 여관에서 6시 넘게 술을 마시고 몽롱한 상태에서 추모제에 참여했다.  
 
 

이날 추모제는 넋맞이굿(남해안별신굿), 헌다례, 헌작(유족대표), 조사(정해룡 예총회장), 추모사(통영시장, 경남도지사), 조시(김혜숙)와 조가, 헌화와 분향 순으로 이어졌다.  추모제가 끝난 후 선생님의 모교를 거쳐 충렬사 앞 광장에서 노제가 열렸다. <김약국의 딸들>에 묘사되는 서문고개가 있는 곳이다. 통영은 언덕이 아름다운 곳이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도 그렇고 그 좁은 골목, 더 작은 문, 손바닥만한 창문 안에 불을 켜고 글을 쓰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박경리 선생님은 1926년 10월 28일 경남 통영시 문화동 328번지에서 태어났다. 1941년 통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여고를 1946년에 졸업했다. 통영군청에서 잠시 적을 두고 있을 때 1946년 김행도씨와 결혼했으나 한국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재봉털을 붙잡고 살림을 꾸리면서 외동딸(김영주)을 키웠고 사위(김지하)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역작을 출산했다.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선생님의 마지막 시,  2008년 4월 <현대문학> 발표 -

노제가 끝난 후 장례행렬은 장지인 산양면 양지농원 언덕으로 이어졌다. 통영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만장은 춤을 추었다. 허경미(부산대 미학 7기) 선생님이 길닥음 춤으로 운구를 이끌었다. 바람이 더 세차게 불 때 남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들채굿이 이어졌다.

 

무인의 애절한 목소리와 악단의 화음, 머리 끝의 핏줄이 요동친다. 세찬 바람으로 그 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아'로 시작해서 '아'로 끝나는 리듬속에는 선생님의 애절한 삶이 바다 위에 그려진다. 악사와 주고 받는 절제된 재담이 사람들을 한 발짝 당길 쯤 김지하 선생님과 김영주 선생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에게 작별의 절을 올린다.

하관식은 원주에서 토지문학관 텃밭에서 가져온 흙과 악양에서 가져온 흙을 뿌리고, 함평에서 가져온 수백마리의 나비를 날리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박경리 선생님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기념관을 짓는 것을 반대했다. 외롭게 산 사람은 죽어서도 더 외로운 것을 찾는다. 또한 선생님은 외롭고도 고독했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담배를 맛있게 태웠고 폐암에 걸렸을 때 수술하기를 거부했다. 하물며 이런 무덤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글 기둥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 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은 커다란 봉분도 아니다. 어쨌든 형식이니까. 형식이 떠나간 자리에 알맹이가 남아서 춤을 춘다. 알맹이라는 말이 좀 거시기 하다면 사위의 측근들이라고 하자. 측근들의 잔치가 시작되면 바람이 더 세차고 온갖 풀들이 휘날린다. 소나무도 울고 소리꾼도 울면 모두들 덩실덩실 춤을 춘다.  김지하, 김영주 선생님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황토 내리 밟을 때 어디선가 트럼펫이 들려온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