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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청소년
                                    -고구려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돌배군>
                                                     
                                               

일곱 별을 찾아 떠난 고구려 원정대

1052km, 2,046명의 어린이 그리고 북두칠성. ‘찾아가는 어린이 미디어교실’의 또 다른 이름인 ‘고구려 원정대-주몽’에게 붙인 수식어이다. 센터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총 4,500여명임을 감안하면 고구려 원정대가 10월1일부터 12월 중순까지 20일 동안 기록한 양적인 결과는 놀라운 것이다. 고구려 원정대가 찾아간 흔적을 지도 위에 점일 찍고 선으로 연결하면 북두칠성과 닮은꼴이다. 1세기 경 고구려인들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신라시대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보다 앞서 28수와 북두칠성을 그렸다. 2000여년이 지난 지금, 고구려 원정대는 일곱 개의 빛나는 별을 찾아 떠났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일러두기 : 유아와 어린이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해석임을 밝혀둔다. 유아 : 정신지체 청소년을 말하며 5세~7세 정도의 인지능력 / 어린이 : 8세~13세 보육원 소속 어린이


별에게 고구려 신화 속삭이기

고구려 원정대를 계획할 당시 TV 드라마 주몽은 30%대의 시청률에 막 올라섰을 때였다. 사극열풍을 타고 지상파 방송에서는 연개소문과 대조영이 주몽의 뒤를 이어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한 후배는 ‘TV 드라마가 고구려 역사를 왜곡에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요즘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드라마 주몽을 보는데, TV속 역사가 진짜라고 믿으면 어쩌나 개탄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주몽을 주제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해보자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이에게 역사와 미디어를 주제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경역사학회(상임연구원 박정기님)의 도움을 받아 드라마 주몽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거기에 어린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추가해서서 총 20씬 분량의 스토리텔링 대본으로 완성했다.

<사진 1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만든 대본을 읽고 있는 학생들>

 또한 어린이들이 신화적인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능인출판사에서 나온 학습만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을 고구려 역사읽기 교재로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 벽화를 바탕으로 고증된 의상을 제작했다(무대의상 이도님).

문제는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놓고 긴 토론이 이어졌다. “아니 아이들에게 어떻게 거대한 고구려 담론을 이야기해요?” 교사 워크숍 자리에서 어린이 교육을 오랫동안 해온 분이 의아해하며 말을 꺼냈다. 새로운 대본을 만들기 위해 참고할 만한 책을 고르기 위해 서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 책 재밌어요!” 기껏해야 7살로 보이는 아이가 말했다. 이 친구는 두 가지 종류의 만화책을 읽었는데 그 중 하나를 꼽으면서 친구들과 돌려볼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했다. 7살 아이도 알고 있는 고구려 주몽의 서사라면 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  

9월30일, 벡스코에서 열린 제5회 전국평생학습축제에 고구려 원정대가 첫 출정에 나섰다. 고구려 국내성 세트와 고구려 의상 그리고 스튜디오 카메라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고구려 역사는 뒷전이고 고구려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멋있게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틈에 교육은 뒷전으로 밀렸다. “자, 자세 잡으세요. 찍습니다. 찰칵…….” 길게 늘어선 줄과 부모들의 아우성이 떠난 자리에 버려진 고구려 학습자료. 이것이 고구려 원정대의 실체인가! 몇몇 아이들은 동북공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우린 아이들에게 주몽 신화를 꺼내지도 못하고 드라마와 닮은 고구려 이미지를 심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미디어 리터러시로 무장한 고구려 원정대

TV 드라마 주몽, 15세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벡스코에서 만난 아이들 80% 이상이 주몽을 시청하고 있었고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70% 이상 알고 있었다. 시청 지도가 필요한 드라마임에도 아이들의 열성적인 시청을 막을 순 없다는 학부모의 푸념은 교육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장애아동과 보육원 어린이 반 이상이 하루에 TV와 인터넷 앞에서 5시간 이상 보내고 있다는 사실(미디언 2006)은 고구려 원정대가 찾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 지 더욱 분명해졌다.      

