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상상이 만나는 길에 서다


31() 공휴일, 3일간의 연휴는 직장인에게 흔한 기회가 아니다. 제주도로 자전거 캠핑 가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배와 비행기 모두 자리가 없어서 경남 창녕과 밀양 산길을 타는 루트를 잡게 되었다.

 

길 이름은3.1 의열단[각주:1] 루트 정했다. 일제시대 경남지역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이 일어난 지역이 창녕군 영산면이고 창녕과 산 하나를 사이에 둔 밀양은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이었던 의열단 전사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3.1의열단 루트의 백미는 영취산(739m) 화악산(926m) 산길이다각각 이십 리(8km) 거리에 표고차는 250~310m다. 영취산 심명고개, 화악산 봉천재는 옛날에 밀양과 창녕을 오고가는 지름길이었다. 


창녕에서 소를 팔고 넘어 오다가 고개에서 도둑 만났던 이야기, 나물을 캐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다는 등 숱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기에 더해서 의열단의 대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이 창녕에서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왔던 1945년을 떠올리며 역사를 자전거로 그 길을 달려본다.


평범한 임도지만 역사적 현실과 개인적 상상이 더해지면 무척 재미있고 의미있는 길이 된다. 물론 하루에  고개를 넘으려면 의열단처럼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    


김원봉은 1945 123 2진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그는 창녕을 지나 고향인 밀양을 방문하는데, 당시 밀양에는 10여명의 인파가 운집하여 그를 열렬히 환호했다. 1946 226 창녕을 거쳐 밀양으로 돌아온 박차정 열사의 골을 밀양 부북면 제대리 송악 공동묘지에 안장한다. - 약산 김원봉 평전』중에서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信徒)처럼 생활하였고, 수영·테니스 밖의 다른 운동을 함으로써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자기네들의 특별한 임무에 알맞은 심리 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오락도 하였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으므로, 생명이 지속되는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이었다. 의열단원들은 언제나 멋진 스포츠형의 양복을 입었고, 머리를 손질하였으며, 어떤 경우에도 결벽할 정도로 아주 깨끗이 차려 입었다. - 님웨일즈아리랑중에서


베이스캠프로는 미르피아오토캠핑장(밀양시 하남읍 백산면)이 좋다


최근 밀양시 하남읍 낙동강변에 대규모 캠핑장 만들어졌다. 여름에는 그늘이 없기 때문에 , 가을에 이곳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면 좋다. 캠핑장에서 출발해서 돌아오면 100km, 새벽 일찍 출발하면 저녁에는 도착할 있다.

 

3.1의열단 루트 장장 100km 주요 지점은 다음과 같다.

 

GPS 궤적보기(Runkeeper)

GPS 궤적보기(Wikiroc)

오토캠핑장-낙동강 자전거도로-창녕함안보-남지-영산면(영산만년교)-옥천면(노단이저수지)-영취산 산길(심명고개)-청도면 조천리-고법리-요고리-화악산산길(평밭마을)-부북면 위양리(위양저수지, 밀양연극촌, 박차정열사)-밀양시(밀양독립기념관, 김원봉-윤세주 생가터, 영남루)-밀양강-낙동강 자전거도로-오토캠핑장

구글어스파일 :  uiyeoldan-organization-for-the-independence-of-joseon-route.kml 


영취산 루트는 창녕군 옥천면에서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사명대사 생가터) 청도면 조천리로 넘어가는 산길로 나뉜다. 화악산 산길을 타려면 청도면 조천리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다. 노단이저수지에서 조천저수지까지 8km, 표고차 250m 이른다.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은 고라리로 내려와서 무안면에서 30 국도를 타고 본포교까지 와서 캠핑장으로 돌아가면 된다.

** 화악산 루트는 청도면 요고리 안곡마을회에서 부북면 위양리까지 8km(표고차 307m) 이른다


미리 알고 가면 힘나고 유익한 지식창고 

-아리랑, 웨일즈, 조우화 옮김동녘, 1984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문학과지성사, 1995

-약산 김원봉 평전, 김상웅, 시대의창, 2008

-약산 김원봉, 이원규, 실천문학사, 2005

-영화 아나키스트, 유영식감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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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일보 연재기사 :

 1) 석정.약산, 중국에서 독립운동 덩치, 힘 키우다

 2) 밀양 내이동 같은 동네에서 태어난 두 열사  




낙동강 바람을 맞으며 영취산 심명고개에 오르다



▲ 봉하마을에서 날개를 달다. 창원에서 베이스캠프로 가기 전에 진영을 지나 봉하마을에 들렀다. 친환경 봉하쌀로 만든 국밥과 에너지의 원천인 봉하막걸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서 테마식당도 만원이었다. 대기표를 받고 먹어보긴 처음이다


▲ 영산으로 가는 국도. 베이스캠프에서 안동댐 방향으로 낙동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창녕함안보가 나온다. 보를 건너지 말고 낙동로 방향으로 직진하면 영산으로 가는 국도를 이용할 수 있다. 출출하다면 도천면에서 유명한 순대국밥을 먹어도 좋다.


영산 만년교(靈山 萬年橋). 영산면 중심가에 하천(동천)에 놓여진 만년교는 1780년 정조시대 백진기에 의해 축조되었다. 총길이 13.6, 3미터에 이른다. 물 흐르듯이 화강석을 다듬고 쌓은 이 석교는 보물 564호로 지정되어 있다.


3.1민속문화제가 열리는 놀이마당. 1919 3.12일 구중회를 비롯한 24인의 결사대가 영산 남산봉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킨 것을 기념하여 매년 민속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제 제25호 영산쇠머리대기, 26호 영산줄다리기가 이곳 놀이마당에서 펼쳐진다.


▲ 짬뽕으로 유명한 옥산반점(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362-2 055-521-3078). 화왕산과 영취산 가운데 있는 옥천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작은 중국집이 있다. 잘게 썰은 돼지고기와 진한 짬뽕국물이 일품이다.


▲ 달과 별이 있는 노단이 저수지. 옥천저수지, 화왕산 매표소를 지나서 노단이 마을방향으로 가다 보면 저수지가 나온다. 날이 어두워져 비박장소를 찾지 못해 저수지 위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 하루를 묵었다. 한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산에서 내리치는 바람을 막아주고 밤하늘 별을 볼 수 있는 4성급 호텔에 버금갔다. 고라니가 우는 밤 10시경 고개를 돌리자 영취산 자락에서 둥근 달이 떠올랐다. 숙소로 허락해준 할아버지께 보답하고자 막걸리 2병을 남겨놓았다.


▲ 심명고개 아래에서 뒤돌아본 영취산 산길. 멀리 보이는 산은 화왕산이다. 노단이 저수지에서 심명고개까지는 천천히 와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오는 길에 계곡(사방댐)에서 식수를 얻을 수 있다.


▲ 심명고개는 영취산 자락에 있으며 창녕군과 밀양의 경계지점이다. 심명고개는 세 방향으로 나뉜다. 오른쪽 길은 영취산(1km 이후 자전거길 없음, 등산로 밀양시 무안면 가례리 서가정마을)이고 왼쪽으로는 가다가 오른쪽으로 p턴하면 밀양시 무안면 고나리마을(사명대사 생가), 직진하면 밀양시 청도면 조천리로 이어지는 산길이다조천리를 내려오면 청도면이다. 급경사 내리막이라 내려오면서 펑크가 2번이나 났다. 청도면에는 자전거 수리점이 없기 때문에 예비 튜브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꼬불꼬불 까마득한 화악산 길을 넘다


▲ 청도면에서 화악산 산길 찾아가는 방법. 1) 청도면에서 밀양방면으로 3km 가다보면 다리가 나오는데, 좌측으로 고법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2) 작은 하천길을 따라서 다시 4km 가다보면 요고리(안국마을회관) 3) 요고저수지, 요고길(하천 옆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4) 작은 마을회관 옆으로 임도가 있다. 이곳이 화왕산 산길이다. 운주암 표지판을 쫓아서 가도 된다.