우선 정보를 이해하는 배경지식이 부족한 교육 대상에게 TV에서 말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시켜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고 교육 자료를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교육 자료는 주몽 제작사인 올리브나인에서 아동용 캐릭터에 대한 라이센스를 얻어 어린이들이 교육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역사적 내용에만 충실하다가 아이들의 눈을 맞추지 못 하고 외면당한 지난 번 리플릿에 대한 반성이었다.

<사진 2 : 교육 자료를 읽고 TV드라마 주몽과 비교하고 있는 아이들>

 수정된 교육프로그램은 미디어란 무엇인가, 역사 속 주몽 인물 분석하기, TV드라마 주몽 바로 읽기, 미디어 대장간(역할놀이 형태의 제작교육)을 축으로 무대미술 꾸미기와 고구려놀이체험으로 구성했다.

드라마 속 현실과 역사적 현실을 분리하기 위해 인형극(유아 대상)과 역할극(어린이 대상), 그에 따른 워크시트를 통해 학습하도록 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리터러시 교육하기 전에 비해서 드라마의 허구적인 내용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두드러졌다. (제세한 내용은 ‘미디언 2006’ 참조)

고구려 원정대 교육 평가서에서 유아(정신지체청소년)는 TV드라마 주몽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대부분 답한 반면에, 보육원 어린이(10살~13살)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답했다. 드라마 주몽을 보고나서 아동들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답이 가장 많았고 어린이들은 역사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2006.12. 고구려 원정대 교육평가서-   

 

<표1 : 리터러시 교육 전 설문 분석, 자세한 내용은 ‘미디언 2006’ 참조>


에피소드 1 - 아이들과 스토리텔링하기

피아제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서사구조의 전형적인 구조와 구성요인에 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스토리에 대한 스키마(Schema)를 발달시킨다고 한다. 아이들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서사구조가 단순한 TV드라마 주몽은 어린이들이 표면적으로 해석하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예를들어 유아에 비해 어린이들은 스토리텔링 대본에 주어진 한 씬의 상황,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한 분석이 뛰어났다. 특히 고학년 어린이(초등학교 4~6학년)들은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을 추가하기도 하고 색다른 배경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학교교육에서 배운 역사를 활용하여 창의적인 대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미디언 2006’ 참조)

이와는 달리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아동들은 스토리를 바꾸기보다는 읽기와 외우기에 집중했다. 어떤 유아는 자신의 인지적 능력에 한계에 도달했을 때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웃음으로 넘기기도 했다. 실제로 창작한 대본으로 촬영 전에 연습을 했을 때 유아와 어린이 모두 드라마에서 보거나 들었던 행동과 말투를 흉내 내는 모습을 보였다. 오랫동안 TV 드라마가 유아와 어린이들의 스키마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회심리극(사이코드라마학회 최대헌님)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은 지도교사가 아이들의 자발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스토리텔링이 창의적이면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사회심리극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피소드 2 - 미디어 대장간에서 발견한 재미와 재치

7개 단체 아이들의 모두 좋아한 교육은 ‘미디어 대장간’이었다. 실제 역할을 나눠 촬영을 하는 역할연기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재미있었다고 꼽았다. 반대로 재미없었던 교육은 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했던 교육이었다. 미디어를 바로 본다는 교육이 단시간 내에 해결될 일이 아니어서 아이들에겐 지루한 교육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대장간의 장비들은 카메라와 붐마이크 슬레이트와 노트북으로 제작장비를 최소화하고 방송미술을 활용한 협동작업에 중점을 두었다. 아이들은 스튜디오 촬영과 야외촬영을 구분하여 사고를 했고 직접 만든 아기자기한 무대와 소품은 보는 것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시골 아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야외촬영을 강행했다.