 

▲ 봉천재까지 2.4km 경사가 급해서 끌바를 해야 할 구간이 많다. 임도를 오르다보면 왼쪽 산허리에 박힌 송전탑이 보이는데, 저곳으로 765kv 전류가 흐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 봉천재를 몇백미터 앞두고 뒤를 돌아보면 영취산과 이어지는 관룡산(740m), 열왕산(663m)이 보인다. 봉천재에서 좌측으로는 운주암(자전거길 끝남), 직선방향으로 재를 넘어서면 대항리(좌측), 평밭마을(직진방향) 갈림길이 나온다.

 

▲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작은 계곡을 지나면 화악산 아래 평밭마을이 나온다. 평밭이라는 이름답게 400미터 고지에 넓고 평평한 들이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마을 위로 송전선이 지나가기 때문에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중이다.


항일무장투쟁 전사의 고향 밀양을 가다


▲ 밀양 의열단루트(25km)

위양지-밀양연극촌-밀양방향24번 국도-(좌측)청운마을-덕곡마을-제대사거리-송악마을(아가페어린이집)-박차정열사 묘소(독립투사이자 김원봉의 아내, 송악공동묘지)-제대사거리-밀양고등학교-내이동우체국-(좌측)해천길(현재 공사중)-김원봉.윤세주생가터-밀성고등학교-교동사거리-(우측)밀양독립운동기념관(밀양시립박물관)-밀양관아-영남루

 

▲ 평밭마을을 넘어서면 위양리까지 내리막길이고 밀양이 한눈에 잡힌다. 산길을 내려와서 좌측에 보이는 작은 연못은 위양못(위양지)이다

 

▲ 경칩을 앞둔 위양지. 신라시대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5월에는 이팝나무가 어울어져 찾는 사람이 많다. 위양지를 한바퀴 돌아서 둑 아래 농로를 따라서 1~2시 방향으로 가다보면 밀양연극촌이다.

 

▲ 밀양연극촌(경남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78). 폐교(구 월산초등학교)된 자리에 1999년 밀양연극촌이 개관했다. 문화게릴라로 불리는 이윤택 예술감독의 연희단거리패가 중심이 되어 가마골소극장, 우리극연구소 등 한국의 연극패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매년 여름에 밀양연극공연축제가 열린다


  • 작품명 : 약산 아리랑
  • 연   출 : 이윤택
  • 출   연 : 연희단거리패 및 우리극연구소 배우 
  • 시   간 : 100분  
  • 작품설명 : 2009년에 초연된 약산 아리랑은 밀양이 낳은 항일투자 김원봉, 그의 아내 박차정, 윤세주, 한봉근, 최수봉, 김익상 등 일제시대 젊은 아나키스트들의 질풍 같은 삶과 여정을 한국적 뮤지지컬로 재창조한 작품
  • 올해 5월에 공연이 열린다고 함


▲ 밀양시 내이동에 있는 김원봉 생가터를 알리는 작은 비석. 약산과 석정의 생가터는 찾기가 어렵다. 내이동우체국에서 밀양시청 방향으로 샛길(하천복원 공사중)을 따라서 50여미터 가다보면 차들이 주차된 공간이 나오는데 그 한 켠이 생가터이다. 이곳을 자주 지나다녔던 나 역시도 몰랐으니 지도 앱으로 주소를 입력해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주차장 구석에 작은 비석이 방치되어 있었다그리고 바로 옆은 윤세주 열사의 생가터이다. 역시 작은 간판 하나가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하천이 복원되면 기념관은 아니더라도 골목을 사이에 두고 태어난 위대한 혁명가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 조선의용대 기념사진(1938. 10. 10)

석정 윤세주 열사(1901~1942). 3.1독립운동에 참가를 시작으로 조선의열단, 조선민족혁명단, 남경조선혁명간부학교를 창립하고 조선의용대를 조직하여 중국항일전쟁에 참가했다. 1920 경찰에 체포되어 8년간 투옥되어었으며, 1945 528 태항산에서 적탄에 맞아  순직했다.

 

▲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 약산(若山) 김원봉 (金元鳳, 1898 ~ 1958?). 경남 밀양출생의열단 단장, 혁명간부학교 교장, 민족혁명당 당수, 조선의용대 총대장, 한국광복군부사령관 겸 제1지대장, 임시정부 군무부장 역임했다.


▲ 우리나라 3대 누각(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 중 하나인 영남루. 1365년 고려 공민왕 때 세운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 객사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다. 밀양강을 끼고서 체육공원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길을 따라서 가면 낙동강을 만나게 된다. 

 

▲ 미르피아오토캠핑장 찾아가는 방법( 24km, 1시간30분). 밀양교(영남루 앞)-강변자전거도로(체육공원)-용두교-강변자전거길-예림교-예림교사거리에서 좌측 둑 아래 길 국립종지원-낙동강자전거길(안동댐 방향)-미르피아오토캠핑장


▲ 밀양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쉼터(밀양시 상남면 외산리).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 강이 넓은 만큼 바람도 세고 차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미르피아오토캠핑장이 나온다. 자동차를 주차해둔 진영에 도착한 시간은 7시가 넘어서였다. GPS 앱은 125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역사를 묻다


해방 이후 조국에 돌아온 약산은 조선인민공화국(1945.9.8) 내각 군사부장에 선임된다. 신탁통치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그가 찬탁운동에 가담하면서 임시정부와 결별한다. 이후 우익과 친일파로부터 정치테러를 당하게 된다. 1947년 3월,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뺨을 맞는 등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자 김원봉은 충격에 빠진다. 


그의 정신적 동지였던 여운형이 암살되자 장례를 주관하고, 1948년 4월19일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남한측 대표로 김구, 김규식, 박헌영과 함게 북한으로 넘어간다. 회의 이후 김원봉은 북한에 잔류하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국가검열상에 오른다. 


1958년, 옌안파와 함께 숙청되면서 남한과 북한의 역사에서 약산은 금기시 된다. 약산이 북한에서 숙청된 계기는 김일성의 정책, 특히 한국전쟁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스위스처럼 중립국 형태의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가 북한에 남게 된 계기는 "북한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한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사마로에게 보낸 편지)고 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약산의 형제 4명과 사촌동생 5명이 보도연맹으로 몰려 살해당했다. 그 과정에서 약산의 동생 김봉철, 김학봉이 살아남았고 그의 아버지는 외딴 곳에 유폐되었다가 굶어 죽었다. 1980년대 이후 남한에서 재평가 여론이 일면서 훈장 서훈이 추진되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했다. 


"김약산은 고전적인 유형의 테러리스트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며, 개인주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상해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김약산은 언제나 조용하였고체운동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거의 말이 없었고 웃는 법이 없었으며, 도서관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그는 투르게네프의 소설아버지와 아들 좋아했으며, 톨스토이의 글을 모조리 읽었다. 그는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가씨들은 모두 그를 멀리서 동경하였다. 그가 대단한 미남이었고, 로맨틱한 용모를 갖고 있기 문이었다. 한국의 톨스토이주의자 다수가 테러리스트로 되었다. 이것은 톨스토이 학이 결코 해결될 없는 모순들로 가득 있고, 그러므로 해결책을 구하려는 맹목적 노력 속에서 직접적인 행동과 투쟁으로 나아갈 필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아리랑



  1. 의열단 (義烈團) 의열단은 공약 제1조에 ‘천하의 정의의 사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에서 ‘정의’의 ‘의’와 ‘맹렬’의 ‘열’을 따왔다. 1919년 11월 10일 중국 길림에서 김원봉•윤세주•한봉근•한봉인•김상윤 등 13명과 결의, 의백으로 김원봉이 추대되었다. 의열단은 폭탄 국내 반입의거, 부산경찰서장 폭사의거, 밀양경찰서 폭사의거, 종로경
찰서 폭파의거, 일본 육군대장 저격의거, 일제 밀정 처단의거, 경북 의열단 사건, 동양척식
주식회사와 조선식산 은행 습격 의거 등 항일운동에 큰 행적을 남겼다. 의열단이 정한 암살대상, 이른바 칠가살(七可殺)로 다음과 같다. ①조선총독 이하 고관 ②군부 수뇌 ③대만 총독 ④매국적 ⑤친일파 거두 ⑥적의 밀정 ⑦반민족적 토호열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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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봉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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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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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www.ymca.pe.kr BlogIcon 이윤기 2013.03.07 0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흥미있고 대단한 여행기입니다.
    부럽지만...따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네요. ^^

김해시 유등마을에서 시호2구로 가는 강둑에서 소를 만났습니다. 자전거가 다가오자 덩치 큰 소가 슬며시 자리를 내어줍니다. 이 소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는 과연 없을까요?