미디어 대장간 교육내용 중에서 ‘스토리보드를 활용한 컷 나누기’ 부분은 유아와 어린이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진 3 : #4 주몽의 뛰어난 활솜씨 촬영 화면>

 <사진 4>의 대본에 나와있는 텍스트는 ‘주몽이 대소와 다른 왕자들이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냥을 한다.’이다. 어린이들은 이 텍스트를 한 컷으로 처리했다. 사냥하는 모습은 생략하고 사냥감이 있는 모습만 담은 것이다. 그 다음 컷은 풀샷에 금와왕이 주몽을 칭찬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놀라울 정도의 압축이다. 유아에 해당하는 정신지체 청소년은 주어진 대본을 읽고 연습해서 연극을 꾸미는 것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또한 TV 드라마의 내용 묘사에서 환상과 현실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듯했다. 유아에 대한 지속적이면서 장기적적인 교육프로그램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에피소드 3 - 아침 드라마보다 덜 폭력적인 주몽

보호론자들은 미디어 폭력이 현실에서의 폭력에 기여한다고 한다. 더 불길한 것은 폭력적인 미디어를 자주 시청하는 어린이는 폭력 효과와 희생자의 고통에 둔감해진다는 결과를 제시한다.<어린이 청소년 미디어, 방송문화총서 75, 빅터 C. 외, singer, zuckerman> TV 드라마 주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을 때, 어린이(남학생)들은 주몽이 싸우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쟁하는 장면이 재미있고 실감나며 멋있어 보인다는 게 대답이다. 유아에 해당하는 정신지체 청소년(여학생)들은 주몽과 소서노가 만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꼽았다. 그 이유는 감동적이거나 슬퍼서 그렇다는 대답이 많았다. 성별과 따라 정신연령에 따라 드라마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쨌든 고구려 원정대가 만났던 아이들은 주몽의 전쟁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 어린이의 경우 - 보육원과 장애시설에 있는 어린이 - 드라마 주인공 대사를 그대로 따라하거나 전쟁 장면을 흉내 내며 놀고 있었다. 이 점을 고려해서 스토리텔링 대본에는 전쟁 씬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축소시켜두었다.(사서의 기사에서도 주몽은 송양왕을 평화적으로 복속시키고 다른 부족을 정복한다는 짧은 텍스트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어린이들은 잔뜩 기대했던 전쟁장면도 없고 장난감 칼과 활이어서 시시해 하다가도 자신의 역할이 오면 전쟁과는 상관없는 역할놀이에 집중했다.

피아제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미디어 내용의 현실을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단서들을 이용한다. 그들에 대한 가장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는 미디어에서 묘사된 캐릭터나 사건들의 현실 세계에서의 가능성 여부이다. 필자의 어릴 시절을 생각하면 나무를 깎아 칼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TV만화영화를 보고 흉내 내는 것이다. 당시 어른들의 눈에는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놀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놀이 속에는 선과 악의 구별이 있었다. 악당 역을 했던 상대편이 다치기라도 해서 아프다면 대부분 아이들은 그 놀이를 접고 화해를 한다. 고구려 원정대가 본 어린이들의 행동은 귀여울 정도의 폭력(?)에 지나지 않았다. 보호론자들이 우려하는 어린이들이 보았던 주몽의 전쟁에서 서로 죽이는 장면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영화와 다른 사극에 비교하면 유치할 정도의 액션이었다. 주몽의 칼싸움에 대한 행동 그 자체보다는 음악과 효과로 뭉쳐진 주몽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영웅적인 행동과 이미지가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 각인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물질만능주의와 미모지상주의로 포장하며 자본주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반 드라마보다는 덜 폭력적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난 뒤 TV를 켜면 아침드라마 80%는 해체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에게 이보다 더 폭력적인 드라마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전쟁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어린이들에게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며 시청지도를 한다면 어린이에게 폭력성향을 심어줄 여지는 없어 보인다. 


고구려 원정대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

어른조차 드라마와 현실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마당에 어린이에게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분석해보자는 제의는 무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TV 속의 세계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비교해서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요즘 시대에 더욱 중요해졌다. 공교육과 가정교육을 통해 성장한 어린이들은 TV 드라마를 보면서 서사구조 속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장면을 연결하고 현실세계와 비교해서 판단하는 능력이 향상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TV 드라마 주몽이 연장방영을 선언한 61회째 TNS 미디어 코리아 조사 결과 시청률 46.6%를 기록했다. 부모와 함께 TV를 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점점 더 TV 앞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드라마의 허구적 세계보다는 좀 더 현실세계에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MTV에 열광하게 될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해보는 것이 꿈이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원정대에 참여한 스텝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 함께한 우리 별들에게 감사드린다. 

Posted by 노마드 따따와 철따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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