'4대강살리기' 가물막이(하천에 물을 막는)공사가 시작되던 때 경남 합천에서 김해 한림정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리저리 계산을 해보니까 대략 200km 정도 달렸더군요. 낙동강이 워낙 굽이치며 흘러가기 때문에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낙동강의 한 줄기인 황강(경남 합천군 대병면 합천댐)에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한국형 뉴딜정책이라 불리는 4대강살리기 사업 중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자전거 도로'입니다. 낙동강만 해도 743km, 4대강 전체로 따지자면 1,728km에 이르는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강을 따라서 쭉 뻗은 자전거 도로를 만든다는 이야기에 쏠깃했습니다. 국토부가 발표한 환경영향평가에서 공사구간에서는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발표 역시 자연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낙동강 길은 다니면서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습니다. 4대강살리기 사업이 친환경적으로 시공하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이었습니다.

합천보 근처의 강둑길. 농민들이 자주 다닌 강둑은 비포장길이지만 자전거가 다니기에도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보가 만들어지면 수위가 상승하면서 오른쪽 농경지는 침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들과 동물들의 서식지인 갈대숲과 습지가 불도저 밀려서 짓이겨졌습니다. 합천보에서 한림까지 이어지는 낙동강에는 여전히 모래 채취가 이루어지고 있고, 눈으로 확인한 곳만 여섯군데가 넘었습니다. 특히 창원시 대산면 인근 낙동강에서는 엄청난 모래를 채취한 나머지 삼각주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조상들은 강의 범람에 맞서며 둑을 쌓아왔습니다. 강둑을 방패 삼아서 마을과 농지를 넓혀왔지요.  강둑 반대 편에서는 삼각지와 강기슭을 중심으로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털었습니다. 강둑은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경계였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비옥한 삼각주를 넘보면서 동물들의 서식지가 위협을 받게 되었고, 그나마 농지로서의 가치가 없는 갈대숲과 강기슭이 동물들의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4대강살리기 공사로 강둑 옆 습지와 갈대숲은 이미 파괴되고 있습니다. 

어릴적에 강둑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학교로 다닌 적이 있는데, 저녁무렵 강둑을 걸어본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포근한지 알겁니다. 새들이 하나 둘씩 삼각주로 돌아오고, 반대편 마을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강둑을 자전거로 달렸습니다.

해가 저무는 강둑에 앉아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길을 두고 왜 억지로 길을 내려고 할까요? 낙동강 자전거길은 강둑을 활용해도 좋지 않을까요? 길이 끊어진 구간에는 항상 다른 마을로 이어져 있습니다. 직선보다는 곡선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간혹 강둑에서 만난 소, 염소,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입니다.  

합천보에서 가장 가까운 외삼학 마을에 있는 은행나무. 강둑이 없었다면 아름다운 이 나무도 보지 못했을 겁니다.


합천보의 청사진을 보면 보 주변으로 공원과 산책로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개발 예정지에 농지를 갖고 있던 분들은 당장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변으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강둑 너머 어떤 마을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테니까요. 

강둑길의 장점은 여러 마을과 강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으면 농로를 따라서 페달을 밟아서 쉬어갈 수도 있습니다. 유럽의 그린웨이(Green Way)가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그린웨이는 안전하고 편리함과 함께 생태계 보존에 힘을 쏟습니다.

미국 뉴욕의 워터프론트 그린웨이의 모습.



낙동강을 따라 늘어서 강둑은 친환경 보행로 그 자체입니다. 짧게는 1km, 길게는 4km 조금만 정비하면 외국에 내어놓아도 손색없는 길입니다.  끊어진 길 끝에는 새로운 마을이 있고 그 마을을 벗어나 농로를 따라서 또 다른 마을로 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스웨덴 친구가 우리나라 강둑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잊지 못할 추억이 되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반듯한 도로를 만들지 말고 강둑을 살리면서 그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개인적으로 봉하마을이 사례를 들고 싶습니다. 친환경 농사로 강과 습지가 점점 살아나고 있습니다. 정치사상이 다른 분들도 화포천과 봉화마을 농로를 걷다보면 감탄하실 겁니다. 

근래 낙동강 주변으로 농지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국유지이기 때문에 3년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정도의 보상을 하고 그곳을 밀이서 공원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공원보다는 농지입니다. 국유지에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면 강도 깨끗해지고 농민들도 땅을 떠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자전거 족으로서 한말씀 드리자면, 자전거 도로를 만들 비용으로 하폐수처리장과 마을 하수도를 정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전거족은 그저 강둑길처럼 작은 오솔길이면 족합니다.

낙동강 자전거 여행 구간

< 1일차 > 합천군 대병면에서 창년군 부곡온천
09:30분 합천자연학교 출발  - 1026 지방도로 성리삼거리 (합천댐방향 좌회전) -  합천테마파크 - 용주교 진입, 1026도로 (합천읍방향으로 좌회전) -  좌회전 (합천댐방향 좌회전 09:50분) -   남정교삼거리 (강변길을 따라서 현대대성주유소까지 진입 10:20분) -  24번국도 군부대 앞에서 에서 임북리 방향으로 좌회전 - 임북리둑방길 - 10:30분문림교(합천군 율곡면 문림리) 24번국도 진입   - 문림교 - 율곡 강둑길 (율곡농협 순신장군 백의종군로 시작 지점에서 좌회전) - 1034 도로 -  서문수양관 도착 1시- 낙민3구 둑방길 (합천군 쌍책면) - 전두환 생가 -  갑산 강둑길 - 갑산정수장 - 갑산1구마을 - 방골재(터널) -낙민3구 - 24번국도 옆 농로 - 초계석재 - 농장 -  13:00분초계면 24번국도 - 초계면사무소, 초계시장 -  창녕방향 24번국도 - 청덕면 사무소 - 청덕교 - 외삼학 강둑길(합천보 공사현장 입구) -  합천보 공사현장 - 청덕교 - 24번국도 적포, 창녕 방향 -  중적포마을 - 적포 강둑 (상적포 마을에서 하적포 마을)14:40분 - 24번국도 - 16시 적포삼거리 - 창녕방향 적포교 - 67번 국도 이남삼거리 우회전 창녕방향 - 등대마을  강둑길 (창녕군 유어면) - 유어면사문소 - 유어면 삼거리에서 우회전 (영산, 부곡방면) 79번 국도 -  동정삼거리(창녕군 장마면) 우회전 부곡방향 -  영산 - 18:30분 부곡온천 도착 및 1박
< 2일차 > 창녕군 부곡온천에서 김해시 봉하마을 (한림정에서 부산까지는 무궁화호)
10:30분  부곡출발 - 수산, 초등방향 1008국도 - 임해진 삼거리에서 좌회전 (수산방향) 11:00 - 언덕 (청학로) - 학포리 - 본포교 - 본포교 끝에서 대산방향 - 현대건설 공사현장에서 창원시 대산면 취수장 방향  - 일동마을을 통과하여 일동초등학교  -  수산교 -  모산삼거리에서 직진 60번 국도 - 유청마을회관(경상남도 창원시 대산면)  유등마을 댓거리추어탕(291-6967) - 대산미술관 12:50 - 유등 강둑길(유등취수장)  - 시호리(김해시 한림면) - 시호리 강둑길 -   모정취수장 - 철길 따라 한림정역  -  영강사 -  화포천 - 지광사 - 노무현 대통령 생가 - 한림정역 16:08분 출발, 무궁화호 이용 - 삼랑진 환승 - 부산해운대 도착 17:52분


경남 합천군 대병면 들판입니다. 이곳은 함양 울산간 고속도로가 곧 들어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합천읍에서 쌍책면까지 황강 주변의 갈대숲을 밀어내고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와 콘크리트 강둑이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학리마을에 합천보 건설을 위해 공사차량 출입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소들이 둑에서 사라지자 길이 풀로 자전거가 덮일 정도로 무성합니다.

새들의 서식지인 황강 하류에 공사차량의 길이 생겼습니다.

합천보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불도저가 갈대숲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합천보 청사진을 보면 이곳에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납니다.

낙동강 중에서도 물살이 빠른 이곳에 보가 설치됩니다.

적포리 강둑 오른족에 무성한 갈대숲과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멀쩡한 강둑길을 두고서 오른쪽 갈대숲에 도로가 납니다.

오래전부터 낙동강을 젓줄삼아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도 올해까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4대강살리기 사업으로 드는 토지보상 비용이 1.5조라고 합니다. 낙동강 하류인 부산까지 내려가는 곳에는 수많은 농지가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제가 보기에도 낙동강에 드는 비용만 2조 가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포교 근처에서 엄청난 양의 모래가 어딘가로 실려가고 있습니다.

모래 채취 때문에 유속이 빨라지면서 삼각주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본포교 아래 고인물에 녹조가 끼면서 심한 악취가 납니다.

강따라 가면 아름다운 풍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직선보다는 곡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늦더라도 이마을 저마을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창원시 대산면 유등리에 있는 댓거리 추어탕(055-291-6769) 입니다. 먹을만 합니다.

김해시 한림에서 삼랑진, 원동, 부산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체력이 다 해서 한림역에서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원래 접이식 자전거가 아니면 기차를 타지 못하지만 혼자 왔다고 하니까 승객들 불편을 주지 말고 맨 뒷좌석에 타라고 합니다.

시간이 있어 한림면 근처에 있는 봉하마을로 가는 길에 뚱뚱한 기러기 구름을 만났습니다.

화포천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하지만 화포천도 개발에 밀려 그 넓은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봉하마을 수로입니다. 물색이 탁해서 이곳도 오염됐겠구나 싶었는데, 물속에 파란 수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또한 수로 끝에는 정화시설이 있어 화포천으로 깨끗한 물을 내보냅니다.

봉하마을 수로에 청둥오리가 놀고 있습니다.

봉화마을에 또다른 볼거리 논습지가 있습니다.

다시 한림역으로 돌아와서 4시10분 기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부산으로 갑니다. KTX가 달려오는데, 녀석은 저와 자전거를 실어줄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저녁에 해운대역에 도착했습니다. 온 몸에 흙이 잔뜩 자전거를 보니 녀석이 고생 꽤나 했지 싶습니다. 그래도 환경을 파괴하면서 만들어진 자전거도로 위를 달리진 않아서 녀석과 제가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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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frederick.tistory.com BlogIcon 후레드군 2009.11.21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그냥 하지 말라는것만 골라가면서 하는 정부- 그동안의 정부들도 딱히 좋아한건 아니었습니다만 이번 정부만큼 못나고 진저리가 나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2. 스트라이더 2009.11.26 1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글을 보니 너무 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녔네요. 강을 그대로 뒀으면 좋겠어요. 한표!

  3. 이하연 2011.05.04 0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4대강 옴니버스 영상 프로젝트 <강, 원래>에서 자전거도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이하연이라고 합니다. 영화에 삽입할 사진을 찾다가 블로그의 사진들을 보고 돌배군님의 사진을 영화에 넣을 수 있을까 하여 문의드립니다. 자전거 도로라는 명목으로 파괴된 4대강 사진을 구하고 있는데, 이전의 모습과 공사중, 혹은 공사 후의 모습 사진을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outwhale@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 Favicon of https://nomadlab.tistory.com BlogIcon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2011.05.05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일 하시는 데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지요. 사진은 퍼가셔도 되는데 도움이 되려는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낙동강 주변으로 여행중이라 원본은 일요일 즈음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